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02/16 02:40:36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광해, 옥사 또 옥사
유영경이 제거된 상태, 하지만 그 때까지 광해군의 인사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당파에 가깝지만 그래도 각기 서인, 북인, 남인 쪽이라 할 이항복, 이덕형, 이원익을 정승에 앉혀 무게를 잡았고 유영경 쪽이었던 소북도 숙청하지 않았습니다. 실세는 중전의 오라비인 유희분, 소북이었죠. 소북에 유영경 쪽이었던 박승종 역시 중용됐구요. 여기에 정인홍, 이이첨 등 대북을 풀어주면서 이들도 본격적으로 가세하죠.

이런 상태에서 슬슬 당파간의 세력다툼이 시작되니, 대표적인 게 오현종사 문제였죠.

문묘는 공자를 받드는 사당으로 기타 이런저런 유교의 성인들이 배치돼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유교나라에서 그들의 뜻을 기린다는 것, 다시 말 해 그들의 학문과 사상이 곧 그 나라의 학문과 사상이 된다는 것이었죠.

사림은 여기에 자신들의 스승을 넣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의 사상이 조선의 사상이 되는 것이고 이게 그들의 정통성을 입증해 주는 거니까요. 시작은 조광조로 정몽주와 자신의 스승 김굉필을 넣으려 했고, 정몽주는 성공합니다. 김굉필에 대한 얘기는 연산군 부분에서 하도록 하죠.

선조 때 기대승은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넷을 문묘에 종사하자고 건의했고 이황과 서경덕이 죽으면서 그들 역시 포함됩니다. 여기서 서경덕은 빠지고 이황만 추가되면서 이른바 "오현종사" 운동이 시작됐죠. 선조는 영 아니라면서 거부합니다만 광해군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다만 급히 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했고, 이에 유생부터 대간, 대신들까지 힘을 합쳐 2년간의 논의 끝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 때가 광해군 3년(1611)이죠.

임란 직후 성리학이 조선의 중심이라는 것을 공고히함과 동시에 남인에게 많이 기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황이 마지막이었으니까요. 뭐 어쨌든 사림들의 숙원이 이루어졌으니 많이들 좋아했겠습니다만...

여기에 들고 일어난 것이 조식의 제자 정인홍입니다. 조식의 제자답게 좀 과격했죠 (...) 임란 때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고 서인과 남인을 강하게 탄핵하기도 했죠. 그래도 올곧은 인물이었기에 선조도 중용하려고 했구요. 하지만 다른 사람과 좀 안 맞아서 -_-; 선조 말 유영경을 탄핵하다 귀양갔고 광해군이 풀어줬지만 벼슬을 거부하고 산림으로 이후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나중의 송시열과 좀 비슷하죠.

이 때 그는 오현종사의 부당함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자신의 스승 조식과 그들을 비교합니다. 주로 둘 다 한 게 없고 사화 동안에도 딱히 나서지 않았고 남(... 그러니까 조식 -_-;)을 욕하기만 했다는 거였죠. 너무 길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다만 그에 대한 사관의 평 첫부분만 올릴게요.

"정인홍의 차자는 오로지 이언적과 이황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다. 아, 언적과 이황을 어찌 쉽게 공격할 수 있겠는가"

그다운 상소긴 했지만 너무 과격했습니다. 광해군도 그를 생각해 상소를 내리지 않았지만 이미 이걸 본 승정원부터 나섰고 그걸 들은 유생, 대간들이 벌떼같이 일어났죠. 성균관 유생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정인홍의 이름을 유적(儒籍)에서 지워버립니다. 간단히 이 놈은 유학자도 아니다고 해 버린 거죠. 광해군은 여기에 열 내고 유생들은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공부 안 하겠다고 나섰고, 겨우 말리면서 사건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습니다.

정인홍 답긴 하지만 너무 오버했다는 생각은 드네요. 당파간의 싸움이라고 얘기하긴 했지만 이이첨 등이 정인홍을 도우는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뭐 어쨌든 남인은 물론 사림들 대부분이 이를 인정했고 정인홍이 딴지 걸었고, 광해군이 그를 신뢰했다는 것 정도는 도출할 수 있겠죠.

