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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8/18 16:39:09
Name 스타슈터
Subject [일반] 그래도, 다시 사랑할수 있습니다
[틈날때마다 필기 형태로 썼던 글이라 평어체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마음의 문은 생각보다 쉽게 닫힌다.

2007년 여름, 나는 첫사랑에게 거절당했다.
그리고 1년쯤 지난 2008년 여름, 나는 같은 사람에게 다시 한번 거절당했다. 그리고 또 5년쯤 지난 2013년 여름, 나는 비로소 포기하기로 결정할수 있었다. 이미 다른 애인이 생긴 그녀를 나는 더이상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6년이라는 시간을 나는 한 여자의 그늘 밑에서 살아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모든 호감과 관심을 단 한사람에게만 쏟아주는 것이 익숙했던 나는, 무의식 중에 모든 관심과 노력은 결국 헛수고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혹자는 내가 집착이 심하다고도 했고, 깔끔하게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위해 조금의 변명을 해보자면, 난 그 첫사랑을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지독한 악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어디를 가나 항상 연의 끈이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았다. 제발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던 사람이였지만, 내가 참여하는 모든 활동들, 나와 친하게 지내는 모든 친구들, 어디 한군데에도 빠지지 않을 만큼 질긴 인연이였다. 그만큼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비슷한 가치관을 가졌던 사람이였던 것이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4년동안의 대학생활이 끝나고, 2013년, 나는 졸업여행을 끝으로 그녀와의 연을 깔끔하게 끊기로 다짐했다. 내 자신에게 더욱 좋은 사람을 만날수 있도록 하는 배려이자, 그동안 그녀의 근방에서 지냈기에 가려서 보지 못했던 여러 좋은 사람들을 진지하게 대해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듯이 조심스럽게, 다만 미약한 기대감을 품으며 여러 사람들에게 다가가 보기 시작했다.하지만 아쉽게도 딱히 좋은 결과는 보이지 않았다.

감정은 소모품이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정도 충전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지만, 충전되는 속도보다 소모되는 속도가 빠른것도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며 충전할수도 있겠지만, 6년동안 소모만 하며 지냈던 나에게 그런것이 가능할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방전된 배터리같은 상태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고, 그런 상태에서 제대로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투자 해줄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2년동안 방황하며 아무에게도 관심을 보이기 힘들었던 시간을 보냈다.

그러자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나는 새롭게 누군가를 좋아할수 있을까?”

이렇게 사람들이 평생 솔로로 지내기도 하고, 연애세포가 죽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솔직히 나는 이 상태로 누군가에게 관심을 보일 자신감이 없었다.

“모든 노력은 헛수고가 된다.”

이것이 지난 수년간 나를 지배하는 생각이였고, 어느새 내 행동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무언가 변화를 줄만한 에너지조차 방전된 상태였다. 이렇게 난 평생 독신으로 지내야 하는가 보나보다고 어느정도 체념하기 시작했다.

“난 어짜피 더이상 사랑을 느낄수 없는 사람이야. 이런 사람도 세상에는 존재하는 법이지.”

물론 그렇다고 삶이 무료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약간 우울증스러운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난 아주 기쁘고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냈고, 단 하루도 내가 독신이라서 힘들거나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저 다시 누군가를 좋아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무료함 속에서 카톡소리가 정적을 깨고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검은 것은 글씨이고, 흰 것은 마음, 그 속에 담긴것은 싹트는 관심일 것이다.
하지만 더이상 누군가를 좋아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의미없는 것도 분명하다.

뜬금없는 유쾌함을 풍기는 누군가의 문자들 사이로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동안 연의 끊을 끊는 것의 어려움을 알게 되어서가 아닐까. 조금은 힘들지만, 방전에 가까운 감정의 배터리를 부여잡고 최선의 답장들을 하게 된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건성인 답변을 보낼때도 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계속하여 이어지는 대화는 인연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붙들어두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그 끈은 끊어내기 힘들어지는 다른 감정의 형태로 변해간다. 내가 그토록 다시 가질수 없을것 같았던 그 감정은, 어느새 싹트는 법이다.

