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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9/27 20:15:02
Name 이치죠 호타루
Subject [일반] [1][우왕] 뽑고 봤더니만... - 19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호타루입니다.



앞선 1876년 선거 이야기에 해 주신 많은 분들의 추천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졸필에 많은 추천을 해 주셔서 거듭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벤트에 참가한 의의는 충분히 세운 것 같네요(...) 시간이 자주 나는 편은 아닙니다만 명절이고 일단 백수니 후속탄 하나 올려볼까 합니다. [우왕]이라는 말머리를 달까 말까 하다가, 공식적인 이벤트 기간의 시작과 끝을 해 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어서(뒤에 다른 글에서 우왕 말머리가 달리면 낭패겠습니다만 크크크크) 다시 한 번 달아봅니다.

이번 이야기는 1920년의 미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대공황 직전의 미국이죠. 보통 이 시기의 미국을 가리켜서 1차 대전 특수 호황이 이어지는 시기라고 해서 대공황 이전까지 미국이 엄청 잘 나갔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고 또 어느 정도는 실제로 그랬습니다만, 아이러니컬하게도 1차대전 직후의 이 시기의 대통령이 누구였느냐 하고 아무나 길 가는 미국인 잡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아마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우드로 윌슨을 제외하면 말이죠. 그 윌슨도 1920년이 되었을 때는 이미 대통령 집권 8년차였습니다. 이럴 만도 한 것이, 짐작하시겠지만 이 시기의 대통령, 1920년부터 1929년 대공황이 터질 때까지 재임하거나 재임 중이었던 세 대통령인 워렌 게메일리얼 하딩, 캘빈 쿨리지, 허버트 후버는 별로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기 때문이죠.

오늘은 이 중에서 가장 먼저 대통령이 된 워렌 하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전 글 링크 : 희대의 막장선거 - 187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배경 - 1920년의 미국

1920년의 미국은 이제 어느 모로 보나 강대국이었습니다.

하긴 뭐 이미 몇십 년도 전인 1852년의 제13대 대통령 밀라드 필모어 때에 페리 제독을 통해서 일본의 문을 강제로 열게 했습니다만(친서는 필모어가 썼습니다만 그 와중에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실제로 문이 열렸던 것은 14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피어스 때였습니다), 딱 거기까지. 그 시기에도 애초에 미국은 먼로 독트린을 고수하고 있었고, 뭐 좀 포크와 나이프 들고 땅을 잘라먹으려 들어가려는 찰나에 터졌던 것은 다들 아시겠지만 남북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거 복구하는 데 몇십 년이 걸렸죠(앞선 글에서 밝혔지만 남북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넘도록 남부에서는 아예 군인 통치가 시행되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근육 좀 붙었으니 어디 한 번 나가볼까 하고 힘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에스파냐와의 전쟁입니다. 메인 호의 폭발로 수병이 죽는 사태가 터지자(우리로 치면 천안함이 침몰한 것과 같은 수준의 사고입니다) 미국은 이를 에스파냐의 짓으로 규정하고, "메인 호를 기억하라! 에스파냐를 지옥으로! (Remember the Maine, to Hell with Spain!)"라는 구호와 함께 선전 포고를 하게 됩니다. 이게 1898년, 제25대 대통령인 윌리엄 매킨리 때의 일이죠. 이 결과로 미국은 쿠바의, 특히 사탕수수밭의 이권을 싹 가져가게 됩니다(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사탕수수밭의 이권을 싸그리 몰수하기 전까지).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은 덤. (단, 미국이 스페인의 부채를 대납하는 조건이 있기는 했습니다.)

"소풍과 같았던 전쟁"이 끝난 16년 후에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유럽에서 하루에만 수만 명이 죽어나가는 끔찍한 전투가 연일 이어지자 미국의 여론은 전쟁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왜 쟤들을 위해서 피를 흘려야 하나 싶었던 거죠. 그래서 당시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은 공약으로 "유럽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내세웠고, 1916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일명 치머만 전문이라고 해서... 이게 뒷 이야기가 엄청 재밌는데 이것까지 쓰면 안 그래도 긴 인트로가 너무 밑도끝도 없어지는 관계로 자세한 이야기는 루돌프 키펜한의 <암호의 세계> - 이게 아마 몇 년 전에 책 제목이 바뀌어서 나왔을 겁니다 - 또는 <코드 브레이커>라던지, 하여간 암호를 다루는 책들에게 맡기도록 하죠. 뒤에 쓸 기회가 있으면 쓰는 것도 괜찮겠네요. 아무튼 치머만 전문이 해독되었고, 그 내용은 "멕시코가 독일 편으로 참전하면 70년 전에 멕시코 전쟁으로 잃었던 텍사스를 미국에게서 빼앗아서 돌려주겠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별수없이 미국도 독일에게 선전 포고를 하게 됩니다.

