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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5/10 23:35:25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국내 역사상 희대의 졸렬 군주, 고려의 충렬왕

고려 충렬왕 시기, 고려는 ''카다안의 침입'' 이라는 일대 사건을 맞게 된다. 이는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에 대항한 나얀등이 패배하면서, 그 일파였던 카다안 등이 활로를 찾기 위해 대뜸 고려로 쳐들어왔던, 즉 원나라의 반란군 잔당이 고려로 쳐들어왔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충렬왕이 보여준 태도는 국내 역사를 통틀어 봐도 보기 힘든 희대의 졸렬한 모습인데...






1. 과인은 사직을 보존할 것이다! 보존은 할 것인데...

“民惟邦本, 予豈先避以撓民心? 賊雖長驅而至, 予爲三軍之殿, 以全社稷.”

“백성은 곧 나라의 근본인데 과인이이 어찌 먼저 피난하여 민심을 혼란시키겠는가? 적이 비록 이긴 기세를 타고 여기까지 쳐들어올지라도 과인은은 삼군의 후군(後軍)이 되어 사직(社稷)을 보전할 것이다.” 



이는 카다안의 침입 당시 "왕이 먼저 군사를 이끌고 나서 적의 침입을 저지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강화도로 이동하라."는 인후의 말에 충렬왕의 패기 넘치는 일갈로, 만일 이 말을 한 뒤 추태를 보이지만 않았더라도 ''반도_역사상_군주_역대급_명대사'' 로 두고두고 회자되었을 명언 이다. 그런데……




8월. 대장군(大將軍) 유비(柳庇)를 원나라에 보내 원군(援軍)을 요청하는 한편 또 적을 피해 강화도(江華島)로 가겠다고 보고하게 했다.

10월. 무술일. 부인과 노약자들을 강화도로 옮기는 한편 각 주·군에 지시해 산성(山城)과 바닷섬으로 입보(入保)하게 했다.

11월. 갑진일. 국사(國史)와 보문각(寶文閣)·비서시(秘書寺)의 전적들을 강화로 옮겼다. 정미일. 대장군 유비(柳庇)를 원나라에 보내 카다안[哈丹]이 쌍성(雙城)까지 들어왔다고 보고했다. 무신일. 궁인들을 강화로 이주시켰다. 경술일. 태조(太祖) 소상(塑像)을 강화로 옮겼다. 

12월. 합단의 군사 수만 명이 화주(和州)와 등주(登州 : 지금의 강원도 안변)를 함락시킨 후, 사람을 죽여 양식으로 삼고 부녀자들을 잡아 윤간한 다음 포를 떴다. 조정에서는 만호(萬戶) 인후(印侯)를 보내 수비하게 했다.

정해일. 왕이 강화도로 피난 가 선원사(禪源寺)에 있으면서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使司) 송분(宋玢)을 시켜 개경에 머물러 지키게 했다. ─ 이상 고려사 충렬왕16년



그렇게 패기 넘치는 일갈을 한 충렬왕은 사실계속 원나라에 구원병을 독촉했는데 여기까지는 현명한 처사라 할 수 있지만 동시에"나 강화도로 좀 도망가도 되느냐" 고 허락을 구하고, 왕실의 주요 살림을 강화도로 옮기며 도주할 준비를 완벽하게 끝마쳤다.


물론 국왕의 몽진은 경우에 따라 패망할 수 있는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선택이 되기도 하나, 본인이 내 뱉은 말도 있어 무안할 따름이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좀 쑥스러운 정도였을텐데……





2. "자, 너희 나라를 도와주러 오겠다! 그러니 우리를 좀 도와……응?"


元遣平章事闍梨帖木兒來 助討哈丹 闍梨帖木兒遣人來告曰 國王宜留京城 以犒吾軍

원나라에서 평장사 토리티무르를 보내 카다안을 토벌하는 일을 돕게 하였는데 토리티무르가 사람을 보내 말하길 "고려 왕은 수도에 머물며 우리 군사를 도와주어야 한다." 고 말했다.


충렬왕의 요청 등에 원나라 역시 도와줄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원나라에서 온 평장사는 자신들이 도와주러 오겠으니, 그 대신 충렬왕은 수도에 머물며 원나라 군사들의 움직임을 좀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을 했다. 이는 지원군을 보내는 입장에서는 요청할만한 조건이었으며, 고려 왕 입장에서도 지원군이 왔는데 체면상수도에서 위엄을 보여줄 만도 했다. 그러나 충렬왕은 심지어 원나라의 요청조차 무시하고(!) 그대로 강화도로 도주했다……





3. "병사들 먹일 쌀도 없는데 왜 고려 왕은 잔치나 벌이고 있는것인지?"



