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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6/23 13:36:19
Name 눈시BBv3
Subject [일반] 조선의 국경을 만들다
"삼국 말기에 평양 이북은 모두 야인들의 사냥하는 곳이 되었었는데, 고려 때에 남방 백성들을 옮겨서 채우고 의주에서 양덕에 이르기까지 장성을 쌓아 국경을 굳게 했으나, 그 사는 데 불안하여 자주 반란을 일으켜서 군사를 내어 토벌까지 하였었다. (중략)
임금이 즉위한 이후에 성교가 멀리 서북면 백성들에게까지 입혀져서, 편안하게 살고 업을 즐기게 되어, 전야(田野)가 날로 개간되고 인구가 날로 번성하여져서, 의주의 장사길이 임금의 휘하에 예속되기를 원하여 개국 공신의 반열에 참예하게 되었다. 이 뒤로부터 장씨가 다시 반란하는 일이 없어서, 의주에서 여연에 이르기까지의 연강 천 리에 고을을 설치하고 수령을 두어서 압록강으로 국경을 삼았다. (중략) 바닷가의 땅과 매우 험준한 섬까지 남김없이 개간하여, 전쟁을 모르고 날마다 마시고 먹을 뿐이다."
"동북면 1도는 원래 왕업을 처음으로 일으킨 땅으로서 위엄을 두려워하고 은덕을 생각한 지 오래 되어 ~~ 임금이 즉위한 뒤에 적당히 만호와 천호의 벼슬을 주고, 이두란을 시켜서 ~ 또 추장에게 부림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모두 국민이 되기를 원하였으므로, 공주에서 북쪽으로 갑산에 이르기까지 읍을 설치하고 진을 두어 백성의 일을 다스리고 군사를 훈련하며, 또 학교를 세워서 경서를 가르치게 하니, 문무의 정치가 이에서 모두 잘되게 되었고, 천 리의 땅이 다 조선의 판도(영토)로 들어오게 되어 두만강으로 국경을 삼았다."
태조 4년(1395) 12월 14일

개국 초, 조선의 영토는 이미 정해놓은 상태였습니다. 강이 있으니깡. 압록강과 두만강이요. 저기서 두만강 이북은 풍속이 다르다는 식으로 하면서 국내와 국외를 구분해 놓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조선이나 명이나 건국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고, 홍무제는 참 까칠했으니...


명은 원을 몰아내면서 요동을 급히 점령합니다. 여기에 요동도사를 두고 고려와 국경을 맞대기 시작했죠. 이 과정에서 요동을 둘러싼 갈등이 나타납니다. 명으로서는 고려-조선과 원 사이를 끊고 조선을 친명으로 유지하면서도 요동에 더 이상 욕심을 내지 못 하게 해야 했습니다. 이제 막 건국된 조선이 어디로 튈 지는 모르는 일이거든요. 원의 부마국이었고 요동을 이미 한 번 쳤고 한 번 더 치려다가 말았으며 만주의 여진족들을 계속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실록에도 보면 여진 누구가 귀부했니로 가득 차 있죠) 조선의 왕은 전쟁영웅 출신이고 여진족과도 참 친했구요. 조선이 원과 손 잡고 여진족들을 이끌고 요동을 친다면? 그게 아니더라도 수도인 북경을 위한 완충지대가 필요했습니다.

뭐 그 조선의 왕이 바로 요동정벌을 쿠데타로 막아냈다는 걸 생각하면 참 억울하지만 -_-; 하필 때가 어린 손자에게 나라 물려주려고 한창 까칠할 때인 것도 있죠. 그 때문에 사람을 그리도 죽여놓고 정작 손자의 운명은...

명은 요동에 요동도사를 설치했고 이를 중심으로 위소衛所를 설치합니다. 위소는 주현과는 달리 군사 목적의 행정구역입니다. 원나라가 설치한 주현을 위소로 바꿀 정도였으니 명이 요동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만합니다. 사실 명만의 문제가 아니죠. 그 고조선 때 연나라가 고조선을 친 이후로 중국은 요동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힘이 없다면 모를까 있다면 요동은 무조건 중국 땅이라 이거였죠. 요동이라는 땅이 워낙에 좋기도 했구요.

+) 요동은 철이 많이 나오고(고대엔 정말 중요했죠), 땅도 기름집니다. 여기에 요하라는 강 방어선도 좋았구요.(고구려 땐 정말 철벽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중국 땅에서 촉(쓰촨 성)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명이 베이징을 수도로 하면서 중요성은 너무나도 커져 버렸죠.