뭐 이기기도 했고 참전 전에도 물자 수송 등으로 떼돈을 벌어들이던 미국이었거니와(멀리 갈 것 없이 한국 전쟁으로 다시 부활한 일본 떠올리시면 됩니다) 애초에 미국의 물량 자체가 독일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형님, 전쟁은 경제력이야!!!) 미국이 손쉽게 전쟁을 이기기는 했습...니다만, 그로 인해 흘린 피가 없을 수는 없었던 것이었고, 때문에 국내의 여론은 "야 우리가 쟤들 때문에 피 봤는데 또 외국 일에 간섭하면 또 어마어마한 피 보는 거 아니냐?"라는 의견이 비등했습니다. 남의 땅에서 또 피를 아무런 이득도 없이 흘리기는 싫었던 거죠(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41년 진주만 때까지 미적대고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도 이런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드로 윌슨은 교수 출신이라서 그런지 자신의 신념이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영국의 수상 로이드 조지가, 미영프에 이탈리아(이 때는 연합국으로 참전하고 있었습니다)의 수상 넷이 모인 평화 회담 자리에서 우드로 윌슨과 클레망소 프랑스 수상을 보고 "난 무슨 예수와 나폴레옹 사이에 있는 줄 알았다"는 말을 했을 정도였으니... 게다가 의회에서도 반대 의견을 내세웁니다. 실은 이건 윌슨의 정치적 실수였습니다. 역사적인 중요한 회담 자리에서 공화당파 사람들을 배제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해서... 어쨌거나 열 받은 윌슨은 전국을 돌면서 여론을 설득시키겠다고 나섰...다가 그만 과로로 반신불수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물론 이건 극비사항이었죠).

윌슨의 평가를 보면 업적이나 위기관리능력, 도덕성, 지도력 등에서는 최고 점수에 근접한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만 유일하게 딱 하나, 이놈의 정치력만큼은 잘 봐줘야 평균 이상 정도로 쳐 줍니다. 그만큼 자기 신념 혹은 고집이 센 인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내내 의회와 한판 붙어야 했었죠. 그 유명한 금주법(볼스테드법, Volstead Act으로 통합니다. 어마어마하게도 수정헌법 18조라는, 법 중에서는 높으신 분, 아니 높으신 법!)도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시하고 의회가 강제로 입법해 버린, 당시 다수를 차지했던(상원 49 : 47, 하원 240 : 192) 공화당의 작품입니다.

이런 상황인데다가, 하필이면 윌슨이 또 워낙 뛰어나긴 뛰어난 인물이라서 그런지 민주당에서는 윌슨의 뒤를 이을 만한 소위 "거물 정치인"이 등장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노무현 대통령 뒤에 누가 민주당의 대표를 하지? 이런 느낌 정도랄까요? 그래서 누가 봐도 다음 선거는 공화당이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선거였죠.



선거의 룰

이전 글에서 미국의 대선 시스템을 설명해 놓았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이전 글로 넘기고, 오늘 이야기할 룰은 별 거 없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대선에서는 가장 중요한 룰이 되고 말았지만.

무엇이냐 하면, 대통령 후보 선거는 미국 대통령 선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다 똑같아요. 그런데 대선이나 후보 선거나 중요한 게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배정된 선거인단의 절반을 얻지 못하면 다시 선거한다는 룰입니다.

예컨대 3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인단이 5백 명이 배정되었는데, 오밤아 후보가 200명, 맥훼인 후보가 200명, 룸니 후보가 100명의 선거인단을 얻어가게 되면, 누구도 과반의 선거인단(250명 이상)을 얻지 못했으므로 대선의 경우는 하원으로 넘어갑니다. 잡다한 후보는 싹 빼고 가장 선거인단을 많이 확보한 셋으로 후보를 압축한 후에 주 단위로(=한 주에 1표) 표결을 행사합니다. 그리고 그 승자가 대통령이 되죠. 정족수 2/3에 과반 주 이상의 지지로, 이런 식으로 하원에서 대통령이 선출된 케이스가 딱 두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제3대 대통령이었던 그 유명한 토머스 제퍼슨이었고, 나머지 한 번은 제6대 대통령인 존 퀸시 애덤스(미국의 국부 존 애덤스의 아들)였죠. 특히 애덤스의 경우, 원래는 선거인단 수에서 훗날 대통령이 되는 잭슨에게 밀린 2위였습니다만 대선 4위여서 탈락이 확정된 헨리 클레이와 합의해서(정확히 말하면 헨리 클레이의 밀어주기였습니다. 잭슨이 대통령이 되는 꼴을 보느니라는 마인드였죠) 잭슨과 크로포드(W. H. Crawford)을 13 : 7 : 4로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건 대선의 이야기고... 후보 선출의 경우는 그딴 거 없고 애초에 당에서 상원이니 하원이니 할 리도 없는 관계로 제대로 된 후보가 나타날 때까지 무한 재투표에 돌입합니다. 이게 완전히 나비효과를 불러온 것이죠.