영화 광해에서는 딱히 들고 올 일이 없어서 이걸 들고왔나 싶네요. 잘 나갔던 왕비의 오라비가 이름 바꾸고 고문당하고 (...)

여기서 서인 얘기도 해야겠네요. 서인은 이 때 힘이 약했습니다. 애초에 외척 심의겸을 옹호하는 쪽으로 시작했는지라 명확한 구심점이 없이 반동인 수준의 세력이었죠. 이러다 이이, 성흔 등 중립이 동인에 밀려나고 그 제자들이 서인이 되면서 제대로 당파가 돼 갔죠. 임란 때 의병으로 나섰다가 (조헌이 유명하죠) 다수가 전사하기도 했구요. 선조의 뜻이 서인을 떠나면서 선조 말부터 광해군 초는 주로 남북인 대결로 갔구요.

이 때도 서인 세력이 딱히 뭘 한 건 보이지 않습니다. 이황은 서인이 봐도 충분히 거유(巨儒, 뭘 생각한 겁니까!)였고 이에 함께 했겠죠. 이이는 아직 일렀구요.

다만 유생들에게서 유명한 이름을 볼 수 있으니 김육입니다. 이 때 그는 앞장서서 정인홍의 이름을 삭제했고 그 때문에 퇴교당합니다. 집에서 공부나 하다가 인조반정 후 다시 등용됐고, 이후 대동법의 확대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죠.

음... 배경 설명 정도인 오현종사에 참 많은 얘길 했네요. 그러고보니 다가오는 22일에는 이과 조식 얘기나 해 볼까요. 자 그럼 본편 들어갑니다.

------------------------------------------------------------------------

광해군 4년(1612) 2월 13일, 역모 보고가 들어옵니다. 황해도 봉산이었습니다.

그 장본인은 김제세, 그는 공문서를 위조해 군역을 피하려 했습니다. 엉터리로 만들었기에 '위조한 흔적이 현저해 의심의 여지가 없어서' 그를 붙잡아 추궁했죠. 근데 그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나옵니다.

"평산의 대장이 군내에서 반역을 일으키고자 우리 형제로 하여금 허실을 염탐하게 하였기 때문에 여기에 왔다."

당연히 난리가 났죠. 특히 대장이라고 나온 김백함은 바로 붙잡혀 들어왔구요. 이름이 나오는대로 굴비 엮이듯 줄줄이 들어왔습니다. 광해군은 이를 직접 심문(친국)했죠. 근데 시간이 가면서 좀 이상해졌죠. 일단 맨 처음 황해병사 유공량의 장계에서도 그런 부분이 나옵니다.

"그의 꾸며대는 말이 괴이하여 다시 국문을 가한즉 말이 혼란하여 믿을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17일, 황해 감사 윤훤과 병사 유공량은 각기 장계를 올리면서 공초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보고합니다.

"그자는 이미 어보와 인장을 위조하고 체포된 뒤 틀림없이 사형이 될 것임을 스스로 알고는 평소에 일면식이라도 있고 조금이라도 원한이 있는 사람은 다수 끌어대어 묻는 대로 대답하는 말들이 마치 미리 외워놓은 것처럼 하였습니다. 그러니 또 무어라 끌어댈지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중략) 앞뒤로 말을 바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풍병이 들었거나 정신나간 사람은 아닌 듯한데, 형제가 같은 말로 공초를 하였으니,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 윤훤

"역적이 끌어대는 숫자가 점점 많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지며 민간에서는 소요하여 뜻밖의 변란이 이로 말미암아 발생할 수도 있겠기에, 신의 어리석은 염려도 아울러 장계 중에 언급하였습니다. (중략) 심문하여 전일의 공초를 가지고 힐문하니 대개 앞뒤가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모든 역모를 꾀한 사실을 마치 심상한 보통 이야기 하듯 하고 두서 없고 혼란한 말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 유공량

현장에서 이들을 심문한 병사와 감사가 거짓을 말했다고 본 것이죠. 이 일을 듣고 이덕형이 급히 들어왔는데 그 역시 죄인들이 다 잡혔으니 더 일을 크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광해군은 그럴 생각이 없었죠.

