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은 이 글입니다.
https://pgr21.com/?b=8&n=58942
오늘은 비가 오네요.
지난 주말에는 병원에 가서 아버지의 입원 연장 신청서를 쓰고 왔습니다.
정신보건법이 바뀌어서 6개월 단위로 입원 연장을 하려면 보호자 2명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간 김에 아버지도 뵙고 왔는데, 이미 제가 뭐 하러 온건지 다 알고 계시더군요.
뭐 같은 년, 뭐 할 년, 뭐 하고 자빠졌네(..........) 등등의 다양한 덕담을 듣고 왔으니 저는 오래 살겁니다.
사실 지금 저는 정규직도 아니고, 모아논 돈도 한 푼도 없어요. (진짜 저축이 0원)
왜냐고 물으신다면 아버지의 치료비와 학자금 대출 때문이지요....
저도 척추질환이 있어서 그 치료비가.... 흑흑.
그렇지만 30대에는 외국에 나가서 살아보는게 제 꿈이예요.
제가 이 곳에서 태어난 건 제 선택이 아니었지만, 어디서 살고 죽어야 할 지는 제가 선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지금은 20대 후반이라 돈도 없고 영어도 잘 못하고 경력도 짧아서 아직 준비 중이지만 30대에는 꼭 나가고 싶어요.
하지만 호전되지 않는 아버지의 증상을 보면 '내가 외국 나가면 아빠는 누가 돌봐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발목 잡히는 느낌도 없잖아 있다는 점........
아, 네 살 터울로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이번에는 그 아이의 이야기도 조금 써볼까 합니다.
지난번에 동생 얘기도 써달라고 하신 분이 계셔서요. ^^
아마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8살, 동생이 4살 즈음에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할아버지가 어머니께 작은 가게를 얻어주셨습니다.
왜냐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결혼하셨고..
많이 맞았고, 의처증으로 시달리셨고,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 방법으로 괴롭힘을 당하셨어요.
한 가지 소소한 예를 들자면 속옷을 빨아서 개어 놨을 때
서랍장 속에 아버지 속옷 위에다가 어머니 속옷을 올려놨다. 하면...
음탕한 년, 남자 잡아 먹을 년 (;;) 이런 식으로 갈궈서 사람을 못살게 구는 재주가 아버지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는 최소한의 도리로 어머니께 가게를 얻어 주신거예요.
그리고 동생은 4~5살 때부터 그 가게에 딸린 아주 작은 방에 살았습니다. 동생 양육권은 어머니한테 가서요.
어떤 환경이었냐면, 직사각형 구조인데 가게가 있고 그 뒤에 방이 한 칸, 그 뒤로는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집이었어요.
다~~~ 합쳐 봤자 15평이 안 될 겁니다.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까지 동생은 단칸방이라 친구도 못 데려오고 자기 방도 없고.. 그런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엄마랑 뭔 얘기만 좀 할라 치면 손님이 오셔서 엄마는 나가고, 밥이라도 같이 좀 먹어볼라 치면 손님 오셔서 엄마가 나가고 하는 환경이었죠
그래서 점점 더 외적인 것에 집착을 하고, 엄마 카드를 훔쳐서 명품 화장품을 사 모으고, 담배를 피우고, 온갖 쇼핑몰에서 옷을 사고...
아이가 변하더라구요.
지금은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꾸미는 것에 집착을 하고 사람을 만나기 싫어합니다. 고양이만 좋아해요.
(사실 저희 자매는 둘 다 2묘 집사입니다. 크크)
동생은 고등학교 마치고 패션디자인 학원에 가고 싶어했지만
니가 4년제 대학을 가야 내가 홀어머니로 자식 잘못 키웠단 말 안듣고 엄마 면이 산다는 어머니의 성화로
모 지방대 도시환경디자인(?!) 학과에 강제 진학했다가 1년도 못가 자퇴를 했습니다...
지금은 대전에 내려가서 웹디자인 관련 직업학교에 다닌다고 본인은 주장합니다만 실제로 다니고 있는지는 확인을 못해봤습니다.
잘 하고 있니, 다닐만 하니 물어보면 짜증을 내면서 대답을 안하더라구요.
무튼 그렇습니다.
혼자 타지에 내려가서 친구 한 명 없이 원룸에서 고양이들하고만 지내고 있어요.
형제라고는 저 하나라 제가 동생하고 대화도 좀 하고 사는 것도 들여다보고 그래야 되는데...
워낙 어려서부터 떨어져 지낸지라 관계가 살갑지 못하네요.
어머니께서 부부사이가 안 좋은데도 일부러 동생을 한 명 낳으신 게 부모가 없더라도 형제끼리 의지하고 살으라고 그러신 거거든요.
그걸 알면서도 이십 년을 떨어져 살아서 동생하고 진짜 자매처럼 지내기가 쉽지 않아요. ^^;
동생은 아버지하고도 관계가 안 좋아요.
저는 양육권이 아버지 쪽으로 가서 아버지, 조부모님과 살았지만 동생은 어머니하고만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제가 9살, 동생이 5살 때 아버지가 어머니와 저희 자매를 가게방 안에 몰아넣고 온 방구석에 휘발유를 뿌리고서는
왼손에 라이터를 들고 불을 붙일락 말락 협박하면서 우리 다 타죽자고 패악질(....)을 부렸던 기억이 저희 둘다 너무나 선명합니다.
그때 아버지가 뿌리던 기름통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코를 찌르는 휘발유 냄새가 어땠는지 17년 전 일인데도 다 생각이 나요.
이 이후로도 중간중간에 아버지의 조현병이 계속 재발하면서 보여졌던 모습들이 동생은 다 무섭고 싫었다고 해요.
(그럼 그걸 한집에서 살면서 다 받아낸 나는 뭐가 되겠니...?)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동생이 아버지를 싫어해도 그냥 이해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낳아주신 아버지라고.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만
애한테 트라우마란 트라우마는 다 심어주신 분인데 관계가 좋은게 더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어요.
동생이 초등학생 때 아버지만 보면 놀라서 발작을 일으키고 쓰러진 적도 있었거든요. 거품을 물면서.
글을 시작하면서 홀짝홀짝 마시던 맥주가 벌써 네 캔이 되었습니다. ^^;
올 봄에 아버지의 치료와 관련해서 후견인 심판 청구를 했었는데 결과가 언제 나올런지 모르겠네요. 늦어도 다음 달에는 나올 텐데...
정말로 제가 아버지의 후견인이 된다면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평생 한국에 매여(!!!) 살아야 되는 건 아닌지...
결혼하면 남편한테도 짐을 지우는 건 아닌지.. 여러모로 싱숭생숭합니다.
뭐 어쨌거나 내일은 오고 또 계속 살아 가겠지요.
다들 좋은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