대통령 후보가 되기까지

미국인에게 "워렌 하딩이 누군지 아십니까?" 하면, 백이면 한 95 정도는 "워렌 하딩? 걔가 누구야?"라는 말을 되물을 텐데, 문제는 이 양반, 그 대선 때도 그랬다는 겁니다(...) 배경에서 장황하게 이야기했습니다만 일단 이 선거는 공화당이 반쯤은 먹고 들어가는 선거였습니다. 어쨌거나 윌슨 입장에서는 고립주의라는 공약을 깬 셈이었던데다가, 영국을 도왔다는 이유로 뉴욕에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반감을 크게 샀기 때문이었죠. 정확히 하면, 민족자결주의를 외쳐놓고 우리 아일랜드는 쏙 빼 버렸네? 이런 느낌이었습니다만. 아일랜드에서 영국이 벌인 학정은 심각한 수준이었고, 여기에 감자역병으로 인한 대기근까지 겹치면서 50만 명이 굶어죽는 상황에서 이역만리 미국으로 떠나온 아일랜드계 미국인이었으니 영국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괜히 아일랜드가 입 다무는 방식으로 2차 대전 때에 히틀러 편을 든 게 아닙니다).

게다가 다들 아시다시피 뉴욕은 선거에서 치명적인 수준의 스윙 스테이트(경합주)... 이 뉴욕 주 하나 때문에 20대 대통령인 제임스 가필드가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고(부패한 공화당원 로스코 콩클링의 파벌이 바로 이 뉴욕 주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가필드는 이들과 타협하는 식으로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 결과 부통령 자리에 콩클링의 파벌이 들어가게 되죠), 클리블랜드는 투표수 9만 표를 더 얻고서도 여기서 깨지는 바람에 선거인단에서 밀려서 해리슨에게 대통령직을 내주게 됩니다. 이래저래 민주당 입장에서는 뉴욕 주를 내주고 시작하는 격이라 답이 없는 상황까지 몰리게 된 거죠.

그러니 이 참에 대통령이 되어 보겠다고 얼마나 많은 공화당의 거물들이 나섰겠습니까? 그들끼리 사이가 좋으리라는 보장도 물론 없고 말이죠. 그러니 이 대통령 후보 선거전은 그야말로 미니 대선 정도가 아니라 대선보다 더한 열기를 띌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기 쉽게 한국정치로 비유해 본다면, 사실관계 다 생략하고 순전히 가정으로만 이야기해 보면 이렇죠.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는데 그게 다 민주당 소속이고 전임자 전두환의 실정으로 다음 대선은 민주당의 승리가 매우 유력, 아니 거의 확실한 상황 정도랄까요? 그러니까 후보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는 셈, 뭐 그런 거죠.

근데 그러다 보니 치열한 선거전에서... 앞서 제가 이야기한 룰, 과반 득표 없으면 후보 선출은 쳇바퀴인 이 룰이 걸림돌이 안 될 수가 없었던 겁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담배연기 자욱한 방"(일명 Smoke-filled Room)은 좀 루머성이 강하긴 합니다만 그 정도로 지독한 선거였다는 거죠. 그럼 이 대체 얘가 누구야 싶은 워렌 하딩은 어떻게 대통령 후보가 되었느냐?

그건 순전히, 진짜 순전히 말해서 "얘가 제일 만만하고 반대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하니 얘를 내세우자"는 어마어마하게 어이없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니까 대충 이런 꼴이 된 거죠.

A : 내가 대선 후보가 되겠소.
B : 쑈하고 자빠졌네. 대선 후보는 내가 되어야지.
C : 야, 니가 대선 후보가 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딴 놈한테 표를 주겠다.
D : 모두들 입 다물고 나를 후보로 세울 준비나 하시지.
이하 생략(후보군이 좀 많았습니다)
하딩 : (침묵)

투표 결과 과반 없음, 재투표

A : 지치지도 않네, 독한 놈들.
B : 지치지도 않네, 질긴 놈들.
C : 지치지도 않네, 지독한 놈들.
D : 지치지도 않네, 끈질긴 놈들.
이하 생략
하딩 : (침묵)

재투표 x8

A : 야 이제 제발 집에 좀 가자 이놈들아!
B : 야이놈아 대선 후보는 내세우고 가야 할 거 아니냐!
C : 보아하니 우리들 손에서 대선주자 내보내기는 글렀다.
D : 야 그럼 차라리 한 놈 적당한 놈 내세우자고.
E : 하딩 어때?
F : 그 양반이 누군데?
G : 그 술에 술 탄듯 물에 물 탄듯 하던 그 친구?
H : 야 그 정도면 대충 합의 볼 수 있겠다. 아이고 지독해 자 합의 봤지? 나 갈란다잉!
하딩 : (뭐요!??????)

