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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5/20 15:25:30
Name 바람이라
Subject [일반] 우리는 아직 잊지 않았다.(5.18에 대해)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저는 광주 사람입니다(지역색으로 오해하지 말아주시길...)
pgr21에 글을 쓴다는 것은 무거운 일이지만 많은 분들이 5.18과 관련해 글을 올리는 것을 보고 왠지 모르게 절로 글쓰기 버튼이 눌러지더군요

많은 분들이 5.18은 이제 잊혀져간다고들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어버렸다고들 얘기하십니다. 하지만, 아직 광주 사람들은 5.18을 잊지 않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5.18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셨던 분입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5월 18일만 되면 저를 5.18공원에 데려가 그 곳의 명패들, 사진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바램아, 저긴 아빠 친구의 명패다. 바램아, 저긴 아빠가 군인들에게 쫓겨 친구들을 버리고 도망치던 장소다.`

매년 5월 18일,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5.18 공원을 다녀오셨고 그 뒤에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잊어선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잊더라도 너는 잊어서는 안된다. 너는 내 아들이니까.`

저에게는 친한 형님이 한 분 계십니다. 어릴 적 저를 잘 돌봐주셨던 좋은 형님이시죠. 그 분은 5월18일만 되면 제사를 지내십니다. 당시 돌아가신 아버지, 정확히 언제 사망하셨는지도 몰라 5.18일에 제사를 지내며 그 분을 기리십니다. 그 형님이 저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난 말이야. 전두환이 계속 안 죽고 살아있음 좋겠어. 언젠가 내 손으로 죽일 수 있게.`

이전에 연희동에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부자동네더군요. 촬영 도중 잠시 쉬고 있었는데 저와 동향 출신의 PD가 이 말을 하더군요.
`감독님, 저기 저 집 보이세요? 저기가 전두환네 집이랍니다. 저는 여기 올 때마다 그 생각이 들어요. 내 손에 수류탄이 있으면 저 집에 던지고 싶다고.`
그 분은 소중한 형을 그 날 잃어버리셨다고 합니다. 시체조차 발견 못해 아직까지도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답니다.

지역색, 정치색을 떠나서 광주 사람들에게 5.18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사라진 아픈 기억입니다. 이미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그 당시의 기억이 가슴에 못박혀있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우리에게 잊어라, 옛날일 아니냐 말하지 마십시오.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저조차도 이러한데 당사자들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같이 기억해 주십시오. 모두가 함께 기억해주지 않으면 이는 계속 잊혀갈 것입니다.

P.s: 핸드폰으로 두서 없이 쓰다보니 내용이 정돈이 안 되고 오타가 많았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관련 기사를 보다보니 문득 생각이 들어 적어봅니다.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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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바스의 약속
15/05/20 15:52
수정 아이콘
예전에 한 블로그에서 1980년의 이른바 '서울역 회군'에 관한 글을 읽다가 마지막 문장에서 가슴이 턱하고 내려앉았는데요.
"그리고 광주는 고립되었다"
이 한문장에 갑자기 눈물이 터져서 주체하지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
바람이라
15/05/20 16:02
수정 아이콘
당시 아버지께서는 도망친 후 몆 주간 고구마와 물만 먹으며 숨어계셨다고 합니다. 길거리에 나갔다가 잡혀갈까봐... 당시 광주는 거대한 감옥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라이온킹 이동국
15/05/20 16:44
수정 아이콘
블로그 주소를 알 수 있나요?
아니면 그 글 링크 부탁드려요 읽고싶네요
치킨과맥너겟
15/05/20 15:55
수정 아이콘
그들을 폭도라고 하는넘들 진짜 입을 찢어버리고 싶습니다.. 손가락을 부러뜨려야되나.
바람이라
15/05/20 15:58
수정 아이콘
광주 사람들이 그 때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복수하지 않는 것은 전두환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음은 치킨님과 같겠지만요.
15/05/20 16:17
수정 아이콘
 망월동 5.18 묘지에 스무번째 봄이 왔다. 새 묘역은 망월동이 아니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이다. 그러나 다들 망월동이라고 부른다. 새 묘역의 유영 봉안실에는 1980년 5월에 총맞아 죽고 매맞아 죽은 사람들 3백여 명의 사진이 걸려 있다. 교복 차림 고등학생도 있고 웨딩드레스 차림의 신부도 있다. 손수레나 청소차에 실려온 주검들이다. 다들 사진틀을 깨뜨리고 세상으로 걸어나올 것처럼 생생하다. (중략) 그때, 젊은 어머니 뱃속에 들어앉아 있다가 군홧발에 채였던 태아들이 다들 죽지 않고 이 세상에 나와 지금은 스무 살이 되었다.
(중략)
 목발을 짚고 꽃가게를 경영하는 총상 피해자 이세영 씨와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다.
 "처음부터 그 사태에 대한 인식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나는 그때 전두환이라는 이름조차 몰랐다. 나는 구둣가게를 갖는 것이 꿈이었다. 두들겨 맞고 나서, 총에 맞고 나서, 이 사태가 무슨 사태인지 알게 되었다."
 "총을 쏘는 군인들을 향해 달려갈 때 무섭지 않았나?"
 "너무나도 무서웠다. 너무나도 무서웠기 때문에, 그 무서움이 갑자기 분노로 바뀌었다. 그때 온몸이 떨렸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군인의 총에 맞아 죽어야 하는지를 지금도 알 수 없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목발에 대해서 묻지 않는가?"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아빠는 왜 목발을 짚느냐고 물어온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나?"
 "옛날에 다쳤다고 대답했다."
(중략)
 "용서와 화해는 불가능한가?"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가해자들은 아무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화해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개인의 심정으로는 만일 용서를 빌어온다면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일이란 없었다."

김훈, 「망월동의 봄」에서 인용했습니다. 어찌 잊으라 하겠습니까.
잿빛토끼
15/05/20 16:33
수정 아이콘
이 문제는 광주의 사람이냐 아니냐를 떠났죠.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민주주의를 향유한다면 절대로 잊지 않아야 할 역사입니다.
저 역시 죽을 때까지 이 역사에 대해 잊지 않을 것이며, 교사로 남아있는 기간동안 항상 그날이 오면, 그날의 역사를 말 할 겁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도 피를 먹고 자란 것임을요.
드라고나
15/05/20 21:07
수정 아이콘
절대 잊을 수도 잊혀져서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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