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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6/28 16:02:42
Name ZolaChobo
Link #1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627_0014179074&cID=10701&pID=10700
Subject [일반]  마광수 교수의 은퇴에 부쳐
마광수 선생님이 은퇴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생은 내가 입학 이후 처음으로 독대해본 교수셨다. 연극의 이해 수업의 그 유명한 야설 쓰기 과제를 직접 평가받기 위해 찾아갔었다. 조영남과 박민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게 기억난다. '박민규 그 친구는 나를 존경한다고 따로 책을 보내왔던데, 무슨 글을 그렇게 어렵게 쓰는지 몰라'라고 말씀하셨지. 늘 쉬운 글을 지향하던 그에겐 박민규조차 현학이었을까.


외솔관 그의 연구실엔 먼지가 쌓여 있었다. 공간엔 냉기가 돌았고, 즐겨 피우시던 장미 연기만이 자욱했다. 휑한 연구실 벽면엔 80년대에 찍은듯한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안광이 형형한 사진 속 젊은 교수와 내 눈앞의 이 노교수는, 비슷한 껍질을 쓴 다른 이였다. 그게 참 서글펐다.


그의 재기는 오래전 말라붙었고, 내 눈앞에 앉아 있는 건 그저 세상에 지친 노인이었다. 수업 도중 체포당하고,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하고, 복직 후에도 대학원 강의조차 열지 못하며 보냈던 고된 세월이 그의 총기를 앗아갔을까. 돌이켜보면 당시 50대 중반이었을 교수님은 나이에 비해 턱없이 늙어 보였다. 70이라 해도 믿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을 마주친 건 작년이었다. 백양관 앞에서 담배를 피던 그 모습은, 말라 비틀어진 나무 같았다. 몸짓에선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교수님의 노모가 작고하셨단 이야길 들었다. 국문과에선 공고조차 띄우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었다. '어머니, 나는 효도란 말이 싫어요.'라는 시구詩句를 써냈던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은퇴를 앞둔 나이에 지옥 같은 우울에 시달리며 노모를 모시고 살던 그는, 모친상에 동료 하나 찾아오지 않던 그는.


끊임없이 필화에 시달렸으나, 마광수 선생은 늘 제자에게 고개 숙여 인사해주시는 분이셨다. 수백 명 정원의 수업에 모두가 전자출결을 찍고 도망쳐 열 명 남짓이 남아도 화 한번 내지 않던 분이셨다.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고 답할 뿐. 은퇴를 앞두고 "억울함과 한이 쌓여 울고 싶다"는 말을 남기는 교수라. 그 삶이 지고 왔던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 장미 한 보루라도 사 들고 찾아뵙고 싶은데, 단종된 지 오래인지라 구할 길이 없다. 대신 좋아해 마지않는 그의 시를 읊는다.


* 시에는 성적인 묘사가 직설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불쾌하실 수도 있음을 알립니다.

<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 마광수


늙어버린 여배우의 모습은 나를 슬프게 한다.
늙어버린 나의 모습도 나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내 방안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이혼한 옛 아내의 립스틱이 먼지에 덮여있는 것을 볼 때.

대체로 사랑은 나를 슬프게 한다.
특히 내 애인이 오럴 섹스를 싫어할 때.
힘주어 섹스하는데도 자지가 서지 않을 때.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래서 삭아버린 내 자지에 곰팡이가 피었을 때.

나와 헤어져야겠다는 글귀가 씌어 있는
애인의 편지를 읽을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옛 애인의 편지.
그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이 저를 버린 걸로 인해
제가 얼마나 죽고 싶었는지......

그때 내가 그녀에게 한 짓이 무엇이었던가.
치기 어린 사랑의 장난, 아니면 사랑한다는 달콤한 거짓말,
오로지 그녀의 보지에 정액을 배설하려고
그녀를 꼬득일 때 거짓으로 속삭였던......

이제는 그 숱한 사랑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
늙디늙은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나의 성욕이 철없이 불타오를 때.

명예욕을 못 채워 초조하게 서성이는 나의 모습 또한
나를 슬프게 한다.

아니, 그보다도 언제나 여학생들을 훔쳐보며 강의하는 나,
관능적 외로움에 가득찬 나의 찝찝한 자위행위,
섹스에 굶주린 끝에 찾아오는 한없는 고독감,
미칠 듯한 로리타 콤플렉스의 주책없는 불타오름.

심수봉의 슬픈 가요. 내가 좋아했던 여배우 한채영의 결혼.
절친했던 친구의 배신, 학계와 문단에서의 집단 따돌림.
야하면서도 우울한 언어에 침잠하는 작가밖에 될 수 없었던 나.
그리고 내가 잊혀진 작가가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