그는 매일마다 친국했고, 붙잡혀 온 이들이 부정하면 곧바로 압슬형을 행합니다. 죄인을 무릎끓린 후 사금파리를 아래에 깔고 위에는 무거운 돌을 놓고 누르는 형벌입니다. 다리가 아예 나가는 거였죠. 그래서 가장 나중에 하는 형벌입니다만 여기서는 심심하면 나옵니다. 그렇게 죄인들은 압슬형을 당하면 이런저런 이름을 댔다가 다시 부정했고, 또 압슬형이 시작되면 다른 이름들을 끌어내는 식이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이름이 그냥 아무 사람일 수도 있고 자기가 원한이 있는 이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참 많은 사람들이 또 끌려옵니다.

대장이라는 김백함은 2월 EE일에 다른 이들과 함께 거열형에 처해지는데 이 때 이렇게 외쳤다고 하죠.

"나라가 나에게 속았다!"

이런 것을 근거로 박승종 등은 계축옥사 때 적당히 하라는 쪽으로 광해군에게 말합니다만, 광해군은 이렇게 답합니다.

"역적을 국문할 때에는 엄히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러다 보면 국맥(국격 (...))을 실제로 손상시키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옥사가 확대되는 가운데 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봉산 군수 신율의 지인 유팽석도 끌려옵니다. (유팽이라는 이름이 나와서였죠) 그는 황혁, 정경세 등의 대신부터 정인홍까지 끌어들입니다. 여기에 유영경의 자식들까지 끌어들였죠. 원수사이인 정인홍과 유영경이 같이 같이 역모를 꾸몄다는 거였습니다 (...) 광해군은 정인홍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붙잡았고, 황혁은 죽고 정경세는 파직됩니다.

실록의 사관평에서는 이게 신율이 꾸민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지인인 유팽석을 희생시켜 자기의 원수였던 황혁과 정경세를 숙청하려 했다는 거였죠. 애초에 그에 대한 평은 좋지 않습니다. 고문으로 더 큰 범죄를 만든다는 식으로요.

광해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죽은 이들의 처첩과 어린아이들까지 끌어들입니다. 보통 이들은 관비로 가지 고문을 하진 않았습니다만, 광해군은 이 모든 걸 명령했죠.

9월이 돼서야 이 모든 게 끝납니다. 이른바 봉산 옥사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철저히 광해군의 편을 들었던 것이 바로 이이첨이었죠.

참 이해하기 힘든 일이긴 합니다. 공문서 위조로 어차피 죽을 상황이었던 이들이 마구 댄 이름이 대규모 옥사로 번진 거니까요. 광해군은 친국을 거듭했고,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왕권 강화? 글쎄요...

뭐 어쨌든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긴 했습니다. 대북은 이를 유영경으로 연결했고, 유영경과 그의 심복들은 부관능지(시체를 능지처참하는 것)합니다. 대북이 이를 주도했고 어쨌든 유영경은 역적이었으니 소북은 물론 이덕형, 이항복까지 나서서 이걸 요구합니다. 임해군 얘기까지 다시 나왔구요.

이를 통해 신하들은 광해군에게 존호를 추상합니다. 살아있을 때 존호를 받은 왕은 얼마 안 됩니다. 역적의 범위가 얼마나 더 넓어질지 모르는 가운데서 충성경쟁을 한 것이죠. 그리고 광해군은 존호를 받은 대가로 네 가지 공신을 책봉합니다. 임란 때 분조를 따라다닌 이들, 임해군의 역모를 처리한 이들, 정인홍의 유영경 공격에 가담한 이들, 봉산옥사를 처리한 이들이었죠.

