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과학 팟캐스트를 알게 돼서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듣고 계신 분도 혹 있을 지 모르겠는데,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 있네' 라는 제목으로 2013년부터 작년 말까지 진행이 됐고, 올해 3월부터 시즌 2를 시작하기 위해서 준비중이라더군요. 파토(원종우)님은 딴지일보의 객원필진이시기도 합니다. 80년대 후반 학번이시고, 원래는 음악을 하셨는데, 전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저는 천문학을 좋아해서 천문학과를 가려다가 수학을 못해서 그냥 다른 학교에 입학해서 아마추어 천문 활동을 좀 하다가 졸업하고 천문학과에 편입해서 일년 좀 못되는 기간동안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역시 수학이 안되니까 엄청 힘들더군요. 몸이 안좋아져서 휴학하고 복학은 못했습니다.
잡설이 길었는데, 재밌게 들었던 그 팟캐스트의 내용 중 하나가 제 관심분야와 맞아서 그걸 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목은 해당 팟캐스트에 자주 나오시는 K박사님(천문학)이 2014년에 내신 책이름이기도 하고요. 강연 내용도 책 내용과 같아서 저렇게 붙였습니다. 우주의 팽창에 관한 내용이에요.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에드윈 허블이라는 천문학자인데요, 이 사람은 원래 법학 전공인데 천문학이 좋아서 천문학자가 됐다고 하더군요. 하여튼 이 사람의 데이터를 근거로 해서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이 발견됐고, 역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가 하나의 점에서 시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게 우리가 알고 있는 빅뱅이고요.
1990년대 이전까지,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미래에 세가지 모델 중 하나의 모델을 따를 거라는 추측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다가 팽창이 결국 멈추고, 중력 때문에 결국 수축해서 짜부러질 거라는 거였죠(안으로 닫힌 우주). 두번째는 계속 팽창을 하기는 하는데, 지금보다는 팽창속도가 조금씩 줄어들 거라는 거였고요(감속 팽창우주). 다른 하나는 팽창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질 거라는 겁니다.(가속 팽창우주) 이것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멀리 있는 은하(수십억광년 이상 떨어진)와 비교적 가까이 있는 은하의 팽창속도를 비교해보면 됩니다. 100억 광년 떨어진 은하의 후퇴속도(=팽창속도)는 100억년 전의 후퇴속도일테고 1억광년 떨어진 은하의 후퇴속도는 1억년 전의 후퇴속도니까, 둘을 비교해보면 과거에 비해 현재의 팽창속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 수가 있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그 거리를 어떻게 측정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까지 태양계에서 다른 천체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연주시차인데, 이것은 비교적 가까이 있는 천체들(수천광년 이내)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 쓰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페이드 변광성이라는 건데, 이 천체는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고, 최대 밝기와 주기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어서 비교적 가까운 은하의 경우 이런 세페이드 변광성을 통해서 거리를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십억 광년 이상 떨어진 은하들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방법은 알 수가 없었죠. 세페이드 변광성이 아무리 밝아봐야 그냥 별이었어서 먼 은하에서 그걸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90년대 들어와 새로운 표준 광원이 발견됩니다. 바로 초신성이죠. (표준 광원이란 세페이드 변광성처럼 최대 밝기와 그 밝기가 변하는 주기 간에 상관 관계가 있어서 비교적 정확하게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천체를 가리킵니다.)
버클리대학의 입자물리학자들(이하 버클리팀)은 새로운 입자가속기들의 건설로 인해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습니다. 관측 천문학자들이 좋은 망원경이 있어야 연구하기 좋은 것처럼 입자물리학자들은 좋은 입자가속기가 있어야 연구가 편하다고 합니다. 하여튼 그래서 버클리팀은 연구 주제를 바꿔서 공룡 멸종의 원인을 찾기 시작합니다. 약 6천5백만년 전에 거대한 운석이 유카탄 반도에 떨어져서 그 여파로 공룡이 멸종했다라는 생각은 있었는데, 그래서 그 운석은 왜 하필 그때에 지구에 떨어지게 되었나 하는 걸 연구하게 된 거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네메시스 가설이란 거였는데요, 태양의 쌍성으로 적색왜성같은 천체가 있어서 태양계 외곽에서 지구 인근까지 오는 궤도를 가지고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었죠. 이 네메시스라는 가상의 천체가 태양계 외곽의 오르트구름을 통과하면서 운석 또는 혜성 무리들을 몰고 와서 그것들 중 하나가 지구에 떨어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마침 지구 역사에서 대규모의 멸종이 몇 번 있기도 했고 해서 그런 주기적인 멸종이 저런 천체의 존재 때문이 아니냐는 생각이었습니다. 비교적 가까운(2광년 이내) 이 동반성을 찾으려면 밤하늘의 사진을 주기적으로 찍어서 그 중 눈에 띄게 움직이는 천체를 찾으면 됩니다.