----------- 이런 모든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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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28 16:12
수정 아이콘
매년 올해가 마지막 강의라는 이야기가 떠돌아서 급히 한 과목 수강해봤는데 군대를 다녀온 뒤에 다른 과목 수강할 때까지 강의하고 계셨던 기억이 나네요.
운좋게 두번 다 좋은 학점을 받았고, 교수님이 가진 생각이 굉장히 자유로워서 젊은 제가 오히려 살짝 걱정되기도 했을 정도라 감명깊게 수강했는데,
전자출결에 시험도 창작이다보니 찍고 튀는 행위를 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아서 보기 안좋았습니다.
자유로운 성생활을 추구하시지만 막상 말년에 외롭게 계신걸 보니 안타깝기도 하네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Go2Universe
16/06/28 16:14
수정 아이콘
한국사회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빨리 오신 분이었죠.
앞으로 편하게 우실수라도 있으면 좋겠네요.
Neanderthal
16/06/28 16:16
수정 아이콘
즐거운 사란가 책을 샀었는데 잃어버렸나 버렸나 했습니다...그냥 잘 가지고 있을 걸 하는 생각이 드네요...
The Variable
16/06/28 16:19
수정 아이콘
대중에는 변태가 연세대 교수를 해먹는다네 정도로밖에 안 알려진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분명 재평가를 받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스터충달
16/06/28 16:22
수정 아이콘
영화 <아가씨>의 코우즈키를 보면서 마광수 교수님을 떠올렸습니다. 코우즈키가 그냥 변태가 아니라 마광수 교수님 같은 사람이었다면 좋았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었겠죠. 그래도 그런 매력있는 인물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야(冶)하지 않고 야(野)한 사람이길 바랐던 문인이 세파에 시달려 우울한 언어에 침잠하게 되었다니 안타깝네요. 들판을 뛰어다니는 야생마가 되기를 바랐을텐데 그러지 못하고 우울하게 은퇴하다니요 ㅠ.ㅠ
Samothrace
16/06/28 16:40
수정 아이콘
세파에 시달렸기 때문에 진정 야한 문인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 분은 어떤 의미로 시대가 완성시킨 분이라는 생각이 왠지 듭니다
노틸러스
16/06/28 16:33
수정 아이콘
어쨌든 적어도 제게는 참 좋은 교수님이셨습니다. 첫 강의 들을때의 자유분방한 강의에 대한 충격이 참 컸었는데 말이죠.
뭐 덕분에 (제 생각에는) 문학적으로 우수한 연애소설을 창작해서 A+도 받고 그랬네요 흐흐.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쎌라비
16/06/28 16:39
수정 아이콘
아 매력적인 분이에요. 저도 집에 이분 책이 몇권있긴 있네요. 제가 산적은 없으니 아버지가 사신거 같긴한데 아버지 이미지랑 엄청 안맞아서 깜짝 놀랐어요.
forangel
16/06/28 16:57
수정 아이콘
그당시쯤 서점에서 도미시마 다케오의 여인추억이라는 소설이 불티나게 팔렸고
미성년자도 쉽게 구할수 있을 정도였죠.
즐거운 사라가 음란성이 어쩌고 해서 읽어봤는데 이게뭐야 싶었던 기억이 나네요.

여인추억의 절반정도만 음란했어도 실망안했을텐데...
좀 읽다가 말았었죠. 어릴때라 내용도 어려웠고..
CathedralWolf
16/06/28 16:58
수정 아이콘
천재문학변태인데 시대를 잘못 타고난 사람인거죠.
뭔가 서정주가 변태면 이런느낌이겠다 싶었습니다.
파란아게하
16/06/28 17:09
수정 아이콘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좋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16/06/28 17:23
수정 아이콘
시가 정말 좋네요..
네버윈터
16/06/28 17:24
수정 아이콘
저도 처음 입학했을때 그냥 명물교수라서 수강하고 전자출결만 하고 나갔던 학생인데, 이러한 스토리는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은퇴하시는군요.... 강의 들어볼걸 그랬습니다 흑흑
16/06/28 19:10
수정 아이콘
야한 소설 하나 썼다고 강의하는 교수를 잡아다가 구속시켰던 야만의 시대였죠.근데 그게 오래전도 아니고 무려 92년도..
yangjyess
16/06/28 19:49
수정 아이콘
야하게 소설 잘쓰는 사람들 많은데 구속된거 때문에 마광수가 과대평가 받는거 같아요.
음란파괴왕
16/06/28 20:13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불호인 분이시지만 은퇴하신다니 뭔가 섭섭하긴 하네요.
Quarterback
16/06/28 20:21
수정 아이콘
대학교 때 교수님 강의를 들은 것이 기억나네요. 야설 쓰는게 과제라고 이상하게 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냥 쌩야설을 써내라는 수업은 아니었죠. 그 속에 성적 카타르시스를 집어 넣어야 하는 그런 과제.

사람은 참 시대를 잘 타고 나야하는 것 같습니다.
영원한초보
16/06/29 10:09
수정 아이콘
그거 경험 유무에 따라 차별이 심한 과제 아닌가요?...
아로하
16/06/28 20:26
수정 아이콘
시대를 잘못 타고나신게 아닌지.. 전에 수업들었던 기억이 생각나네요..
16/06/28 23:07
수정 아이콘
학교에서 보면 늘 야윈 모습으로 혼자 거니시던 것만 생각납니다.
얼마 전에 꽃사진이나 찍어볼까 해서 오랜만에 캠퍼스를 찾았는데,
여전히 야윈 모습으로 혼자 걷고 계시더군요.
지금도 저렇게 쓸쓸하게 다니시는구나 싶었는데.. 은퇴하시는군요. 묘한 기분입니다.
ThreeAndOut
16/06/29 00:37
수정 아이콘
제가 수업들을 당시는 가장 유명한 수업이었습니다. 수백명이 큰 강당에서 수업 끝까지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그런 시절이었죠. (지금은 다들 도망가는군요.. ) 교수님이 책도 내시고요... 그러다가 학기중에 잡혀가셔서 수업이 거의 폐강 되었어요. 그때부터 쭈욱 내리막 이었던것 같네요. 저로서는 가장 존경하는 교수님중 한분이었습니다.
보드타고싶다
16/06/29 10:26
수정 아이콘
시가 생각보다 진솔하네오. 잘감상했습니다
arq.Gstar
16/06/29 11:13
수정 아이콘
어릴적에 마광수 책을 어머니 몰래 구해서 보다가 그래도 이름있는 작가의 책이라서 그런지 크게 혼나진 않았습니다.
이래서 일단 사람이 유명해져야 부모님께 혼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냥저냥한 작가분이 아니더라구요...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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