자타공인 고구려의 후예인 조선, 신생 명나라가 신생 조선에게 요동 문제에서 까칠할 수밖에 없긴 한 거죠.

조선으로서는 아쉬웠을 겁니다. 여진족들 회유한 거 보면 조선이 요동에 욕심이 아예 없었다고 보긴 힘듭니다. 근데 중국은 참 스케일이 너무 크네요 -_-

명의 요동도사는 행정보다 군사적인 목적이 큰만큼 명이 요동을 확실히 차지하겠다는 의사로 봐도 될 겁니다. 그래서 정도전을 죽인 이이제이도 한 거구요. 하지만 동북면은 좀 달랐죠.

변방이 다 그렇겠지만 요동도사 소속 위소들도 조선인, 여진족, 몽골 등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나마 이들은 요동도사의 지원을 받고 움직였고 동북면에 비하면 "정규직"이었죠.

동북면, 요동 동쪽의 위소들은 수만 많을 뿐이었습니다. 명나라의 관원이 가기라도 하면 다행이고 -_-; 그냥 여진족 추장들에게 벼슬 뿌리는 수준이었죠. 근데 이건 조선도 마찬가지였다는 거 ㅡ.ㅡ; 애초에 요동도사 쪽 위소 휘하의 병력도 중국+조선+몽골+여진 이렇게 여러 종족들이 합친 거였습닏자. 그 외에는 그냥 여진족 추장들에게 벼슬 뿌린 수준이었구요.

오죽하면 명군이 백두산 근처까지 와서 사냥으로 식량을 마련합니다. -_-; 이쯤되면 명나라 소속이라 해도 명나라 땅이라 못 하죠. 아 얘네들이 어디서 밥 얻어먹었을까요? 네 조선입니다 (...) 세조 땐 술 한 잔 맥이고 그냥 돌려보내기도 합니다. 천조국의 굴욕이죠 (...)

명에서 요동 동쪽을 직할통치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이런저런 걸 설치하면서 시도를 했죠. 하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그 후부턴 그냥 전통적인 이이제이에 따라서 여진을 분할하고 서로 싸우게 하면서 제발 크지 마라 할 뿐이었죠. 뭐 이게 나중에 가면 결국 실패하고 청이 생겨버립니다  -_-;

이 시기에 요동 동쪽, 만주의 지도를 그리자면 참 애매할 겁니다. 명 위주로 간다면 그냥 다 명나라 땅으로 해도 됩니다. 하지만 이건 조선도 명나라 땅으로 그릴 정도로 명에 유리하게 그릴 때야 가능했죠. 반면 조선도 압록두만강 이북의 추장들이 귀순하고 벼슬 얻어갔으니 4군 6진 개척 전에도 최소 현재 상태, 심하면 만주 북쪽으로도 영토를 그릴 정도는 됩니다. 영향력으로만 따지면 이렇죠.

하지만 영향력만으로 따지긴 그렇죠. 직접 통치했느냐가 중요하니까요. 만약에 청이 없었고 근대 민족주의 흐름에 따라 만주국과 비스무리한 여진족의 나라가 세워졌다면 지금의 중국이 만주의 영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요? -_-;

이건 조선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이야 두만강까지가 조선의 영토였다 하지만, 조선 왕실의 무덤이 함경도에 있었다 하지만 조선이 직할통치한다고 하기엔 2% 부족했습니다. 미리 함경도를 확실히 직할통치하지 않았다면, 근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원나라처럼 일본이 만주국에 함경도를 집어넣었다 해도 반대하기 힘들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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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여진에게 칙유하여, 오도리·올량합·올적합 등을 초무하여 조공을 바치게 하라고 하였는데, 여진 등은 본래 우리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삼부가 회의한 것이었다." (태종 3년 6월 25일)

"조종께서 지키시던 땅은 비록 한 치라도 버릴 수 없다" - 세종

명에선 슬슬 요동을 넘어 흑룡강성 등에 부를 설치하면서 직할통치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조선도 여진도 반대했죠. 시작은 태종 때, 명에서 백두산 인근의 여진족들을 자기들이 맡겠다고 한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함경도 쪽의 여진족도 명에 넘어가고, 조선의 영토가 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무덤도 명에 넘어갑니다 (...)

여진족들도 반대했습니다.

"우리들이 조선을 섬긴 지 20여 년이다. 조선이 명나라와 친교하기를 형제처럼 하는데, 우리들이 어찌 따로 명나라를 섬김 필요가 있겠는가?"

