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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6/09 14:33:41
Name 상여선인
Subject [일반] [스포] 워크래프트 감상기.



방금 조조로 워크래프트 영화 보고 왔습니다. 물론 입장은 점프가 개념.

일단 보기 전부터 기대치를 워낙 낮추고 들어가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만큼 쓰레기는 아니었'습니다.

의외로 가장 괜찮았던 건 CG였습니다. 예고편이나 포스터로는 이게 뭔가 싶던 분장이나 마법들이 스크린으로 보니 느낌이 확 다르더군요. 특히 오크는 드군 트레일러에 나오는 그걸(찍어 먹어라 헬스크림....) 그대로 실사화한 정도였습니다. 
이야기 전개도 '아 이건 컷했다'고 대놓고 느껴지는 장면이 꽤 있었지만 큰 줄기에서 설득력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악이 아닌 두 진영의 충돌을 다뤘던 <시빌워>나 <배트맨 대 슈퍼맨>이 이걸 설득력 있게 만들지 못해서 논란이 일어난 걸 생각하면...(물론 이건 이미 블리자드의 역사왜곡, 아니 설정변경을 적당히 따라가면 되는 일인데다 애초에 앞선 두 작품에 비하면 워크래프트의 갈등구조는 매우 단순한 이유가 더 크죠)

그리고 좋았던 점은 여기까지입니다. 기여운 멀록의 아옳옳옳거리는 소리를 들려줬다고, 익숙한 BGM을 몇개 깔아줬다고 넘어갈수는 없죠.

우선 워크래프트라는 컨텐츠를 이야기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워크래프트 사가는 단순하지만 깔끔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워크래프트의 서사는 기본적으로 힘 대 힘의 아주 마초적인 충돌입니다. 제가 블리자드 스토리에서 가장 아끼는 건 아서스-리치왕, 실바나스, (브루드워의) 케리건 스토리지만 이들은 블리자드의 전형적인 이야기는 아니죠. 특히 게임산업 초기의 작품인 워크래프트 1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단순한만큼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니고 있던 이 스토리는 후속작이 나오고 산업의 파이가 커져갈 수록 온갖 누더기가 기워지게 됩니다. 순전한 악이었던 오크가 어느 순간 '잘못된 꾀임에 빠진 것일 뿐 명예와 전통을 중시하는 종족'이 되고, 죽은 줄 알았던 누가 살아 있으며 만년간 숨겨져 있던 대륙이 있고, 이 모든 이야기의 흑막이 있고 그 흑막의 흑막이 있고 그 흑막의 흑막은 누구에 의해 타락했고...

워크래프트의 세계가 탄생한지 20년이 넘었고 그에 따라 스토리를 새로 만들거나 개정하는 작업이 이뤄졌죠. 그런데 그건 부분적인 이야기에 해당되는 일뿐, 만약 워크래프트를 다시 수십권의 대하소설로 출판한다면 상당한 난잡함에 스토리 이해에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물론 게임(특히 MMORPG)에서 이건 잘못된 게 아닙니다. 게임사도 게속 먹고 살아야하니까요. 근데 그걸 영화로 컨버전한다면 얘기가 다르죠.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본 영화 상의 메디브(를 비롯한 <최후의 수호자> 등장인물들) 때문입니다. 저는 메디브와 카드가, 가로나에게 상당한 비중을 준 것이 이 영화의 패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최후의 수호자> 영화가 아니라 <워크래프트 : 오크와 인간>을 기반으로 한 영화입니다. 비록 최후의 수호자 캐릭터들이 워크래프트 1에서 상당한 역할을 갖고 있긴 하지만 결코 주인공은 아니죠. 결국 워크래프트 1의 이야기와 최후의 수호자 이야기를 죄다 집어넣느라 소중한 시간을 다 잡아먹었습니다. 어차피 오크가 왜 침공하게 되었느냐도 대충 넘어가는 마당에 굳이 메디브가 오크를 불러왔다는 얘기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어차피 살게라스와 에이그윈 얘기를 영화에서 볼 일도 없을텐데. 초반 30분은 팬서비스가 좋아 재밌었고 후반의 30분은 클라이맥스라 재밌었다면 중간의 1시간은 도대체 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지루한 시간이었습니다. 배대슈 초반 1시간 30분 보는 듯한 느낌과 비슷했네요.