...뭐 물론 진짜로 백 프로 이랬다기보다는, 하딩의 정치적 후견인 정도였던 해리 도허티(Harry M. Daugherty)의 물밑 교섭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양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문자 그대로 정치적 협잡꾼이었는데, 협잡꾼 스킬 만렙을 발휘해서 물밑 교섭을 벌여서 "쟤가 대통령이 되어도 내가 한몫 차지할 수 있겠지" 정도의 느낌으로 지지를 얻어낸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대통령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어디 꽁으로 그냥 굴러떨어지는 자리면 이미 막장이죠. 아니, 하긴 이 양반들이 이렇게 했다는 시점에서 이미 막장 확정인 것도 같습니다만.

아, 참고로, 인물이 없다던 민주당의 경우는 한 술 더 떴습니다. 저쪽은 10회 투표(처음 한 번, 재투표 8번, 합의 끝에 마지막 한 번)의 결과로 대선주자를 내세웠는데, 민주당은 무려 44회의 투표를 거쳐서(...) 주자를 확정짓습니다. 참고로 이 때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 게 그 유명한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그 뉴 딜 정책의 FDR 맞습니다.



대선과 인사정책



이 양반이 하딩입니다. 제법 잘 생겼죠. 문제는 "잘 생기기만 했다는 것뿐이었다"는 것이었지만.

뭐 어쨌거나 거듭 말씀드렸듯이 공화당의 승리는 거의 예견된 일이었고, 여기서 하딩은 "정상으로의 복귀"(Return to Normalcy)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손쉽게 당선됩니다. 농담조로 이야기하기를, 이 대선 직전에 수정헌법 19조로 여성에 대한 선거권을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는데, 그렇게 표를 얻은 여성들이 얼굴만 보고 하딩에게 표를 던진 거 아니냐(...) 그런 농담도 돌았죠. 요즘 이딴 정신나간 소리를 했다가는 매장당하기 딱 좋습니다만.

여하간에 이 선거는 1820년 제임스 먼로 이래로, 그러니까 미국 역사에 "정당"이라는 것이 제대로 등장한 이후부터 기록된 대통령 선거 중에서, 2위와의 퍼센트 격차가 가장 큰 선거로 기록됩니다. 굳이 이렇게 장황하게 조건을 늘어놓는 이유는 잠시 후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미국 역사상의 정당 이야기를 잠시 해야겠네요.

우리 나라도 거의 양당 체제가 공고해졌습니다만, 미국 역사에서 양당 체제가 공고하게 된 건 꽤 오래 된 일입니다. 그러나 당명 혹은 당이 추진하는 노선은 수시로 바뀌었죠. 그리고 재미있게도 정당이 없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때와,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제임스 먼로의 Era of Good Feelings, 일명 화합의 시대가 바로 그것이었죠. 제임스 먼로는 다섯번째 대통령이었구요.

처음에는 연방 정부의 권한을 중시하는 연방주의파와 각 주의 권리를 중시하는 공화파로 나뉘었습니다. 전자의 수장이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A. Hamilton)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해밀터니안(Hamiltonian)이라고도 하고, 후자의 대표가 바로 토마스 제퍼슨이었기 때문에 공화파를 가리켜서 제퍼스니안(Jeffersonian)이라고도 하죠. 재미있게도 두 사람 모두 미국 달러 지폐에서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해밀턴은 10달러, 제퍼슨은 2달러). 그리고 여러 가지 사건(특히 위스키 반란 진압 등)으로 연방정부의 권위가 공고해지자 자연스럽게 해밀터니안의 세력은 위축됩니다. 바로 이 때가 미국 역사상 정당이 없던 시기였습니다. 그게 제5대 대통령이었고, 그래서 1820년의 선거는 "거의" 만장일치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딱 한 표,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뒤이어 대통령이 되는 존 퀸시 애덤스에게 투표했기 때문에 만장일치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어쩌면 만장일치라는 영예는 초대 국부인 조지 워싱턴에게만 허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선거에서 존 퀸시 애덤스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앞서 이야기했던 헨리 클레이의 밀어주기로 인해 많은 표를 득표해 놓고도 - 일반인 득표에서 무려 10% 넘게 앞서 있었습니다 -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게 된 앤드류 잭슨과 엄청난 갈등이 벌어지게 되고, 여기서 정당정치가 다시 시작됩니다.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잭슨은 이 때부터 칼을 득득 갈고 아예 존 퀸시 애덤스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부터 선거운동을 벌였죠. 여하간 이렇게 굳어진 잭슨파의 정당이 민주당이고, 뒤이어서 이들에 반대한 세력들이 결집하게 되는데 이게 휘그당입니다. 그리고 남북전쟁기까지 민주당과 휘그당 양당체제로 이어지죠.