"본래의 뜻을 변치 말고 조선을 우러러 섬기되, 두 마음을 갖지 말자"

조선이 더 가깝고 잘해주기도 더 잘해준 모양입니다 (...) 이른바 10처 여진, 조선이 맡고 있던 여진족들을 명에서 뺏어가려 했으나 조선에서 그걸 막은 사건입니다.

그리고 세종 때...

"그런데 이제 덕을 배반하고 은혜를 저버려서 변방 백성을 죽이고 노략하니, 만일 토벌하지 않는다면 징계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이제 태평한 지 오래여서 사방에 걱정이 없다."

여진족은 한 편으로는 조공을 바치면서 한편으로는 계속 약탈을 시도했고, 함경도는 늘 불안했습니다. 확실한 방어선을 만들어야 했고 그러려면 두만강 만한게 없었죠.

명에선 반대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조선에서 "공험진"이라는 명분을 들고 있었거든요. 고려 윤관의 9성 때 가장 북쪽에 있었다는 성입니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높이 안 갔던 걸로 추정됩니다만 그 때는 이걸 조명 국경으로 삼았죠. 세종은 최윤덕과 김종서에게 공험진을 세운 비가 있다는데 어디 있는지 알아보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4군 6진 완료되고 나서는 그냥 신경을 끄죠 (...)

https://pgr21.com/?b=8&n=33220
https://pgr21.com/?b=8&n=33256

그 간략한 과정에 대해서는 여기로 _-)/~

이 공험진이 조선 건국 초기부터 조선이 밀어붙였고, 명이 인정했습니다. 위의 10처 여진인들의 명나라 귀속을 막을 때도 공험진이 명분이었고, 세종은 국경선이 완성될 때까지 공험진을 계속 밀어붙였죠. 애초에 명이 직할통치 못 했던 곳이고 관리하기도 힘든 곳이었습니다. 명에서는 한 발 물러선 데 비해 조선에서는 강하게 밀어붙였고, 지금의 한반도를 완성시킬 수 있었죠.

그리고 세종대왕님은 훈민정음 같은 문과쪽 업적을 평가 많이 받았는데도 조선의 국경을 완성했다는 이유로 세世라는 묘호를 받게 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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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좀 아쉬운 얘기일 순 있겠는데요. 백두산이 조선 때 우리 영토였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_-; 일단 민족의 영산으로 취급받긴 했습니다만... 확실한 우리의 영토다 그런 건 없어요. 바로 그 세종 때 "우리 영토는 아니지만"이라는 게 나오거든요. 한다 하더라도 중국과의 경계로 삼았을 순 (현재 북중이 반반 나눠먹은 것처럼) 있겠지만요.

이전에 간도 글 썼을 때 내린 결론이지만, 예전 북한이 중국과 맺어서 백두산 반띵한 건 문제삼을 부분은 아닌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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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추가로 -_-a 한나라 때 한사군도 좀 비슷했습니다. 설치해놓고 어쨌건 관리 파견은 했으니 위보단 좀 낫지만 행정력이 크게 미치진 않았죠. 중화세계관 안에서도 중국이 자기 영토라 생각한 곳과 아닌 곳은 좀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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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엔
14/06/23 13:43
수정 아이콘
만주-요동 정벌론->국가 백년 대계->그러면 우리 지금 잘 살았을거야라는 이론 아닌 이론(망상이라고 부르고 싶은)을 볼 때마다 느끼는건데, 당장 압록강-두만강 이하 지역에 대한 지배력도 조선 중기까지 계속 부침이 있었는데 만주를 먹었으면 뭔 수로 컨트롤했을지 상상이 안갑니다. 삼국지 게임에 너무들 익숙해진건지....
여담이지만 백두산도 결국 기존의 경계선(두만강) 기준으로 나눠먹기 해야죠. 위쪽은 만주 지배 국가 주고 아래쪽은 한반도 지배 국가에 귀속하고. 만주 지배 국가는 지금은 중국이고 한반도 지배 국가는 한국 혹은 북한이니 현재의 백두산은 역사적으로 보면 합리적인(..) 나눔의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14/06/23 13:57
수정 아이콘
고구려에 대한 향수 때문이겠죠.
14/06/23 14:00
수정 아이콘
만주가 스스로 자생할만한 생산력을 가지게 된 게 거의 20세기 가까운 일이니, 그 전까지 만주를 먹었다면 그 살림살이는 삼남이랑 경기도에서 나는 물자로 죄다 충당했어야 할테죠. 실제 평안 함경 양도에 사민시키고 군대 유지하는 것만 해도 힘에 겨울 지경이었는데 하물며 만주일까요.
뭐, 옆의 섬나라처럼 조세 비율 확 늘려서 백성은 배곯고 국가는 풍족한, 굶어죽기 직전의 백성들이 수시로 민란도 일으켜주는 그런 국가 분위기였다면 만주까지 어케 판도를 유지했을수도 있겠지만 그랬었다간 조선왕조는 5백년은 커녕 2백년도 가기 힘들었을 테고 말이죠.

