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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2/27 05:06:04
Name 앓아누워
Subject [일반] 넌 여전히 예쁘구나.

커피숍에서 보잔다.
10분 일찍 도착했지만 들어가지않고 밖에서 기다렸다.

20분이 지났는데 안온다. 핸드폰 시계를 10초 단위로 쳐다본다. 밤 11시 40분.

"야 여기. 오랜만이네." 무뚝뚝하게 툭 던지는 첫마디.

시계에 시선이 머무는 동안 어느새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와 있었다.

100가지 동선과 90가지 선택지와 50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렸는데, 하나도 생각 안난다.

얼굴. 보자마자 명확해진다. 그래 원래 이렇게 이뻤었지.

3년만에 보는데도 피부, 화장법, 걸음걸이, 패션 스타일, 말투 뭐 하나 달라진 게 없다.

마치 마지막이었던 그 때, 바로 다음날 만난 것 처럼


첫 마디로 뭐가 적합할까, 몇십개는 연습했는데, 도무지 기억이 안난다.

"어...어어 일단 들어가...알까?"

말은 왜 더듬었을까?

"그래 할 말이라는게 뭐야?"  용건만 간단히 라는건가.

"어....일단 뭐 마실래?" 또 더듬는다.

"나 금방 들어가야돼서"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오른손에 든 케이크. 가족들 선물이라고.

"어 그래? 음... 그래. 하... 아.. 음...아. 졸업 했겠다?"

"아니 아직" 미소를 띈다. 그래 그 미소에 반한거야. 웃지마.

"아... 그래?"

"군대 갔다왔겠네?"

"아...지금 군인이야" 하고싶지 않은 말.

조금 의외라는 듯 한 표정. "좀 늦게 갔어" 머쓱하게 웃는다.

"계급이 뭔데? 머리 세운거 보니까 꿀빠는거같은데~"

"하...하하.."

눈을 쳐다 볼 수가 없다. 저 빛나는 눈동자는 도무지 쳐다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할 말은..?" 결국 제자리.

"음.....어... 그때. 우리가 왜 이렇게 됐는지...참... 알고 있었지?"

"뭐... 대충은 눈치 챘는데... 그때는 정말 부모님 기념일이어서 못 나간 거였고...그 이후로 연락이 없길래, 알았지.."

"그래 뭐. 알고있었겠지. 그 얘기 하려고... 좋아했었다고... 되게 많이."

"내가 너한테 여지를 많이 준 것 같은데..." 말 끝을 흐린다. 잘 이해가 안간다.

"그러게..." 대충 넘어간다.

어떤 감정이었는지 물었다.

"너 처럼 잘 맞는 사람도 없었고... 진짜 친한 단짝? 이랄까, 잃게 되는것 같아서 속상했지."

"그때 만났으면... "

"아마 거절했을거 같아..."

"그래"

"그떈 너무 어렸던 것 같아... 그렇게 겁쟁이처럼 비겁하게, 도망쳐서 끝내는건 정말 아니었는데... 그래서 이제 와서 이러고 있는거고"

"둘 다 너무 어렸지..."

"아무튼 내가 하고싶은말은 이거였어. 좋아했었다고, 그렇게 끝낸게 계속 걸려서, 거절을 당해도 얼굴 보고 당하려고 하하"

"우아..." 조금 당황한 것도 같다.
"괜히 미안하네...."

"뭐가 미안해 내가 미안하지..."

정적.

"그럼 이제 갈까.." 서둘러 일어난다.

정류장 까지 걷는다. 왜 이렇게 가까운 걸까. 정류장은...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그래서 여자친구는 좀 사귀었냐?" 지나가는 투로 묻는다.

"그쪽 못잊어서 못만났네요..." 아주 작게 혼잣말을 한다.

"하하하 무슨 말도안되는 소리야!" 농담으로 받는다.

"진짠데..." 다시한번 들릴 듯 말 듯 속삭인다.

