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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9/26 12:38:03
Name 라방백
File #1 luo.jpg (9.5 KB), Download : 56
Subject [일반] 맨몸으로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기를 거부한 남자



라방백(羅芳伯, Luo Fangbo) 의 이야기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은 많은 부분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은 사료들 (대부분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에 의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분은 제 개인적인 각색이 들어가 있습니다.
실제로 사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그러려니 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맨몸으로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기를 거부한 남자라는 이 거창한 호칭의 주인공은 바로 제 닉네임의 주인공 라방백입니다.
라방백이라는 이름을 처음 발견한 것은 2002년 겨울입니다. 한참 대선으로 시끌벅적하던 시기에 저와 제 친구들은
북두의 권으로 유명한 부론손 아니 하라 테츠오의 만화를 하나 접하게 됩니다.
그 만화는 난폭한 류세이 (국내판 제목 : 맹룡성) 라는 제목의 만화였는데 별로 인기가 없어서
3권만에 끝나버린 안타까운 작품이었지만 그 만화에서 이 라방백이라는 남자의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맨몸으로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기를 거부한 남자' 라는 호칭은 그 만화의 주연 중 하나가 라방백을 설명하면서 붙인 표현이죠
많은 판타지 소설등에서 이런 입지전적인 인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만 이 사람은 실존인물이었고 그 시기는 18세기 말이었습니다.
18세기에 한사람의 힘으로 나라를 세운다는게 가능한가? 이 호기심이 라방백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었죠.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20세기 초반 중국의 라향림(羅香林)이라는 학자의 연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라향림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라방백과 같은 하카족(객가)의 사람이었는데
하카언어와 문화에 대한 가장 유명한 연구자로 알려져 있으며
하카족 고유의 역사와 언어뿐 아니라 하카족의 뿌리가 북쪽지방의 한족의 일부였다는 연구나
동남아시아 각지로 뻗어나간 하카족에 대한 연구 등을 했던 사람입니다.
라향림은 1961년 라방백과 그가 세운 공화국에 대한 책을 쓰게 되는데 이때 라방백의 이름이 처음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국내에서는 거의 관심이 없는 분야였는데 몇년 후 신기하게도 환빠쪽 연구자들이 어떻게 이걸 또 발굴해서
한국과 엮어보려는 노력이 좀 있었던것 같더군요. 대단한 사람들이랄까....
인도네시아의 하카족 연구자들에 의해서 라방백에 대한 전기도 최근에 출판된 모양이나 구할 방법은 없으니....

라방백은, 중국 광동가응주(현재의 광동성 매현) 태생의 하카인으로 청나라 건륭황제 3년에 태어났습니다.
일찍이 결혼하여 항만 노동자로 일했고 슬하에는 자식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삶이 평탄하지는 않았는지 1772년, 34세의 라방백은 100 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나무로 깎은 배를 타고
당시 골드러쉬로 유명하던 보르네오섬 = 칼리만탄 지방으로 도항을 시도합니다.
그는 가족들을 두고 홀로 떠났는데 이는 하카족의 관습상 여행을 갈때 가족을 데려가지 않는 다는 말도 있고
당시 생활이 너무 힘들었을 수도 혹은 범죄자의 신분이라 그랬을 수도 있겠군요

한강을 따라서 바다에 도착한 일행은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여 베트남을 지나서 마침내 칼리만탄 지방에 도착하게 됩니다.
당시 칼리만탄 지방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점령당하여 동인도회사가 칼리만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한편
금광의 발견이후 많은 자바인들과 부기스인들이 해안지방으로 이동하여 정착하였고
해안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각각의 지역은 지역 술탄들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술탄의 힘은 아직 내륙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는데 내륙에는 다야크족을 비롯한 산적무리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으로
산에는 산적이 바다에는 동인도회사의 해적이 그외에도 각지에서 몰려온 갱들이 많아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술탄들은 중국과의 상업을 위해서 혹은 토지 개척을 위해 일꾼으로 중국인들을 데려오거나 토지 임대제도를 실시 했었고
이에 따라 많은 중국인들이 이주하여 1770년 경에는 이미 만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칼리만탄에서 생활하고 있었던것으로 추정됩니다.
라방백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화교의 학원에서 교사를 했으나
이후 바다를 건너온 중국인들과 지역주민들을 모아서 카프아스강 상류의 만도르에서 금광을 열어, 자본과 세력을 저축하게 됩니다.

중국인들은 송나라 시기부터 혈연이나 출신지역을 통해서 '공사'(公司 Kongsi federations) 라는 형태의 자체 조직을 구성했는데
이는 정치적, 경제적 협력 조직으로 현재의 갱이나 비밀결사같은 그룹에서 부터 자치정부에 이르는 규모에 이르기까지
그 성격과 규모는 다양했던 모양입니다.
이 공사들 중에 가장 유명한 세력들이 바로 이 시기 칼리만탄 지방에 생겨났던 공사들로 10~15개에 이르는 공사들이 생겨났는데
이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칼리만탄 지방 정복을 위해 이 공사들과 '공사 전쟁'이라는 전쟁을 했고
이때 동인도 회사의 연구가들이 이러한 정치체계를 연구하면서 알려지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라방백도 1777년에, 자세력의 이익 확보와 상호부조를 위해 란방공사(蘭芳公司)를 창설했습니다.
초기의 란방공사는 금광에서 나는 이익을 분배하고 실업수당등을 제공하는 일종의 무역/금융회사의 형태였으며
공사 내의 자기 세력 보호를 위해 자체적인 군사력도 가지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라방백은 란방공사의 시스템을 정비하는데 그의 대단한 능력이 여기서 빛을 발하게 됩니다.

