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그룹 아이브(IVE)에는 특별한 멤버가 있다. 장원영이 그 주인공인데, 본투비 아이돌로 규정되기도 하고, 장카유설로 묶여 4세대 대표 비주얼로도 꼽힌다. 타고난 아이돌이자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임에 동의하지만, 내게 그녀가 특별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완전 럭키비키잖아~!”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난 인물은 아큐다. 루쉰의 『아Q정전』(1921)의 그, ‘정신승리’의 원본이 되는 인물.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었고, 비키는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실제로 한 팬이 원영적 사고가 정신승리와 비슷하여 우려가 된다는 걱정을 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장원영은 유사한 느낌은 있지만, 정신승리는 명백히 사실이 아닌 것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합리화하고 끝내지만, 자신은 ‘진정한 승리’에 이른다며 차이를 밝혔다. 긍정적 사고를 바탕으로 긍정적인 결과에 이르게 한다는 것인데, 아큐는 자신이 죽으러 가는 길에도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정신승리를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명백한 차이가 있다.
원영적 사고를 다뤘던 EBS 지식 채널e는 이를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결론적으로는 긍정적인 결과가 될 것이라는 초월적인 긍정적 사고”로 정의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세로토닌과 같은 호르몬을 분출하여 대사를 즐겁게 하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내게 원영적 사고가 놀라운 점은 그 즉각성이다. 스콘을 먹기 위해 줄을 서면서 제품을 고른다. 줄이 줄어들어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된다. 그런데 제기랄, 하필 내 앞에서 동이 난다. 스콘을 먹기 위해서 또 기다려야 한다. 이런 상황이 아니던가. 그런데 장원영은 이렇게 말한다. “앞의 사람이 제가 사려는 쇼콜라를 다 사가서 너무 럭키하게 제가 새로 갓 나온 빵을 받게 됐지 뭐예요?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야.”
물론 조금 더 기다리고 따뜻한 스콘을 먹는 게 결과적으로 나을 수 있다. 다만 놀라운 건 그 상황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런 사고를 즉각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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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성장기를 알 수는 없지만, 나의 성장기는 안다. 나는 나의 존재 증명을 죽음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믿던 유년기를 보냈고, 용기가 없어서 살아남았다. 그 시절, 대개의 집구석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고투해야 했으므로 자식들은 방목됐다. 하지만 사랑의 매는 꾸준하고 성실히 들렸는데, 우리 집에서 그 기준은 성적표의 숫자였다. 나의 현실과 어머니의 이상은 항상 괴리되었으므로, 사랑이 큰 만큼 상처가 됐다. 숫자로 증명하지 못했으므로, 나는 가치가 없었고, 그럴 리는 물론 없지만, 당시의 나는 죽고 싶었다. 죽어야만 내 이마에 박힌 숫자가 사라지고, 내 얼굴을 볼 것이라 믿었다. 엄마의 말은 하나 같이 틀린 것이 없었기에 출구도 없었다.
시대 보정을 해도, 엄마는 또래 보다 고강도의 일을 오래 해야 했고, 또래 보다 많은 가족을 챙겨야 했으며, 분수보다 뛰어난 자식을 둔 엄마들 속에 있었다. 엄마의 고생은 보상받지 못했고, “잠은 잘수록 는다.”라는 말을 허구한 날 들어도 나는 잠이 왔다. 더 큰 문제는 깨어 있을 때도 공부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여자라서 못 배웠는데, 너는 공부만 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안 되니?”
그렇게 안 됐다. 엄마가 고생할수록 나의 죄책감은 깊어졌고, 무엇이 열심히고, 최선이고, 노력인지 알 수 없게 됐다. 다행인 건, 용기가 없어서 다른 출구를 열지 못했다는 점이고, 이런 나라도 곁에 좋은 사람이 하나 둘 생겼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아보면 함께 혼이 나던 여동생이 큰 위로였던 듯하다.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엄마가 더 측은하게도 여겨진다. 그런 시절이 있었고, 그런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보내서인지 엄마는 아직도 가끔씩 그때 이야기를 한다. 나는 다 괜찮아졌지만 울던 아이만은 계속 숨어 있다. 괜찮다가도, 불쑥 나타나 지나친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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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영은 아이돌이 되기 위해 어린 나이 때부터 치열한 서바이벌을 해왔고, 데뷔 후에도 각종 루머와 악플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원영적 사고가 가능한 것일까? 어쩌면 그 치열함의 둥지가 그녀를 그렇게 길렀는지도 모르겠다. 바꿀 수 없는 조건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마음을 단련한 것이 아닐까. 그런 훈련의 결과가 럭키비키의 즉각성인 걸까?