뭐 백번 양보해서 삼남과 경기지방에서 만주에 사민한 백성 + 여진족까지 모두 입히고 먹일 물자를 공출해 낼 수 있다고 해도 당시 수운에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하던 조선 물류 생각하면 그 물량을 어떻게 또 만주까지 지고 이고 끌고가야 하는지도 견적 안나오고요. -_-;
그렇다고 내륙에 신작로 열고 그걸로 물류 유통시키며 더불어 상업 발전도 하고 어쩌구... 로 가면 조선은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성리학적 국가가 아닐테죠. 당시 위정자들인 성리학자들이 그런 정책을 밀어붙일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 아니 그냥 0이고요.
겨울나기
14/06/23 17:15
수정 아이콘
대만에서는 왜 우리 땅에 있는 산을 빵즈에 팔아넘겼냐고 본토를 깐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바가 있지요;
눈시BBv3
14/06/23 19:48
수정 아이콘
애초에 강을 사이로 나눈 게 실효지배하기 편해서일 건데 백두산 같은 높은 데를 기준으로 하면 =_=;;;
영토분쟁에 민족주의에 이런 것 때문에 양국이 괜히 대립하는 거일 뿐이죠
Starlight
14/06/23 14:34
수정 아이콘
몇가지 오류라고 보이는게..
1.명은 홍무제 시기에 남경 수도 아니었나요? 북경이 수도가 된건 쿠데타 이후로 알고있는데..
2.이성계가 자리를 물려주려던 이방석은 아들 아닌가요?

그리고 백두산에 대해서는 일종의 국가의 세뇌교육이 잘된 거라고 봅니다. 간도와 마찬가지로요.
사실 간도나 백두산이나 독도같이 절대적인 경제적 이득이 있는 땅도 아니고, 조선말기에나 상황이 안좋으니 넘어간건데 뭐그리 집착적으로 교과서에서 서술을 해댄건지 모르겠네요.
Siriuslee
14/06/23 14:42
수정 아이콘
1. 아마 국경을 확정할때인 세종시기에는 이미 정난의 변(조선 태종때)이 끝난 후 라서 그렇게 쓰신거 같습니다.