왕이 원나라 군대를 남도(藍島) 북교(北郊)에 나가 맞이하고 하서국왕(河西國王)·경중군왕(慶重郡王)·세도칸, 토리티무르, 평장(平章) 타추, 우승(右丞) 바이티무르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세도칸이 왕에게, 

“지금 강남(江南)에서 운송해오는 군량이 아직 도착하지 못했는데, 만약 적과 전투 중에 양식이 떨어지면 어찌하겠습니까?” 

하고는 또 찬성사(贊成事) 홍자번(洪子藩)더러, 

“당신은 상국(相國)으로 있으면서 국가 재정에 관한 일은 환히 알고 있을 터이니 필요할 때에는 반드시 지급해야 할거요.” 라고 윽박질렀다. 

왕이 난감해 하면서, “내고(內庫)에 비축해 둔 것으로 지급할 수 있을 것이오.”라고 무마시켰다. ─ 고려사 충렬왕 17년


이렇게 강화도서 전전긍긍하던 충렬왕은 마침내 원나라 구원병이 나타나자 강화도를 나와 원나라 군대를 맞이했다. 비록 왕이 몽진 중이라고 해도 지원병이 왔으니 이렇게 맞이하는것은 할만한 행동이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충렬왕의 태도가 너무 속보이는 짓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원병이 왔는데 찡찡하게 얼굴을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나, 충렬왕은 천하무적 원나라 병사들이 자신들 도우러 오자 심하게 안심을 했는지 바로 놀자판을 벌이려고 했다. 이 당시 적의 군세는 이미 한반도 안에서 횡행하고 백성들이 무참하게 살육을 당하던 양상이었는데, 이 모습을 본 세도칸은 "지금 군량도 부족한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 하고 일갈했다. 상황을 보자면 지원군을 맞이하는 군주가 놀자판을 벌이는 지원군에게 해야 할 일갈 같은데, 이 경우는 오히려 반대가 되어 꾸지람을 먹는 것이다.




4. "대체 왜 고려 왕은 적을 막을 생각이 없는지? 우리가 오히려 당혹스럽다."


무자일. 왕이 나이만다이 대왕(大王)과 타추 원수(元帥)를 산예(狻猊)에서 맞이하고 잔치를 베풀어 위로했다. 나이만다이가 왕에게, “왕께서도 친히 나가 적을 막는 게 어떨까요?”라고 권유했으나 왕이 늙고 병들어 곤란하다고 거절했다. 

나이만다이가, “적이 방 안까지 쳐들어왔는데 늙고 병들었다고 혼자 편안히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라고 힐난했으나 왕은 대꾸하지 않았다. 

기축일. 왕이 선원사(禪源寺)로 돌아오자 나이만다이가 사람을 보내 왕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게 했다. 

“어제는 외람되게도 왕림해서 저희들을 위로해 주셨으니 참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마는, 다만 적을 어떻게 막을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가버리셨으니 저는 실로 당혹스럽습니다. 이웃집에 불이 나도 쫓아가 구원하는 것이 마땅한 법인데 하물며 자기 집의 일인데 어찌 앉아서 구경만 할 수 있겠습니까?” 




카다안의 침입 당시 고려에 들어온 원나라의 지원 군세는 두개 군단이었다. 하나는 세도칸의 군단이었고, 또 하나는 나이만다이의 군단이었다. 세도칸을 밎아하다 꾸지람을 먹은 충렬왕은 가까운 시일에 다시 나이만다이를 맞이했고, 이 자리에서도 연회를 벌이며 먹고 마셨다. 나이만다이는 세도칸처럼 대놓고 판을 깨진 않았으나 적당히 충렬왕에게 "고려 왕도 나가서 친정을 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하고 권했다.


다른 나라의 장수가 이런 말을 하면 국왕은 오기로라도 친정할 의사를 보이고 신하들이 말려주는게 가장 모양새가 좋은 일일텐데, 충렬왕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고, 대단히 완곡하게 거부를 했다. 그 이유는 "나는 너무 늙고 병들어서 좀 곤란하다."는 것. 인후에게 사자후를 토하던 충렬왕의 모습을 보자면 당혹스러울 정도의 대답인 셈이다.


말을 꺼낸 나이만다이 조차 충렬왕이 이렇게 너무 속보이게 거절을 하자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아니, 지금 적군이 고려 안을 휘젓고 다니는데 명색이 고려 왕이라는 사람이 늙었다고 혼자 편하게 있어야 한다는게 말이나 되는 소리임?"하고 역정을 내었다. 보통 이 경우에 ''왕은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있었다.'' 라는 언급이 있는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일텐데, 얼굴에 철판을 깔아놓은 충렬왕은 그러지도 않았다. 충렬왕은 그냥 못 들은 척 했다.


