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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3/07 21:29:45
Name aura
Subject [일반] <단편?> 카페, 그녀 -38 (부제 : 연애하고 싶으시죠?)

다들 황사조심하세요.
황사가 매서울 거라고 하네요...

- - -


#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
학교 밖으로 나서는 발걸음이 이렇게 기쁘고 가벼울 수가 없었다.
고대하던 택배가 도착했을 때도 기분이 이 정도로 좋진 않았다.


벌써 해가 지고 조금씩 어둑해질 시간이었는데도,
저 멀리 정문에서 기다리는 수영이의 모습이 대낮마냥 환하게 눈에 비췄다.
너무 티가 날까 발걸음을 늦추려고 해봐도, 좀처럼 속도가 늦춰지지 않는다.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민망할 정도로 빠른 걸음걸이였다.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수영이는 폰을 만지작 거리느라 주위를 전혀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다.


"수영아."
"아, 왔어요?"


수영이가 환한 미소로 날 반겼다.
참 언제봐도 예쁜 미소다.


"늦게 끝날지도 모른다더니 먼저 기다리고 있었네?"
"음, 사장님한테 조금 일찍 끝내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응?
설마 이건 그린라이트?


"어쨌든! 일단 가요."


굳이 왜?라고 반문하기도 전에 수영이가 내 옷깃을 잡아 끌었다.
수영이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일찍 끝내달라고 부탁했다는 그녀의 말이 귓속을 맴돌았다.
설마? 정말?
나 떄문에 일부러 일찍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건가? 그렇다면 정말 좋을텐데. 그랬으면 좋겠다.


"술은 어떤 걸로 마시고 싶어요?"


아직 정해지지 않은 목적지를 두고, 주변을 돌아보며 수영이가 물었다.
오늘 처럼 마음 편히 푹 취하고 싶은 날에는 사실 소주가 최고지만, 수영이의
취향이 어떨지 몰라 잠시 대답이 망설여진다.


"음, 넌 어떤 게 괜찮아? 혹시 못 마시는 거 있어?"
"이래봬도 술 꽤 잘 마시거든요? 헤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오늘 시험도 끝나셨으니까
마시고 싶은 종목(?)으로 골라보세요."


이, 이럴 수가.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딸쯤이라도 되는 거냐.
어떻게 술에 대한 이런 관대함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거지?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없다.


"역시 오늘 같은 날은 소주이긴 한데..."
"그럼 잘 아시는 곳 있으면 거기로 가요. 근처에 살아도 사실 이 학교 학생이 아니다 보니까
  이 근처에 괜찮은 술집은 하나도 모르거든요."


수영이의 배려(?)에 바로 떠오른 술집으로 앞장섰다.
대학로에서 조금 외딴 곳에 있는 술집이었는데, 그 후미진 위치에도 불구하고
저렴하고 맛있는 안주로 학생들 사이에서 호평이 자자한 곳이었다.


도착한 술집은 약간 이른 저녁시간인데도 테이블의 반 이상이 차 있었다.
구석 쪽으로 자리를 잡아 앉았는데, 수영이가 주변을 돌아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아 여기 위치도 구석지고, 시간도 이른데 벌써 사람이 많네요?"
"안주가 되게 맛있거든."
"정말요? 한 번 먹어보고 저도 친구들이랑 와바야 겠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제 별명이 안주 킬러거든요. 헤헤."


안주가 맛있다는 소리에 수영이가 눈을 반짝거렸다.
안주 킬러라.. 얼마든지 먹어도 좋으니 마음껏 먹어다오. 그깟 안주 내가 다 살게.


"먹고 싶은거 시켜. 나때문에 굳이 시간도 내줬으니까 내가 살게."
"정말요? 그럼 사양않고 시킬게요?"
"마음대로 시켜. 정말로. 어차피 밥도 안 먹고 온거니까."


수영이는 신난 표정으로 탕에, 전에, 볶음까지 다양하게 네 가지 안주를 시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내 기분이 좋아졌다.
보는 것 만으로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사람. 수영이가 내게 그랬다.


