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12/20 19:44:28
Name Colorful
Subject [일반] 기억 조작
이따금 친구와 옛날이야기를 하다보면 친구와 내가 기억하는 것이 다를 때가 있다. 내 기억이 틀릴리가 없으니 친구가 틀렸겠지. 물론 친구도 나랑 같은 생각이다.
확실한건 누군가의 기억은(혹은 둘다) 틀렸다는 것이다.

기억에 대해 지식채널e에서 흥미로운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열기구에 타본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조작하여 그들이 열기구에 타있는 사진을 보여줬을때 많은 사람들이 조작된 사진을 기억한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씩 나의 기억을 의심한다. 혹시나 저 사람들처럼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만든게 있는지

친구와 나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을 보면 기억 조작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그럼 내 기억은 어디서부터 조작됐을까
영화 아일랜드에서처럼 어릴 때 기억 모두? 아니면 어제까지? 1분전? 과거라면 어떤 것도 조작되었을 수 있구나
일단 현재, 지금은 기억이 아니니 조작된게 아니다. 그래, 지금 이 문단을 쓰는 도중은 확실히 진짜다
하지만 방금 문단을 넘기면서 저것은 이제 과거고 불확실해졌다.
현재는 실제로 있는데 느낄 수 없는 아이러니가 이런거겠다.

매일매일 기억조작이 이뤄지진 않을까?
사실 우리는 하루만 살고 그 다음날에는 무조건 지옥으로 간다. 그리고 평생동안 지옥불에서 고통받는다. 오늘 아침 '나'라는 영혼이 이 몸에 도착해 과거의 기억을 받아 오늘을 살고있다. 내일은 또다시 새로운 영혼이 이 몸에 도착해 기억들을 받겠고 아무것도 모른체 살아가겠지. 어제의 나와 이틀전의 나는 지금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다.
고2 때 학교 시험을 정말 열심히 준비했을 때가 있었는데 스트레스 때문인지 밤마다 이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을 하면 기분이 정말 상쾌했다. 왜냐면 그 다음날 공부를 안해도 되니까. 현실을 벗어난다는 상상이 좋았고, 내가 어떻게 뭔 짓을 하던 다음날부터 지옥에서 모든걸 초월하는 평생동안 고통받는다는 사실에 뭔가 오묘하게 슬픈 감정이 느껴졌다.
한편 시험마지막전날밤 나는 눈물이 났다. 지금까지 죽도록 열심히 했는데 결과도 못보고 놀지도 못하고 다음날 바로 지옥에 간다니... 너무나도 억울했고 우울했다. 하나님 제발 다음날 지금의 제가 일어나게 해주세요

