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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0 18:38
내일 4k 리마스터링 버전 보러 영화관 갑니다.
썸타고 있는 분께 이건 인류 문화유산급이니 반드시 보셔야 한다고 우겨놓았는데... 부디 만족하시면 좋겠네요 흐흐흐
25/09/20 22:16
지브리의 아기자기 예쁜 그림체를 기대하는 분은 실망하기도 하더군요. 멧돼지 눈꼽 때문에 불호라는 평도 봤습니다. 지브리 작품 중에 제일 잔인한 점도 호불호 요소라 이런 장면이 조금 있는 건 미리 말씀해주셔도 괜찮을 거 같네요.
25/09/20 20:04
어제 아내와 극장에서 다시 한번 봤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20번은 족히 본 듯 합니다...)
언제고 다시봐도 제게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 단연 최고의 작품입니다. 결국 세상에 절대악이나 절대선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펼쳐진 세상 내에서 각각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 협력이 발생하기도 하고 갈등이 발생하기도 할 뿐, 무작정 인간의 자연 파괴를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대 신을 찬양하는 것도 아닌, 자연을 파괴하지만 막상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나병 환자들을 거두어들여 함께 공존하는 마을의 묘사는 여전히 심오하며, 90년대 일본에서, 이상적인 여성 리더상을 보여주는 점이라던가, 사실 모노노케 히메는 이기적인 인간 부족들이 제물로 바친 아이였다는 점을 통해 비추는 인간의 이기심과 비겁함 등 생각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어제도 자기 전 누웠을 때 한참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25/09/20 20:48
그게 참 사람이 당연하게도 이분법 적으로 좋고 나쁠 수 없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그렇게 묘사하는 게 참 힘든 일이죠. 흐흐
+ 25/09/21 05:40
참 아이러니한게,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노노케 히메>를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은 그 후속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었고, 시간이 갈수록 평가가 깎이고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그 다음이죠. 사실상 <모노노케 히메>를 끝으로 은퇴도 생각할 정도였는데, 참 인생 몰라요.
글쓴이님 말씀대로 사슴신은 도교의 '무위자연', 스피노자의 '신 즉 자연'과 통하고, 사슴신 이외의 신들까지 포함하면 <모노노케 히메>는 범신론적인 사상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서 자연은 어떤 이유를 가지고 행하거나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그러한 존재이며, 따라서 선도 악도 없죠. 여기까지만 봐도 <모노노케 히메>가 얼마나 철저한 철학적 고찰 끝에 탄생한 작품인지 알 수 있습니다. 캐릭터, 서사, 심지어 대사까지 이러한 근본 철학에서 벗어나는 게 하나도 없어요. 미친 수준이죠. 그런데 이러한 철학은 허무주의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아무런 목적도 없고, 피조물에 무관심하다면, 이 세계와 우리는 뭐하러 존재하는 걸까요? <모노노케 히메>는 여기에 아주 원초적인 목적을 제시합니다. "살아라."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게 자연의 피조물인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인 셈이죠. 죽음을 찬미하는 성향을 보이는 일본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감독이 나왔다는 점도 참 아이러니합니다. 어쨌거나 "살아라."는 <모노노케 히메>가 지닌 철학의 결론이자 정수이며,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때부터 주구장창 풀어냈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생(生)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순위가 높은 가치인 셈이죠.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미야자키가 극혐하는 것 중에 하나가 '카미카제'일 겁니다. 애국을 생보다 높이 둔다는 건 미야자키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야자키가 연출하진 않았지만 <반딧불의 묘>를 두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비판이 있다는 게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 작품이 오히려 처절한 자기반성에 가깝다고 느껴지거든요. 일본은 진짜 중요한 것을 우선시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비극이며, 그 비극은 일본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말이죠. 이는 세이타의 행적만 봐도 느껴집니다. 극 중 내용만 따진다면 세이타의 결말은 자업자득에 가깝거든요. 아무튼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노노케 히메>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사세요. 생육하고 번성하세요. 그게 살아있는 존재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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