휘그당 내부의 노선갈등이 격화되면서 휘그당은 자연히 소멸하고 이 때 대두된 게 공화당인데, 공교롭게도 이 다음 대선(16대)에서 민주당도 분열해서 남부 민주당과 북부 민주당으로 나뉘고 남부 민주당은 그대로 떨어져나갔다가 곧 소멸합니다. 이 떨어져나간 남부 민주당이 바로 남북 전쟁의 미국 맹방이죠. 그 이후는 제가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대로입니다.

하여간 1820년의 제임스 먼로 이후로 대통령 선거에서 정당끼리 부딪히지 않은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그런 수많은 선거들 중에서 가장 큰 승리를 꼽기를, 어떤 사람은 선거인단 수의 차이를 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선거인단 비율의 차이를 들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단순 득표율만 따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유효 득표수의 차이를 들기도 하는 등 제각각입니다. 문제는 미국사를 다루는 대부분의 책들이 이 사실을 싸그리 뭉개고 표 차이가 큰 선거마다 "가장 큰 격차로 승리했다"고 서술해 버리는 데 있죠(...) 그래서 어떤 면에서 가장 큰 차이였는가를 반드시 명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오면, 하딩과 콕스의 선거전은, 유권자 투표 중 2위와의 퍼센트 격차가 가장 큰 선거로 기록되었습니다. 유의할 것이 있다면, "하딩은 미국 대통령 역사상 가장 많은 비율의 일반인 득표를 기록했다"라고 하면 틀리다는 것이죠. 가장 많은 비율의 일반인 득표를 기록한 선거는 1964년의 린든 베인스 존슨(L. B. Johnson)입니다. 다소 의아하시겠지만, 아무리 양당 체제가 굳혀졌다고 해도 제3자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하딩과 콕스의 선거전은 마치 60 : 15 : 10 : 10 : 5 뭐 이런 꼴이 되어서 2위와의 격차가 45%로 가장 크게 된 것이고, 존슨의 선거는 70 : 30으로 2위와의 격차는 40%로 적지만 득표율은 더 높은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실제 하딩의 득표율은 60.32%입니다.

아무튼 여기까진 좋았습니다.



그냥 유권자를 달래고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정도의 소리만 하면서 비전이니 앞길 제시니 이런 건 하나도 하지 않고, 상대 후보는 철저하게 무시한 채 그저 전임자가 될 현직 대통령과의 싸움을 유도해낸(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닙니까?) 공화당의 새로운 하딩 대통령은, 그래도 나름대로 제대로 해 보겠다고 제법 유능한, 아니 최고로 유능한 사람들을 자기 자리에 끌어들였습니다. 훗날 대통령이 되는 허버트 후버는 상무장관에, 전임 대통령이었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쓰라-태프트 밀약의 그 태프트 맞습니다)는 대법원장에 등등. 근데, 이 과정에서 하딩이 정말 큰 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자신의 무능한 친구들을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것입니다.

내무장관 앨버트 폴 - 하딩의 친구. 하딩 사후 해군의 석유 저장소를 막대한 뇌물을 받고 석유회사에 팔아넘긴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재향군인회 회장 찰스 포브스 - 역시 하딩의 친구. 잉여 의약품의 일부를 횡령해서 정부의 돈을 가로챘으며, 재향군인을 위한 병원부지 및 자금 역시 횡령한 혐의로 약 2년간 2억 달러 이상을 횡령합니다. 현재 돈으로 치면 무려 25억 달러 가량. 에, 그러니까 3조 원 가량이네요.
법무장관 해리 도허티 - 앞서 이야기했지만 그저 협잡꾼 수준에 지나지 않는 이 인간을 법무부의 장관으로 임명한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법무부가 아예 매춘부(Ministry of Easy Virtue)로 통했을 정도니 말 다 했죠. 돈을 받고 무죄방면하는 일이나 범죄자를 사면하고 가석방하는 일 등의 혐의가 있습니다.
제스 스미스 - 도허티의 조언자. 앞선 사람들을 다 포함해서 소위 오하이오 갱(Ohio Gang)이라 부르는데 이 인간도 막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공직을 파는 일도 심각한데 정부창고에 증서가 붙은 술을 빼돌리는 일도 해 온 인간. 다시 말하는데 이 시기는 금주법이 수정헌법으로 입안되었던 시기입니다.
토머스 밀러 - 역시 하딩의 친구. 외국의 재산관리를 맡았다 했으니 다들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짐작하시리라 봅니다.

그렇다고 뭐 하딩은 깨끗했냐, 잘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1. 백악관에서 일 주일에 두 번씩 포커판을 벌이면서 몰래 주류를 즐겼습니다. 그렇다고 이 인간이 금주법에 반대했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상원의원, 군 지휘부, 자본가, 하딩의 친구들과 함께했는데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는 대충 짐작하시겠지요.
2. 불륜관계를 맺고 심지어 사생아로 딸까지 낳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낸 브리턴(Nan Britton)이라는 인물이 바로 이 인물입니다.
3. 그런 주제에 다음과 같은 어록으로 사람들을 벙찌게 했죠.

