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진은 건국한지 4대 51년만에 멸망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약 40년만에 멸망했다
* 실제론 서진과 동진은 같은 나라이다. 단지 정변과 통일 통일 이후 화북에서 쫓겨난 시점을 나눈 거 뿐
2. 진나라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사마의는 고평릉 사변으로 정권을 잡았고 사마사는 조방을 폐위시키면서 정권을 공고히했다. 덤으로 친 조위세력들을 찍어누른 것도 사마사 참고로 사마사의 권력은 아버지였던 사마의보다도 더 강했다한다
사마사의 뒤를 이은 사마소는 형이 이미 친 조씨일족을 싹 다 제거해놨던 덕분에 더 탄탄대로였다. 실제로 권력 역시 아버지였던 사마의나 형이었던 사마사보다도 강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심지어 이놈은 사마사조차도 황제를 죽이진 않았는데 황제였던 조모를 죽이고나서 슬픈척 곡소리를 냈다. (직접 죽인 인물은 성제였고 사마소 역시 설마 황제가 죽을거라곤 생각 못했을 지도 모르지만 여튼 황제가 죽었는데도 그 책임을 오로지 성제에게만 덮어씌우고 거기에 지시를 내린 가충을 감싸는 태도를 보면..)
3. 사마소의 심복이었던 가충은 사마소의 뒤를 이은 사마염대에도 충신(?)으로 남아있었는 데 여튼 당시 시대상황은 남쪽엔 오나라를 적으로 두고 있었고 서쪽으로는 선비족이 문제였다 선비족의 독발수기능의 난은 진나라로 하여금 무려 10년간이나 오나라 방면을 신경 쓰지 못하게 할정도로 골칫거리였는데 선비족을 떄려잡을(?) 총사령관으로 가충이 천거되었다.
이곳만큼은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절대로 그 누가 뭐라하든 죽었다깨어나도 가고 싶지 않았던 가충은 필사적으로 두뇌를 풀가동하여 기어이 안갈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어찌저찌 이게 성공하여 태자의 장인이 된 가충은 자신이 원하던대로 (..) 수도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태자비가 된 가충의 딸의 이름은 가남풍이다.
4. 어쨋든 이후에는 일이 잘 풀려서 오나라와 선비족을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둘 다 떄려잡을 수 있게 된다. 황건적의 난부터 시작된 군웅할거의 시대 / 조비가 헌제에게 선위(를 가장한 찬탈)을 받은 지 실로 오랜만에 통일국가를 달성해낸 것이다. 그리고 위에도 언급했듯이 이 나라는 통일한지 40여년만에 멸망한다
애초에 이 나라는 위나라가 갖고 있던 문제점을 대부분 그대로 답습한채로 시작했던 나라(..)였던데다가 그나마 통일 전에는 정신줄을 잡고 있던 사마염이 통일 이후 급격하게 정신줄을 놓기 시작하더니 통일 직후 오나라의 손호가 모아놓은 궁녀5천을 흡수하여 1만궁녀를 현실세계에 강림시킨다(..)
사마염의 대표적인 명언으로 "사치는 좋다 하지만 술병은 못고친다"가 있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5. 황제였던 사마염도 이 지경인데 그 밑은 상상을 초월했으니 왕개와 석숭을 현실세계에서 돈지랄을 하며 싸움을 하기 시작한다.
어느정도냐면 이 돈지랄 싸움이 하두 유명해서 사마염이 자신의 외삼촌인 왕개를 돕기 위해(?) 아주 크고 아름다운 산호수를 선물로 하사했다 한다. 이걸 석숭에게 자랑하자 석숭이 대뜸 그 몽둥이로 떄려뿌솨버린것이다(-_-)
어처구니가 없어진 왕개가 지랄을 하자 석숭이 뭘 그딴걸 갖고 쪼잔하게 구냐면서 자기 창고에서 황제가 왕개에게 준것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걸 무려 7개나 선물로 가져가라고 줬따. 그걸 본 왕개가 결국 자기가 졌다면서 패배를 인정(..)