그 결과로 광해군의 입지가 더 좋아지긴 했습니다. 어쨌든 왕권의 상징이자 신하들의 충성경쟁인 존호를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더 큰 건 이이첨이 이끄는 대북의 입지가 더 강해졌다는 거겠죠. 이 옥사에서 광해군 편을 들며 주도한 것이 대북이었으니까요.

여기에 맛들린 건지 지인과 허위 역모를 꾸민다음 그 지인을 고발해버린 일이 벌어집니다. 안위라는 자였죠. 임해군이 잡힐 때 수문장이었던 김위를 본받은 거였습니다. 그가 임해군이 무기를 들고 갔다는 걸 고발했고, 원래라면 수문장이 막지 않은 거니 벌을 받아야 됨에도 상을 받습니다.

그러니 거짓 고변을 하더라도 상 받을 거라는 거였죠. 그래놓고 같이 꾸민 이를 같이 고발했구요. 그렇게 같이 의논해놓고 역모의 대상이 된 조극신, 그의 아비는 이 모든 것을 꾸민 일이라 자백하라고 합니다. 조극신은 이를 모두 자백했지만 광해군은 조극신은 유배보내놓고 안위는 집으로 보내줍니다. 거짓이라 해도 알리기만 하면 아무 죄를 묻지 않는다는 뜻이었죠.

모든 것이 정말 이상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광해군 5년, 1613년이 밝습니다.

--------------------------------------------------------------------------

4월 25일, 사건이 하나 보고됩니다.

"지난 달에 조령 길목에서 도적이 행상인을 죽이고 은자 수백 냥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적괴인 서얼 박응서는 도망갔고 도적 허홍인의 노비 덕남 등을 체포했는데, 형장을 한번 가하기도 전에 낱낱이 자복하였습니다."

이들의 고변으로 그 도적떼의 실체가 밝혀집니다.

"여주 강변으로 거처를 옮긴 뒤 각 집안을 합쳐 재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으므로 그 고을 사람들이 매우 이상하게 여겼는데, 양갑과 치의 등의 강도 사건이 드러나자 그들이 도적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 장본인은 서양갑을 중심으로 한 명문가의 자제들, 하지만 서자들이었습니다. 능력은 있었지만 하나같이 서자였죠. 집 하나에서 같이 살면서 도적질을 했구요. 그 집을 덮쳤을 때 박응서만 있었고, 형벌을 받기 전날 밤 뜬금 없는 말을 꺼냅니다.

"우리들은 천한 도적들이 아니다. 은화를 모아 무사들과 결탁한 다음 반역하려 하였다"

참 뜬금없는 말이긴 합니다만. 사관은 이이첨이 여기에 개입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위의 김위와 안위의 예처럼 고발만 하면 살 거라는 거였습니다.

박응서는 서양갑을 중심으로 서자들이 역모를 꾸몄고 도적질을 해 자금을 모은 후 무신들과 결탁하려 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300명을 모아 궁을 습격한 후 대비에게 수렴청정을 청한다고 했죠. 다만 아직 세력을 모으지 못 해 대비에게 알리지 못 했다고 합니다만... 이렇게 사건은 아주 커집니다.

서양갑을 비롯한 일당이 붙잡혔고, 그들의 가족도 나옵니다. 끝까지 부정하던 이들도 있지만 매는 이기지 못 했죠. 일당 중 하나인 심우영의 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고 이어 심우영이 입을 엽니다. 그리고 대장이었던 서양갑은 어미와 형이 죽자 마침내 입을 엽니다. 그 전날 이렇게 말 했다고 합니다.

"내가 앞으로 온 나라를 뒤흔들어 어미와 형의 원수를 갚겠다."

그는 박응서가 한 말들을 고치고 새로운 사실을 말합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김제남, 인목왕후의 아비였습니다.

또한 정협 역시 일을 키웁니다.

"제남이 말하기를 ‘만약 일이 벌어지게 되면 유교를 받든 사람들과 함께 의논해서 통해야 할 것이다. 역옥(逆獄)이 매번 일어날 때마다 인심이 떨어져 나가니 종사를 어떻게 안정시켜야 하겠는가?’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대군을 추대하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제남의 가족을 비롯한 서인들과 역모를 꾸몄다면서 수십명의 이름을 댔고, 모두 붙잡혀오게 됩니다.