조금씩 눈을 떴다. 창문에 날이 밝은걸보고 벌떡 일어나 내 몸을 더듬었다. 아! 나는 온전했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어제의 나는 지옥에 갔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여기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이인제
15/12/20 19:48
수정 아이콘
본문처럼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수면내시경을 하면서 기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수면이 아닌 방법으로 내시경 받으면 (개인적으로는 화생방 포함해서 ㅠㅠ) 세상에서 그렇게 고통스러운 경험이 또 없는데요, 수면내시경을 하고 나면 아무 기억이 없이 평온하잖아요? 하지만 아마 지워진 기억의 나는 똑같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고통을 받았을 것 같거든요.
그렇다면 고통이란 무엇인가, 고통을 받고 그 기억을 지우면 그냥 편리하게 장땡인 것인가, 그렇다면 고통받았을 때의 나의 의식은 무엇이란 말인가 뭐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되더군요..
Jace Beleren
15/12/20 20:11
수정 아이콘
제가 시골에서 치통으로 새벽에 5시간 정도를 끙끙대본적이 있는데, 그때 마지막으로 도망친 도달점이 바로 그 방법이었습니다. 어차피 이 고통이 지나간 뒤에 다 잊혀질것이니 나는 고통받지 않는것과 다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살만하더라구요.
절름발이이리
15/12/20 20:17
수정 아이콘
수면내시경 상태는 제대로 의식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않습니다. 물론 마취처럼 아무렇지도 않다 이런건 아닌데.. 애초에 똑같이 고통스러우면 무의식적으로 검사를 방해할텐데 의식 멀쩡한 상태보다 더 안 좋은 걸 굳이 할 이유가 없죠.
Colorful
15/12/20 20:29
수정 아이콘
진짜 아프면 그 고통이 뭔지 고민하게 되더군요
Around30
15/12/20 20:03
수정 아이콘
사실상 우리가 나라고 인식하는 자아 자체가 허상에 가깝죠. 그냥 유전자가 만든 생존 기계입니다. 그것도 조잡하게 만들어진지라 저장공간인 하드디스크는 뻑하면 까먹기 일수고 본문에 나온것처럼 기억을 왜곡하기도 하죠.
십년전에 존재한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건 이 성능나쁜 하드디스크 밖에 없습니다. 나는 같다고 철썩같이 믿지만 체내의 모든 세포는 새로워 진 복제품이죠.
Colorful
15/12/20 20:30
수정 아이콘
참 신기합니다
포켓토이
15/12/20 20:05
수정 아이콘
사람의 기억은 정말 쉽게 조작됩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안철수지지자와 문재인지지자들이 얘기하는걸 들어보면
2012년 대선 당시에 정말 같은걸 보고 들었던 사람들이 맞나 할 정도로 서로 하는 얘기가 틀리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안철수가 대선 끝나기 전에 미국에 가버렸다고 기억하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안철수가 전혀 문재인을 도와주지 않았다고 기억하죠 (사실은 일단위로 지지스케쥴 꽉 차있었음)
기억은 별로 신뢰할게 못됩니다. 대선에 지고 나서 안철수에게 책임을 미루고 싶으니까 기억까지 같이
상황에 맞춰서 변조되는겁니다. 안철수가 안도와줘서 진거다라는 결론을 먼저 내놓고서 기억을 거기에
맞춰버리는겁니다. 근데 세월이 지나서 사실 확인이 힘들어지면 이런 변조된 기억이 당당하게 진짜 팩트처럼
얘기되기도 한다는게 무서운거죠.
Colorful
15/12/20 20:33
수정 아이콘
이건 기억이라기보다 인터넷의 특성이지 않을까 싶네요. 비슷한 정보나 추측이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그것을 봤던 사람들이 그것을 또다시 반복하고 추측했던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조금씩 확신하고 이런게 계속되지 않나 싶네요. 특히나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걸 보니깐요
포켓토이
15/12/20 21:14
수정 아이콘
별로 인터넷하곤 상관없다고 봅니다.
저 잘못된 기억을 가진 문재인지지자들이 오프라인에선 다른 얘기를 할리도 없고..
아리마스
15/12/20 20:09
수정 아이콘
대단히 간단한 암시만으로 사람들 기억이 변조된다는건 이미 입증되었지요, 유년기의 성폭행을 당했다며 부모를 고소한 사람들의 사례를 연구한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https://www.ted.com/talks/elizabeth_loftus_the_fiction_of_memory?language=ko) 동영상을 보신다면 재미있으실겁니다. 떠올려보자면 저같은 경우는 아주 어린시절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정말 기억하고 있는건지 그냥 앨범을 보면서 짜맞춘것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공실이
15/12/20 21:00
수정 아이콘
좋은 강연 잘 봤습니다.
세 모자 사건등등이 기억나네요... 아이들이 진짜 그런일이 있었다고 믿고 있었다고 했었죠.
이진아
15/12/20 20:17
수정 아이콘
블레이드 러너!
김성수
15/12/20 20:56
수정 아이콘
저는 내일로 가서 성공한 저를 보았다는 암시를 하곤 합니다. 지금 이 길의 끝에는 성공만이 있음을 알고 있는데, 어찌 포기할 수 있을까요?
불타는밀밭
15/12/20 20:57
수정 아이콘
저랑 반대시군요... 길 끝에 성공이 보이지가 않던데..
김성수
15/12/20 21:01
수정 아이콘
크크크 실은 제가 불타는밀밭님 기억을 조작했는데, 잘 먹힌 것 같네요 !
뽀로뽀로미
15/12/20 21:07
수정 아이콘
정확히 7년 전에 전기면도기 날을 감싸고 있던 3헤드 덮개 중 한 헤드 덮개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날을 감싸고 있는 스테인레스 덮개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구멍이 생겼기에 면도 중에 그쪽이 살갗에 닿으면 따끔거렸죠. 그래서 그쪽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면도를 했습니다. 7년을 매일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아침 급하게 면도를 하다가 실수로 떨어져 나간 덮개가 있는 쪽으로 면도를 하게 됐는데 이상하게 전혀 따끔거리지 않았습니다.
이상해서 살펴봤더니 분명히 구멍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꼼꼼히 살펴봐도 3헤드 모두 떨어져 나간 곳 없이 멀쩡했습니다.

