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 인간 심리를 알아야 합니다. 실용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 심리는 기본적으로 2가지를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는 이해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자존감입니다.
타인의 이해관계와 타인의 자존감을 살피면, 개인의 선택을 해석하거나 예측할 수 있고, 이로써 인간들로 이뤄진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심리만 알아서는 안 되고, 경제나 기술이나 지리 등 알아야 할게 많고, 심리도 그밖에 알아야 할게 많지만, 실용적 관점에서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이해관계와 자존감입니다. — 자존감도 이해관계의 일종이라 볼 수 있지만, 특별히 중요하고 자칫 간과하기 쉽기 때문에 따로 함께 떠올리는게 좋다고 봅니다.
자존감에 대한 총론을 이 글에 쓸 수는 없고, 각론 하나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건 바로 정신승리입니다. 인간은 정신승리를 하며 삽니다. 정신승리는 안 좋은 거라 느껴지지만, 실은 그건 자연스러운 거라 봅니다. 인간은 자아가 있고, 자아를 질서잡아야 합니다. 그 질서가 붕괴되는 걸 막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정신승리가 필요합니다. 인간이 항상 유연하게 자신을 바꿔나가길 기대하는 건 무리한 거라 봅니다. 기본이 정신승리이고, 그러나 때로는 자기극복도 있을 것입니다.
정신승리는 이 정도면 평범한 거다 — 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반면에 이건 좀 심하다 — 싶은 것들도 있습니다. 과도한 정신승리는 아마도 자아의 취약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상황이 열악해서 그런 경우도 있겠고, 성격적인 특이성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신승리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많은 경우 평범한 것이며, 그러나 예외적으로 병적인 경우도 있다 —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정신승리에 관용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나 자신도 잘 들여다보면,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경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또는 이거 혹시 내가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라고 의심이 가는 경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내 안에도 정신승리가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 타인의 정신승리에도 관용을 갖기가 더 수월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관용을 넘어서 — 배려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예의라 하면, 어떤 눈에 보이는 형식적 행동을 떠올리게 되지만, 타인의 정신승리를 돕는게 예의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너무 과도하면 곤란할 것입니다. 그건 아부이거나, 기만적인 것이 되기 쉽겠죠. 그러나 어느 정도는 예의이고, 배려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정신승리를 돕는게, 잘못된 거라 생각해선 곤란하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각자 정신승리를 하는게 자연스러운 것이듯, 사람들의 정신승리를 돕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치면 병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는 지나치면 악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사회가 인문학적 소양이 높아진다면 — 더욱 세련된 예의를 갖게 될 것이고 — 그것의 구성성분 중 하나가 타인의 정신승리를 돕는 것일 겁니다. 인간 심리를 더 잘 이해하고, 그 구체적 개인을 더 잘 이해하면, 정신승리를 더욱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훌륭한 문학작품을 읽으면 점점 더 잘 하게 될 것이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그의 마음을 읽으면 점점 더 잘하게 될 것입니다.
즉 정신승리를 조금이라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면, 타인의 심리를 살피게 될 것입니다. 정신승리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 타인의 심리와는 무관하게 말과 행동을 하게 되기 쉬울 것입니다. 정신승리를 긍정하는 것은 —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력 증가로 이어지기 쉬운 거라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력이 뛰어난 사회가 — 더 좋은 서비스기업을 만들 가능성이 큰 거라 봅니다.
중진국일 때에는 그것의 영향이 적었더라도, 선진국으로서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결국 인간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품질의 서비스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래야 제조업도 영업이익을 늘릴 수 있습니다. 결국 가격은 사람들의 구매행위로 결정되는 것이고, 그것에 심리가 작용합니다. 구매는 물리적으로 결정되는게 아니라, 심리적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가격을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기술력은 동등한 것 같은데, 영업이익은 몇 배로 벌어가는 선진국 기업은 인간을 더 잘 이해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오직 사실이 중요하다.' — 이러한 과학주의로 생각하면 — 정신승리에는 거짓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 그로인해 정신승리는 허용되어서는 안 되며 — 타인에게도 심지어 나 자신도 결코 정신승리를 하면 안 되는 것이고 — 그걸 하면 혐오스러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리주의로 생각해봅시다. 정신승리를 기본적으로 긍정하되 과도한 건 경계하는 사회가 더 풍요롭고 화목할까요, 아니면 정신승리를 혐오하고 타인의 정신적 주관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사회가 더 풍요롭고 화목할까요?
❖ 동기부여
이것도 객관적인 사실을 중시하는 과학주의에 반하는 것인데, 동기부여입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동기부여의 기준점 설정을 실용적 관점에서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울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핫포인트를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 움직여봐야 어차피 똑같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생이 있는데 평균 40점입니다. 그 학생이 공부하지 않는 이유는 어차피 공부해서 45점 맞아도, 사람들이 비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동기부여가 잘못 설정되어있음을 가리킬 것입니다. 게임 커뮤니티이니, 게임에 비유해보겠습니다. 이게 만약 게임이라면, 그 게임은 망했을 것입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 게임을 이 따위로 만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초보자인데 — 해도 욕 먹고 안 해도 욕 먹으면 — 그냥 안 하겠죠. 게임 접을 것입니다.