이렇게 화살은 대비와 영창대군, 그리고 서인에게로 향했죠.

당연히 서인일 사관들은 그들은 단지 도적질을 했을 뿐 역모와는 상관없다고 주장합니다. 두 가지로 나뉘죠. 이이첨이 사주했거나 계속 터니 도적질로 죽는 게 아니라 반역자로 죽는 게 낫고 죽음에 대한 복수로 일을 더 키웠다는 쪽으로요. 지금 와서는 진실을 알 수 없을 겁니다. 서자들이 지들끼리 모여 살고 도적질을 한 걸 보면 의심스럽긴 하니까요. 하지만 정확히 광해군과 대북이 원하는 증언을 했다는 건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뭐 어찌됐든 그 목적이 복수라면 참 제대로 하긴 했네요.

그리고 이들과 친하게 지낸 아주 유명한 이가 하나 있었죠. 이건 맨 아래에서 다루겠습니다.

-------------------------------------------------------------------------------------

김제남의 가족들이 잡혀오고 여러 신하들은 물론 선조 대 중신들도 잡혀오는 상황, 여기서 또 하나의 증언이 나옵니다. 박동량이었죠. 이 노신들은 선조의 유언, 영창대군을 지켜달라는 말을 들은 이였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 역시 충격이었습니다.

"대군 궁방의 사람들은 선왕께서 병환에 시달리게 된 이유를 의인 왕후에게 돌리고 있다. 그리하여 수십여 명이 요망한 무당들과 함께 잇따라 유릉에 가서 저주하는 일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선조의 첫 왕비였던 의인왕후의 능에서 저주의 굿판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다만 사관은 그들이 저주한 게 의인왕후가 아닌 광해군의 어미인 공빈의 능에서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마저도 임해군이 노비들을 동원해 막아서 실제 하진 못 했다고 적고 있죠. 어찌됐든 뭔 일이 있었긴 했나 봅니다.

이 말로 인해 대비전의 궁녀들이 줄줄이 불려옵니다. 고문에 고문, 새로운 증언이 나왔고 그 증언에 따라 선조의 능까지 파보기도 했습니다. (증거가 발견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은 착착 진행돼 6월 1일에 김제남은 죽습니다.

"한마디 할 말이 있다!"

그의 유언이었죠. 이를 맡은 권진은 역적이 뭔 할말이 있냐고 그냥 사약을 먹였지만요.

역적의 수괴 김제남이 죽었습니다. 그 다음은 광해 대신에 왕으로 세우기로 한 이였죠. 영창대군이었습니다. 뭐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자기가 그럴 생각이 없다 해도 역적의 입에 올라온 왕족이면 죽어 마땅한 죄였죠. 광해군은 일단 한 번 빼긴 합니다.

"내가 불행하게도 이렇듯 전에 없던 변고를 만났는데, 후세에서 장차 나를 두고 뭐라고 하겠는가. 그대들은 이런 차자를 올리지 말아 나로 하여금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게끔 하라."

이를 막는 움직임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특히 강력히 나선 이가 있었으니 당시 전라 병사였고 나중에 신선이 되었다는 이였습니다. 곽재우였죠.

"지난 날 역적 이진(임해군)이 스스로 반역의 짓을 하였기 때문에 신 역시 소를 올려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의는 무슨 지각이 있기에 반역의 죄를 준단 말입니까. 온 조정의 사람들이 이의를 처벌하자고 떠들어대면서 전하를 불의에 빠뜨리고 있으므로 신은 감히 반열에 나가지 못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반대의견이 있긴 했지만 대세를 바꾸진 못 합니다. 영창대군은 결국 폐서인돼 강화도 교동으로 갔죠. 여기에 익숙한 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정포였죠. 그는 별장 홍유의에게 영창을 죽이자고 했지만 홍유의는 반대했고 교체됩니다. 그리고 강화부사 기협도 파직됐는데 그 이유는 이거였죠.