"I don't know what to do or where to turn in this taxation matter. Somewhere there must be a book that tells all about it, where I could go to straighten it out in my mind. But I don't know where the book is, and maybe I couldn't read it if I found it."
번역 - 난 이 세금 문제로 뭘 하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뭐 관련된 책이 어딘가에 있긴 하겠지. 근데 난 그 책이 어딨는지도 모르고, 설령 찾는다고 해도 읽지도 못할 것 같구만.

이것도 충분히 골때리는데...

"It is my conviction that the fundamental trouble with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is that they have gotten too far away from Almighty God."
직역 - 솔직히 말해서, 미국 사람들의 최악의 문제는 전능한 신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여.
아마 향간에 떠도는 그가 했다는 말인 "나는 대통령직에 적합한 인재도 아니고 그 자리를 맡지도 말았어야 했어"라는 말이 바로 이 말이 아닐까 싶네요. 그게 아니라서 직접적으로 해석을 한다 쳐도 이 말을 한 당사자가 그 전능한 신에게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사람이었다는 건 또 엄청난 아이러니죠. 성경에 누가 삥땅을 치라 했습니까? 누가 나라를 이끄는 자리에서 포커 파티나 벌이면서 국민 몰래 밀주를 즐기라고 썼습니까? 누가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와 불륜관계를 맺으라 했습니까? 게다가, 다시 말하는데 이게 한 나라를 대표하고 이끄는 대통령이라는 사람 입에서 쏟아진 말입니다(...)

그 외에 두 개 더 소개합니다.

"Our most dangerous tendency is to expect too much of government, and at the same time do for it too little."
직역 - 제일 위험한 경향이 정부에게는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이라니까.
번역 - 정부에게만 기댈 생각 말고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력을 해야지 이것들아.

"I don't know much about Americanism, but it's a damn good word with which to carry an election."
번역 - 미국주의라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거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그건 X랄맞게 좋은 말이지라.



이후

이러니 나라 꼴이 잘 돌아갈 리가 있겠습니까? 먼나라 이웃나라 대통령편에서 이원복 교수가 그려놓았듯이 깽판 안 친 게 천만다행이었습니...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치적으로는 부패의 극을 달리고 횡령이 횡행했으니 깽판을 쳤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두 번 다시 회생하지 못할 암흑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은 게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이건 후임자를 그나마 좀 잘 만난 덕이 있어요. 덧붙이면 워렌 하딩 이 양반이 일찍 죽은 탓도 있고... 앞서 말했던 스캔들은 워렌 하딩 대통령 임기 3년차에 밝혀졌고, 백악관의 포커 파티는 거기서 끝장납니다. 워렌 하딩 본인도 문제가 컸지만 배신당한 느낌이 더 컸겠죠. 여하간에 이 양반은 이 일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고, 결국 이게 휴가를 가는 중에 급성 폐렴으로 번진 한 원인이 되어서 임기 중에 사망한 여섯 번째 대통령이 되고 맙니다.

딴 소리지만 향간에 테쿰세의 저주라고 떠돌던 게 있었는데요, 1812년이었나, 하여간 그때 티피커누 전투에서 패해 목숨을 잃은 추장 테쿰세가 "0년으로 끝나는 해에 대통령에 당선된 미국 대통령은 모두 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것이다"라고 저주를 했다는 (근거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첫 빠따(?)로 걸린 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전투로 유명해져서 훗날 대통령이 되었던 윌리엄 헨리 해리슨(W. H. Harrison) 대통령(제9대)이었던지라 뜬소문의 효과가 배가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해리슨(병사), 링컨(암살), 가필드(암살), 매킨리(암살)에 이어 하딩(병사)이 뒤를 이었고 이 뒤에도 프랭클린 루스벨트(병사)와 케네디(암살)이 뒤를 잇게 되죠. 이 저주는 로널드 레이건이 암살미수로 끝나고 살아나면서 약해졌고(이 때 로널드 레이건의 말이 대박이었습니다. 의사들에게 하는 말이 "당신들이 훌륭한 공화당원임을 나에게 증명해 주시오"라는 말이었으니까요), 조지 부시가 무탈로... 아니 신발은 얻어맞았던가요? 하여간 (나라를 조지고 부신 감이 없잖아 있기는 해도) 그렇게 끝났습니다. 한 사람이 빠진 것을 눈치채셨을 텐데, 왜 다섯 번째 저주의 희생자면서 여섯 번째로 죽었냐 하면, 1852년에 당선된 군인 출신 대통령, Old rough and Ready로 통하는 재커리 테일러가 건국기념일에 상한 체리를 과식한 탓에 식중독으로 임기 1년 반만에 세상을 떴거든요.