저는 단순한 이야기는 단순하게 표현해야 좋다고 생각합니다. 워크래프트 1은 아서스 사가와 달리 분명 단순한 이야기이며, 따라서 이 영화에서 메디브와 카드가의 역할은 '짱쎈 마법사 메디브와 그의 짱쎈 조수 카드가가 왕을 도와 오크를 물리쳤다'로 충분합니다. 아니면 메디브를 인간 측 악당으로 넣어야 했다면 '짱쎈 마법사 유망주 카드가가 짱쎈 어둠의 마법사 메디브(영화 시작 전부터 미친 놈)를 물리쳤다'도 괜찮았겠네요. 물론 이렇게 했다면 가루가 되도록 까일지 모르지만 영화적 완결성을 위해선 이 편이 훨씬 낫습니다. 애초에 워크래프트 사가는 '방대'하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의 오점은 가로나입니다. 가로나가 나오는 장면 모두가 맘에 안들었네요.

1. 왜 가로나는 인간의 편에 서는가? (이건 와우저 누구나 다 알지만 설명을 해야죠. 신세한탄 시간에 이종족의 혼혈이라 하면 될걸;)
2. 왜 인간들은 가로나를 잡아와놓고 왕의 앞에서 묶어두지도 않는가?
3. 그냥 말이나 말지, 왜 가로나는 인간의 언어를 포로들에게서 배웠다는 드립을 치는가?
 (오크가 인간 말 할 줄 알아도 관객 누구도 뭐라고 안해 바보야..)
4. 왜 가로나는 옷도 겁나 야하게 입고, 왜 인간에게 섹드립을 치는가?
5. 왜 가로나는 생뚱맞게 인간과 로맨스를 벌이는가?
6. 왜 가로나는 여전사도, 히로인도 아닌 애매한 인물인 주제에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가? 설정변경 전처럼 인간-오크 혼혈도 아니면서..
7. 왜 레인 린은 가로나에게 자기를 죽여 인간과 오크의 평화를 이뤄달라 하는가?
 (이 말 이해가신 분 있습니까? 그냥 메디브가 가로나를 세뇌하면 안되는 건가요? 괜히 로서에게 오해나 사는구만 뭘;)
8. 왜 가로나는 연기가 어색한가? (발성, 표정, 액션 모두...;)

그냥 하나같이 다 최악이었습니다.

한가지 더, 앞서 말했듯 사실 워크래프트 시리즈는 의외로 스토리 자체의 깊이는 별로지만 방대한 스토리에서 나오는 캐릭터가 장점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어떤 캐릭터에게 끌렸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참 힘듭니다. 그냥 왕 레인 린, 쓸데없이 착한 그냥 왕비 타리아 린, 뭔가 열심히 하고 애절한데 그냥 감흥이 안오는 장군 로서, 너무 척척 알아내서 데우세스마키나같은 카드가. 오크는 좀 덜해서 듀로탄이 꽤 괜찮게 나오지만 듀로탄과 굴단 이외엔 사실 공기나 마찬가지. 딱히 비틀어서 재해석이 나오게 만든 것도 아닌 <최후의 수호자> 이야기에 너무 시간을 들이느라 '전쟁' 그 자체에 집중하지 못한 점은 이 영화의 또 다른 감점 요인이라 하겠습니다. <어벤저스>까지는 안바래도 이건 좀..


종합하자면 지금 로튼이나 메타에서 보이는 것만큼의 폐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영화도 아님, '팬보이' 영화라면 괜찮지만 팬보이 '영화'라면 no, 영화를 볼때 어떤 걸 바라고 가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아, 워크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요? 절대 비추입니다.


참, 두번째 쿠키 없습니다. 엔딩 크레딧 다 안보셔도 돼요. 그리고 솔직히 첫번째 쿠키도 너무 뭐가 나올지 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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