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으로 글을 쓰는 건 지난해 11월 이후로 다섯 달 만이군요. 그 동안 주로 세계지리에 관한 내용에 치중해 왔었는데, 그때 쓰려다가 묵혀둔 주제를 이토록 완벽한 타이밍에 써먹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자유게시판에 씁니다. 어제 선거 결과를 보고 떠오르는 게 있어서 쓰는 건 맞습니다만, 이 글은 새누리당이 어쩌고 더민주 국민의당이 어쩌고 뭐 이런 걸 쓰고자 하는 글이 아니라서요.
늘 이야기해 왔고 제 지론이었습니다마는 항상 인간은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앞선 사람들이 어떤 식의 행동을 했고 어떤 식으로 생각했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는 거죠. 물론 1대 1로 정확히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일은 드뭅니다. 하지만 비슷한 케이스에서 교훈을 충분히 얻어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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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의 해리 트루먼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민주당의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FDR)는 1944년 전무후무한 4선 선거에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3선 선거에 눈을 돌렸던 사람은 종종 있었습니다만(그랜트라던지... 근데 이 양반은 하도 말아먹은 게 심해서 시도조차 못 했죠) 실제로 워싱턴 이래로 두 번만 대통령을 한다는 암묵적인 룰을 깨고 선거에 나와서 실제로 당선이 된 양반은 이 사람이 유일했죠. 이후로는 수정헌법이 생겨서 3선 이상 금지 룰이 생겼고... 하여간에 1944년의 4선 때는 이런저런 뒷배경들이 복선으로 깔리기 시작합니다. 이 배경들이 4년 후의 선거에 많은 영향을 주었죠.
우선 1940년의 러닝메이트였던 헨리 월리스(Henry Wallace)가 짤렸습니다. 좀 이승만스러운 이야기 같기는 합니다만(...) 루스벨트가 건강이 안 좋다는 게 이 때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기도 했고, 무엇보다 월리스 이 양반이 대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특히 카톨릭 교계와 노동계 쪽에서 반발이 심했다더군요). 특히나 경제 분야의 협력에서 그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루스벨트의 눈 밖에 났고, 이게 결국 월리스 대신에 다른 사람을 러닝메이트로 찾은 이유가 되었던 게죠. 어떤 사람들은 헨리 월리스가 친공산주의자라서 짤랐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여간 월리스 본인의 정치적인 포지셔닝이 영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로 보이네요.
아무튼 이렇게 월리스가 짤리고, 상원 전시국회에서 사기와 비효율성 등을 상대로 싸운 트루먼에 주목합니다. 루스벨트는 개인적으로 월리스를 좋아하고 트루먼은 그게 웬 듣보잡이야 했었습니다만 하도 주변에서 몰아다대서 마지못해 러닝메이트로 인정했다는군요. 소위 말해서 '우클릭'을 한 건데(트루먼 본인의 성향은 월리스보다는 확실히 오른쪽이었으니까요. 월리스는 상기 이야기했듯이 아예 좌익이라는 낙인이 반쯤 찍혔고), 이게 나중에 1944년 선거에서 어느 정도 (헨리 월리스를 버리면서) 잃은 표를 다른 곳에서 만회하고도 남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1944년의 상대는 전 뉴욕 주지사였던 토머스 듀이(Thomas Dewey)라는 사람으로, 워낙 이 때의 루스벨트의 인기가 여전했고 루스벨트 자신이 강자기도 해서 결국 듀이가 깨지기는 했지만 상당히 많은 표를 끌어간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합니다. 천하의 루스벨트를 상대로 그것도 전쟁 중인데(어디 속담인지는 모르겠는데 유명한 말이 있죠. 전쟁 중에는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고...) 무려 45%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99개의 선거인단을 뺏어 온 사람이었으니까요.
의외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1940년 대통령 선거 당시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쟁 상태에 돌입한 때가 아니었습니다. 경제적인 지원 빼고 유럽의 싸움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다 1941년 12월 7일 그 유명한 진주만 공습이 개시되면서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고 히틀러가 "아놔 이것들"을 외치면서 미국에 먼저 선전포고를 걸어버린 게 순서죠. 그러니까 2차 대전 당시에 전시 상태에서 치른 선거는 1944년 선거 하나뿐이었다는 말입니다. 1차대전 당시에도 비슷한 수순으로 갔기 때문에(미국이 선전포고를 하게 만든 치머만 전문 사건이 터진 건 1917년입니다.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죠. 너무 이야기가 산으로 가니까) 1916년 대선 당시도 전시 상황은 아니었고... 그래서 미국 역사상 국가적인 전시 상황에서 치른 대선은 1864년 미국 대선(남북전쟁)과 1944년 미국 대선(제2차 세계대전)이 유이합니다.