아무튼간에 하딩의 스캔들은 미국 대통령직에 대한 믿음을 뿌리째 뒤흔들어버리는 엄청난 스캔들이었습니다. 게다가 하딩의 세 친구 중 하나인, 앞서 언급했던 찰스 포브스는 하딩이 직접 유럽으로 보냈는데도 "대통령이 내 친구이고 얘가 날 잡아가둘 리가 없는데 니들이 날 어쩔 것이여" 운운하면서 배짱 좋게 들어옵니다. 그러다가 하딩이 급사하고 후임자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하생략.

이 어마어마한 스캔들과 개인적인 추문들로 인해서 워렌 하딩은 대통령의 업적을 따지는 많은 조사에서 최하위 순위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정치력이 좋은 평가를 받는데 그건 그 개인의 기량이 뛰어난 탓이 아니라 순전히 그놈의 선거 격차가 어마무지하게 큰 탓일 뿐입니다(...)



이게 당시 대선 결과입니다. 얼마나 큰 격차인지 느껴지십니까? 빨간색이 공화당, 파란색이 민주당입니다.

이렇게 큰 격차로 뽑아놓고 봤더니 개인은 물론 그 친구까지 모조리 부패했고 이들이 한 나라를 이끌어갔다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크나큰 손실이요 비극이었습니다. 그나마 후임자인 캘빈 쿨리지가 이 부도덕하고 타락한 사람들을 싹 잡아가두고 유능한 사람을 중용하면서 개인적인 도덕성을 바탕으로 하여 그나마 대통령직의 체면을 다시 살리는 데는 성공하죠. 어디서 많이 본 장면 - 바로 저번 글의 대상이었던 율리시스 그랜트와 러더퍼드 헤이스 - 아닙니까? 역사는 이런 면에서도 묘하게 반복되었던 거죠. 뭐, 쿨리지 이 양반은 대공황을 불러온 원인 제공자로 지목되는 터라서 이 양반도 대통령 평가 순위에서는 역시 하위권에 위치한 사람이긴 합니다.

그리고 저번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때도 민주당이 지리멸렬했던 건 변함이 없어서(...) 캘빈 쿨리지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어서 당선된 게 허버트 후버로 또 공화당입니다. 묘한 이야기죠. 김무성이는 잘할거여라는 말이 향간에 도는 걸로 아는데 그런 걸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상세한 제 의견은 이전 글에서 밝힌 바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줄이도록 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통령 선거가 아니었나, 그렇게 평하고 싶습니다.



총평

시작부터 첫 단추를 잘못 꿰고서 가난한 빈민국, 부패한 정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나라들과는 달리, 존경할 만한 국부를 연이어서 다섯 명이나(조지 워싱턴,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제임스 먼로) 수장으로 두었던 미국은 분명히 시작부터 축복받은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는,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항상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 부패가 판치고 사람들은 무기력했으며 갱들과 조직폭력배가 나라를 쥐락펴락하고 그들을 토벌해야 할 칼은 권력을 쥔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 대체 어떻게 이 난제를 해결해야 할지 알 수도 없는 채 그저 하늘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초인이 나타나기만을 목놓아 기다릴 수밖에 없던 때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미국의 이 시기는 바로 그런 시기였습니다.



이건 1852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을 두고 그 유명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평가를 내린 것인데, 피어스와 하딩을 바꿔서 읽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는 것이 매우 신기합니다.

"그는 백악관에 전시되어 있는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 중 최고로 세련된 사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의 그는 미인대회에 승리할 때 필요한 요소와 같은, 바로 그런 재능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완전한 실수의 전형이다. 피어스는 국정에서 무엇이 진행 중인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끝으로 역시 이 글을 쓰는데 많은 참고가 된,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에서의, 매섭기까지 한 하딩의 평가입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평가죠. 이건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단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당대에 발생하는 국내외의 큰 사건과 문제들에 정통하고 그에 대해 고도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하딩은 주로 포커게임, 밀조된 버번 위스키, 말 잘 듣는 여자에게만 관심을 집중했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작은 마을 출신의 정치가였으며, 또한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일 속에서 허우적거린 불쌍한 인간이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론조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순종하는 바보, 무능하고, 부적절하며, 타락하고, 부도덕한 사람"으로 평했다.