주문한 지 얼마 안 되서 갖은 안주들과 소주가 차려졌다.
그녀는 먼저 나온 감자전을 슬쩍 맛보더니 감탄했다.


"우아 대박. 진짜 맛있어요. 술집 안주 같지가 않고, 무슨 요리같은데요?"


내가 만든 요리도 아닌데 수영이의 반응에 내 어깨가 다 으쓱해진다.


"그러니까 이렇게 손님이 많지. 저기 봐 또 오잖..."


딸랑.


타이밍 좋게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종이 딸랑거렸다. 그런데 문제는
하필 지금 시기 좋게 등장한 손님이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어서오세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술집 알바는 큰 목소리로 손님을 반겼다.
혹시, 설마하는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학교 주변, 많고 많은 술집을 두고
현중이 녀석이 여기로 올 줄이야.



##
      

현중이는 양 옆으로 여자 후배 두 명을 끼고 가게로 들어섰다.
한 명은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는데, 수수한 매력을 가진 다민이었다.
예쁘장한 외모에 그 외모가 보이지도 않게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또 다른 한 명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현중이가 말한대로라면 류하얀이라는 신입생일 거고.

  
참 팔자도 좋은 놈이다. 양 옆으로 미인인 새내기를 끼고 술을 마시러 오다니.
어쨌거나 그냥 모른 채 넘어가면 좋으련만,


"형!"


이 자식은 그 눈 좋다는 몽골인의 후예일지도 모르겠다. 가게를 훑어보는 그 짧은 순간에 매의 눈으로
구석에 있던 나를 캐치했다.


제발 저리가. 오지 마라.
내 바람이 무색하게도 현중이는 씩 웃어보이며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야 여기서 다 만나고 역시 저희는 천생연분인가 봐요?"
"천생연분은 개뿔, 여긴 또 어떻게 알고 따라왔어?"
"크크. 에이 제가 형이 여기 있을지 알고 왔겠어요? 근데 가게 들어서는데
  그 기운이랄까 그런게 참 좋더라니. 역시!"


현중이는 과장된 제스쳐로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그 모습에 수영이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음.. 근데 내가 아는 우리과 사람중에 형이 만날만한 이런 미인분은 없었던 것 같은데..."


영악한 녀석.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화제를 돌린다.


"니가 알거 없고, 신입생들이나 잘 챙기지? 팔자 좋게 양 쪽으로 끼고 왔으면서
  저렇게 멀뚱멀뚱 냅둬도 돼?"


내 말에 현중이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다민이와 아마도 하얀이가 멀뚱히 서있었다.


"아무튼 이따 봐요. 흠흠. 참 물어 보고 싶은 게 많은데...
그리고 여자 두 명 끼고 온거 아니니까 오해마시고요. 이따가 주찬이 형도 올거거든요."
"뭐? 걔 오늘 다음주 시험 많이 남았다고 나랑 술 안 마신다고 했는데?"


현중이는 고개와 검지 손가락을 같이 절레절레 저었다.


"다 꼬시는 방법이 있죠."


부들부들. 함주찬.
여자가 있다고 나올 녀석은 아닌데, 현중이한테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건가?
어쨌든 나는 거절했으면서, 깊은 빡침이 솟구쳤다. 물론 수영이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별 다른 티는 내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따 좀 봐요."


현중이는 그대로 애들을 데리고 반대편 구석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되게 재밌는 분 같네요."


옆에서 쿡쿡거리며 지켜보던 수영이는 현중이가 가자마자 씩 미소지으며 말했다.


"쟤가? 재미는 얼어죽을, 어디가서 노잼소리 안 들으면 다행이지."
"그래요? 저는 되게 재밌던데. 아마 재밌어서 신입생들이 좋아할 걸요? 그러니까 저렇게
  술 마시는데 따라오는 후배도 있죠."


수영이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하다. 술자리에서 씹을만한 이야기거리도 곧 잘 얘기해주는 녀석이니.
반대편에 앉은 현중이를 바라 봤다. 그러고 보면 참 형들한테도 싹싹하고, 잘 하는 녀석이었다.


