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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8/24 21:49:20
Name 킬리범
Subject [일반] 아버지와 마지막 악수를 하다..
먼저 이 글은 몇 년 전 모 사이트에 올린 적 이 있는 글임을 밝힙니다.

며칠 전 보잘 것 없는 제 글에 많은 분들이 관심과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신 덕분에 다른 글도 올려 보고픈 욕심이 났더랬습니다.
뭐 꼭 뒤늦은 휴가를 받아놓고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이러는 건 아..아닙니...모...여하튼..

마침 며칠 전이 아버님 기일이시기도 했고, 혹여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은 저처럼 뒤늦은 후회를 남기시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소회를 담은 글이라 반말체인 것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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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편이냐 하면 우리 아버지는 매우 무뚝뚝한 편이었다.

전형적인 이북사람 특유의 냉정하고 시니컬한 웃음을 지으시는 분이셨다.

하나뿐인 아들에게도 살갑게 대하기는 커녕 엄하기만 한 아버지셨고 어린 시절 나에게는 다만 어렵디 어려운 존재였을 뿐이었다.

언제였던가?..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실 날이었을 게다.

커다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나름대로는 긴장하며 학교 입구에서 들어가기를 주저하고 있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불쑥 손을 내미셨다.

무슨 뜻인지 몰라 동그랗게 눈을 뜨는 내게 아버지는 악수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다정한 말 한마디도, 어깨를 두드리는 격려의 표현도 없이 덥썩 손을 잡고 몇 차례 위아래로 흔드시고는 출근이 늦었다며 훌쩍 떠나셨다.

그것이 내가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을때 아버지 나름대로의 격려인 악수를 처음 받은 날이었다.

중학교 입학식때도, 고등학교 입학식때도 아버지는 늘 그렇듯이 별다른 말 없이 그저 악수만 해주고는 뒤돌아 가셨다.

몇 학년 때 였던가?.. 아마도 86아시안게임이 한창이던 때였으니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살면서 이렇다 할 말썽 없이 살아왔던 내가 가장 큰 사고를 친 것은...

친구와 어울려 당시 유행하던 등촌동에 있던 로라장에 놀러간 나는 우연찮게 또래의 여학생들과 어울리게 됐고 또 우연찮게 그 여학생들을 노리던 일단의 또래 녀석들과 시비를 벌이게 되었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던, 또 그게 사내다움이라고 생각하던 어설픈 철부지 녀석들은  주먹다짐을 벌였고 결국 파출소까지 끌려가게 되었다.

생전 싸움 한번 안했던 녀석이 친구들과 피투성이 얼굴로 파출소에 앉아있는 모습을 본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치도곤을 당하리라고 지레 짐작하고 잔뜩 주눅들어있던 나는 경찰들에게 연신 사과하고는 아무말 없이 나를 데리고 성큼성큼 걸어가던 아버지의 뒷등을 그저 헐레벌떡 따라가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이야기도, 할 행동도 없었다.

집까지의 꽤 긴 거리를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셨다.

1시간이 넘게 걸어가시면서 그저 아버지는 당신의 뒷 등 만을 내게 보이시고는 마냥 걷기만 하셨다.

이윽고 집 앞에 다 달은 아버지는 뒤로 돌아서시며 불쑥 손을 내미셨다.

역시 또 무슨 뜻일까 머뭇거리던 나의 손을 아버지는 힘 있게 쥐시며 '잘하라우..' 한마디만 던지시고는 또 앞서 걸어 올라가셨다.

왜였을까? 단단히 혼나리라 짐작하던 마음이 풀어져서 였을까?

열 입곱이나 먹은 까까머리 녀석은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눈물만 찔끔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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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선지원 후시험제로 시험제도가 바뀐 대학 입시 때도 잠이 덜 깬 대학교 정문 앞에서 아버지는 또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미셨고 힘차게 한번 흔들어 주신 다음 그대로 뒤돌아서셨다.

아버지 악수의 효험 때문일까?

나는 무사히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역시 아버지의 악수를 받고 떠나간 군대생활도 별 사고 없이 마치게 되었다.

나이 들어 입사시험을 보러 갈 때도, 결혼식을 올릴 때도 아버지는 흔한 격려의 말 한 마디없이 그저 손을 한번 잡고는 힘차게 한 두번 흔들어 주시기만 하셨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힘찬 격려의 몸짓이었고, 힘든 세상을 헤쳐 나갈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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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월이 흘러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 되었다.

어린 시절, 무뚝뚝한 아버지가 나름대로는 서운했던 나는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고 훌륭한 레슬링 파트너 노릇을 하다 마침내 학부형이 되게 되었다.

내 어린 시절 처럼 손수건을 가슴에 달지는 않았지만 개나리 같은 종이위에 자기 이름을 적은 이름표를 가슴에 부친 아이를 보며 왠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입학식을 하는 학교 정문 앞에서,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득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는 아래위로 흔드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뭔가 할 말은 많았는데, 늘 친구처럼 지내왔는데.. 막상 나는 아이와의 악수이외에는 이 녀석을 격려해줄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무슨 뜻인가 한참을 고개를 갸웃하던 아이는 이내 친구들이 모인 곳으로 뛰어 들어갔고 나는 문득 내 아버지를 떠올렸다.

"이런 뜻이었겠지요? 아버지?..."

왠지 모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내 아이에 대한 뿌듯함이 뒤섞여 복잡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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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작년부터였던가... 아버지는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하셨다.

연세가 있으시고 약주를 즐기시긴 했지만 한 번도 단정한 모습을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조금씩 사람 이름을 잊어버리고 계셨고, 어제 있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실수를 거듭하셨다.