6. 사마염은 천하를 통일하고 10년 뒤 죽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받은 아들의 이름은 사마충으로 가남풍의 남편이며 동시에 지적3급장애를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7. 살아생전 사마염이라고 자기 아들이 못난 걸 모를리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친동생이자 사마소에 의해 죽은 사마사의 양자로 편입된 사마유를 후계자로 세울 생각하기도 했었다. 허나 결국엔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사마유는 후계자가 되지 못했고 이후 위관이 술자리에서 술에 취한 척 사마염에게 적절히 눈치를 주면서 "이 자리가 너무 과분합니다"라고 하였고 이 뜻을 알아챈 사마염 본인도 알고 있다고 했고 얼마 안가 사마충을 시험하기로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가남풍은 시험을 하는 시험관들을 매수하여 그들로 하여금 미리 답을 써놓게 했는데 너무 못 쓰면 당연히 안되고(..) 너무 잘쓰면 의심을 받을테니 김대기 뺨칠정도로 적절하게 쓰게 만들어서 간신히 시험을 통과한다
시험을 통과하고나서도 사마염의 사마충에 대한 불신이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였지만 사마충의 아들이자 자신의 손자였던 사마휼이 총명한 모습을 보여줬기때문에 아들이 못났어도 손자가 있으니 괜찮다라는 생각을 하였고 덕분에 사마충의 후계자자리는 확고해졌다
* 참고로 사마휼은 가남풍의 친자식이 아니다.
8. 사마염이 믿었던 총명한 손자 사마휼은 훗날 계모인 가남풍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죽임을 당한 이유는 바보인 사마충이 죽고난 뒤 자신에게는 양자인 사마휼이 황제가 되면 자신의 권력이 사라질까봐 두려워서(..)
더 어처구니없는 건 가남풍이 사마휼을 죽이려는 것은 같은 사마씨인 사마륜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관만 하고 기다렸다. 그래야 사마휼이 죽은걸 명분으로 들고일어나서 자기가 황제가 될 수 있으니깐.. (그리고 실제로 황제가 되었다 단지 2개월만에 역관광당해서 문제지..)
9. 서진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팔왕의 난은 291년에 시작되어 15년이 지난 306년에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직후 정말로 서진을 멸망시킨 영가의 난이 발생한다.
10. 흉노족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영가의 난 초기 이를 막기 위해 팔왕의 난 최후의 승자였던 동해왕 사마월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하며 방어전을 펼친다. 하지만 이미 황제의 명을 빙자해 스스로 승상이 되었고 여러가지 일로 인망을 잃고 있던 것 + 사마염이 통일 직후 군비를 축소하였기때문에 군대가 모이지 않았다. 허나 어찌저찌 사마월은 분전하여 침략을 막아냈는데....
당시 황제였던 회제 사마치가 사마월을 토벌하라는 밀조가 사마월에게 발각되어버리고 만다
이 상황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었던 사마월은 그만 분사해버리고 만다
서진의 마지막 권신이자 사실상 (순 억지같지만) 버팀목이 한순간에 죽어버리자 그대로 서진은 와해되어버린다
11. 사마월이 죽고 난 뒤 그가 갖고 있던 군사는 낙양을 지키던 왕연의 손에 넘어가는 데 왕연은 사마월을 안장한다는 명목으로 황제를 버리고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문제는 귀족과 백성 군사들을 모두 포함하여 약 10만여명이 왕연을 따라 같이 야반도주를 해버린것이다(..) 참고로 저 군사들은 말 그대로 낙양을 지키는 마지막 군사로 황제를 버리고 냅다 튄거다.
