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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28 00:06
소설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서 통하는 자신만의 정의와 설정, 공식을 지루하고 와닿지 않는 비유로 최대한 길게 쓰려는 목적으로 쓴 글같다는 인상입니다
25/08/28 11:27
자유게시판 일기장은 아니긴한데 음 뭐랄까 일기같은 느낌도 들고. 뭐랄까 약간 기괴한 느낌이 듭니다.
이글만 봐도 의지를 분석하기 전에 공리가 뭔지 분석해야할 것 같은데. 남의 일기장에 딴지놓는것도 이상하고 하여간 기괴합니다.
25/08/28 12:41
의지가 공리라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네요. 공리와 의지가 무언가 공통점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셨을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 공통점을 중점으로 논리를 펼쳐나가야 될것 같거든요. 그런데 마치 의지와 공리가 비유가 아닌 동일한 개념인 것처럼, 공리에 적용되는 논리를 아무런 의심 없이 의지에도 적용시키는 지점이 의아합니다.
25/08/28 12:52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참이라 간주되는 걸 '공리'라 하죠. 공리는 증명된게 아닙니다. 간주된 것입니다. ... 의지는 공리입니다. 인간 정신에 있는 '공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리는 창조될 수 있습니다. 개인이 스스로 생성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의 공리를 스스로 창조하는 것입니다.’
→ 의지는 참이라 간주된 것. 스스로 참이라 간주할 수 있음. 이런 의미는 자연스럽게 추출되는 것 아닐까 싶었는데요. 명시적으로 쓰고 보충설명을 더 할 걸 그랬네요.
25/08/28 13:27
(수정됨) ‘공리에 따라 결과가 나오고 이에 모순이 없다. 의지에 따라 결과가 나오고 이에 모순이 없다.’ — 이것이 의지를 공리라 볼 수 있는 이유이고요. 다만 위에서 공리들끼리 충돌하는 경우를 이야기했죠. 그걸 근력, 체력, 맥락으로 다룰 수 있다고 했고요. 수학이나 물리학에서는 공리들끼리 충돌하면 안 되겠죠. 충돌하지 않게끔 공리 세트가 만들어져 있죠. 그러나 정신에 있어서 그리고 현실에 있어서 그렇지는 않은 거죠.
그리고 흔히 의지라 하면, 그 의지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면, 대개 그건 의지가 없다거나 의지가 약하다고 하죠. 즉 지속성이 필요해요. 길게 이어질수록 의지라 불릴 가능성이 큰 거죠. 장애물을 만나도 꺾이지 않고, 마모되지 않을 때 역시 의지라 불릴 가능성이 크겠고요. 매우 굶었을 때 먹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거예요. 그건 아마도 유전자로부터 비롯된 의지겠지요. 마찬가지로 집단적인 프로파간다로 세뇌되었을 때 그 의지는 외향적인 집단압력에 의한 거라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저는 이렇게 보거든요. 인간은 스스로 의지를 창조할 능력이 있고, 그건 유전자나 환경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요. 유전자와 환경만으로 의지가 만들어지고 우연과 함께 굴러가는 인생이라면, 그건 기계라 할 수 있겠죠. 인간이 기계가 아님을 수학적으로 설명해보라 할 때, 의지는 곧 공리이고, 그 공리를 스스로 창조할 수 있으니,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 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25/08/28 13:51
(수정됨) 의지가 참이라고 간주된 것이고 스스로 참이라 간주할수 있다는게 항상 맞는말인가요? 내 의지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알고보니 타인과 세상의 영향으로 인해 왜곡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그 의지를 변경하거나 파기하는 경우가 당장 떠오릅니다. 만약에 그런 것들을 진정한 의지로 치지 않고 지속적이고 스스로 창조한것만 의지라고 부르신다면, 그건 이미 사람들과 다른 제한적이고 개인적인 의미로써 "의지"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거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과연 언제까지나 지속될수 있고 온전히 나로 인해서 창조된 의지라는게 존재하긴 하는건가? 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공리라는건 수학적인 명제를 다루는 논리 시스템의 일환으로써 쓰이는것인데, 사람의 의지 및 그로부터 파생되는 생각과 행동의 관계들은 그런 시스템을 따라간다고 할 수 있나요? 따라간다고 하더라도 그게 의미있는 관점의 틀로써 작용할수가 있는건가요?
