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2/01 01:16:50
Name The xian
Subject [일반] 안하던 짓을 하고 있습니다.
주말, 휴일에도 나갈 수가 없어 거의 앉거나 누워 지내는 요즘 저는 안하던 짓을 하면서 여가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옛날 드라마를 보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보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저는 드라마를 거의 병적으로 싫어합니다. 심지어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 TV를 같이 볼 때 어머니가 보는 드라마를 같이 보는 것조차 고역이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가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적어도 제가 제 자신을 판단하기엔) 참 놀라운 일이고 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모르겠는데 제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조차 제가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라고 할 정도면... 말 다 한 게죠.

더 황당한 건 제가 요즘 주로 보는 드라마가 최신 드라마나 영드, 일드, 막드가 아니라 사극이란 겁니다. 약 15년 전에 KBS에서 방영되었던 200화짜리 대하사극 '태조 왕건'이죠.-_- 그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던 드라마를 15년이나 뒤에 파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허 참...

당시에 한 번도 보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말한 평을 보면 태조 왕건이란 드라마는 매우 인기도 높았고 명대사도 많이 나온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보면서 저도 이 드라마가 인기가 많을 만했고 감동을 받을 만했다고 느낍니다. 물론, 제가 늘 판단하고 밥벌어 먹는 일이 무언가 흠집을 잡아내고 뜯어고치고 설계하고 세우는(물론 게임 안이나, 글 속에서) 일이다보니 드라마를 보다 보면 고증오류니 뭐니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보이고, 노골적으로 삼국지연의의 분위기를 갖다쓴 것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갑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는 기분으로요.

드라마를 보다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예전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드라마에 갑자기 빠진 건, 지금은 적어도 무언가에 몰두해서 잊고 싶은 것이 참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년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나 잠을 못 이루는 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닙니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들을 보다 보면 공통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들이 있는데. 그 메시지들이 참 사람의 마음을 울리더군요. 그런 메시지를 보다 보면 그냥 허투루 넘기는 시간이 아까워지고, 다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기분이 들게 되며, 남아 있는 나날이 오늘까지만이라 하더라도 별로 두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천 년 전의 역사에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이름은 고작해야 몇십 명, 역사책을 달달 외워서 사람 이름을 찾아 봐야 기백 명 안팎입니다. 그렇게 보면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인생들 중 거의 대부분은 한 백 년 정도만 지나도 기억은 커녕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겠지요.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고 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제가 하는 무언가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게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마음인 건 어쩔 수가 없군요. (그런데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인격을 수양하는 데에 힘을 써 온 것도 아니고 항상 일관된 인간도 아니며, 오히려 위선자이고 분노에 사무치면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는 사람에 가까운 제가 마치 무슨 깨달음을 얻은 듯한 사람이 쓸 법한 식의... 이런 말을 썼다는 게 참 놀라울 따름입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만, 그냥 놔두겠습니다.)

뭐, 지금의 이것 또한 지나가겠지요. 안하던 짓을 한다고 혹여나 걱정하시는 분은 없으셨으면 합니다.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된다 해도 그것은 제가 결정할 일도 아니니까요.


- The xian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릴리스
16/02/01 01:22
수정 아이콘
혹시 용의 눈물 안보셨으면 그거 보고 보셔도 될 듯 합니다. 정통 사극 중 제일 재미있게 본 사극이라서 추천합니다.
가만히 손을 잡으
16/02/01 01:23
수정 아이콘
그리고 정도전까지 봐야죠..후후.
릴리스
16/02/01 09:40
수정 아이콘
네 용의 눈물보고 정도전 보면 배우개그때문에 웃길듯요.
태종이 태조되고 세종이 태종되고 크크
Anthony Martial
16/02/01 01:24
수정 아이콘
용의 눈물 - 왕과 비 - 태조 왕건이 3연타였던 것 같은데......빼지 않고 본방사수 했던....

무인시대는 많이 언급안되는데 정통사극에서는 수작입니다.
16/02/01 01:24
수정 아이콘
뭔가 대단하시네요.
재미야 둘째치고 그 많은 분량의 드라마를 보실 생각을 하시다니...

