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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6/16 12:00:20
Name 효우
Subject [일반] 오래된 편지 상자.
최근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신적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우표 값이 얼만지는 알고 계신가요.


벌써 2012년도 반이 넘어가고 있네요. 과거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편지쓰기는 일상 생활 중 누군가와의
유대감을 느끼고 유지시켜 주었고, 감사함을 마음 깊이 표현하기도 했지요. 잘못한 일에 대하여 반성과
앞으로의 계획을 쓰기도 했으며, 연인과의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귓속말과도 같았습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팬레터라는 것도 써보고, 각종 잡지나 팝스 잉글리시같은 외국어 교재 뒤에 실린
이성의 이름과 주소를 보고 무작정 설레이는 마음으로 펜팔을 건내보신 경험이 있으실겝니다.
나날이 편리해지고 발전하는 일상은 우리에게 늦음과 정(情), 일말의 실수, 아련함을 점차 멀어지게
하는듯 합니다. 요즘 누군가와 연락을 위해서는 카톡이니 휴대 전화를 이용하고, 연말 연하장을 쓰는
풍경은 이미 이메일 등으로 대체된지 오랩니다. 편리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릿함이 몰려오는 이유는
왜일까요.

오늘 아침부터 주말을 맞아 구석구석 청소를 하던 차 벌써 20년도 넘게 전에 받았던 편지들을 발견했습니다.
겉봉을 보고 '아, 이 친구와도 편지로 연락했었구나.' 하는 탄성을 자아내던 차 내용이 몹시도 궁금해져
읽어보았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당시엔 국민학교였습니다.) 서울로 전학을 간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였는데, 참으로 구구절절히 보고 싶어 하는 내용과 너와 함께 놀때가 너무 좋았다라고 하는 알게
모르게 아쉬워하는 내용들. 문득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르더군요. 이 친구는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방과 후 서로의 집에 가서 놀다가 저녁까지 먹고 가게끔 했던 친구의 어머니와 배를 타시던 아버지께서
가끔씩 큼지막한 꽃게가 가득든 상자를 내보이며, '가서 부모님 모시고 오너라. 꽃게 좀 드려야겠다.'
하셨던 말씀도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와 어머닌 편안히 잘 계신지요.

또 중학교 1학년 때 펜팔을 했던 여자애의 편지도 뜯어보았습니다. 과연! 10대 소녀의 순수함과 청아함이
물씬 풍겨나오는 유려한 필체하며,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 편지지를 접었던 방식. 내용 끄트머리에는
어떤 캐릭터를 묘사해놓은 것인지 귀엽게 생긴 여자애를 그려놓았더군요.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고
넘어갔을 법한 내용이 아닌 다른 것들에서도 묘한 감동을 불러냅니다. 읽다보니 저도 그때로 돌아간듯한
향수(노스텔지어라기보단 정서적 향수가 더 맞겠군요.)를 느끼게 합니다.

icq라는 메신져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온라인, 항상 같은 시간, 컴퓨터라는 제약을 풀어내고자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또 답장을 받고.
또 보내고. 시간과 공간, 언어마저 초월하여 서로의 나라 말을 배우기 위해 EMS로 사전을 보내기도
하고, 리에에게는 당시 한국에서 인기가 있었던 CD들을 보내고, 容露明에게는 그녀의 사진을 보고 그린
초상화를 보냈고, 루이즈 프로인필트에겐 SME에 취직하게 되어서 잘되었다. 일본은 한국과 아주
가까우므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보낸 편지들. 그리고 실제 만남.
지금과 같은 효과는 누릴수 없겠지만, 보내고 기다리며 느끼는 설렘, 도착하고 난 후 어떤 내용으로
답장을 쓸까하는 고민.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만남등.

군대에서 부모님께 보냈던 편지들.

박스 한 켠에 반듯하고 색바랜, 누렇지만 하얀 규격봉투들이 가지런히 각 잡고 누워있습니다. 군대에서
보냈던 저의 편지에 대한 부모님의 사연이 담긴 답장들. 겉봉에 일필휘지 휘갈긴 아버지의 필체에서
아버지의 내음을 맡습니다. 서체에서만으로도 느껴지는 당당함과 아버지의 거대한 벽. 하지만 지금 가끔
찾아뵙는 그분은 나약하고 작아졌습니다. 지금 내가 마치 군인이었던 시절로 돌어간듯 마냥 눈물이
흐릅니다. 엄하고 호되게 다그치셨지만, 어디 아픈덴 없는지 먼저 물으시고, 휴가때 집에 찾아가 인사를
드리면 '그래.' 한마디만 하시고 신문을 보셨던 당신이지만, 다음 휴가는 언제인지 기다린다고 물으시던
글들. 왜 나는 그분들의 말씀을 저버리기만 할까. 후회가 엄습합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지만, 30여년을 살아오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적이 없습니다.

단지, 집안 청소를 위해 우연히 발견한 상자에서 발견한 '오래된 편지' 로 인해 다시금 예전 친구들과의
소중했던 기억을 반추하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에 대한 나의 태도와 생각들을
많이 바꾸어야 하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가끔 드렸던 전화. 이제부터라도 자주하고 전화로는 힘든
생각들을 정리하는 내용은 편지를 써서 보내야겠습니다. 지금껏 용돈 몇 푼 쥐어드리고, 전화 몇 통 하는
것으로 자식된 도리를 다했다 생각했는데, 한참 멀었나봅니다.

부모님께 편지 한 통 써봅시다. 그리고 이 말도 꼭 넣으세요.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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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llOsisM
12/06/16 12:16
수정 아이콘
편지 쓰는 것도 받는 것도 정말 좋아합니다. 저에게도 편지 상자가 따로 있네요.
여자친구들이 유난히도 제 편지를 좋아했어요. 이쁘지도 않은 글씨로 길게도 썼죠. 정성스런 손편지는 진리입니다. 흐흐.
생각날때 마다 다시 읽어보곤 합니다. 헤어지면서 돌려받은 편지들을 다시 읽으며 가슴 아파하기도 하구요.
매일 하는 전화도 문자도 물론 좋지만, 진심이 담긴 편지 한장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처음 만난 날부터 매일매일 써내려 간 일기or편지 를 연습장 한 권 꽉 채워 시크하게 건네줬더니 펑펑 울던 여자친구가 생각나네요.
지금은... 뭐... 제 오래된 편지 상자에 고이 모셔두고 있습니다.
편지 쓰세요. 두번 쓰세요.
12/06/16 12:27
수정 아이콘
저도 어렸을때 편지쓰는걸 좋아했었어요.
아주 많은건 아니지만.. 그시절 받았던 편지들은 안 버리고 상자 하나에 잘 모셔놨지요.
가끔 꺼내서 열게되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밤새 읽어버립니다.
다시 볼때마다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며 왠지 기뻐져요.
알카즈네
12/06/16 12:41
수정 아이콘
군시절 당시 여자친구와 여자인 친구에게 징하게 편지를 쓰고 받아봤네요.
아마도 100통 이상 쓰고 150통 정도 받아본 거 같은데 이상하게 지금은 편지를 못 씁니다... 쓸말이 없어서...
현 여친님께는 편지를 받고 답장쓰는데 6개월이 걸리더라구요..;;
Bequette
12/06/16 21:48
수정 아이콘
손편지.. 좋지요 좋아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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