체중도 마찬가지인데, 몸무게가 어느 이상 높아지면, 이제 3kg이 더 늘어나든 더 줄어들든, 별 차이를 모르게 됩니다. 그러면 동기부여가 잘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편한대로, 막 먹게 됩니다. 운동도 안 합니다. 운동하나 안하나 똑같으니까요. 그런데 눈에 보이고 몸으로 느껴지는 이 차이 둔감성도 문제이지만, 더 문제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 안 먹고 참아도 삐딱하게 보고, 운동을 했는데도 삐딱하게 보면, 그냥 속편히 마음대로 먹고 운동도 안 하게 되기 쉬울 것입니다.
각각 따로 적어야 할 두 주제 — 동기부여와 정신승리를, 한 글에 함께 담아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타인의 동기부여에 유리하게끔 피드백을 해줘야 합니다. 그 피드백에 일종의 '정신승리를 도와줌'이 들어있을 것입니다.
의지나 신뢰가 약한 경우에는 — 단기적으로 달성 가능한 것에 평가를 높여줘야 합니다. 강한 의지가 있다면야, 장기적으로 달성 가능한 높은 목표를 향해 가치를 잔뜩 부여하는게 좋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장기적 목표달성에 신뢰가 있다면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의지도 없고 신뢰도 없는데, 많은 시간과 많은 정성이 필요한 장기적 목표에만 가치를 크게 두고, 그 과정은 평평한 것으로 설정해서는 곤란합니다.
가치를 둬서 도파민이 쏟아질 만한 지점을 '핫 포인트 Hot Point'라 불러보겠습니다. 의지나 신뢰가 약하면, 작은 거라도 가까운 지점에 핫포인트를 둬야 합니다. 의지와 신뢰가 강하다면, 먼 곳에 강렬한 핫포인트를 두어도 좋습니다.
그런데 장기적 세팅을 할 때에도 — 정말 저 의지와 신뢰가 굳건한지가 문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도 다시 정신승리가 들어와줘야 합니다.
사람이 아직 목표달성을 하지도 못했는데도, 과정 중에 동기부여를 계속해서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목표를 향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나아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그건 뭐죠? — 정신승리겠지요.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 자신을 대단하다고 해야지 — 뭐 해댄 것도 없으면서, 훌륭하다고 그러니 — 그 중 상당수는 정신승리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단기적인 행동에 정신승리가 아이템처럼 놓여져 있을 때, 그게 바로 심리적인 게이피케이션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임이란 동기부여에 고도로 최적화된 것이라 봅니다. 게임 제작은 자율도가 매우 높죠. 물리적 제약,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났으며, 다양한 수단들을 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기부여에 유리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게임과 유사하게 만들어주는 것, Gamification하는 것 — 그게 바로 정신승리일 것입니다.
물론 이건 그저 정당하게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이지, 정신승리는 아니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으나, 아마 대개는 정신승리가 함께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사람들은 정신승리가 포함되어 있어야 동기부여에 더욱 최적화될 것입니다.
이는 '책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임이라 하면 어떤 도덕적 문제이고, 당위라 생각이 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고, 책임에는 효용이 있으며, 그 효용을 위해서 실리적으로 책임을 짊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그 책임이 자아를 내러티브하게 될 텐데, 그 자아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순간, 그것이 아케이드 게임에서 코인 얻는 것처럼 동기부여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에따라 정신이 고양되고 그런 행위가 강화되는 것입니다. — 나의 동기부여에 유리한 책임이 무엇일까? — 이렇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책임이란 사회적 약속하에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작심에 의해 결정되는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즐거워졌으면 좋겠다. — 이를 위해 내가 무언가 도움이 되어야겠다.' — 이 마음이 커진 순간, 그게 바로 책임이 됩니다. 이 모임의 분위기는 내가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동기부여에 유리한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리하면, 그 책임을 가방속에 넣고 짊어지면 됩니다. 그것이 언듯 손해처럼 생각되지만, 장기적으로 커다란 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과정 중의 행복에도 유리합니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 — 이러고 책을 읽으면, 책도 더 잘 읽히고, 읽는 동안 정신적 방향도 더 건강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재미도 높아집니다. 나만 잘 살면 되지 뭐 — 이러고 책을 읽으면 동기부여에 불리합니다. 발전 즉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필요하고, 실력을 높이는데 무엇이 더 유리한지 판단해야 합니다. 때로는 타인 또는 사회에 이로움을 주겠다는 의지 — 책임이 실력을 키우는데 유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 성격에 따라서는, 특히 더 그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책임을 짊어질 때, 남달리 파워업이 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기 자신을 내러티브하고서,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핫포인트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과정을 놓고, 행동을 하면 뜨거워지고,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식어야 합니다. 그리고 의미해석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원래 과정이란 것은 눈에 잘 보이게 서서히 상승하는게 아닐 수 있습니다. 과정이 잘 눈에 안 보일 수도 있고, 눈에 잘 보이지만 운에 의해서 오락가락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때 그걸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동기부여는 달라질 것입니다. 운에 의해 오락가락할 때, 쉽게 좌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부를 했는데 40점을 45점으로 만든게 아니라 오히려 38점이 되었다고 해봅시다. 