"강화 수령으로 있을 때에 역적 의를 비호하여 하지 않는 짓이 없었으며, 음식 공급을 그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었습니다."

광해군이 임해군, 영창대군을 직접 죽이라고 명령한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는 조선시대 전반에서 볼 수 있어요. 따지고보면 세조 역시 단종을 죽이라고 직접 명령한 건 없었죠.

임해군을 독단으로 죽인 자를 벌하지 않고 영창대군이 있는 그 곳에 배치됐으며, 영창에게 잘 대해준 부사 역시 갈렸습니다. 무서운, 혹은 안타까운 추측이 틀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내가 덕이 없어 이 고아로 하여금 섬에서 병으로 죽게 하였으니, 비통하기 그지없다. 장례를 치르는 일과 제물을 올리는 일을 본관으로 하여금 각별히 살펴서 치르게 하라. (중략) 이의의 장례를 대군의 예로 치르도록 하라."

광해 6년, 1614년 2월 10일의 일이었습니다. 그에게 먹을 것도 주지 않고 방에 가둔채 아궁이에 불을 때서 죽인 것... 유명한 얘기죠.

이렇게 1613년에 시작된 계축옥사는 어느 정도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이 해가 지나면서 너무나도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영창대군은 죽었지만 아직 목표는 하나 더 남아 있었습니다. 왕의 어미, 인목왕후였죠. 역모에 가담한 이상 아무리 어미라 해도 그냥 놔 둘 수 없는 일, 이이첨은 마지막 목표를 향해 질주합니다.

그래도 이 때쯤 가면 어느 정도 견제가 시작됩니다. 대북의 힘이 너무 커지면서 소북이 슬슬 대북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이게 이이첨이 폐모론을 더 미는 이유가 됐을 겁니다.

그리고 아직 진사, 유생이었던 이가 이이첨을 아주 강력하게 탄핵합니다. 다행히 목숨은 부지했고 귀양갑니다. 참 스펙타클한 인생의 시작이었죠. 송시열과 맞짱 뜬 걸로도 유명하구요. 그의 시에서는 그런 게 잘 안 느껴지긴 합니다만...

남인이었던 그의 이름은 윤선도였습니다.

한편 이이첨에게는 아주 강력한 행동대장이 나타납니다. 이후 그는 폐모론의 선봉으로 활동하죠.


그가 바로 허균입니다.

폐모론이 조선을 휩쓸면서 누구든 조정에 관련 있는 자들은 여기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이항복, 이원익도 다를 바 없었죠. (이덕형은 영창대군 처벌에 반대하다 파직, 실의 속에 죽습니다)

후... 이쯤되면 등장인물들은 다 나온 것 같군요. 아직 안 나온 건 반정세력 정도겠죠.

다음 편에서 폐모론을 다루면서 (부디) 끝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3/02/16 02:56
수정 아이콘
눈시님.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크크크.
눈시BBbr
13/02/16 03:08
수정 아이콘
허 빠르시네요. 어디 숨어있는 건가요 ( - -);
13/02/16 03:15
수정 아이콘
당당히 나서..기에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처자가 있는 마당이라 조용히 관조할 뿐입니다.

....절 찾지 마세요. +) 궁금해 하시긴....크크크크크.
사직동소뿡이
13/02/16 02:58
수정 아이콘
광해군의 이미지는 자신은 올바른 정치을 하고자 했으나 주변의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휘둘린, 힘이 없어서 안타까운 왕이었는데...
이렇게 보니 그냥 귀가 엄청 얇았나...? 싶기도 하네요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눈시BBbr
13/02/16 03:18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이미지랑은 다를수밖에 없죠 ^^;
광해군은 참 여러가지 이미지를 가진 왕이기도 하구요
강한의지
13/02/16 04:44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많은데 빠른 진행으로 인해 각 에피소드의 깊이나 연결고리가 전편에 비해 얇아 보이긴 하지만 중간중간 자세한 수식과 개연성이 따르는 소재의 흐름는 재미있어요.