"진짜로 미안해지잖아..." 안들렸을 줄 알았는데 들었나보다.

버스정류장에 도착도 하기 전에 버스가 와있다. 무자비한 하늘은 니들은 절대로 인연이 아니라고 말 하고 싶은가 보다.

"야 나 저거 타야돼. 간다~!"

"어....그래 조심히 가" 준비 했던 말 반의 반도 못했는데 뛰어가는 뒷 모습은 야속하기만 하다.

항상 헤어질 때면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 미소짓고, 뛰어와서 손 흔들던 모습은 당연히도 없다.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간다.

아쉬운 마음에 카톡을 날려본다.

'오늘 잠깐이지만 나와줘서 고마웠고 얼굴 봐서 좋았어. 연락은 하고살자 우리 크크'

'흐흐 그래 크크 잘들으가 잘자고 크크'

시계를 보니 25일 넘어가는 자정이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메리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항상 이렇다.
내 20대 초반을 바친 첫사랑은 그렇게 271번 버스를 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 갔다.







*엊그제 질문 게시판에 올렸던 3년전 여자 후기입니다 하하하하 너무 잊어버릴 수가 없어서요.

떠난 여자를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을 문학으로 승화 시키는 거라고 하길래 한번 써봤습니다 하하...

그럼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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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토스
13/12/27 05:06
수정 아이콘
271버스 반갑네요
앓아누워
13/12/27 05:08
수정 아이콘
저는 그동네 안살아서 처음봤습니다 하하. 근데 제가 항상 타는 172번을 거꾸로 한 버스길래 기억에 남더군요.
지니쏠
13/12/27 05:27
수정 아이콘
271 저도 종종 타는데! 흐흐. 앞으로 예쁜 여자 타나 주의깊게 훑어봐야겠어요. 저도 첫사랑이랑 만날때는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고 그렇더라고요. 정류장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 기다리는 중에 그녀가 탈 버스가 지나가면 어찌나 신나던지.. 괜히 근처에 볼일 있다며 그녀가 환승하는곳까지 따라 가기도 했고요. 전 여태 고백을 못했는데, 덕분에 얼마 전에도 만났어요. 결혼한다더라고요. 축가를 부탁하던데, 일단 거절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_<.. ^^... +_+.. 거의 20년을 좋아했는데 세상에나.
앓아누워
13/12/27 05:32
수정 아이콘
20년...후덜덜.. 제 얘기는 뭐 애들 장난이네요 그렇게 좋아하는 여자가 결혼한다니... 전 상상도 하기싫어요ㅠㅠ 지니쏠님도 꼭 좋은 여자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화이팅해요.
지니쏠
13/12/27 05:39
수정 아이콘
뭐 20년 내내 걔만 바라보고 산건 아니지만요. 흐흐흐. 힘내요!
현실의 현실
13/12/27 05:28
수정 아이콘
27사단에서 복무중인 남자와 만난 여자는 271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다그런거죠 뭐..나와보세요..좋은여자 많이 있더랍니다..
전 2337부대였던것같은데.78연대가 저게 맞나모르겠네요 흐흐..
명지령은 안녕하십니까?
앓아누워
13/12/27 05:35
수정 아이콘
하하 명지령 공사중이라고 불행중 다행으로 제 군생활동안은 안탔네요..그 죽음의 코스를 으아... 좋은여자 있겠죠? ㅠㅠ 지금은 절대로 못잊을 것 같아도 언젠간 잊겠죠? ㅠㅠ
연락은 하고살자고 했는데 연락 못할거 같아요....
현실의 현실
13/12/27 05:46