25/08/28 14:20
첫째로 의지는 유전자에 의한 의지도 의지죠. 이를테면 쇼펜하우어는 '아기에의 의지'를 이야기한 걸로 알아요. 어떤 비판의식도 없이, 문화에 의해 심어진 것도 의지죠. 의지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중 하나는 스스로 창조한 의지다. — 이렇게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둘째로 스스로 창조한 의지는 절대 불변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봐요. 바꿀 수 있죠. 그러나 자주 바꾸면, 그건 의지라 불리기 보다는, 의지가 약하다거나 의지가 없다거나, 혹은 변덕스럽다고 이야기되겠죠. 타인들도 그렇게 볼 것이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기 쉽겠죠. 그리고 위에 언급한 니체 초인사상이 바로, 공리를 바꾸는 것에 대한 것이거든요. 용 내지 마스터의 명령이 있죠. 그것이 기존 공리이죠. '너는 ~해야 한다.' '너는 이걸 ~이라 봐야 한다.' — 이를 거부하는게 사자 정신이고요. '나는 ~하겠다.' '나는 이걸 ~라 보겠다.' 사자를 그저 비판하는 정신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라 사자는 창조자이죠. 사자는 의지를 창조하는 정신이죠. 낙타 → 사자 → 아이 기본 단계로 이렇게 설정되어 있지만, 아이는 그 의지를 마치 놀이규칙처럼 사용하여, 놀이하는 정신이라 할 수 있겠고요. 그러나 놀다가 다시 의지를 바꿀 수도 있겠죠. 낙타 → 사자 → 아이 → 사자 의지를 추가하거나, 스스로 만든 의지를 파기하고, 새로운 의지를 만들 수 있겠죠. 꼭 스스로 창조한 의지만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고, 타인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놀이규칙을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겠고요. 니체는 흔히 파괴자라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고 그는 창조를 설명한 거라 봐요. 뿐만 아니라, 상당히 보수적인 면도 있어요. 그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걸 엿볼 수 있고요. 그는 먼저 천재들로부터 배워야 하다고 이야기했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떠들어대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걸로 기억해요. 천재들로부터 배운다는 건 낙타에 해당하겠죠. 천재들이 만들어놓은 공리에 일단 복종하는 거죠. 그 천재들이 사자 단계에서는, '마스터'라 불리면서 그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공리를 세울 수 있는 것이겠고요. 아인슈타인도 처음에는 뉴턴역학의 공리를 배우고 받아들였겠죠.
25/08/28 14:40
첫 질문에 대해 동의하신다면 공리와 정리라는 표현이 들어가야 할 당위나 이유가 있나요?
글의 주된 내용을 "사람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질 수 있어서 무기물과 구분되고, 그 의지는 체력의 한계나 주변 맥락에 따라서 발현이 안될수 있는데 따라서 의지 자체를 목적으로 따르는 힘이 중요할 수 있다" 로 정리해본다면 이건 어떤 말인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굳이 공리라는 개념이 끼어들 필요가 없죠. 이 글이 고유의 색채와 의미를 갖는건 의지를 "공리"와 같다고 말한 것일 텐데, 왜 그 표현이 들어갔는지 모르겠고, 의지가 공리라는 관점을 적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5/08/28 14:47
맞아요. '의지는 공리다' — 라는 건 다양한 관점 중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고, 그것이 과연 유용한지는 각자 경험과 시간이 증명해주지 않을까 싶네요.
25/08/28 14:44
나는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라고 보겠다. — 의지죠. 광속불변은 확실히 증명된 적이 없어요. 참이라 간주된 거죠. 그걸 참이라 간주할 때, 이론적으로 모순이 없고, 관측과 잘 맞으니, 과학자들이 널리 사용하고 널리 인정하게 된 거라 할 수 있겠죠. 그렇다고 참이라 확실히 증명된 건 아니죠. 공리와 전제는 참이라 간주된 거죠. 경험적으로 그 유용성이 증명된 거라 할 수는 있겠고요.
새로운 공리가 들어오면, 기존에 참이라 믿고 있던 것들과 충돌이 날 수 있고, 그렇다면 기존의 것이 거짓이라 인정하거나, 혹은 그 둘을 모두 참이게 하는 다른 조건들을 찾아야겠죠. 그 과정에서 의미를 바꿔야 할 수도 있겠고요. 인간 세상에서, 개인의 의지를 품은 경우도 마찬가지로, 세상과 충돌나기도 하고, 자기 자신과 충돌나기도 하죠. 예를 들어 이미 성인인 사람이 '나는 키가 20센티 더 크겠어!' — 라고 의지를 품는다면, 그 의지가 실현될지는 매우 의문스러운 것이겠죠. 생물학의 경험법칙과 싸우든, 물리학의 중력법칙과 싸우든, 혹은 그 국가의 법과 제도와 싸우든, 그 사회가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와 관습과 싸우든, 혹은 함께 지내는 타인의 의지와 싸우든, 혹은 자기 내면에 있는 욕구들과 싸우든, 혹은 단단히 자리잡힌 자신의 습관들과 싸우든, 그렇게 의지는 충돌나는 가운데, 삶이 진행되는 거라 할 수 있겠지요. 실현불가능한 허무맹랑한 의지가 있는가 하면, 실현 가능성이 높은 의지도 있을 것이고, 실현 여부가 불확실한 의지도 있겠고요.
