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간 중에서 다섯째 무(戊)까지 살펴보았고, 여섯째 기(己)는 이미 그 전에 보았으므로 일곱째 별 경(庚)의 자원과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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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庚의 갑골문, 금문, 제 문자, 연 문자, 진(晉) 문자, 초 문자, 소전, 진 예서, 한나라 도장 문자, 후한 예서. 출처: 小學堂
지금의 庚은 집 엄(广)자 아래에 사람 인(人)과 돼지머리 계(彐)가 겹쳐 있는 듯한 모습으로, 갑골문에서 해서로 변할 때 크게 두 번 와전되었다. 한 번은 전국시대 문자에서 소전으로 넘어갈 때로, 그 전까지는 쓸 용(用) 위에 장식품이 붙어 있는 모양인데 소전에서는 양 손을 나타내는 廾 사이에 방패 간(干)이 끼어 들어간 형태가 되었다. 전국시대 문자에 있는 用 모양을 왼쪽, 가운데, 오른쪽으로 쪼개면 소전처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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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문자에서 소전으로 와전되는 과정.
그 다음으로는 예서에서 해서로 넘어갈 때로, 예서에서는 干이나 丰 모양에 가까운 가운데 윗부분이 분리되어 广처럼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庚은 갑골문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모양이 되었다.
《설문해자》에서는 “서쪽 방위를 가리킨다. 가을에 만물이 익어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천간의 여섯째인 己를 이어, 사람의 배꼽을 뜻한다.”라고 풀이했다. 庚이란 한자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는 설명이 되어 있지 않다. 己를 설명할 때 천간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아서 보충하면, 허신은 己가 戊의 뒤를 이어 사람의 배를 가리킨다고 했다. 갑골문과 금문의 庚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는 아직 정해진 설이 없는데, 궈 모뤄(郭末若)는 손에 들고 흔드는 악기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 했고, 가오 헝(高亨)은 탈곡기의 모양을 본떴다고 했다.
서주 초기의 금문에서는 庚과 丙을 위아래로 합친 형태의 글자도 나타나는데, 소학당에서는 이 글자도 庚을 나타낸 것으로 보았다.
庚과 丙을 합친 글자. 출처: 小學堂
庚은 한어다공능자고에 따르면 천간 외에도 도로, 상환, 나이 등의 뜻으로 쓰였다. 국어사전에서도 庚을 나이의 뜻으로 쓰는 낱말들을 볼 수 있어서, 동갑을 뜻하는 동경(東庚), 나이를 뜻하는 연경(年庚), 나이를 높여 말하는 귀경(貴庚) 등이 있다. 동경의 풀이에서는 육십갑자가 같다는 뜻에서 같은 나이가 되었다고 하고 있다. 어문회에서 지정한 “별 경”이라는 훈음은 저녁에 서쪽 하늘에서 보이는 금성, 곧 태백성을 이 한자를 써서 장경(長庚)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새벽에 뜨는 금성과 저녁에 뜨는 금성을 구분해서 각각 계명성, 장경성이라고 한다. 또 《광운》에서는 음이 비슷한 고칠 경/다시 갱(更)의 뜻으로도 쓰일 수 있고, 보상하다는 뜻이 있다고도 했다.
별 경(庚, 경술국치(庚戌國恥), 장경(長庚: 태백성, 곧 서쪽 하늘에서 보이는 금성) 등. 어문회 3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庚+口(입 구)=唐(당나라/당황할 당): 당면(唐麵), 황당(荒唐) 등. 어문회 준3급
庚+貝(조개 패)=賡(이을 갱): 갱수(賡酬: 시나 노래를 서로 답하여 주고받음), 갱재(賡載: 임금이 지은 시에 답으로 노래나 시를 짓는 일) 등. 어문회 특급
庚+鳥(새 조)=鶊(꾀꼬리 경): 창경(鶬鶊/倉庚: 꾀꼬리) 등. 어문회 특급
唐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唐+土(흙 토)=塘(못 당): 당마(塘馬: 말 탄 척후), 인당수(印塘水) 등. 어문회 2급
唐+手(손 수)=搪(뻗을 당): 당망(搪網: 후릿그물), 당색(搪塞: 들어오지 못하도록 틈을 막음) 등. 인명용 한자
唐+水(물 수)=溏(진수렁 당): 당설(溏泄: 배가 부르고 아프며 설사가 나는 병, 오리 똥 같은 똥을 눔), 목당(鶩溏: 당설) 등. 인명용 한자
唐+玉(구슬 옥)=瑭(당무옥 당): 안당(安瑭: 조선 전기의 문신. 조광조를 옹호했다가 역모를 꾸몄다는 무고로 처형됨) 등. 인명용 한자
唐+米(쌀 미)=糖(엿 당): 당류(糖類), 과당(果糖) 등. 어문회 준3급
唐+艸(풀 초)=蓎(당몽/당의 당): 당의(蓎藙: 산초나무) 등. 급수 외 한자
唐+虫(벌레 훼)=螗(씽씽매미 당): 조당(蜩螗: 매미), 조당비갱(蜩螗沸羹: 매미가 울고 국이 끓듯 시끄러움) 등. 어문회 특급
唐+食(밥 식)=餹(엿 당): 이당(飴餹: 엿) 등. 인명용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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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에서 파생된 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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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唐의 갑골문, 제 문자, 진(晉) 문자, 진(秦) 문자, 고문, 소전, 전한 예서. 출처: 小學堂
당나라/당황할 당(唐)은 지금 글자에서도 살짝 보이지만 庚과 입 구(口)가 합한 글자로, 口가 뜻을 나타내고 庚이 소리를 나타낸다. 전국시대 문자에서는 庚 대신 볕 양(昜)이 소리를 나타내는 啺의 형태가 나타나며, 《설문해자》의 고문은 이 전국시대 문자를 따랐다. 위의 庚에서는 아래로 내리 그은 획이 해서에서 좌우로 갈라져 人처럼 되지만, 唐에서는 이 획이 갈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기 때문에 庚과 唐의 모양이 조금 달라지는 것이다.