저라면 편수만 보고도 질려서 안볼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뭔가 진득하게 앉아서 하는걸 못하겠더라구요... ㅠㅠ
yangjyess
16/02/01 01:27
수정 아이콘
음 저도 드라마 잘 안보는데 정도전 보면서 확실히 뭔가 삶의 의욕이 솟는 느낌이긴 했습니다.
발라모굴리스
16/02/01 01:42
수정 아이콘
2,3년전에 여명의 눈동자를 어렵게 구해서 쭉 본적이 있어요
근현대사 공부 다시 했죠 뭐. 방영할 당시에도 꼭 챙겨서 봤었는데, 20년 지나 다시봐도 작품적으로도 참잘 만든 드라마더군요
힘든 시기를 지나는 중이신가 봅니다 힘내시구요 10여년전 쯤 님 닉을 자주 본 기억이 있어서 반갑네요 같은 선수를 좋아했거든요
16/02/01 01:46
수정 아이콘
저랑은 정 반대시네요.
저는 스무살무렵에 태조 왕건을 너무 재밌게 보았고 이후 911테러(?), 야인 시대등에 푹 빠져 살다가
군입대를 한 이후 드라마를 3회 이상 시청해 본 편이 한번도 없습니다.
태조 왕건은 정말 명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비록 지금 와서 간간히 다시 보면 오글거리는 장면도 있지많요.
궁예의 마지막으로 왕건과 대면하는 장면은 정말 명장면이라 생각합니다.
마구니, 누가 웃음소리를 내었는가?, 요망한 것들이 있어, 뭐야? 수달이가 죽었어 등등 태조 왕건의 명대사는
아직도 제 친구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유행어입니다.
16/02/01 01:51
수정 아이콘
마니 보세요
16/02/01 01:56
수정 아이콘
다시 볼 엄두는 안나지만 정말 태조왕건은 명 사극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중적으로 인기도 많아서 주말이 지나면 늘 태조왕건이야기는 주변이들과 나눴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상도' 도 정말 재밌게 봤는데, 당시 '여인천하'에 밀려 주변에 드라마 이야기 할 사람이 없어 가족끼리만 즐겼던 기억이 문득 나네요 ㅜㅜ
소주의탄생
16/02/01 02:18
수정 아이콘
태조왕건은.. 정말 배우 김영철의 위엄을 다시한번 보여주는 드라마죠. 저도 빠져서 최근에 다 정주행했었는데 볼때마다 사극의 화신 최수종이 밀리는 느낌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닭장군
16/02/01 02:31
수정 아이콘
양길이 거의 여포급으로 나왔죠. 전투씬도 꽤나 재미있고. 거기 나온 캐릭터 거의 그대로 게임에 갖다 밖으면 정말 재미있을것 같더군요.
지니팅커벨여행
16/02/01 08:27
수정 아이콘
삼국지 조조전을 수정한 모드 중에서 왕건전이라고 있는데 이 또한 수작이죠.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16/02/01 02:35
수정 아이콘
푸른거탑 강추여~ 남자의 세계를 알 수 있는 명작오브 명작
쿠로다 칸베에
16/02/01 02:54
수정 아이콘
엌 저도 딱 태조 왕건 보고 있습니다 크크크
https://pgr21.com/pb/pb.php?id=humor&no=262162&divpage=46&ss=on&sc=on&keyword=궁베누 이 게시물 때문에 꽂혀서 보기 시작했는데
유튜브에 전편이 아주 깔끔하게 올라와 있어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 예전에는 몰랐는데 보면 볼 수록 놀랍습니다.
극의 전개 속도도 박진감 있고 깔끔한데다가 전쟁묘사도 오히려 뒤에 나온 수많은 사극들보다 월등히 나아 보입니다.
다양한 캐릭터들을 정말 겹치지 않게 재미있게 잡아준 부분도 마음에 쏙 들고 음악도 그렇게 쳐지지 않습니다.
정말 웰메이드 사극 같습니다.

예전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들을 한편씩 찾아봤을때 전개방식이나 꼬질꼬질한 배경음악 등등 어 이게 아닌데 하고 실망한 적이 많았는데
태조 왕건은 지금 봐도 꽤 좋은 드라마 같습니다.
구밀복검
16/02/01 03:11
수정 아이콘
태조 왕건은 중반부 궁예 에피소드와 후반부 견훤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한 스릴 돋는 정치극 전개가 재미있죠. 특히 궁예-아자개-종간-왕건 사이의 갈등 구도를 전개해나가는 양상 보면 지금도 감탄할만 하고요. 정작 주역인 왕건 패밀리 다루는 내용들은 싱거운 아재 개그들로 점철되어 있고 크크. 그마저도 2016년이 아니라 2000년 기준 아재 개그니...형님폐하라는 정체 불명의 경칭부터가 크크크크
The Silent Force
16/02/01 11:38
수정 아이콘
용의 눈물에도 이지란이 태조보고 형님전하라고 하죠.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는 안 그러지만..
하민수민유민아빠
16/02/01 03:28
수정 아이콘
드라마를 너무 좋아하는 입장이라..하하...
사극은 용의 눈물 태조왕건 허준 여인천하 동이 정도전을 재밌게 보았네요. 정통이 아니더라도 볼만하실겁니다.
로즈마리
16/02/01 06:43
수정 아이콘
어릴때 한명회라는 사극을 정말 재미있게봤었는데...갑자기 땡기네요
미남주인
16/02/01 07:46
수정 아이콘
감격시대 꼭 보세요. 꾹 참고 몇 편쯤 보다 보면 다시 드라마를 싫어하실 수 있게 될 거예요.
마바라
16/02/01 08:17
수정 아이콘
으앗 저도 요즘 태조왕건 정주행 중인데.. 저 같은 분이 또 계실 줄이야.. ^^;;