하여간 공식적인 전쟁 상태에 돌입하고 치른 선거였기에 심리상 야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선거였는데도 듀이는 대선전을 했고, 그래서 듀이는 네 차례의 선거 동안 루스벨트가 맞붙었던 상대 중 가장 강력한 상대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런 복선을 거쳐서 트루먼이 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1년 후 루스벨트가 사망하죠.
대선 전의 배경
이유를 찾고자 했더니 의외로 딱히 두드러지는 삽질이 없어서 좀 당황스럽기는 한데, 1948년의 트루먼의 인기가 확실히 좋지 못한 수준을 넘어서 나빴던 건 매우 확실한 사실입니다. 어떤 책에서는 토론에서의 이미지 같은 게 너무 유권자들에게 정치적인 제스쳐로 보여져서 부담스러웠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마셜 플랜에 돈을 너무 들이부어서 그랬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정책적인 게 가장 컸겠죠. 큰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인기를 잃었다면 그건 인기없는 정책을 편 결과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을 테니까요. 다시 말해서 마셜 플랜이니 국제연합(UN) 창설이니 트루먼 독트린이니(간단하게 말하면 공산당의 확산은 뭔 수를 써서라도 막겠다는 말입니다) 하는 게 유저... 아니 일반 시민들에게 지지를 못 받았다는 이야기죠.
개인적인 생각인데, 솔직히 전쟁 기간 동안 미국 본토에 폭탄 한 발 떨어지기라도 했습니까? 전쟁으로 복구해야 할 복구사업 껀수 자체가 미국에서는 통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리더십이고 뭐고를 보여줄 기회도 딱히 없었고, 술에 술 탄듯 물에 물 탄 듯한 기간이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기가 바닥을 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국 문제는 아무래도 남 일이다 보니 국민들에게 잘 다가오지 않았을 테구요. 더구나 세계정세는 루스벨트가 거지반 만들어놓고 간 거라서 트루먼이 손댈 수 있는 영향력이 생각보다 좀 모자라기도 한 거 아닐까, 그렇게 추측해 봅니다.
아무튼 트루먼 이 사람은 자기가 인기가 모자라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침 자기는 대통령 승계로 대통령이 된 터라 부통령 자리도 비었고 하니 러닝메이트로 당시 인기가 매우 높았던 전쟁영웅 아이젠하워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이 당시의 아이젠하워는 "
군인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스탠스를 취하면서 거절합니다. 뒤에서 말하겠지만 공화당에서도 손을 내밀었는데 이 때는 거절했었죠. 아이젠하워가 대선 후보가 된 것은 4년 후의 일이고... 하여간 그래서 트루먼 이 양반을 대선후보 자체에서 끄집어내려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움직임이 있기도 했습니다. 바로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이 때 민주당이 분열 상태였거든요. 그러나 여기저기서 표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무리 봐도 트루먼밖에 없었고(이 말인즉슨 트루먼 빼면 민주당은 반쯤 시체였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그래서 못미덥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마지못해 트루먼이 대선 후보로 확정됩니다.
한편 민주당은 당이 둘도 아니고 셋으로 갈라집니다. 우선 전 러닝메이트에서 짤렸던 헨리 월리스가 아예 진보당을 창당하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노조들 때문에 들썩이던 남부의 보수파들도 노조의 활동을 일부 제한하는 태프트-하틀리 법에 트루먼이 서명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딕시크랫(Dixiecrat)이라는 당으로 빠져나갔죠. 공식 명칭은 주권민주당(States' Rights Democratic Party)인데 여기서 말하는 주권은 주인 된 권리라는 뜻이 아니라 각 주(州)의 권리를 말합니다. 이름에서부터 뭔가 냄새가 팍팍 나지 않습니까? 실제로 이 당은 인종차별을 당 강령으로 내세웠다는군요. 그... 우리 식으로 보는 진보-보수와는 사뭇 이야기가 달라서 몹시 골치아프실 텐데, 미국 입장에서는 얘들이 보수입니다(...) 태프트-하틀리 법은 사용자가 아닌
노동조합의 권리를 상당히 규제하는 법안인데 이에 빡쳐서 나간 사람들이 인종차별을 지지하는 보수파...??? 우리 식으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자기들이 보수라는데(...) 남의 나라 정치를 이해하는 게 그래서 어려운 건가 봅니다.
아... 삼파전 이야기 하느라고 썰이 길었는데 공화당이요? 아이젠하워 내세우려다가 안되니까 그냥 토머스 듀이로 갔죠. 그걸로 쫑!
대선
뭐 배경이 이러니, 그것도 당이 한둘도 아니고 무려 셋으로 갈라졌는데, 이거야말로 사실 엄청나게 손쉬운 선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공화당은 전략을 짰습니다.