결국 자리는 그런 식으로 끝났고, 나이만다이도 돌아갔다. 나이만다이는 다음날 사람을 보내 자신의 말을 전했다. 일단 나이만다이는 어제 충렬왕이 연 잔치에 대해서는 감사 인사를 하며 체면을 세워주었지만, "왜 놀기만 하다 들어가고 적을 막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안하셨는지?" 하고 너무나 당연한 부분을 따져물었다. 


지금 외적 때문에 고려의 북계 지역이 초토화가 될 판이고 참화가 수도 개경에도 미칠 지경인데, 그런 상황을 호전 시켜줄 지원군이 왔으면 밤을 세워서라도 적을 몰아낼 대전략을 논의하는게 일반적인 행보일 것이다. 그런데 충렬왕은 원나라 병사들이 왔으니 이제 뭐 다 되었다는 식으로 아예 잔치를 열고 놀기만 했지 원나라 장수를 보고도 "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하고 돌아간 것이다.


나이만다이는 이러한 충렬왕의 태도에 대해 "이웃집에 불이 나도 큰 일로 여기고 도와주는게 사람다운 짓인데, 하물며 자기 집안에서 소란이 펼쳐지는데 어쩌자고 앉아서 구경만 하는가." 하고 의문을 표시했다. 고려 왕이 외적을 무찌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남의 일에 끼어든 원나라 장수들이 심드렁하게 구경만 하는게 일반적인 상황일텐데 오히려 전혀 반대가 된 것이다.




5. 전투가 벌어지건 대승이 펼쳐지건 말건 나랑 아무 상관 없다


초하루 정유일. 카다안의 적도들이 연기현(燕岐縣)에 머물자 세도칸의 대군(大軍)과 우리 3군이 정좌산(正左山) 아래에서 협격해 적을 크게 패배시켰다. 기해일. 교주산성별감(交州山城別監)으로부터, 카다안 적도의 후미 3천 기(騎)가 철령(鐵嶺)을 넘어 교주에 진을 쳤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계묘일. 왕이 공주와 함께 장봉(長峯)의 새 궁궐에 행차해 잔치를 열었다. 

 갑진일. 카다안이 군대를 재편성해 다시 쳐들어와 아군과 마주 진을 쳤다. 아군이 습격해 대파하자 카다안과 라오데이 부자(父子)가 2천여 기(騎)를 이끌고 포위를 뚫고 도망쳤다. 




고려군 + 원나라 연합군은 충렬왕의 저런 태도와는 별개로 성실하게 작전에 나서기 시작한다. 연합군은 갑작스러운 기동을 통하여 카다안군을 크게 당혹시켰으며, 곧바로 교전을 벌여 ''연기전투''를 벌였고 여기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승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상황 자체는 아직 안심할 단계는 못 되었다. 카다안의 군대는 후방에서 계속해서 오고 있었으며, 카다안 자신도 군대를 재편해서 다시 고려군과 맞대결을 펼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장의 상황이 급박한 상황에서 충렬왕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보통 숨을 죽이며 승전을 기다라다가,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것이 일반적인 태도일 것이다. 그런데 충렬왕은 전장에서 무슨 일이 있건 내 알바 아니라는 듯 공주와 함께 새 궁궐에 놀러가 잔치를 열며 즐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 정도면 그냥 주색을 즐긴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그냥 고려 자체에 별 미련이나 관심이 없어 어찌되건 별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는 식으로 밖에 판단이 안되는 수준이다.



6. 졸렬갑


병오일. 세도칸도 사자를 보내 승전을 알리고, 또 적의 괴수가 도망쳤다고 알려왔다. 

정미일. 왕이 장전군(仗前軍)을 거느리고 강화에서 배를 타고 나와 적의 토벌에 나설 것이라고 널리 선포했다. 



카다안의 침입으로 계속적인 교전이 벌어졌으나 연달아 이어진 두 차례의 큰 전투에서 연합군은 승리를 거두어 결국 카다안의 침략군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군대를 지휘하던 고려 장수들과, 원나라 장수 세도칸도 승전 소식을 강화도로 이동해 있던 조정에 알렸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충렬왕은 믿을 수 없는 반응을 취한다. 여태까지의 다른 행동들은 그냥 개념이 없다는 식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이 마지막 부분은 졸렬하다는 것 밖에 표현이 불가능하다.