전기면도기가 멀쩡하다는 걸 인식한 그 짧은 순간 정말로, 영화 '나비효과'나 드라마 '나인'에서처럼 기억이 순식간에 막 엉키더군요.
7년간 매일같이 면도기의 한쪽을 피해서 사용했는데, 어쩌면 애초에 이 면도기는 고장이 나지 않았고 더 먼 과거에 고장난 전기면도기의 기억을 멀쩡한 이 전기면도기에 덮어씌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싹해졌습니다.

매일 쓰던 물건을 무려 7년간 착각해서 사용한 거라 생각하면 좀 무서운데.. 분명히 한쪽이 망가진 면도기인데 어째서...
며칠 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저의 착각보다는 그냥 미스터리한 에피소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착각을 7년 동안 할 리가...
혼자 살고 있고 누가 면도기를 고쳐줬을 가능성은 결단코 전혀 없고요.

기억력 좋다는 소리 지겹게 들었고 스스로도 기억력에 남다른 자부심이 있어서 멘붕했던 일이었습니다.
진지하게 평행우주 뭐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요;;;
Colorful
15/12/20 22:03
수정 아이콘
제가 보기엔 님이 고쳐놓고 기억을 못하거나 사실은 착각을 했겠거니 하지만 님께서는 스스로 확신하니 기억을 넘어서 우주를 의심하시는군요 정말 재밌습니다
그나저나 7년이란 시간은 어마어마하네요
뽀로뽀로미
15/12/21 13:07
수정 아이콘
제가 고쳐놓고 모르는 거라면 정말 치매로 병원가야 할 거고, 지금 그나마 가장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이거보다 몇 번 더 전에 샀던 전기면도기도 비슷하게 구멍난 적이 있는데 아마 그 면도기 기억과 습관이 이 면도기에 덧씌워진 걸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해도 치매가 아니고서야 이걸 착각할 수가 없는 이유는 이 면도기가 7년 전 헤어진 예전 여친의 마지막 선물이었거든요. 헤어지고 얼마 안돼서 면도기가 망가졌기에 '아.. 선물 준 사람도 가더니 물건도 갈려고 하네..'라며 씁쓸해 하기까지 했는데...

어느 쪽이든 문제입니다;;
Colorful
15/12/21 20:32
수정 아이콘
옛 여친과 다시 이어지기만 한다면 스토리는 완벽해지겠군요
뽀로뽀로미
15/12/21 21:26
수정 아이콘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살고 있다더군요.. 쿨럭;;;
Colorful
15/12/22 10:18
수정 아이콘
상관없으리라 믿습니다
i_terran
15/12/20 22:23
수정 아이콘
소름돋네요.
뽀로뽀로미
15/12/21 13:08
수정 아이콘
실제 겪어보면 레알 돋습니다.
15/12/20 23:00
수정 아이콘
면도기에 붙어있던 김이 결국 떨어져 나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뽀로뽀로미
15/12/21 13:09
수정 아이콘
혹시 김부장님...?!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3882 [일반] [11] 동심을 찾아서 Colorful5032 19/12/30 5032 2
83852 [일반] [11] 동반자살 [3] Colorful7497 19/12/26 7497 8
82476 [일반] 새 여왕벌을 모셔야 할 때 [18] Colorful9612 19/08/29 9612 6
81395 [일반] (스포) 기생충 - 무(無)계획은 악(惡)이다. [71] Colorful12997 19/06/04 12997 15
65330 [일반] 첫 번째 베댓 -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24] Colorful5810 16/05/22 5810 3
64432 [일반] 나의 장례식장 [1] Colorful3652 16/04/02 3652 4
64367 [일반] 아들이 혼났다 [11] Colorful5803 16/03/30 5803 43
64302 [일반] 나는 100살이 되면 자살할거야 [12] Colorful8920 16/03/27 8920 7
63990 [일반] 노를 젓다가 [7] Colorful3171 16/03/10 3171 13
63661 [일반] 입술의 상처 [10] Colorful4237 16/02/21 4237 8
62753 [일반] 우주의 종이접기 [19] Colorful9409 15/12/25 9409 8
62720 [일반] 논문의 오자 개수 [13] Colorful6448 15/12/23 6448 0
62658 [일반] 기억 조작 [25] Colorful4986 15/12/20 4986 3
62637 [일반] 정신병자를 보면서 드는 생각 [56] Colorful9903 15/12/19 9903 0
62607 [일반] 정의는 없다 [33] Colorful5322 15/12/17 5322 1
61740 [일반] 논리적으로 운명은 있습니다 [327] Colorful14720 15/10/29 14720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