나는 해도 안 되는 인간이구만 — 이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평소 거칠게 말하던 사람이, 이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름 궁리해서 말을 했는데, 오히려 더 안 좋은 일이 생길 때, 의지는 휘발되고 도로 돌아가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반응이란 것은 상황적인 운에 의해 오락가락하기도 하고, 또한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는 것도 실력이 필요한 거라, 실력을 키우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미해석을 — 어차피 나는 안 된다고 그냥 편하게 하자 — 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의 불쾌감을 일으키는 말습관으로 돌아갈 것이고, 평생 그러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심지어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좋게 말하니까 안 듣는구만. 역시 안 좋게 말해야해!' — 그런데 좋은 말의 반대말은 — 더 좋은 말입니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 심리라는 것은 자신에게 형성된 습관 따라서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자신에게 형성된 실력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 쓰는 정신적 도구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익숙한 것 ・ 잘하는 것을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몰아세우기를 잘 하니, 몰아세우기를 자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협박하고 윽박질러서 원하는 대로 이뤄지게 만드는 걸 잘하니, 협박하고 윽박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남탓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니, 남탓에 몰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 게임에 비유하자면, 레벨업된 무기와 방어구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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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승리를 긍정하고, 동기부여를 잘 설계해야 합니다. 게임에 비유했지만 — 인간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는 부분이 상당하다고 봅니다. 발전적인 욕구를 갖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가급적 명랑한 태도를 갖는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 '정, 한, 흥'이라 하죠. 흥은 명랑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에게는 명랑함의 문화적 유전자가 있다고 봅니다.
혼문이 열린 것인지, 오늘날 우울과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서로 혐오하며 싸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렇습니다. 만약 혼문이 있다면 그건 무당이 만든게 아니라, '흥'이 만들었을 것입니다. 암울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명랑함을 잃지 않고 기운을 돋우는 정서와 문화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정신승리를 긍정해야 합니다. 타인의 정신승리를 도와야 합니다. — 그것이 흥을 돋우는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과도한게 문제일 뿐, 정신승리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정신승리는 거짓된 것이고 악귀같은 거라 생각해선 곤란합니다. 예전에 '중간자'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아마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던 도중에 적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주인공 루미는 인간과 악령의 혼혈로 나오죠. 데몬 잡는 사냥꾼인데, 피부에 악령의 무늬가 나타나기에, 옷으로 가려 숨기고 아이돌을 하고 있는 설정입니다.
그런 것과 유사한 거라 봅니다. 인간의 정신승리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흔한 것이고 자주 일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걸 부정하고 없는 걸로 생각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기 쉬울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없는 걸로 생각되니, 타인을 보고서는 관용이 없고 쉽게 혐오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승리를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으니, 타인의 심리를 진정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틀을 짜서 이에 귀속시키고, 섣불리 판단하고 단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타인을 가급적 나쁘게 해석하는 것, 타인을 가급적 멍청하다 해석하는 것 — 그런 활동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자꾸 하다보니, 그런 쪽으로 실력이 쌓이고, 그 실력에 맞게 중독된 활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타인을 나쁘게 해석하고 타인을 멍청하게 해석하는게 — 자신의 정신승리를 위한 활동일 수 있음을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신승리를 부정했기 때문이죠.
심지어 이는 정반대의 활동인 —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사랑을 어떤 우상화 — Idolization — 이런 식으로 가게 될 경우에 처음에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가 이에 부합하지 않는 걸 보게 될 수 있습니다. 환상이 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그 환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신적 움직임이 일어나고, 그것은 도덕으로 환원될 수 있습니다. 즉 내 환상에 맞게끔 행동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나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 이렇게 혼문이 열리고, 사랑이 도덕이 됩니다.
사람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을까요? — 저는 이렇게 봅니다.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고 정신승리가 있다는 걸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정신승리를 긍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타인의 정신승리를 조금 돕는 것이, 오히려 예의이고 배려라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은 완벽하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하는게 아니라,
인간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신승리라는 불완전성까지도 긍정되어야 합니다.
부정하면 그늘지고
그늘지면 병이 드는 법이죠.
정신승리를 긍정할 때, 오히려 불건강한 정신승리가 줄어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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