볼일이 있어 나간 외출에서도 아버지는 집을 기억해내지 못하셨고 경찰차를 타고 돌아오는 일이 잦아지셨다.

형편상 부모님을 모시고 살지 못하는 나는 허리디스크로 고생하시는 어머님께 아버지를 맡겨놓는 일이 가슴 아팠고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알콜성 치매..' - 아버지의 병명이셨고 기저귀를 차는 여든의 노인을 수발하기에는 어머니의 건강과 나이가 이미 만만치 않았다.

2년여를 수발하시며 어머니는 점점 지쳐갔고 곁에서 힘이 되어드리지 못하는 내 가슴은 점점 타들어갔다.

최근 들어서는 내 이름 이외에는 누나의 이름도, 어머니의 이름도, 그처럼 예뻐하시던 손주의 이름도 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하셨고 그나마 당신의 아들을 고등학생으로 기억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남은 가족 모두를 힘들게 했다.

몇 주 전 아버지를 목욕시키던 어머니가 욕실에서 발을 헛디디신 이후에는 정식으로 노인 요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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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아버지를 요양시설로 모시는 날이 왔다.

이게 옳은 결정이라고 나를 달래면서도 가슴 한켠은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 탓에 무거워져만 갔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겨우 옮겨 아버지를 요양시설에 모시고 난 이후에 나는 가만히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이미 총기를 잃은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아버지는 앉아 계셨고 당신에게 일어난 지금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듯 하셨다.

'자주 올께요..' 겨우 그 한 마디를 던지고 힘겹게 돌아서는 나를 가만히 아버지가 부르셨다.

'동건아야..'

아버지는 조용히 손을 내미셨고 나는 겨우 그 가느다란 손을 잡았다.

가볍게 위아래로 조금 흔드시는 듯 하더니 아버지는 한마디를 던지셨다. '잘살라, 건강하게.. 여기 좋구마.. 친구도 있고..'


눈물이 흘러 아버지의 얼굴이 뿌옇게 보였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텐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나는 그저 앙상한 노인의 손을 힘있게 쥐어주는 것 말고는 달리 할일이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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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24 22:00
수정 아이콘
아버지와의 대화가 인사 하는것 빼고는 거의 없는 관계라서 그런지
( 사이가 안좋은건 아니고 저나 아버지나 무뚝뚝해서 )
악수 진짜 별거 아닌데 아버지와의 악수는 뭔가 있어요.
8년전 입대할때 아버지와 한 악수는 지금도 생생 하네요.
12/08/24 22:06
수정 아이콘
글쓰신 분보다 약간 어리지만 대충 비슷하게 따라가는 나이입니다. 그래서 더 와닿네요. 저는 아버지가 가끔 요리를 해주셨던 기억이 아마 평생 가지 싶습니다.
바람의 빛
12/08/24 22:15
수정 아이콘
정년퇴임을 하시고 나신 후 부터 웃음을 보여 주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눈물이 나네요...
감성적이지만감정적이
12/08/24 22:35
수정 아이콘
전형적인 경상도특유의 무뚝뚝한..항상 혼내시거나 약주하시며 이야기마무리지으질때면 악수로 마무리하시는..
올해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나네요.
여지껏실감못하고무덤덤해서 내가이상한가..했는데
갑자기 너무보고싶고 생각이나네요 [m]
sad_tears
12/08/24 22:53
수정 아이콘
마지막은 아니죠.

효도하세요
알카드
12/08/24 22:54
수정 아이콘
찡하네요...잘 읽었습니다.
Brave질럿
12/08/24 23:1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watervlue
12/08/24 23:27
수정 아이콘
조금전에 아버지랑 대화하다 말귀 잘 못 알아 들으셔서 짜증내고 왔는데 많이 뜨끔하네요.
최근 몇 년 사이 자꾸만 이해력이 떨어지고 깜빡하셔서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역정 내곤 하거든요.
마음으로는 연세 있으셔서 그러는 거 다 이해하는데
여러번 같은 말 반복하려니 참 귀찮았어요.
이 글 읽고 아차 싶기도 하고 자려고 누웠는데 아버지께 죄송스럽네요.
LionBlues
12/08/25 03:57
수정 아이콘
오늘 아버지가 퇴직하셨는데 복잡한 심경에 좋은글을 읽었네요.
내일 일가기 전에 아버지하고 악수 한번하고 가야겠습니다.
12/08/25 05:39
수정 아이콘
찡하네요. 아마 서른을 넘기신 분들의 아버지 세대는 감정 표현에 서투르시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등으로 쉽게 살가운 표현도 못하셨을 텐데, 그러한 아버지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더더욱 마음 한 구석이 찡합니다. 저도 20대까지는 아버지와 별로 대화도 하지 않고 가끔 하는 전화도 건성건성이었는데, 나이를 조금 더 먹으니 부모님을 비롯한 나의 가족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지더군요. 요즘은 아버지와 전화도 더 오래하고 말투도 더 친근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래서 더 좋으신지 웃으시기도 하고 좋은 말도 더 잘 해주시고 하시더군요. 혹시나 타지에 나와 살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부모님께 전화 더 자주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12/08/25 09:33
수정 아이콘
요즘 주말에 시간 나면 아버지와 함께 뒷산에 오릅니다...

나중에 언젠가 제가 혼자 있을 때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그 길이 참 많이 생각날 것 같아요...
발로테리의멘탈
12/08/25 11:15
수정 아이콘
찡합니다... 잘 읽었네요
RookieKid
12/08/26 14:0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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