결국 그런 나도 다시 사랑할수 있었다. 그저 그만한 사람을 만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이다. 내 자신에 대해 치고 있던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이 필요했을 뿐이다. 물론 모든 인연이 다 좋게 끝날수는 없지만, 새로운 사랑을 하는 용기 자체를 포기했던 나에게, 나도 다시 사랑할수 있음을 알려준 일련의 사건들에게 감사한다. 끊어질수 있음에도 사랑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중히 다루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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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thesoul
15/08/18 16:49
수정 아이콘
문득 박정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와 하림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두 곡이 생각났네요.
결국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자신이 먼저 행복하면 그게 좋은 사랑이더군요. 행복한 사랑 하시길 바랍니다.
스타슈터
15/08/18 17:3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자신을 자책하는 것을 버리는게 먼저라는걸 말씀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게 중요한것 같습니다.
15/08/18 18:13
수정 아이콘
저와 비슷하시네요 저는 아직 진행이 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요 pgr에도 글을 남겼었거든요

제목을 잘못 짓는 바람에 내용과 관계없는 리플들이 더 많지만요.

저도 누군가를 좋아해도 안되고 또 누군가를 좋아해도 안되고 3년전쯤엔 그냥 이젠 포기하자

내 인생에 애인은 없다고 생각하자 이렇게 결심하고

다시는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최근에 다시 누군가를 또 좋아하게 됬어요 감정이란 게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거더라구요
스타슈터
15/08/18 18:53
수정 아이콘
그 글을 제목 덕에 기억합니다. 흐흐
힘내세요!
파란무테
15/08/18 18:18
수정 아이콘
짝사랑이든, 연애든.. 한사람과의 연이 질기다면, 그리고 그 끝이 헤어짐이었다면
하. 힘들지요.

다시 시작되려는 조그마한 사랑의 씨앗에 한뜻 들뜬 느낌이 글속에서 풍깁니다.
감정에 충실하시고,
좋은 사랑을 시작해보세요.
스타슈터
15/08/18 18:55
수정 아이콘
연이 질긴것이 이렇게나 오랫동안 저를 난처하게 만들지는 몰랐네요. 그래도 이제는 그때의 추억에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때의 힘든 시기를 거치지 않았다면 저에게 이런 깊은 감정을 느낄 기회는 없었을 테니까요.
은하관제
15/08/18 18:28
수정 아이콘
글 내용을 보니, 차마 지나칠 수가 없어서 리플 남기고 갑니다. 옛 생각이 문득 나네요...
스타슈터
15/08/18 18:57
수정 아이콘
모두다 이런 추억이 하나쯤은 있죠. 얼마나 그 추억을 회상하며 곱씹냐에 따라서 인생에 가지는 의미 또한 달라질 테고요.

힘내세요! 추억은 처참할수록 나중에 지나면 아름다워 보이더라고요. 흐흐;
Scarecrow
15/08/18 18:42
수정 아이콘
저도 실패 후 체념 상태인데,
누군가 빨리 눈에 들어왔으면 좋겠네요.

내일이 기대되는 삶. 글쓴이가 부럽네요.

저도 언젠가 내일이 기대됬으면 좋겠습니다.
스타슈터
15/08/18 18:59
수정 아이콘
저도 무려 6년만에 새로운 사람을 생각하게 된거라 사실 거의 포기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나더라고요. 주변에 조짐이 보이지 않아도 좀 기다려 보세요. 아마 골목 하나만 지나면 좋은 일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너는나의꽃이다
15/08/18 18:42
수정 아이콘
풋풋했던 첫 연애가 생각나네요. 혼자 좋아하고 혼자 상처받고 그 짧은 시간동안 제 인생에 있어 다시 없을 추억(?)이네요~ 다시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을까 매일 울고 불고. 그 결과 학고 위기에 놓였죠 시간 지나고 나니 학점란 쓸 때 마다 우울합니다만.... 시간이 약이고 마음 편히 가지고 열심히 살다보니 또 그럴 때 인연이 나타나더라구요. 결론은.. 오늘도 화이팅!!??
스타슈터
15/08/18 18:59
수정 아이콘
저는 오히려 덕분에 학점은 잘나왔던 기억이...
지나보니 감사함 뿐이네요. 흐흐
종이사진
15/08/18 23:18
수정 아이콘
나는 사랑따위 못하나보다,
어느 누구도 나를 불태워 사랑하지 못하나보다...

...라고 생각하던 무렵 별 기대없이 만나던 사람이,
지금의 아내에요...
라이즈
15/08/19 00:05
수정 아이콘
뭐야 이거 썸타는 이야기잖아 ㅜ ㅜ
완충시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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