2. 이건 명나라 이야기입니다.
홍무제 주원장이 다음 보위를 물려준게 장손인 건문제 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명나라의 수양대군... 연왕 주체의 정난의 변이)
눈시BBv3
14/06/23 19:20
수정 아이콘
1. 맞습니다. 그냥 뭉뚱그려서 얘기했네요 ( ..); 2. siriuslee님 말씀대로 명나라 얘깁니다.
뭐 결국 민족주의 때문이겠죠. 지금은 우리가 못 살지만 예전에는~ 이런 거요
하늘빛
14/06/23 15:04
수정 아이콘
선 추천! 후 감상!
잘 보겠습니다 ^^
눈시BBv3
14/06/23 19:48
수정 아이콘
^^ 감사합니다~
홍승식
14/06/23 15:22
수정 아이콘
이런 글을 볼 때마다 문명의 도시 기준으로 영토가 늘어나는 것이 얼마나 현실에 맞는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5세기에 만주는 공백지였는데 여기를 차지하려고 도시를 세워봤자 주변은 모두 밀림 아니면 습지라 식량이 모자라 도시가 성장을 못하고 생산력도 모자르니 사슴이나 모피가 없다면 눈도 돌릴 필요가 없죠.
일꾼이라도 많아서 밀립/습지를 개간하면 모르겠는데 아직 조선시대때는 반도 내에도 개발 못한 땅이 수두룩 해서 말이죠.
눈시BBv3
14/06/23 19:50
수정 아이콘
네. 조선 같은 경우도 그렇지만 삼국시대에 삼국의 영토확장 보면 문명의 그거랑 딱 맞더군요. 땅 좋고 철 많이 나는 쪽 ^^;
저 신경쓰여요
14/06/23 16:03
수정 아이콘
오오 눈시님의 역사글 아주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흐흐
눈시BBv3
14/06/23 19:50
수정 아이콘
오랜만이죠 ㅠ_ㅠ)~ 감사합니다~~
Made.in.Korea
14/06/23 17:36
수정 아이콘
선추천 후리플 입니다 시험끝나시니 글 올려주시는 군요 흐흐흐
눈시BBv3
14/06/23 19:49
수정 아이콘
크크 네 >_<; 당분간 못 썼던 것 좀 써야겠네요. 충격 가라앉히는 것에도 이거만한 게 없을 거구요 ( ..);;
王天君
14/06/23 17:39
수정 아이콘
내가 이 글을 어제 봤다면 장백산 논란 키배에서 퍼펙트한 승을 거뒀을 텐데....ㅠ
그런데 두만강을 국경으로 삼았다는 건 확실한가요? 자꾸 상대방이 토문강 논란을 들고 나오면서 장백산 문화론을 생각해서라도 전지현 김수현은 광고를 찍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는데, 중국이 동북공정을 장백산 쪽에 하는 것도 사실이고 토문강 논란은 제가 잘 몰라서 뭐라 반박을 못했거든요. ㅠ
눈시BBv3
14/06/23 19:33
수정 아이콘
좀 늦게 나왔다면 저도 끼었을지도요 ㅠ; 백두산에 대해서는...
“백두산 근처에 한 땅이 있는데, 명나라의 태조 고황제가 고려에 예속시켰다. 내가 《지리지》를 보니 한 옛성의 터가 백두산 앞에 가로놓여 있는데, 이것이 그 땅이 아닌가 의심된다. 마땅히 찾아 내어 우리 나라의 경계로 하여야 하겠다.” - 세종 14년
"함길도. 나라에서 행하는 정평부의 비백산은 중사이고, 사묘의 위판은 비백산지신이라 쓰며, (중략) 현덕진과 백두산의 단 위판은, 하나는 백두산지신이라 쓰고, 하나는 현덕진지신이라고 썼는데, 위의 백두산은 본국의 경내가 아니고, 현덕진은 고려 때에 혁파하여 별로 영험이 없으니, 청하건대, 모두 사전에서 삭제할 것." - 세종 19년

뭐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_=; 이후에도 제사 때문에 나오는 경우는 있고, 여기서 우리 땅인데라는 말은 있지만 우리 땅 아니지만 영산이니 제사 지낸다는 말 역시 있죠. 이런 것들도 다 제사지낼 때 나오는 얘기고, 실질적으로 영토에 대해 얘기한다고 하면... 정말 없습니다. 백두산 정계비 세울 때도 조선에서 강조한 건 "백두산에서 시작된 두 강"이었고 그걸 경계로 한다는 거였으니... 이런 상황에서 백두산 전체를 영토라 생각하긴 힘들죠.
간도 같은 경우는 https://pgr21.com/?b=8&n=29613 예전의 이 글을 참조해 주세요 '-');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본문에 썼던 여진의 역사들까지 다 가져가려고 하긴 합니다. 하지만 명까지면 몰라도 청으로까지 가면 그걸 억지라고 할 수 있을지는 부정적이네요. =_=;; 음; 백두산 부분을 좀 보강할걸 그랬나봐요;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4/06/24 00:30
수정 아이콘
딴 얘기지만 백두산 화산 폭발 떡밥이 예전에 피지알에서도 나왔던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어가는지 혹시 아시는 분 있나요?
영원한초보
14/06/24 01:34
수정 아이콘
일요일에 정도전 보면서 요동정벌에 혹하게 됐었는데
정도전의 논리가 일본의 진주만 공습하고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정도전이 이성계에게 이런 주장을 했던건지도 궁금하고
이게 당시 설득력 있는 주장이였는지도 궁금하네요.
여기에 정도전이 청의 건국까지 예상하는 떡밥을 던지고요.
중국은 두번이나 오랑캐에 점령당하는데
어딘가를 점령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정해진것은 아니니까요.
14/06/24 11:11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글 올려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추천!
하지만 글을 볼때마다 느끼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기록물의 위엄이네요. 근현대에 와서야 신문이라던지 기록물이야 수두룩하게 많지만 국가에서 편찬했다는 강력한 기준이 있는 기록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나중에 몇백년후에 우리나라가 망하더라도 그 기억을 전해줄 수 있는 상징성있는 기록물이라..
Je ne sais quoi
14/06/24 14:17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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