《설문해자》에서는 “크게 말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한다. 《자원》에서는 크게 말하는 것에서 황당하다, 당황하다는 뜻이 인신되었다고 한다. 또 크게 말하는 것에서 광대하다, 광대하다는 것에서 공허하다, 공허하다는 뜻에서 못이라는 뜻이 인신되었고 나중에는 못 당(塘)이 파생되었다고 한다. 황당이라는 말은 《장자·천하》에서 장자의 학설을 설명할 때 처음 나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자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와 황당한 말들, 끝없는 언사들로, 때때로 제멋대로 하였으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고, 그것들을 이상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장자의 언어에는 논리와 이성을 뛰어넘은 비유와 직관이 가득하면서도 장자의 도를 표현하기 위해 정제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장자의 글은 일견 터무니없어 보이는 우화들로 가득하면서도, 곰곰히 생각해 보면 무시할 수 없는 생각거리를 우리에게 남겨 준다.
갑골문에서는 이 뜻으로 쓰이지 않았고, 상나라의 시조인 탕왕, 곧 전래문헌에서는 성탕(成湯)으로 부르는 인물을 가리키는 데 쓰여 성당(成唐)이라고 했다. 湯의 소리 부분은 昜이니, 唐의 다른 표현인 啺과도 구성 방식을 같이 한다.
이 한자는 산서성에 있던 옛 나라의 이름이기도 하다. 주나라 초기인 성왕 때에 반란을 일으켰다 진압되었다 멸망했고, 성왕은 자기 아우인 당숙우(唐叔虞)에게 이 옛 당나라 지역을 분봉했다. 당숙우란 칭호도 “당”(唐) 땅에 봉해진 “왕의 아우”[叔] “우”(虞)라는 뜻이다. 당숙우의 아들 진후섭(晉侯燮) 때에 도읍을 옛 당나라 땅에서 진수(晉水)라는 강 유역의 진(晉) 땅으로 옮겨, 이후로는 당 대신 진(晉)나라로 불렀다. 곧 춘추오패의 하나인 진나라의 기원은 이 당나라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산서성 일대를 진(晉)·당(唐)이라고 불렀고, 한국과 일본에서도 수용한 율령제 등 여러 가지로 동아시아 문명사를 새로 쓴 통일 왕조 당나라도 고조 이연이 수나라에서 산서성의 당국공(唐國公)에 봉해진 데에서 유래한다.
당나라의 그림자가 너무나도 짙기에, 한중일에서는 당나라가 망한 후에도 중국을 당이라고 부르는 습관이 생겼다. 심지어 조선 시대의 선비 최부가 남긴 표류기 《표해록》에서는 명나라에서도 민간에서는 자기 나라를 당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도 중국에서 들어온 물건에는 앞에 당 자를 붙인다. 이런 예 중의 하나가 당면으로, 조선 말기에 청나라에서 들어온 음식이기에 당면, 호면(胡麵)이라 했다. 오랑캐 호(胡) 역시 중국에서 들어온 물건 앞에 唐처럼 붙여 쓰는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당면이 한국 요리에 수용된 이후에 또 다른 형태의 당면이 중국에서 들어오면서 이 당면을 중국당면이라고 불러 기존 당면과 구별한다는 것이다. 어원으로 보면 “중국”“중국”면 또는 “당”“당”면이라고 부르는 거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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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續(賡)의 춘추 금문, 제 문자, 진(晉) 문자, 초 문자 1, 2, 전국 문자, 고문, 소전, 진(秦) 예서, 전한 예서. 출처: 小學堂
이을 갱(賡)은 《설문해자》에서는 이을 속(續)의 고문으로 조개 패(貝)와 庚의 뜻을 결합한 회의자라 했고, 소학당에서는 이에 따라 賡과 續을 한 글자로 수록했다. 위의 옛 문자 중 춘추 금문, 제 문자, 초 문자 1이 고문과 함께 賡에 해당한다. 그러나 운서에서는 賡의 음을 庚에서 온 “갱”으로만 수록하고 “속”으로는 싣지 않아 賡과 續을 다른 글자로 보았다. 이 때문에 《설문해자》의 주석에서는 賡이 續의 뜻이 있다는 선현들의 주석을 허신이 賡과 續을 같은 글자라고 잘못 받아들였다는 설이 있다. 賡이 형성자라면 조개 패(貝)가 뜻을 나타내고 庚이 소리를 나타내는 것인데, 어째서 貝가 잇다를 나타내는 데에 쓰이게 된 것일까?
唐에서는 庚의 세로 획이 갈라지지 않고 口와 붙었는데, 賡에서는 庚과 같은 형태로 貝 위에 놓인다.
賡의 뜻은 續과 같이 “잇다”로, 《상서·익직》에서 고요가 임금의 노래를 받아 답가를 부르는 것을 “이에 노래를 갱재하여 이르되”라고 표현하는 데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賡의 용례는 하나같이 다른 사람의 노래나 시를 이어 답가나 답시를 부르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요약
庚은 악기의 모양, 또는 탈곡기의 모습을 본떴다는 설이 있다.
庚에서 唐(당나라/당황할 당)·賡(이을 갱)·鶊(꾀꼬리 경)이 파생되었고, 唐에서 塘(못 당)·搪(뻗을 당)·溏(진수렁 당)·瑭(당무옥 당)·糖(엿 당)·蓎(당몽/당의 당)·螗(씽씽매미 당)·餹(엿 당)이 파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