굳이 평지풍파 일으킬 거 없다. 다시 말해 현안을 극도로 배제하고 입에 발릴 정도의 적당한 소리만 하면 최소한 집토끼들은 나가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저쪽이 알아서 폭삭 망할 테니 이쪽이 대권을 잡겠지! 그래서 실제로 듀이는 그냥 적당히 둘러대는 말 정도만 했고, 논란이 벌어지는 사안에 대해서 극도로 말을 아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이 된 후에 뭘 하겠다는 비전조차 제시하지 않았죠. 영문 위키피디아의 표현을 빌리면, 대단히 두루뭉술했다고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선거운동조차 제대로 안 한 거죠.
반면에 트루먼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죽을 판이다 보니 이 한 줄로 대선전략의 모든 걸 정리해 버렸습니다.
"닥치고 질러버려!!!" (물론 실제로 한 말은 아닙니다만)
영문 위키피디아의 표현은 다음과 같아요. Truman, trailing in the polls, decided to adopt a slashing, no-holds-barred campaign. slashing이라는 건 세차다는 뜻이고, no-holds-barred라는 건... 이건 정지선이 없다는 이야기고, 쉽게 말해서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날뛰겠다는 소리입니다. 직역하면 "여론조사에서 질질 끌려가던 트루먼은 세차고 정지선 없는 선거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했다"인데, 이게 진짜 독한 표현인 게, 일단 정계의 표현은 다들 아시다시피 민간에서 나오는 표현보다 반드시 두 수 아래의 순화된 표현을 쓰기도 하거니와, 트루먼 이 양반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독설의 화신이었거든요(...) 근데 이 양반이 리미터를 해제한다고? 말 다 한 거죠.
네거티브고 뭐고 다 동원하기는 했습니다만(심지어 이름자로 조롱하는 일까지 있었다니 말 다 했죠) 가장 핵심적인 것은 공화당이 다수당으로 있던 시절에 공화당이 대체 뭘 했느냐고 공략한 것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저 자식들이 다수당인 시절에 한 게 뭐가 있어서 너님들이 저 자식들에게 표를 주려고 그러심?" 이런 거죠.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듀이가 보통 공화당원보다 더 보수적이고 나머지 공화당원들이 좀더 진보적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싹 무시하고, "니들은 한 게 없다"는 프레이밍 만들기에 돌입한 겁니다. 실제로 그 양반들이 한 게 없기도 했고... 소위 말하는 "국회 심판론"이었던 거죠.
하여간 전국을 방방 뛰면서(말이 전국이지 미국은 남한 영토의 무려 백 배 가량에 달합니다) 선거운동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와 전문가들의 분석은 이랬습니다.
"이번 선거? 트루먼이 어떻게 이겨???"
공화당이 선거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건 선거 몇 주 전에 찍은 지지를 호소하는 영상에서도 드러나는데, 쓸 수 있는 돈 자체는 공화당이 훨~씬 많았습니다. 당연한 게,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될 것 같은 사람들에게 지원을 더 주죠(...) 그 돈을 쏟아부어서 찍은 영상은 아무래도 듀이의 조심스러워하는 이미지가 부각된 반면, 캠프 내내 선거자금난에 시달려야 했던 트루먼의 경우는 뭔가 좀 유저들... 아니 그러니까 유권자들에게 공격적으로 어필하는 요소가 있었다는 모양입니다. 뭔가 좀 결단력 있고, 유권자들을 위해 뭔가 해 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각인시켰다고나 할까요?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공화당의 전략은 "이슈 피해가기"였기였고 트루먼의 전략은 "닥치고 리미터 해제"였기 때문에 더욱 이런 차이가 두드러진 거죠. 좋게 말하면 이렇게 된 거고 나쁘게 말하면 공화당이 그렇게 유리하고 그렇게 돈 많았던 선거에서 선거운동조차 제대로 안 한 거고.
결과
일단 결과 까기 전에 여론조사 결과 같은 걸 보면...
선거 전의 Life 잡지 : 듀이가 배 타는 모습을 보고 "차기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배를 타신다"고 적어놓음.
뉴스위크(Newsweek) 신문 : 50명의 전문가들을 초빙. 50명 다 듀이가 이길 것이라 예측.
전국구의 유명 저널리스트들(우리로 치면 신문에 기고하는 유시민쯤 될까요? 아니면 조갑제라거나?) : "차기 듀이 내각에 들어가리라 예측되는 사람들은..."
모 도박 사이트 : 트루먼 배당률 15대 1. (1.5대 1이 아닙니다!)
78%의 신문들이 듀이를 지지(endorse라는 표현을 썼던데 이게 사전적인 의미의 지지라기보다는 듀이가 이긴다 하고 광고하는 것이라 생각하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10% 남짓이 트루먼 지지. 나머지 12%는 남부신문이라...