그렇다고 야반도주가 성공한 것도 아닌 게 결국 중간에 석륵에게 걸려 개박살이 나버렸고 이 10만은 몰살을 당한다 사마월의 아들과 왕연 역시 죽임을 당했으며 사마월의 시체는 불타오른다
12. 유연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유총에 의해 낙양은 함락되었고 회제 사마치는 포로가 된다 (그의 아들이자 태자는 이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다) 유총과 사마치는 과거에 안면이 있었던 사이로 유총은 사마치에게 첩을 내준 적이 있었다 즉 서로 꽤 알고 지냈던 사이(..) 그러나 이때에 가서는 그딴게 뭐임?이라는 상황이었으니 새해를 맞이한 행사자리에서 유총은 사마치에게 노예복장을 입히고 포도주를 관리들에게 접대하도록 시켜버린다. 결국 서진의 관리였던 자들이 이거에 감정이 복받쳐 울음을 터트렸고......
그 울음을 보고 열뻗친 유총이 그들을 모두 끔살시킨 뒤 얼마 안가 사마치를 끔살시켜버린다..아..
13. 팔왕의 난에서 정말로 간신히 살아남은 사마예는 신나게 남쪽으로 도망갔고 곧 서진이 멸망하자 중원의 호족 , 남쪽의 호족들과 연합하여 동진을 건국한다. 참고로 어이없는 건 중원에서 도망나온 놈들이 남쪽에 원래 자리잡고 있던 호족들을 촌놈들이라 무시하면서 권력을 독점했다(..)
14. 어쩃든 이렇게 간신히 살아남아 동진의 왕이 되고 곧 회제가 죽은 걸 알고 황제가 된 사마예는 황제라하기에도 뭐할정도로 권력이 없었고 왕씨의 도움이 아니면 왕조 자체를 지탱할 수가 없었다. 당장 즉위식때 자신을 도운 왕도에게 함께 용상에 올라가자고 말할 정도였다.
15. 어찌저찌 나라가 안정적으로 지탱되어갔지만 이상할정도로 황족들 특히나 똑똑한 황제들이 빠르게 죽어갔는데 실제로는 암살당했다는 말도 있다. 당장 이 나라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황제인 사마덕종이 가장 오랫동안 제위에 있었으며 똑똑했떤 임금들은 모두 20대에 요절했다. 이 와중에 황제인 사마요는 비수대전에서 승리를 하고 난 뒤에 총애하던 후궁에게 너도 인제 30대네 다 늙었네 크 하고 놀리다가 잠자는 동안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를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 후궁이 배개로 얼굴을 짓눌러서 숨을 못쉬게해서 죽었다
16. 전진의 부견이 동진에게 전쟁을 거니 이게 그 유명한 비수대전
동진은 말 그대로 대위기를 맞이하였으나 끝끝내 이를 막고 승리하게 된다. (이걸로 부견은 망했다)
그렇게 대위기를 극복한 동진 드디어 고토회복의 기회가 찾아왔으나..
승리가 결정되고 난 뒤에 안심하고 더더욱 막장짓을 일삼기 시작한다. 위에 배개로 얼굴이 짓눌려 숨 못쉬고 죽은 황제도 이때 승리하고 난 담에 후궁놀리다 죽은거다
17. 그렇게 시간이 지나 결국 환온의 아들 환현의 손에 의해 사실상 멸망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버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환현을 유유가 개박살내면서 진나라의 존속기간은 조금 더 연장되었지만 그뿐이었고 결국 얼마 안가 유유에 의해 진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그리고 얼마 안가 유유가 일으킨 대학살에 북쪽으로 도망간 소수를 제외한 진나라 황족 사마씨의 대부분이 요단강으로 직행해버리고 만다.