뇌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에 따르면 뇌의 핵심 임무는 이성이 아니다. 감정도 아니며, 상상도 아니고, 창의성이나 공감도 아니다.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하는 것, 곧 알로스타시스를 해내는 것이다.”(『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31) 알로스타시스란 몸에서 뭔가 필요할 때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자동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을 뜻한다.(27)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계가 있기에 뇌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항상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다. 물론 이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예측에 실패하여 기존의 모델을 수정해야 할 때만 의식적 활동에 에너지를 쓴다. 그러니까 원영적 사고의 즉각성은 무의식적인 반응에 가까운 것으로 이것은 예측 모델이 그렇게 구축되어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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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측 모델은 럭키비키와 거리가 멀다. 숱한 호평이 있어도 거슬리는 지적 한 두 개를 잊지 못한다. 심지어는 꿈에도 나와서 나를 괴롭힌다. 여간해서는 새로운 도전을 피하게 하고 어지간히 파악이 되어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이 시작을 방해한다. 뭘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기진맥진하다. 이성적 사고는 물론이고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배럿에 따르면 감정 역시 뇌의 예측 대상 중 하나다. 감정에 대한 다양한 개념과 경험, 관점이 있다면 에너지를 덜 쓰고도 안정적이고 활력 있는 신체 유지가 가능해진다. 새로운 감정 개념은 여행, 산책, 독서, 영화 관람, 낯선 음식 체험하기 등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획득할 수 있으며, 사용 가능한 어휘가 섬세할수록 뇌는 더 정밀한 예측을 통해 신체 수요에 알맞게 예산을 조절할 수 있다.(『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336~337)
배럿은 감정 입자도를 향상하는 일과 함께 긍정적인 경험을 매일 기록해보길 권한다. “당신을 잠시라도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을 찾아보라. 긍정적인 것에 주목할 때마다 당신은 당신의 개념 체계를 비틀어 이런 긍정적인 사태에 관한 개념을 강화하고 세계에 대한 정신적 모형에서 이것이 두드러지도록 만든다. 긍정적인 경험을 글로 기록하면 더욱 좋다. 단어가 개념 발달을 촉진하고, 그러면 삶의 긍정적인 면을 가꾸는 새로운 순간들을 더 잘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341)
원영적 사고를 위해서는 나의 예측 모델을 교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매일 해보려고 한다. 럭키비키 연습을 해야 한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이젠 정말 할 것이다. 사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읽었던 반 년 전에도 했던 결심이지만, 회의를 걷어내고 지금 첫 글을 썼다. 매일은 힘들겠지만, 간헐적으로도 이어가보길 내 안의 아이에게 말해본다.
※ 참고자료
리사 펠드먼 배럿,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더퀘스트, 2021.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생각연구소, 2017.
EBS 지식 채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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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오히려 정신패배가 문제가 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나쁘게 생각할 줄 알아야 성숙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고 자기가 불행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너는 술이 쓰냐의 나라입니다. 술이 쓰면 안처먹으면 될 것을 그걸 달게 받을 줄 아는 것을 추구하는.. 정신패배 멘탈 매저키스트의 나라가 아닌가
하지만 롱이 결국 승리하듯 긍정적인 사고가 결국은 승리합니다. 숏 포지션은 롱을 지키기 위해서 취할때 의미가 있는 것이거든요.
우리 삶이 한 번인 이상 어떤 큰 손실도 그 한 번의 목숨이 끝이지만 반대로 기대 이익은 무한합니다.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려하는 것은 정신승리라기 보단 어차피 수학적으로도 그게 유리하고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을 오히려 불쌍하게 여기는? 대체 시대가 발전하고 소득이 늘어난들 당장 내가 불행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회가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당장 본문의 장원영의 예를 봐도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 팬이 걱정을 하는 이상한 상황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