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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05 11:58
이때 프랑스가 인구가 대대적으로 떨어져서 영국 본토보다 인력이 적었던 시절인데 한큐에 100만을 양성하고 그후에도 연합군에서 가장 큰 병력을 유지했죠. 인력소모를 매꾸기 위해 독일이나 영국보다 인력풀을 박박 긁어서 징병했기에 전후에 더욱 피해가 심했죠.
16/01/05 14:09
프랑스 인구가 떨어진 이유가 프랑스혁명, 나폴레옹시대때 전쟁이 많아서 인가요?
프랑스가 대대로 강국에 땅도 좋아서 인구가 많을줄 알았는데 1차대전때 영국보다 인구가 적을줄은 몰랐네요.
16/01/05 14:56
정확히는 저도 잘 모르고 상당히 의견이 분분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 설에 의하면 나폴레옹 전쟁 이후로 자작농들이 가난해지면서 재산분할을 막기 위해 출산율을 줄였다는 것인데 이것도 제가 직접 본게 아닌 다른 분의 글에서 얻은거라;;
실제로 영국과 독일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인구증가율이 50-60%에 육박했던 것에 비해 프랑스는 인구증가율이 10% 정도 밖에 안됬죠;;
16/01/05 15:25
아 1차대전 같은 총력전의 경우에는 다수 국가가 한국과 비슷한 징병제를 체택해서 대부분 청년들이 군복무를 거치고 전쟁이 터질 시에 징발되서 전선으로 집결됩니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병사들을 올바른 지역으로 보낸다던가, 갑자기 늘어난 군수품 소모를 감당한다던가는 죄다 행정적 부담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죄다 감당해서 몇주도 안되서 군사작전을 펼치는 것을 보면 프랑스군의 행정력이 매우 뛰어나다 할 수 있죠.
16/01/05 14:58
사실 전쟁 준비도 단기전만 생각한지라 상당히 미비한 점이 컸는데 이건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라서 큰 단점이라 하기는 좀 그랬습니다.
다만 전략적으로 조프르는 상당히 뜸들이고 정치인들의 개입없이 결정을 냈음에도 결국 독일에 완패할 뻔했다는 점에서 호평하기 어렵죠;
16/01/06 00:57
조프르의 삽질이 나중에 가서 프랑스군 전체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고(..) 그걸 몽땅 다 뒤집어쓴건 아닌가 싶은게 포슈(..)....
16/01/05 15:26
추천 감사드립니다 :)
1차대전은 연구할만한게 태산이고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오 태산이죠. 쓸 소재는 참 많은데 시간이 없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16/01/05 16:10
그러니까 애초에 밀고 들어가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집결하기 위한 계획이었다는 말이군요. 계획은 상당히 성공적이었고. 그러나 독일군에게 초반에 말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이 계획으로 인해 완전히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요약하고 있군요.
근데 이렇게 놓고 보니 궁금한 게 생기는데, 그러면 영문 위키피디아의 Plan XVII 항목의 지도에 있는 1, 2, 3, 4, 5, 7군단의 알자스-로렌 진공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그냥 배치시켜놓고 보니 공격할 만해 보인다 하고 계획이 중간에 수정되기라도 한 건지... 2차대전 관련해서, 리델 하트 등이 주창했던 전격전이라는 개념이 일종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다가 칼 하인츠 프리저였나, 이 사람이 저술한 <전격전의 전설>로 인해 싸그리 뒤집어엎어진 일이 벌써 20년이 넘었는데, 그와 비슷한 일을 보고 있는 것 같군요. 이래서 군사학이 참 어렵습니다.
16/01/05 16:41
그러니까..
만약 독일과 전쟁이 터지면 서로 반띵해서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알자스 로렌... 으로 독일놈들이 들어 올거기 때문에 대응책으로, 알자스로렌지역에 병력을 배치해놓자. 가 제 17계획의 골자라는거죠. 참고로 알자스로렌지역이 왜이렇게 핫하나면, 당시 산업혁명의 흐름상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탄, 철등 지하자원 때문입니다. 프랑스가 다른건 다가지고있는데, 석탄은 프랑스 전체생산량의 70퍼정도를 알자스로렌지역에 의존했다고 하죠. 독일은 그래도 다른 탄광지역이 있어서 약 30퍼정도.. 그러니까 다시 요약을 하면, 전쟁초기 삽질은 프랑스 군부 최상급 지휘관의 오판때문이지 제17계획때문이 아니라는겁니다. 에초에 슐리펜계획처럼 작전계획이 아니라는거... (슐리펜계획 : 빠르게 파리를 압박 혹은 점령하여 프랑스의 항복을 받고 전군을 러시아로 돌리자. 그 수단으로 중립국인 벨기에를 빠르게 침공하는것도 감행.. 왠지 30년후에 똑같은 일이 벌어질거 같은건 착각입니다)
16/01/05 18:13
역시 그렇군요. 그러니까 17계획의 골자는 Operation이 아니라 Strategic Redeployment라는 거네요(본문에도 있습니다만). 제가 궁금했던 것은 대체 누가 알자스-로렌 지방으로, 17계획으로 인해 배치된 병사들에게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그것이 17계획 자체와 얼마나 관련이 있었냐는 겁니다. 후자에 대한 답은 나왔군요(17계획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지역이야 하도 프랑스와 독일이 내 꺼라고 치고박고 싸우던 지방이니... 왜 그 마지막 수업인가... 알퐁스 도데였었나... 하여간 소설에서도 줄창 나오던 이야기라서요.
16/01/06 13:49
영문 위키백과는 어떤 부분에서는 제가 인용한 다우티의 논문「French Strategy in 1914: Joffre's Own」를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데 제17계획을 여전히 작전계획으로 본다는 점에서 구시대적인 오류를 똑같이 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당 항목내의 지도의 오류는 위키백과의 슐리펜 계획 항목의 지도가 현재 시각으로는 오류범벅이라는 점과 일맥상통합니다. 아마 제17계획을 그린 해당 지도는 아마 실제 역사대로의 프랑스군의 공세를 본래 제17계획으로 오독하고 그려낸 지도로 보입니다.
조금 더 정리하자면 *1군, 2군은 로렌 공세를 펼치고 *3군, 4군은 아르덴 공세를 펼치고 *5군은 북진해서 독일군을 대응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제7군단의 경우에는 8월 7일에 알자스 지역으로 파견 보내서 제대로된 공세를 펼치기 전에 선전할만한 껀수를 잡는 용도였습니다. 제가 나무위키에 예전에 작성한 "국경전투" 항목이 있는데 수차례 업데이트하기 보다는 사실상 내용을 갈아엎고 새로 쓰는 중이라 이전의 오류가 존재하지만 (본문의 제17계획=작전계획설이라던지...) 어느 지역에 프랑스군이 어떤 병력을 집어넣었는지 참고할만한 수준은 되리라 생각합니다.
16/01/06 21:07
그러니까 결국 플랜 17과는 별개의 명령이었군요. 밀고들어간 군단의 수가 꽤나 많은 거 봐서는 그 별개의 명령도 전략적 결과와는 별개로 실행 자체는 꽤나 성공적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영문 위키백과도 엎어야 할 수준이라면 그야말로 1차세계대전사의 분석 자체를 완전히 흔들어버릴 엄청난 일이 되겠네요. 덕분에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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