번외
18.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동진은 이렇게 멸망하고 막장도 끝인 줄 알았지만 현실은 드라마보다도 더하다고 유유에 의해 건국 된 송나라는 유유가 죽은 뒤 사치향락 근친상간을 더럽게 좋아하던 전폐제와 진성 싸이코패스 살인광 후폐제의 등장으로 광속으로 멸망한다. 물론 중간에 다른 황제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만만치 않은 막장이었다. 물론 전폐제와 후폐제는 그들을 제낄 정도로 더 심각한 막장이었고
여튼 이렇게 유송도 얼마 안가 멸망했는데 동진도 마찬가지고 유송도 마찬가지고 멸망한 왕조의 황족들은 살아남지 못하고 멸문당한다는 아주 좋지 못한 전통이 생겨난다
19.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유송은 이렇게 멸망하고 막장도 끝인 줄 알았지만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하다고(2) 유송을 멸망시킨 제나라 (남제) 역시 막장의 끝을 달렸고 여기도 전폐제와 후폐제가 등장한다(..) 사이코패스마냥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사람들을 쳐죽이고 다니던 이 몹쓸 왕조 역시 얼마 안가 멸망한다. 참고로 이렇게 막장의 끝을 달린 주제에 자신들의 시조를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소하에게서 찾았다. 조상님 얼굴에 울트라 그레이트 메가톤 빅똥칠을 한 놈들
20. 이 뒤를 이은 왕은 양나라 소연으로 그나마 이 미친 막장시대에 유일한 개념인이었다. 문제는 이 사람이 이 나라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사실.. 명군이긴 명군이었으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종교에 빠지기 시작했고 불교로 출가하겠다고 떠나버리면 신하들이 바리바리 돈을 싸들고 가 출가한 절에다가 돈을 내고 황제를 다시 데려오길 반복하는 등 또 다른 막장의 길이 시작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북쪽에서 망명해온 후경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나라는 완전히 절단되고 소연 역시 결국 끔살당한다
그리고 얼마 안가 이 반란을 진압한 진패선에 의해 선양이라 쓰고 찬탈이라 읽는 이 시대 특유의 방법대로 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21. 진나라 역시 사정은 좋지 못했는데 어찌저찌 양나라의 뒤를 이었으나 후경의 난으로 인해 나라는 작아질대로 작아졌고 결국 557년에 건국 된 나라는 589년에 멸망한다. 결국 30년만에 멸망하고 마는 건 이전 나라들이랑 별반 차이가 없는 것
마지막 황제였던 진숙보는 수나라가 쳐들어오는 와중에도 술을 마시며 풍악을 울려라! 하며 춤판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수나라에 의해 수도가 함락되자 부랴부랴 숨어 들어간 곳이 우물안이었다(..)
수나라의 군사들이 우물속에 있는 진숙보를 불러보았으나 진숙보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고 이에 수나라 군사들은 그럼 돌로 막지 뭐 하면서 돌로 우물의 입구를 막아버리려고 하자 그제서야 진숙보는 존귀하신 군사여러분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하고 빌어서 간신히 살아남는다(..)
그동안 망한 나라의 황족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지만 진숙보는 다행이(?) 죽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살아남았고 제명에 살다 죽었는 데 죽일 가치도 없었기때문으로 보인다..(..) 진숙보와 함꼐 나라를 말아먹었다고 평가받은 후궁들과 신하들 일부는 간신이라고 지목받고 모두 끔살당했는데 혼자만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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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위키에서 위진남북조 좍 훑어본적이 있었는데 진나라부터 수나라 건국까지는 정말 충공깽이었죠. 대체 어떻게 이러는데 나라가 돌아가나 싶은....
괜히 이 시기에 고구려가 북방의 패자놀이하고 백제가 산둥요서 진출한 게 아닙니다. 광개토-근초고 급 먼치킨 몇 명 더 나왔으면 중국을 먹었을지도 크크크
부견의 흥망이야기가 제일 흥미롭더군요. 부견이 성공했다면 중국 역사상 최초로 이민족을 수용하고, 차별을 두지 않고 요직에 기용하던 다문화융성 정책에 의해 동아시아의 역사가 바뀌었을거란 말이 있죠. 역사엔 만약이 없다지만 부견만 성공했다면 위진남북조 막장시대가 더 빨리 끝날 수도 있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저도 윗분들과 마찬가지로 수나라 문제는 수백년의 막장시대를 끝낸 먼치킨급 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과 도매급으로 묶이는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