25/08/28 15:03
방금 댓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존의 공리가 새로운 공리로 인해서 거짓이라고 인정되는 현상 자체가 "수학적인 의미로써의 공리"와 불일치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나머지 내용에는 대체적으로 공감이 되는데.. 여튼 저도 좀 날카롭게 반응해서 죄송스럽습니다
25/08/28 15:21
맞아요. 불일치하죠. 그런데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을 거예요. 공리는 신이 만든게 아니겠죠. 인간이 만들었겠죠. 이를테면 유클리드가 만들었죠. 그런데 유클리드가 기하학 공리를 완성하기 이전을 생각해볼 수 있을 거예요. 그는 이런저런 공리 세트를 궁리해봤을 거라 생각해요. 어떤 공리를 추가했더니, 기존 공리를 어긴다는 걸 알게 되었겠죠. 그러면 그 두 공리 중 택하는 과정이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부족한 공리가 무엇이 있을지를 떠올리는 과정이 있었겠죠.
기본적으로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고 봐요. 수재는 프로게이머이고, 천재는 프로그래머다. — 프로그래머는 게임의 규칙을 바꿔놓는 사람이죠. 수학도 마찬가지로, 기존 공리들하에서 문제를 푸는 사람이 있고, 공리들을 새롭게 설정해보는 사람이 있겠죠. 아마도 옥스포드 수학과 학생들은, 프로그래머로서 많은 생각과 토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고요. 그와 달리, IMO 국제 올림피아드 대회는, 프로게이머들의 대회라 할 수 있겠죠. '기존의 공리가 새로운 공리로 인해서 거짓이라고 인정되는 현상' — 이것은 프로그래머 관점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거짓이 되어서 바꿔야 할 수도 있겠고, 거짓은 아니지만 효과상 그리 좋지 않을 수도 있겠죠. 이를테면 게임 밸런스가 안 맞는 거죠. 다른 쪽에서 밸런스를 조정할 수 있겠고요.
25/08/28 15:25
그리고 말씀주신 의문은, 자연스럽게 제기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무언가 관심이 있으시니, 이렇게 시간 내셔서 질문도 해주신 거라 생각하고요. 그점 고맙게 생각해요. 축구장에서 어깨싸움은 자연스러운 거죠. 어깨 조금 부딪힌 것에 불과한 것이니, 마음 쓰지 마시고 다음에도 질문주세요.
25/08/28 14:27
근대유럽의 뉴턴 이후, 혹은 빠르면 데카르트 이후, 철학자들은 공리계에 의한 기계론적 사고를 염두에 두면서 생각해왔을 거라 추측해요. 그걸로 설명되지 않는게 있다고 주장하려면, 3가지가 들어와야 하는 것이겠죠. 목적론적 사고가 들어오거나, 인간은 공리를 수정할 능력이 있다고 보거나, 혹은 미적 현상으로 인간을 보호해야하는 것이겠죠. 기계론적 사고로부터요.
25/08/28 15:11
이쯤돼면 뭔가 그동안에 써왔던 내용들을 기초부터 쌓아올려서 하나의 저서를 써야 할 상황까지 온 것 같습니다.
개별적이면서도 복잡한 담론들을 자신만의 용어로 글을 쓰고 계시는데, 그동안 쓰신 글들만 모아도 하나의 책이 될 분량에 가깝거든요. 니체가 그랬던 것 처럼 "존재"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하고, 그 위로 하나하나 쌓아올려야 할 듯한 느낌이네요.
25/08/28 15:29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주로 기초적인 것들을 이야기한 것이고, 핵심적인 것은 말하지 않았어요. 경쟁자가 알아서는 안 되거든요. 그 핵심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또는 그 핵심을 보조해야 하는 것들을 이야기한 거죠. 농담섞어 말씀드리자면, 경쟁자는 외국 사람이지만, PGR에 적는 순간, 미국 사람도 ・ 영국 사람도 ・ 중국 사람도 다 알게 될 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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