김영철의 궁예는
한국 드라마 캐릭터 중 넘버 원인것 같습니다. =_=b
16/02/01 09:12
수정 아이콘
누가 기침을 하였어?!!
니나노나
16/02/01 09:21
수정 아이콘
https://www.youtube.com/watch?v=08_TDjIECck
스베누 사태에 대해서 음성 합성한 것입니다 크크크크
The Silent Force
16/02/01 11:37
수정 아이콘
오오..
저도 정도전-용의눈물 연타로 달리는 중입니다요.
무인시대는 1년 전에 봤고, 야인시대도 해방 이후부터 다시 봤네요.
애들은 저보고 미쳤다고 그러더라구요..크크
ohmylove
16/02/01 12:49
수정 아이콘
용의눈물-태조왕건-정도전이 짱이죠. 그중에서도 용의눈물이 제일 짱.
드러나다
16/02/01 13:43
수정 아이콘
당시에도 엄청난 시청률 보여주는 드라마였지만, 비판할 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뜬금없는 초반 의형제 타령에, 태평이라는 책사는 제단쌓고 동남풍까지 부르죠(..). 누가봐도 삼국지 플롯을 매우 유치하게 도입한지라, 삼국통일 후 태평이 출사표쓰고 북벌하는거 아니냐는 개드립도 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게 웰메이드인거였어....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3392 [일반] (단편) 한승의 마지막 날 [7] 글곰4633 16/02/02 4633 5
63391 [일반] 더민주당이 조응천 전 청와대비서관을 영입했습니다 [43] Igor.G.Ne10058 16/02/02 10058 2
63390 [일반] 경총에서 대기업 신입사원 임금을 깍고 일자리를 늘린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64] 수타군9194 16/02/02 9194 2
63389 [일반] 쿠팡 '로켓배송' 계속된다…가처분 신청 기각 [69] 몽유도원11066 16/02/02 11066 5
63388 [일반] 개꿈을 꾸었습니다. [23] 사도세자4200 16/02/02 4200 5
63387 [일반] 손혜원 더민주 홍보위원장의 설날 에디션 [78] 에버그린15616 16/02/02 15616 2
63386 [일반] 노래 잘하는 법에 대해서 연구해 봅시다 [70] RnR17398 16/02/02 17398 2
63385 [일반] 백지영/유승우/이영현의 뮤직비디오와 NCT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1] 효연덕후세우실3197 16/02/02 3197 0
63384 [일반] 쾰른 집단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199] 에버그린22280 16/02/02 22280 43
63383 [일반] 단통법 세상에서 사는법 (효도르 하편) [33] 삭제됨5835 16/02/02 5835 7
63382 [일반] [뒷북] 무한도전에는 '진짜 갈등'이 없다. [40] Vivims9755 16/02/02 9755 2
63381 [일반] 아이오와 코커스 초반 개표 상황입니다 [112] 리스키12879 16/02/02 12879 2
63379 [일반] 대학교에 스파이가 있습니다. [103] UniYuki15304 16/02/02 15304 4
63378 [일반] . [10] 삭제됨4438 16/02/02 4438 2
63377 [일반] 아아아..잘자라 우리아가 [28] 토끼6748 16/02/02 6748 11
63376 [일반] thirty one [2] 부들부들3936 16/02/02 3936 2
63375 [일반] [고민] 퇴사를 고민중입니다. [54] RedSkai18571 16/02/02 18571 3
63374 [일반] 누리과정 문제의 핵심은 지방세가 아닐까요? [27] 일각여삼추5802 16/02/01 5802 0
63373 [일반] [오피셜]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 부임 확정 [69] 티티8567 16/02/01 8567 0
63372 [일반] 아버지와의 드라이브 [16] -안군-6165 16/02/01 6165 15
63371 [일반] 역대 NBA 정규시즌 통산 리바운드 TOP 10 [13] 김치찌개6235 16/02/01 6235 0
63370 [일반] 전 세계에서 공대지 능력이 가장 뛰어난 전투기 Top10 [14] 김치찌개5493 16/02/01 5493 0
63369 [일반] 현대카드 디자인/트레블 라이브러리 방문기 [15] 삭제됨7415 16/02/01 7415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