천천히 내실있고 더 매력적인 다음 편 기대할게요.
천풍지기
13/02/16 05:20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평소 이런 역사 관련 글들을 좋아해서 늘 챙겨 보고 있습니다.^^
허균과 이이첨 관련 이야기 기대됩니다.
tannenbaum
13/02/16 06:29
수정 아이콘
오늘도 재미있는 이야기 즐거웠습니다

내용과는 별개로 어느날 신이 내앞에 나타나 조선시대 가장 평화로운 시절 왕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대도 단칼에 거절할랍니다

알면 알수록 왕으로 산다는게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더군요
어쩔수 없이 조선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면 동네 길목에 있는 주막의 주모가 왕보단 낫지 싶습니다
뜨와에므와
13/02/16 06:37
수정 아이콘
왕은 뭐 끔찍한거죠....
거의 평생을 궁에 갇혀사는거니 권력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일인지하 만인지상 이 천상천하 유아독존보다 100만배 행복한법...
조선은 결국 신하들의 나라니까요.
13/02/16 14:57
수정 아이콘
조선사에 대해 공부할 수록 조선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 상당히 많이 깨집니다.

그 중 하나가 조선은 신권이 강하고 왕권이 약했다는 것인데요.
정말 조선왕의 권한이 약했나? 하면 의외로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반정으로 왕이 되어 왕권이 약했다 보이는 중종... 그런데 중종에게 찍혀서 살아남은 신하는 하나도 없습니다.

조선 역사상 가장 허수아비 왕으로 보이던 경종.
그런데... 경종조차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조정의 유력 대신을 한 번에 날려먹을 수 있는 힘이 있었고요.

조선의 왕의 권한은 왕이 얼마만큼 쓰려느냐는 각오에 달린 문제지,
제도나 실제 권력 힘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보면 볼 수록 강하게 들어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왕의 한 마디에 귀양가고 사약먹어 죽은 시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신하들이 안 된다 압박해도 왕이 마음먹고 죽이려 들면 못죽일 인물은 아무도 없었죠.
역사 전체를 봐도 고려, 신라등과는 비교불가급으로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게 조선왕이었고
세계사를 통튼다 해도 명초기와 청초기 이외에 조선보다 강력한 왕권을 가진 국가가 있기나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13/02/16 15:11
수정 아이콘
그런 의미에서 왕을 제대로 견제할 거의 유일한 수단은 사관의 기록 뿐이지 않았나 싶어요.

연산군이 어떤 의미에서 참 큰일을 해준 게,
사초를 건들여버리고 조선사 최악의 왕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그 후대 왕들이 사초만큼은 어떻게 건들질 못했죠.

그런 전례가 있었기에 사초를 건드는 순간 난 연산군 수준의 왕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분명 존재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soleil79
13/02/16 06:50
수정 아이콘
생각보단 주도 면밀하다는 생각이 들지느않내요. 중립외교에 기타 다른 업적(?)으로 산당히 주도 면밀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위어분 말씀처럼 귀가 얇으신 느낌이. ㅠ ㅠ.
나이렁
13/02/16 08:53
수정 아이콘
자세히 알면 알수록 잼있네요
광해 제가 알던 거랑 많이 달라요 흐흐
담편이 넘넘 기대됩니다~~
Eternity
13/02/16 09:2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양대 조선 임금인 연산과 광해의 이야기를 해주시니 요즘 너무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참, 눈시님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즐겨 읽으시죠? 중간에 윤선도에 대해 언급하시는 부분에선 <조선왕조실록>이 떠오르네요 흐흐