참고문헌은 이전 글과 같으므로 따로 기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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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저그
15/09/27 20:21
수정 아이콘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압도적 지지율 대통령께서는... 아.. 아닙니다..
이치죠 호타루
15/09/27 20:34
수정 아이콘
역사는 반... 판사님 저는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15/09/27 20:46
수정 아이콘
검사님 우리집 고양이는 이 글을 보고 뭔가를 떠올렸지만 적지 아니하였습니다.
존 맥러플린
15/09/27 21:11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는 30년 전 일본이자 90년 전 미국인가봅니다
이치죠 호타루
15/09/27 21:28
수정 아이콘
언젠가 다른 곳에서 또 비슷한 역사가 반복될 겁니다.
눈뜬세르피코
15/09/27 21:20
수정 아이콘
[추천] 말하자면 이명박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많은 득표를 하진 못했고, 박근혜는 신승을 거뒀지만 어마어마한 표를 거둬들인 것과 같군요.
이치죠 호타루
15/09/27 21:30
수정 아이콘
네. 정확하십니다. 보통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사람들을 보면 뭔가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있다던지 등의 특징이 드러나는데, 역사를 읽다 보면 묘하게도 "뭐 이딴 놈이 어떻게 대통령이 된 거지?" 할 때가 종종 있는데 하딩이 딱 그 케이스죠. 이게 미국의 희극이자 비극이었구요.
신의와배신
15/09/27 21:29
수정 아이콘
최근의 다큐멘타리에 의하면 우드로 윌슨의 갑작스런 퇴장은 스페인 독감이 원인이었다고 하더군요. (제1차대전 당시 미군의 사망의 제1원인은 스페인 독감이었는데 대전으로 인한 의료 시스템 붕괴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반전 분위기를 꺼려한 연합군 측은 독감을 다루는 기사를 철저히 검렬했다고 합니다. 유일한 기사 검열의 예외가 스페인이었고 가장 피해가 적엇던 스페인이 이 독감의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죠)

하딩 이양반 아주 친근합니다. 기사에서 많이 본 분만 같아요
이치죠 호타루
15/09/27 21:33
수정 아이콘
오호,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찾이볼 만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야구 팬이시라면 친근하실 법도 한 게 베이브 루스와 같이 찍은 사진이 유명하고, 또 전설적인 암벽등반가가 공교롭게도 미들네임 빼고 이름이 같죠.
15/09/27 21:52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봤습니다~
그런데 '국부'라는 표현은 크게 와닿지 않네요.
이치죠 호타루
15/09/27 22:14
수정 아이콘
다섯 명의 대통령들은 정치에서 활동하면서 신생 독립 국가였던 미국의 성립에 크게 기여한 바 있죠. 개개인의 평가는 서로 엇갈리고 또 존 애덤스나 제임스 먼로의 경우는 평가상 상위권이긴 해도 최상위권에 위치한 여타 대통령들에 비해 특출난 점이 있느냐 하는 논란도 많습니다만, 군사, 법률, 외교 등에서 이들의 수완과 노력이 없었다면 아무리 유럽으로부터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해도 신생 국가가 딱 틀을 잡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라 보기에 첫 다섯 대통령에게 국부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아깝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강대국" 미국이라는 신화는 이들 없이는 밑그림을 그리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15/09/28 03:46
수정 아이콘
저분들의 업적이 부족하다기보단 꼭 국부라는 표현을 사용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요. 아무튼 재밌게 읽고 추천 드렸습니다.
15/09/28 05:48
수정 아이콘
영어로도 초창기 대통령 및 영국에서 독립했을때 독립선언을 사인한 사람들을 보고 "Founding Fathers" 라고 합니다.
없는 표현이 아니에요.
15/09/28 14:41
수정 아이콘
이게 또 기원전부터 사용된 유서깊은 말이라...
Sydney_Coleman
15/09/27 23:25
수정 아이콘
[추천]
저런 인간들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대동소이하군요.
내뱉는 말들이나 그 인물에 대한 평이 어쩜 이리 흡사할 수가 있는지...
Sviatoslav
15/09/28 12:13
수정 아이콘
판사님 우리집 고양이는 이 댓글이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Sydney_Coleman
15/09/28 13:12
수정 아이콘
저... 저는 이명박이라거나 박근혜라거나 하는 한국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8년새 헤븐조선을 여기까지 캐리해주신 수장들에 그 누가 감히 불측한 생각을 품을 수 있을까요? '동양' 언급은 어... 음.. 탁신 치나왓이라던가 박정..아 아닙니다. 이놈의 고양이! 저리 가 있어!
아무튼 댁의 피아노 잘 칠 것 같은 고양이가 뭔가 오해했나 보네요. 하하하하하하 (덜덜덜)
15/09/28 00:46
수정 아이콘
캘리포니아 선거인단수가 13명밖에 안 되다니...
몽키.D.루피
15/09/28 09:13
수정 아이콘
[추천] 미드 보드워크 엠파이어가 시작되는 배경이네요. 도허티라는 이름도 많이 들었는데 막상 볼때는 누군지 잘몰랐습니다. 이글을 보니까 왜그렇게 갱들이 판치는 막장시대였는지 알수 있을 거 같네요.
15/09/28 11:08
수정 아이콘
[추천] 역사는 정말 되풀이되는게 신기하네요.. 사람사는세상 크게 다르지 않죠 크크
15/09/28 12:41
수정 아이콘
[추천] 이벤트는 끝났지만.. 제 추천을 제발 가져가주세요... ㅠㅠ
저 당시의 미국 상황에 대해서 알고 싶었는데, 이렇게 알기 쉽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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