버클리팀의 연구는 그러나 지지부진했고, 그 와중에 초신성을 발견하고 이거 재밌겠다 싶어서 초신성으로 연구 주제를 다시 바꿉니다. 초신성은 보통 한 은하에서 50~100년마다 한개씩 발견된다고 해요. 그러면 100개의 은하를 1년간 관찰하고 있으면 그 중 하나에서 볼 수 있다는 뜻이 되고, 관찰하는 은하를 점점 늘려가면 초신성의 발견 빈도도 잦아질겁니다. 그렇게 많은 은하를 관찰하면서 초신성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거죠. 그리고 이 초신성은 하나가 보통 은하 하나와 맞먹는 빛을 냅니다.
그리고 버클리팀은 초신성을 발견하기 위해서 허블망원경 사용 신청을 넣습니다. 그런데 반려되죠. 허블 우주 망원경 사용을 심사하고 승인하는 사람들은 천문학자였는데, 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버클리팀이 뻘짓하는 것처럼 보였나봐요. 네메시스를 찾던 전력도 있고... 원래 네메시스 가설은 80년대에 나왔다가 폐기된 거였습니다. 그렇게 가까운 항성이면 찾아도 벌써 찾았을 거였거든요. 하여튼 그래서 버클리팀은 다른 망원경에 사용 신청을 해서 연구를 계속 하게 됩니다.
보통 전세계 모든 대형 망원경들은 누구든지 사용 신청을 해서 일정 기간 사용을 할 수가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 데이터는 해당 천문학자가 1년간만 독점해서 사용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분석한 것까지 포함해서 공개해야 한다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다 볼 수 있다네요. 그런 면에서는 천문학계가 자유롭고 열린 데가 있다고 하네요. 자료 분석 툴도 공개가 돼 있고요.
그리고 버클리팀은 세계 최고의 초신성 권위자..(이름에 약해서 누군지 까먹었네요.)에게 초신성에 대해서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보기에 연구 자체는 재미가 있어 보이는데, 데이터 처리가 좀 부실한 거에요. 그래서 그쪽에 조언을 해줬는데 물리학자들이 거기에는 별 신경을 안 썼다나 봅니다. 그래서 잘 생각해보니까... 어 이거 우리가 한 번 해봐도 괜찮겠는데.... 해서 사람들을 모아서 천문학자쪽에서도 초신성 연구를 시작합니다. 이쪽은 하버드팀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버드팀은 버클리팀보다 5년 정도 늦게 초신성 발견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두 팀 다 초신성이 앞서 언급했던 '표준 광원'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죠.
대충 초신성이라고만 썼지만, 사실 표준광원이 될 수 있는 초신성의 타입은 1a형만 해당됩니다. 1a형은 적색 거성을 동반성으로 가지는 백색 왜성에 적색거성의 바깥쪽 기체가 흘러들어서 임계 질량을 넘어서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는 식입니다. 백색 왜성의 임계 질량도 정해져 있고,(별이 죽을 때 외부 대기를 날리고 남은 질량이 일정 질량을 넘어가면 질량에 따라 순서대로 백색왜성, 중성자 별, 블랙홀이 됩니다.) 초신성폭발을 일으키는 외부기체의 양도 정해져 있습니다. 때문에 초신성의 밝기와 주기도 일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초신성 하나의 밝기는 한개 은하의 밝기와 맞먹죠. 그래서 이 1a형 초신성이 있는 은하라면 몇십억 광년 이상의 먼 거리에 있더라도 태양에서 그 은하까지의 거리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은하의 후퇴속도가 빠를수록 그 빛의 스펙트럼의 흡수선들은 붉은색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 은하가 우리은하로부터 어느만큼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지도 알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우주 팽창 모델 중에서 어느것이 맞는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97년. 버클리팀이 먼저 관측 결과를 발표합니다. 약 마흔개 남짓의 초신성을 관측한 결과 우주는 감속 팽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예상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하버드팀은 버클리팀의 발표와 자기들의 분석이 상충되는 것을 알고 자신들의 데이터를 재검토합니다. 그리곤 자기들이 틀렸어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이때 당시 이메일을 주고 받은 것도 책에 실려있다고 하네요) 하고 약 17개의 초신성을 바탕으로 분석한 내용을 98년에 발표합니다. 결과는 우주가 가속 팽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 쓰면 재미 없으니까 팟캐스트를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략한 내용도 많고... 개인적으로 상당히 재밌게 들었습니다.(깨알같이 물리학자 디스하는 천문학자...도 있고.) 주소 링크할테니 찾아서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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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얘기는 좀 더 있는데 생략했네요. 허블하고 같이 별사진을 찍던 밀턴이라는 분도 있는데, 원래는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고, 천문대 짓는데 짐꾼 비슷하게 왔다가 재밌어보여서 천문학 하고싶다고 했더니 채용... 일하는 거 보니 겁나 잘함... 심지어 허블보다 별사진도 잘 찍음.
허블은 자기 데이터를 신뢰를 못해서 논문 내놓고도 반신반의했는데, 이론 물리학자들이 맞다고 해주고 우주 팽창도 애초에 허블이 주장한 게 아니라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