그건 그렇고 글 중간에 이황이라는 거유(..)에 대해 언급하시는 부분에서, 눈시님 스스로에게(?) 호통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 저만의 착각이겠죠?
은하관제
13/02/16 10:0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광해군은 뭔가 참 미묘한 느낌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도 있지만 과도 있는데, 두가지 다 작은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잘한것만을 얘기하자니 못한 것도 분명 보이고... 까기 미묘합니다(?)
그래도 광해군이 정치관련하여 대신들과 두루두루 잘 다뤘다면 오지랖일진 모르지만 병자호란이라는 나라의 큰 일의 내용이 바뀌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Je ne sais quoi
13/02/16 11:07
수정 아이콘
역시 자세히 들어가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전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이 나오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13/02/16 11:18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꺄르르뭥미
13/02/16 11:34
수정 아이콘
... 이황은 서인이봐도 충분히 거유였군요...?!
13/02/16 20:32
수정 아이콘
잘봤습니다. 역시 이래서 뭐든지 제대로 기억하려면 많이 알아야 하는군요...
몰랐던 건 아니지만 광해군때의 옥사 및 여러 부분(특히 인목왕후와의 일)에서 광해군 본인의 지분이 많음을 더욱 더 느끼게 되네요.

다음편도 기대되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2939 [일반] 하느님의 나라 ⑫ 멸망이라는 길 [3] 후추통5408 13/03/30 5408 4
42440 [일반] 하느님의 나라 ③ 백련교 [3] 후추통6899 13/02/25 6899 1
42309 [일반] 광해, 옥사 또 옥사 [19] 눈시BBbr7976 13/02/16 7976 3
42305 [일반] 전무하고도 후무하도다. [43] 후추통10591 13/02/15 10591 5
42243 [일반] 박도무생 - 청와대 조직 개편안에 대한 우려 [17] 글곰4875 13/02/12 4875 0
41993 [일반] 오늘의 적, 내일의 적 (끝) 또다른 그러나 예측된 적 [6] 후추통6968 13/01/29 6968 1
41491 [일반] 오늘의 적, 내일의 적(외전) 반란군에 대처하는 손권의 정답 [7] 후추통6001 13/01/04 6001 0
41340 [일반] 폭군의 품격-충혜왕 [11] happyend8397 12/12/28 8397 4
41219 [일반] 동북공정의 시작, 연변정풍운동 [3] 후추통6727 12/12/22 6727 0
40246 [일반] 그호세(그들이 호족에 대처하는 자세)-빠진 부분 복구해서 보충했습니다; [11] 후추통4734 12/11/09 4734 1
40181 [일반] 화광, 적벽을 채우다 ④ 형주의 개와 돼지의 시간 [9] 후추통5317 12/11/07 5317 1
39957 [일반] 새로운 전쟁 - 3. 장진호 전투, 흥남 철수 [14] 눈시BBbr11125 12/10/28 11125 2
39937 [일반] [어제] 10.26 [7] 눈시BBbr6077 12/10/27 6077 0
39147 [일반] 당신이 좋아하는 삼국지 인물은 누구인가요? [112] 후추통8565 12/09/16 8565 0
39111 [일반] MBC 노조감시 목적 CCTV설치에 트로이의 목마 프로그램 설치까지... [36] rechtmacht4517 12/09/13 4517 2
39043 [일반] 제갈량 공명, 희대의 먼치킨. [335] 후추통20468 12/09/07 20468 9
38980 [일반] [영화공간] 잊을 수 없는 한국 멜로영화 속 명대사 [40] Eternity11115 12/09/02 11115 0
37833 [일반] 창군 - 폭풍 전야 1 [6] 눈시BBver.29071 12/06/23 9071 1
35552 [일반] 독재자의 십계명 [31] 영원한초보5580 12/02/26 5580 0
35412 [일반] 삼별초 - 2. 대탈출 [4] 눈시BBver.25167 12/02/19 5167 2
35327 [일반] 대몽항쟁 4부 - 완. 무신정권의 끝 [18] 눈시BBver.25726 12/02/14 5726 5
35251 [일반] 대몽항쟁 4부 - 2. 김준, 고종, 그리고 마지막 항쟁 [8] 눈시BBver.25061 12/02/10 5061 0
35234 [일반] 대몽항쟁 4부 끝과 시작 - 1. 최씨 정권의 끝 [4] 눈시BBver.24878 12/02/10 4878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