현중이가 내 눈을 의식했는지 이 쪽을 바라보고는 음흉한 표정과 함께 엄지를 다시 치켜들었다.
좀 저런 초칠만한 짓만 안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현중이.


"재밌어 보여요. 부럽기도 하고요."
"음 뭐 가끔 재밌긴 한데, 부러운 건 뭐가?"
"저는 부산에 있는 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아무래도 타지 사람이고 오빠랑 저 분 사이 처럼
가깝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러고 보니 수영이는 부산 소재의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지.
휴학 중에 '카페 허니'에서 알바하고 있다는 얘기도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다음 학기에는 복학할거야?"
"음. 아직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다음 학기에는 하겠죠?"


그 말은 즉, 다시 부산으로 내려간다는 말이구나.
그것을 깨닫고 나니 조금은 허탈하고 아쉬운 심정이 들었다.
처음으로 수영이에게 다가가는 길에 벽이 생긴 느낌이었다.


"좀 아쉽네."
"네?"
"아냐 아무것도."


여기서 볼멘소리를 더 해봐야 아무 의미도 없을테지.


딸랑...


손님이 들어섬을 알리는 종소리는 참 희한하게도 하던 생각이나 일을 멈추고
문을 바라보게하는 마력이 있다.


음, 주찬인가. 나쁜 놈.
아, 그리고 뒤이어 연주와 은성이도 들어온다.


응? 뭐?


참 우리 대학로가 이렇게 좁은지 몰랐다.
어떻게 줄줄이 아는 사람들이 소세지로 들어올까.
수영이랑 술마시고 있는 게 죄도 아닐텐데, 이상하게 내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감이 느껴졌다.


예감이... 갑자기 예감이 안 좋다.



38.. 끝 39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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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뱃살
16/03/07 21:38
수정 아이콘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긴박한 상황을 앞두고 완벽한 절단신공이네요. 다음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16/03/07 21:4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댓글은 글쓰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흑흑. 신난 마음으로 써내려간달까 글도 잘써져요 더 크크.
반응이 없으면 시무룩...
해원맥
16/03/07 21:55
수정 아이콘
(듀토리얼 토너먼트 진행중인 .. 다른글도 좀 보고싶습니다..)
16/03/07 22:00
수정 아이콘
내.. 내일 올리겠습니다? ㅠ
해원맥
16/03/07 22:06
수정 아이콘
(1시간 54분 남았습니다)
16/03/07 22:24
수정 아이콘
해원맥 니뮤... 봐주세요...흑흑
해원맥
16/03/10 00:46
수정 아이콘
연애도하고싶고 연재도 보고싶습니다.
미카엘
16/03/07 22:16
수정 아이콘
그렇죠. 소희도 올 것 같습니다. 학교 주변에서 저렇게 썸녀와 술을 마시는 주인공은 역시 대범하군요. 클라스가 다릅니다.
16/03/07 22:23
수정 아이콘
크크 죄짓는건 아니잖아요?
16/03/07 22:50
수정 아이콘
저 같으면 애초에 멀리 도망갔을텐데요 크크크
16/03/07 22:51
수정 아이콘
크크 죄짓는 것도 아닌데 도망갈 이유가 없습니다?
한걸음
16/03/08 00:06
수정 아이콘
제목이 카페 그녀라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번 에피를 보니 문득 불안해지네요. 썸 타는 도중에 저렇게 주변 지인들 엮이면 좋은 일 하나 없을텐데 말이죠.
16/03/08 00:11
수정 아이콘
역시 수영바라기... 한걸음님.. 크크
다시 연재하고나서 강제 정주행시켜 죄송합니다.. ㅠㅜ
한걸음
16/03/08 00:15
수정 아이콘
즐겁게 정주행 했습니다. 그 때의 댓글들을 보니 그 때는 제가 마음이 더 여유로웠다는것도 깨달았네요 크크

카페 그녀라는 제목이 문득 아련한 느낌이 드는 이번 에피였습니다. 기우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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