모든 전투가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충렬왕은 강화도에서 나오면서 "이제 과인이 직접 적을 토벌할 것이다!" 고 나라 방방곡곡에 널리 선포했다. 여태까지 원나라 장수들이 그렇게 친정을 권해도 몸이 아프다, 나는 너무 늙었다, 혹은 아예 귀머거리 신공을 발휘하며 회피하더니 막상 모든 전투가 다 끝나자 이제와서 "과인이 적을 토벌하러 나설 것이다." 고 하는 것이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모습이다.



7. 대조되는 쿨가이 원나라 장수들


계해일. 왕이 개경(開京)으로 돌아오자 세도칸이 공주를 알현하고 사로잡은 적도 남녀 5십 명과 좋은 말 다섯 필을 바쳤다. 세도칸의 군령이 엄격하였으므로 사졸들이 두려워한 나머지 통과하는 지역마다 추호도 사람을 해치거나 재물을 탈취하는 일이 없었다. 적이 연기(燕岐)에 진을 치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는 밤을 낮 삼아 행군해 불의의 기습을 가함으로써 두 번 다 적을 대파한 것은 모두 그의 힘이었다. 


을축일. 세도칸이 원나라로 귀환하려 하자 왕이 그를 맞아다가 잔치를 베풀려고 했지만 세도칸은, 명령을 받고 일을 마쳤으니 더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즉시 귀국길에 올랐다. 병인일. 나이만다이 등이 모두 귀환했다.



충렬왕이 자랑스레 친정을 선포하며 개경으로 요란하게 돌아오자, 적을 무지르고 돌아온 세도칸도 제국대장공주를 만나기 위해 개경에 왔다. 세도칸은 고려와 개인적인 관계가 없는 원나라 장수였지만 군령을 추상같이 집행하여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게 했고, 충렬왕이 술을 마시며 새 궁궐에서 놀고 있을때 밤낮으로 기동하여 카다안의 대군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다. 고려사 편찬자들마저 카다안의 침공을 막아낸 것은 오직 세도칸의 힘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 세도칸이 돌아가려 하자, 충렬왕은 뭐 그리 급하냐는듯 세도칸을 초대해서 술잔치를 벌이려 했다. 하지만 세도칸은 "일을 마쳤으니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다." 쿨가이스러운 대답과 함께 바로 군대를 이끌고 떠났다. 나이만다이도 하루만 머문 후 다음날 군대를 이끌고 떠났다.


물론 마지막에 연회를 베풀어주려고 한 제안 자체는 나쁜것이 아니지만, 전쟁 기간 중에 두 사람이 보여준 태도 차이를 생각하면 표정이 조금 샐쭉해질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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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10 23:38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이래서 절대왕정체제는 성공할 수 없나봅니다...
14/05/10 23:41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 글은 선추천 후감상이죠. 이제 읽으러 갑니다 크크
바스테트
14/05/11 00:00
수정 아이콘
이런 왕을 구국의 영웅으로 포장하고자 했던 모 드라마에 찬사를..(..)
내일은
14/05/11 00:27
수정 아이콘
그건 충혜왕. 뭐 충혜왕은 좀 색다른쪽으로 막장이긴 합니다.
바스테트
14/05/11 01:42
수정 아이콘
아 헷갈렸네요 크크크
저 신경쓰여요
14/05/11 00:01
수정 아이콘
충렬왕이 아니라 졸렬왕인 걸로 합시다
R.Oswalt
14/05/11 00:15
수정 아이콘
忠烈이 아니라 蟲劣왕으로!
14/05/11 00:10
수정 아이콘
이 글을 하지원과 진모가 싫어합니다
14/05/11 00:25
수정 아이콘
승만왕인가요
서쪽으로가자
14/05/11 00:44
수정 아이콘
졸렬하네요 크크
낭만토스
14/05/11 02:38
수정 아이콘
와 이놈은 진짜야
정말 졸렬하다구!
14/05/11 05:11
수정 아이콘
우와 이건 정말 충공깽이네요;;;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끵꺙까앙
14/05/11 06:15
수정 아이콘
완전 바보면 모르겠는데 나름 업적도 있는 친구라 참 애매한 위인있죠.
오크의심장
14/05/11 09:21
수정 아이콘
한국의 손제리인가요 크크크
14/05/11 09:52
수정 아이콘
왕이고 뭐고 적군들이 모가지를 날렸어야...
14/05/11 17:41
수정 아이콘
이런 충렬왕인데도 교과서 등에는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안향을 적극 밀어주는 등 유학을 널리 펼쳤으며
전민변정도감을 만드는 등 선정을 편 군주로 나와있죠....
The Silent Force
14/05/11 19:42
수정 아이콘
군주의 어두운 면을 얘기하는 것 자체를 자학사관으로 매도하고 있는 실정이라... '민족의 우수성과 영광이 드러나야 한다' 는 명제는 저런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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