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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6/26 19:15:52
Name 아수라발발타
Subject [일반] 민주주의를 기다리며
그들은 민주주의를 신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장년의 그들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기억이 없었다 물론 교과서에서 좋은거라고 배우기는 했지만
그저 그 지독한 빨갱이 공산주의의 반대쯤으로 익혔을 따름이다

뭐 몇번의 선거를 제법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은 있다 근데 겨우 돈맛을 보기 시작한 그즈음은 거기 더 열심으로 사는걸 선택했다
더구나 유신으로 변수가 제거된 선거는 너무 밍밍했고 그나마 12.12이후엔 선거는 먼곳의 메아리이고 민주주의는 불손하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민주화"는 축제의 시작이었다
몇몇 대학생들 머리가 터져나가고 다리가 부러져 나갔지만 그들은 침착하게 축제를 관전했다
이윽고 한두놈 죽어가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역시 차분히 자기자리에서 차분히 그렇게 생업에 열중하며 시위를 관조했다

어렴풋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것 정도는 알았기에 평소에 느끼던 답답함을 저렇게 고함지르며 얻어 맞아가며 싸우는 학생들을 보면
이상하게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정도.... 그래서 한번씩 박수도 치고 심지어 시위대에 큰소리로 격려까지 했다

그렇게 민주화가 됐다....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커다란 희생위에 대통령직선제를 시작으로 간신히 움찔거렸다

그들도 그게 좋았다  왠지 민주주의는 복권처럼 자신들의 삶을 바꾸어 줄것 같았다
아무런 기여도 없었지만 그들은 민주주의에게 뻔뻔하고 턱 없는 기대를 가져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떠들석한 선거가 치루어 졌다

공짜 관광버스에 공짜식사 푸짐한선물.... 그들은 생각했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유쾌하고 신나는 거였던가?"
대선은 물론이고 국회의원 선거 지역선거.... 이어지는 선거철 마다 통반장은 물론이고 수다쟁이 아줌마들 심지어  동네 백수들까지
한몫 잡았으니까

당시 신발공장 여공들 초임이 이십만원이 안될때 였는데 전직군인출신의 여당 선거운동원하면 하루 일당이 오만원도 쉬웠다
동네 구석구석 활기가 있었고  동네 귀퉁이 식당에서 굽신거리는 출마자들이 사주는 고기를 구워먹으며 공짜막걸리를 들이켰다
이런 극진한 대접에 무임승차의 기억은 잊은채 민주투사질이라도 한것처럼 민주화를 찬양하고 지난 독재자를 씹으며 광주시민을
동정했다
그들은 그렇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것을 즐겼던 것이다

계속되는 축제가 있던가.....

이제 그들은 민주주의에게 속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골치아픈 민주주의가 싫어졌다 그냥 알아서 잘 보살피고 챙겨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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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모함
15/06/26 20:09
수정 아이콘
뭔누리당 지지자들보면 민주주의따위는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15/06/26 20:36
수정 아이콘
굉장히 좋은 글이네요....잘 읽었습니다.
누군가의 피로 만든 민주화에 무임승차한 그들의 한계겠죠...
15/06/26 20:54
수정 아이콘
1987년 6월 항쟁 이전엔 1980년 광주가, 1980년 광주 이전엔 1979년 부마 항쟁이,
1979년 부마 항쟁 이전엔 1964년 63항쟁이, 1964년 63항쟁 이전엔 1960년 419가.
그밖에 여기 언급하지 못한 많은 시민운동들. 무임승차자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하긴 1960년에 장년이셨던 분들은 지금 적게 잡아도 80대 이상이실테니 뭐 민주주의를 잘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물론 그 세대는 유년기를 일제치하에서 보냈고,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를 온몸으로 겪었으며,
1950년 625로 삶의 터전이 완전히 부숴졌었다는 점을 깡그리 무시한다면 말이죠.
15/06/26 21:30
수정 아이콘
직접 참여를 하거나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죠..
그 피를 흘리고도 노태우를 찍었던 36.6 %의 사람들이 아주 직접적인 대상이 되겠군요..
글투성이
15/06/27 00:35
수정 아이콘
모든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던 것은 아니니까요. 당시에도 빨갱이네 폭도네 비난하던 시민들이 어쩌면 더 많았습니다. 단지 그들은 체제에 순응하느라 직접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경우가 없었기에 역사에 묻혔을 뿐이죠. 당장의 정치지형이 그 증거일 것입니다.
몽키.D.루피
15/06/27 01:07
수정 아이콘
정확하네요
15/06/27 03:32
수정 아이콘
그래서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이전에 '산업화'가 있었듯, 그러한 요구의 형태가 오늘날에 이르러 '양극화'까지. 이른바 무임승차에 대한 인간이 으레 가질 법한 감정적 기반에서의 아쉬움은 부족하게나마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굳이 피아를 구별할 마땅한 근거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심정적으로 별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그래서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WeakandPowerless
15/06/27 04:32
수정 아이콘
분명 보편을 담지하는 역사 그 자체라고 하기엔 반박이 많을 수도 있는 글인것 같습니다만, 실제로 분명히 존재했던 의식을 잘 표현한 짧은 문학이라고 생각하면 참으로 수작이라는 느낌입니다. 마지막 문장이 참 백미같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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