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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03 01:10
사실 문화적 수준을 제외하고 단순한 군사력이라던지 생산력과 같은 국력으로 따지면 고려시대 때부터 내내 일본이 한수 위죠...
애초에 국토와 인구수 차이가 존재하니...
15/07/03 12:45
공부하다가 알게 되었지만, 류큐왕국(오키나와현)은 1972년 이전까지 지금의 일본과는 따로 독립된 국가였다고 들었어요.
지금 존재하는 일본과 그 당시 존재하던 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언젠가 한 번 일본 역사에 대해 배워봐야겠어요)
15/07/03 01:08
조선은 폐쇠된 농업국가였으니 어쩔수 없지 않나 싶습니다. 폐쇠된 문명이 내부개혁만으로 자기혁신을 이륙한다는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외부와의 충돌과 교류가 있어야지만 혁신이 일어날텐데 위로는 중국으로 막혀있고 바다로는 교역을 거이 하지 않았으니 깐요.(문물을 전파받을 수 있는곳은 중국이 유일한데 청나라 조차 산업혁명에 성공한 서양국가들에게 한참뒤쳐졌으니...)
15/07/03 01:27
게임사이트니 게임스럽게 이야기하자면..
입지 자체가 일본이 한반도보다 좋죠. 한반도의 장점이라면 저 중국님에게 이것저것 받아먹어서 테크 따라가기 좋다는건데.. 그게 왜인들 입지선정 포텐에서 밀리기 시작하면서 뭐.. 생산력부터 시작해서 쭉 질수밖에 없는거죠.
15/07/03 02:09
어딜 감히 왜놈들을 배우자고 하는 것인가? 이제보니 왜놈들에게서 향응을 제공받고 역심을 품고 온 것이 아니냐? 라든가... 괜히 공격받기 좋은 빌미를 만드느니 그냥 듣기 좋은 소리로 보고를 하는 게 낫겠죠. 혹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 대단하다 그러면 너 친일파! 라고 욕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오죽했을런지요. 배울 게 없는 오랑캐 놈들이다라고 보고하면 과연 그렇지~ 하고 정신승리하기에도 좋은 다들 듣기좋은 훌륭한 보고가 되는 거겠고요.
15/07/03 02:16
1.
일본 도시의 활발함을 배우자는 의견은 조선 자체가 검약과 향촌중심의 자급자족 경제를 추구하는지라 애초에 받아들여지기 어렵지 않았을까요? 일본의 실상을 본 통신사들이야 직접 접함으로 충격을 받았겠지만 그렇지않은 자들은 결사반대엿겟죠. 2. 명분을 중요시하고 소중화라고까지 햇던 조선이 국왕이 아닌 막부를 상대해야했던것에 클레임이 없었다는건 좀 신기하네요. 일본에 크게 데인경험이 있어서 괜히 긁어부스럼 만들기 싫었던걸까요?
15/07/03 12:51
저도 그 부분이 가장 의문입니다. 왜 조선 관료들은 조선왕이 쇼관과 대등한 예를 취해야 하는 것의 모순을 시정하지 않았을까.... 분명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시정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지요.
15/07/03 13:11
실질적인 힘이 없어서 그랬던게 아닐까요.? 당시 조선지배층들도 겉으로는 원칙,명분을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세력의 열세를 인정하고 어느정도 융통성을 발휘하는 속성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정치적 수사의 성격이 강했다던 북벌론처럼요. 사람사는 세상이 어찌보면 비슷하겠죠.
15/07/03 05:43
전근대야 지금과는 아예 세계관 자체가 달랐을테니까요. 지금 우리야 장사해도 돈 버는걸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 당시는 그게 말업이었듯이...
15/07/03 06:41
임금도 아예 몰랐을거 같지도 않습니다.
아예 일본을 가지도 않은 이익 선생도 아는 것이니 그냥 표면상 이때는 중요하지 않으니 덮이는 거죠
15/07/03 10:39
조선시대 사회상에 관한 책을 보다보면 동시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이상하리만치 상공업이나 기술활용이 빈약하더라구요. 중국 중세시대 도시풍경 그림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지더라구요. 내가 알던 동양의 초라한 모습이 아니더군요. 중국은 송나라때 부터 물레방아부터해서 심지어 운하에 갑문까지 설치할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자랑했는데, 우리나라는 활자나 그런 분야 빼고 농업이나 건축기술은 왜 도입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맨날 교과서에서는 우리 조상들이 가난했다는 걸 많이 강조했던 것 같아서 유난히 더 안타깝고 그러더라구요.
15/07/03 11:54
수차의 도입만 봐도 한반도 국가들이 중국과 얼마나 괴리가 있었는지
알 수 있죠. 문제는 지배층이 아닙니다. 수차의 경우에도 수차례 도입시도를 했습니다. 단지 조선의 생산성이 이걸 필요로 할 정도로 높지 않았다는게 문제죠. 이게 성공한게 조선 후기. 결국 농업 생산성이 어느 정도 올라온 이후 입니다
15/07/03 18:44
조선에서 수차가 이용 안 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한반도에 농경지 대비 물이 별로 없어서에요. 기본적으로 일본은 가뭄이 들어야, 조선은 홍수가 나듯 해야 농사가 잘 된다는 말이 들 정도로 한반도는 물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토지 자체가 물이 쉽게 빠지는 토양인지라 물을 끌어 올리는 것보다 가두는 기술이 훨씬 중요해요. 괜히 예전부터 보나 제언같은 것을이 조선에 많았던 게 아닙니다. 조선의 생산성이 수차를 필요로 할 정도로 높지 않아서 안 만든 게 아니라, 수차를 만드는 비용에 비해 그 활용으로 얻는 이득이 거의 없어 수익성이 안 맞아 안 만든 겁니다. 막말로 조금만 쓸만한 땅은 죄다 농경지로 활용했던 시대가 조선시대인데 생산성이 부족해 물을 끌어올리기 위한 수차를 안 만든다는 게 말이 안 되죠.
15/07/03 19:52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일단 조선 후기가 되면 갑자기 이 필요 없었던 게 필요해지는 것도 아니고
전기만 하더라도 수직으로 된 진보적인 수차는 사용안할지라도 횡으로 된 구식은 꾸준히 사용했거든요.
15/07/03 20:34
무슨 근거로 조선 후기에 갑자기 수차가 그렇게 필요해졌고 보급에 성공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후기 실학자들이 수차 예찬을 상당히 많이 하여 후기에 보급되어졌다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수차의 활용 용도에 대한 고민은 세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만, 결국 수차의 제대로 된 활용은 끝까지 실패합니다. 막말로 수차로 인해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말은 말이 되어도, 생산성이 부족하여 수차가 이용 안 된다는 말 자체가 굉장히 모순적이죠. 농업 생산량에 목숨을 걸었던 게 조선인데 생산성이 이걸 필요로 할 정도로 높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http://blog.naver.com/lord2345/220274264173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15/07/03 11:13
덴노 = 허수아비
쇼군 = 실권자 둘이 다르고(에도 막부와서는 아예 중심지가 간토의 에도로 옮기면서 정말 덴노는 뒷방 늙은이가 되어버렸죠..) 조선왕과 급을 맞추려면 덴노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걸 알더라도, 실권자가 쇼군인데.. 조선이 무슨힘이 있어서 이걸 해결하겠습니까.
15/07/03 19:30
우리가 지금 여기 앉아서 "왜 당시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을까" 라는 하는건 사실 다 어른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지요.
당장 30년 전만해도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헌법을 가진 국가가 왜 대통령을 직접 뽑지 못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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