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은 안전한 이불 속에서 보내고 싶지만 자본주의의 법칙을 따라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일어나 나에게 최저시급을 줄 수 있는 직장으로 가야한다. 차가 밀릴 걸 예상해서 보통보다 10분 더 일찍 나온다. 아침밥은 사양하고 밖으로 나간다. 함박눈이 온 것과는 다르게 바닥이 질퍽하니 장화를 신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양말에서 약간 축축함이 느껴지지만 신경쓸 겨를 없이 정거장으로 간다. 정거장에 도착하니 버스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지각을 걱정하는 학생들과 일터로 나가는 아주머니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그러나 버스기사님은 보이지 않는다. 오분 십분이 지나도 올 기미 없는 그분은 약속 시간에 오지 않으셨다. 아마도 많이 피곤하셔서 오늘 쉬시나보다. 평상시보다 빨리 나왔지만 평상시보다 늦게 버스를 타고 축축한 버스에서 기사님을 생각해보았다.
왜 기사님은 오지 않으셨을까?
내가 타는 버스만 그런건지 전국이 모두 그런건지, 버스 기사분들은 곧잘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배차 시간 맞춰야되서 못들어가요."
내가 사는 종점 주변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선지 다른 걸로 환승하라 하시면서 친절히 하차문을 열어주셨다. 배차시간. 아마도 손님이 많은 곳으로 가서 그들의 니즈를 채워주기 위해선 타이트하게 설정된 스케쥴을 따라야 하는것 같다. 혹은 그렇지 않으면 회사가 운영이 잘 되지 않은 영세 업체일 수 있다. 버스기사님이 무슨 잘못이 있으랴 그들도 내가 미워서 내리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사장님이 악덕 스쿠루지처럼 직원들을 혹사시키고 돈은 쥐꼬리만큼 주는 것도 아닐 것이다. 지역에서 크지 않은 버스 업체가 몇몇의 차로 가장 많은 손님을 태우려니 그렇게 배차시간을 정한 것이겠지. 그들도 역시 자본주의 앞에서 평등하게 하루하루 사는 사람이겠지.
그러나 지금 당장 배차시간을 못지킨 기사님으로 인해 나는 늦게 되었다. 과속과 신호등 위반을 하며 목숨보다 소중히 지켜온 배차시간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내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마 지금의 상처로 인해 나는 지각할 것이고, 내가 지각하는 것은 소중한 손님들에게 라면을 끓여줄 시간이 줄어드는 것과 피씨방의 매출이 떨어지는 것을 보게 할 것이다. 그러면 사장님께 주휴수당을 달라고 요구할 때도 더 불리한 조건에 처하게 될 것이다.
내 삶이 이렇게 된 건 기사님의 지각 때문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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