NBC 방송에서조차 듀이가 이길 것이라 예상하고 민주당 쪽 준비는 전혀 하지 않음. 하다못해 마스코트에서도...
그렇게 트루먼 본인조차 "거 어차피 깨질 거 일찌감치 잠이나 잡시다" 하던 선거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트루먼이 리드를 잡았고
이 리드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유지되었습니다. 개표방송이 진행되면서 리드를 모두들 믿지 못했기에 계속해서 "나중에 개표된 쪽이 듀이에게 몰표를 줄 것이다"(NBC에서 실제로 한 말)라는 예상이 계속해서 진행되었고, 트루먼 본인도 한밤중에 깼는데 라디오에서 "지금은 이기고는 있는데 트루먼이 결국에는 지겠죠" 하는 방송을 듣고 라디오 끄고 다시 잘 정도였으니까요(...) 새벽 4시가 되어서 2백만 명의 표차가 이어지자 드디어 트루먼이 보디가드들을 다시 자택으로 불렀습니다. 나중에 한 말이 걸작이었는데, 이유를 물으니까 "우리가 4년간 더 함께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나요? 그리고 잘 생각해 보세요. 보디가드들을
다시 캔자스 자택으로 불렀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트루먼 본인조차도 속으로는 완전히 포기한 선거였던 겁니다.
세상에 어느 재선에 성공할 대통령이 보디가드들을 안 붙이고 돌려보낸단 말입니까?
그렇게 그간 있었던 수많은 예측들, 전문가들, 신문들, 갬블러들(...), 저널리스트들, 각 당의 당원들은 물론이고 가장 크게는 공화당과 토머스 듀이에게
어마어마한 강펀치를 날리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튀어나왔죠.
그 결과는 이랬습니다.
시카고 트리뷴의 역사적인 오보를 들고 살인미소를 짓는(...) 트루먼 아저씨. 벌써부터 홍낄낄!!!이라 외치는 듯한 포스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시카고 트리뷴의 제목 - 듀이가 트루먼을 이겼수다
구글에 Dewey defeats Truman이라고 치면 아주 재미있는 살인미소짓는 트루먼 아저씨 사진들이 많이 나옵니다 크크 그 중의 하나가 이거!
(거 참 사진만 보면 참 얼빵한 아저씨 같은데 말이죠... 크크크)
참고로 미드 빅뱅 이론 오프닝에서 지나가는 수많은 사진들 중에 바로 이 Dewey Defeats Truman 사진도 있습니다.
요거는 실제 대선 결과. 보시다시피 남부 일부 색이 오렌지색인데 이게 그 딕시크랫이고 바로 저 사람들이 그때까지 민주당을 지지하던 남부의 표를 상당량 까먹은 거죠(실제로 선거인단 수도 따냈습니다. 무려 39명이나). 그리고 그러고도 트루먼이 이겼다는 거고.
이후
어찌 되었건 트루먼 덕분에 적화통일을 면한 우리 나라로서는 참으로 듀이의 삽질이 고맙다고 아니할 수는 없겠네요. 임진각에도 트루먼 동상이 있다죠? 트루먼 이 사람은 비록 임기 내내 욕을 무진장 먹었고 인기도 영 아닌 상태에서 내려오기는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그는 어떻게 보면 우리 나라의 은인이기도 하죠. 그리고 루스벨트의 죽음으로 자칫 꼬일 수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잘 마무리하기도 했고(그러고 보니 우리 나라의 독립을 보장했던 카이로 선언의 내용을 재확인했던 포츠담 선언에 트루먼이 있었습니다). 처칠 말마따나 서방 세계를 구한 작은 거인이라는 평이 아깝지 않은 거물이었죠. 워낙 욕을 많이 먹어서 그렇지 내치도 그런대로 훌륭했구요. 개인적인 면에서나 정치력에 있어서나 저 개인적으로서는 상당히 호감이 가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나름대로 위키피디아 뒤져 가며 사실적인 이야기에 치중하려고 애쓰긴 했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워낙 트루먼 같은 사람을 반기는 터라 저도 모르게 우호적으로 서술된 게 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그리고 트루먼은 훗날 여론조사상 미국 역사상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위대한 대통령의 반열에 오르죠(여러 여론조사가 있는데 10위 밖으로 빠진 적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트루먼 대통령이 책상 집무실 위에 올려놓았던 문구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The Buck Stops Here.
책임은 내가 진다.
자료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United_States_presidential_election,_1948
https://en.wikipedia.org/wiki/Harry_S._Truman#1948_election
https://en.wikipedia.org/wiki/Buck_passing#.22The_buck_stops_here.22 - 마지막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