수정 아이콘
저도 군대가기전에 제가 좋아했고 가기전에는 그여자가 저에게 고백도했는데..군대가기직전이라 좋은인연유지한채 다음에
제대하고나서 연애하자는식으로 거절하고..편지교환하다가 어느날 너무 감정이 복받쳐서 고백했다가 벼락같이 차이고
벌써 십년째 좋은 오빠동생사이로 지내고있답니다.크크.좋은관계로 연락잘하시고 부담없이 잘대해주다보면
다음에 또 기회가 올수도있는거니깐 너무 마음쓰시지말고 다른 좋은여자도 많으니 주위를 둘러보시고 열심히 사세요.
앓아누워
13/12/27 05:51
수정 아이콘
그쵸...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려고 했는데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하나도 모르네요 항상... 그래봤자 복귀하면 또 유일한 소원이 전역하는게 되겠지만 크크 꼭 더 이쁘고 마음착한 여자 만나서 시원하게 잊을 날이 오길 바라고있습니다.
현실의 현실
13/12/27 05:54
수정 아이콘
저같은 경우에는 백일휴가나가서 전화했다가 앞으로 연락안했으면 좋겠어 크리티컬맞고 4박5일간 똥만 씹다가 부대복귀했고..
때마침 asp근무들어갈때라 수많은 별들과 별똥별 보면서 마음의 눈물을 뚝뚝 흘렸드랩죠..
막대놈 대리고 부분대장 선임이 근무교대하러 가는길에 서서는 아스팔트 바닥에 누우라더군요.
그러고선 둘이 누워서 하늘의 별을 보며 선임이 야 새꺄 휴가같다와서는 표정 드러운거보니깐 그 여자랑
잘 안된거같은데 저 떨어지는 별똥별 처럼 잡생각정리하고 정신차리라고 해주니깐 좀 기운이 나더군요.
그리곤 경계근무 끝나자마자 번개같은 중대전투사격 중대전술평가 rct 호국 유격을 3개월사이에 치루면서 어느덧 그녀는
머리속에서 사라지는 기적이 벌어지더군요. 따른 여자사람한테 신나게 전화해서는 히히덕거리는 절 발견했습니다.
하아..그게 언제야 도대체 크크..2005년 12월 초였던걸로 기억합니다.크크크8년전-0-
어쨋든 우선적으로 군생활 잘 마무리하시고 제대만 하면 좋은여자넘쳐나니 건강히 마무리 잘 하십시옹
Holy Cow!
13/12/27 07:06
수정 아이콘
2316부대였나..아무튼 77연대였는데.......명지령 빽치기 하던거 생각하면 아직도 토나오네요.
홍적령을 넘어 화악산 빽치기 하던거 생각하면 아직도 부들부들......
현실의 현실
13/12/27 07:08
수정 아이콘
크크..78연대 3대대는 후문쪽이라 대대장이 좀만 큰 훈련이 있으면 완전군장 명지령 돌파&빽치기로,.. 체력단련을..흑흑
앓아누워
13/12/27 12:00
수정 아이콘
크아... 화악산 빽치기... 저도 77연대입니다. 이기자는 참 더러운 산을 많이 타는거같아요 크크크 선배님들이 많아서 좋군요 :D
대한민국질럿
13/12/27 06:29
수정 아이콘
아..군대...
초식성육식동물
13/12/27 09:18
수정 아이콘
질게에서 봤었는데.. 결국 지르셨군요! 흑흑..
앓아누워
13/12/27 12:01
수정 아이콘
질렀습니다. 흑역사가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씁쓸하긴 매한가지네요,.....
앓아누워
13/12/27 12:02
수정 아이콘
이제 복귀합니다 하하하 댓글 주신 분들 모두 감사해요:)
*alchemist*
13/12/27 14:26
수정 아이콘
저에게는 서울 472버스가 굉장히 추억의 버스인데...

아무튼 뭐가 좋고 친하고 이래도 묘하게 안 맞는 인연은 계속 안맞더라구요
저도 거의 반년 넘게 썸타던-_-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초반에 사귀자고 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답이 없다가
최근 미래에 대한 불안 및 이런저런 이야기로 안된다고 에둘러 말한다는 걸 들었습니다만~
아직도 뭐 연락하고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아무튼 인연은 재미있는거 같아요..

복귀하셨겠네요. 군 생활 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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