라방백은 처음 란방공사를 설립하고 조직할때 국가의 역할을 할 수 있을만큼 그 시스템을 정비했는데
회사의 지도자를 투표에 의해서 뽑는다는 초기 민주주의 형태를 갖추었으며 (본인도 투표를 통해서 선출된 지도자 였습니다)
통치하고 있는 지역을 3등급으로 나누어 분할해서 각각의 장 역시 투표를 통해 선출하도록 하였고
행정제도와 사법제도를 정비하고, 학교를 만들어서 교육을 시키고, 농업기술 향상을 위해 농민들을 선도하고
일종의 상비군 제도를 실시하여 노동자, 농민, 회사원들이 군인 역할을 같이 수행하는 조직을 만들고 각종 요새를 짓고
조병창을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총기와 화기를 제작하여 보급하였으며
새로운 광산 개발 및 자신의 지역내 도로등을 정비하고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였는데
특히 청나라와는 무역은 물론 외교적으로 접촉하여 공물을 제공하는 대신 청나라의 보호를 받고자 하였습니다.

란방공사는 다야크족의 반란이나 인근 멤파와 지방의 술탄과의 항쟁에 고민하고 있던 폰티아낙의 술탄 압둘 라만의 요청을 받아
멤파와 술탄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이후 다야크족과 연합하여 침공한 멤파와 술탄을 다시금 공격하여 승리하고
칼리만탄의 거의 북쪽끝까지 점령을 해버립니다.
이에 폰티아낙의 술탄은 점령한 광대한 토지를 란방공사에 주었고 그 토지에서는
란방공사가 술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완전한 자치를 했다고 합니다.
이에 란방공사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중국인들과 지역민들이 모여들었고 
계속해서 성장한 란방공사는 1794년 란방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국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죠. 
란방공화국의 전성기에는 칼리만탄 (보루네오섬) 거의 전체를 지배하였고 인구는 천만명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 나라는 계속되는 네덜란드의 침공 끝에 1884년 네덜란드에 합병됩니다.
란방공화국이 청나라와 우호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네덜란드가 청나라의 눈치를 보느라 바로 합병하지 않고
청나라가 망한 후에야 정식으로 네덜란드에 편입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인도네시아가 독립할때 인도네시아의 일부가 됩니다.
란방공화국이 망할 당시 하카족들은 일부는 수마트라섬으로 일부는 말레이반도쪽으로 피난을 갔는데
이때 말레이 반도로 이동한 하카족들은 나중에 싱가폴을 세우는데 참여하게 됩니다.

주인공인 라방백은 1794년 란방공사가 공화국으로 바뀌고 그 다음해인 1795년 세상을 떠납니다.

단기간에 걸친 이 놀라운 업적은 사실 다소 부풀려진 감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라방백의 그 개인에 대한 매력 뿐 아니라 중국인 출신이라는 점에서의 중국의 포장,  각종 민간 설화들의 허구성
(강에서 공사를 할때 라방백이 신통력으로 악어들을 내쫓았다 뭐 이런 내용도 있다고 하니..) 이 혼재하는 측면이 없지는 않으나
라방백이 난방공사의 국가로서의 토대를 세운 중심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어보입니다.
거의 혼자서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는 점에서 소하와 견줄만한 인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일설에는 란방공사가 국가로 바뀔때 주변사람들이 모두 왕이 되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라방백은 거절하였으며 그가 바로 국가 시스템을 정비할 때 군주주의를 거부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이정도면 맨몸으로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기를 거부한 남자라는 설명이 틀린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미국이 1776년 독립선언을 했고 1789년 조지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기에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공화국이나 대통령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후세의 학자들이 평가하기를 민중으로부터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없었고 지도자는 하카족에서만 선출가능했던 것을 비롯해
국가의 일부 시스템이 진정한 의미의 공화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더 연구를 해봐야 한다는 평가를 받는 난방공화국입니다만
10년도 차이가 나지않는 비슷한 시기에 지구 반대편에서 비슷한 정치 체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랍고
그러한 국가를 건설한 라방백이란 인물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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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15/09/26 14:33
수정 아이콘
객가의 왕인가요
눈뜬세르피코
15/09/26 14:58
수정 아이콘
'폴라리스 랩소디'에 나오는 바스톨 엔도 장군이 떠오르는 제목이네요. 라방백이란 사람의 일생도 어찌 보면 비슷한 것 같고...(공화국이라니!)
마우스질럿
15/09/27 05:33
수정 아이콘
홍길동이 율도국을 성공시키고 그의 기록이 남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비르지타폰슈베덴
15/09/27 10:19
수정 아이콘
우왕 이런사람도 있었다니 그나저나 인생자체가 참 매력적이네요 서양사에 존재했다면 바로 영화화될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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