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국문할 국(鞫)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살펴보았다. 이 한자의 왼쪽은 가죽 혁(革)이지만, 원래는 입 구(口)와 다행 행(幸)이 이 합쳐져 목에 칼을 걸고 있는 사람을 나타냈다. 이 다행 행(幸)은 고대의 형구를 본뜬 한자인 놀랄 녑(㚔)이 와전된 것이다. 鞫과 갑골문에서 비슷한 형태로 나오는 잡을 집(執)의 왼쪽에 있는 幸 역시 㚔이 와전된 것이다.
㚔은 현대에 전혀 쓰이지 않고, 원래는 㚔이 구성 요소로 들어가는 한자들도 執에서 보이듯이 㚔과 비슷하게 생긴 幸이 㚔을 대신해 쓰이고 있다. 소학당(小學堂) 사이트에서도 소전까지만 나올 뿐 예서가 없어 진·한대 이후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㚔의 갑골문 1, 2, 진(晉)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설문해자》에서는 㚔을 큰 대(大)와 찌를 임(????)의 뜻을 합친 회의자로 풀이하지만, 갑골문에서는 그 형태로 나오지 않는다. 둥줘빈(董作賓)이 이 갑골문자를 수갑을 본딴 상형자로 해석한 이래, 㚔은 포로의 자유를 구속하는 형구를 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서 '잡다'란 뜻이 인신되어, 갑골문에서 㚔은 執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왼쪽부터 執의 갑골문, 금문, 진(晉)계 문자, 초계 문자, 소전, 예서 1, 2. 출처: 小學堂
㚔이 들어가는 執의 갑골문은 사람에게 수갑을 채워 손을 묶은 모습이 적나라하다. 그리고 執의 변화를 통해 수갑 모양이 㚔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수갑으로 손이 묶인 사람은 손이 묶인 형태만 남아 손으로 무엇을 쥐고 있는 쥘 극(丮)으로 바뀌었다. 예서 1까지도 이 모양이 남아 있었으나, 예서 2로 가면서 㚔은 幸으로, 丮은 丸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르렀다.
《설문해자》에서는 비록 㚔의 원 뜻을 파악하지는 못했으나, 죄인을 수갑으로 묶어 사로잡아 간다는 執의 구성은 제대로 분석해냈으며, 또 㚔이 소리도 나타내는 회의 겸 형성자로 풀이했다.
㚔(놀랄 녑, 급수 외 한자)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㚔+丮(쥘 극)=執(잡을 집): 집중(執中), 고집(固執) 등. 어문회 준3급
執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執+土(흙 토)=墊(빠질 점): 각점(脚墊: 피부의 굳은살), 은점(隱墊: 밑의 물건이 위의 물건에 부딪혀 상함) 등. 어문회 특급
執+手(손 수)=摯(잡을 지): 간지(懇摯: 지성스럽고 참됨), 진지(眞摯) 등. 어문회 1급
執+糸(가는실 멱)=縶(말맬 칩): 유칩(幽縶: 붙잡혀 감옥에 갇힘) 등. 어문회 특급
執+虫(벌레 훼)=蟄(숨을 칩): 칩거(蟄居), 경칩(驚蟄) 등. 어문회 1급
執+衣(옷 의)=褺(겹옷 첩): 첩의(褺衣: 겹옷. 《부연일기》) 등. 인명용 한자
執+貝(조개 패)=贄(폐백 지): 지현(贄見: 선물을 들고 찾아뵘), 집지(執贄: 제자가 스승에게 처음 뵐 때 예폐로 경의를 보임) 등. 어문회 준특급
執+鳥(새 조)=鷙(맹금 지|의심할 질): 지용(鷙勇: 맹금과 같은 용기), 지조(鷙鳥: 맹금) 등. 인명용 한자
㚔에서 파생된 한자들.
㚔이 직접 소리를 나타내는 한자는 執뿐인데, 執이 소리를 나타내는 한자는 여럿 있다. ⿱口㚔이 직접 소리를 나타내는 한자는 거의 없고 이에 人이 결합한 ⿱竹⿰幸人이 소리를 나타내는 용도로 주로 쓰인 국문할 국(鞫) 계통 한자들과 비슷하다. 수갑{㚔}이나 목에 찬 칼{⿱口㚔}만으로는 부족해서, 그것을 차고 있는 포로까지 같이 나타낸 한자들(執, ⿱竹⿰幸人}이 널리 쓰였다는 점에서 적나라함과 오싹함이 느껴진다.
執에서 파생된 한자들 중에서도 오래된 한자로는 摯가 있다.
왼쪽부터 摯의 갑골문, 소전, 예서. 출처: 小學堂
원래 摯는 執과 같은 한자로, 손에 수갑을 차고 있는 사람을 잡아가는 손의 모양인 또 우(又)를 더해 뜻을 더 강화한 글자였다. 나중에 又가 손 수(手)로 바뀌고 執의 아래로 내려가 지금의 형태가 됐으며, 음도 달라졌다. 이 한자가 들어가는 낱말은 적으나, 일상 생활에서 자주 나오는 '진지하다'의 진지가 이 摯를 쓰기 때문에 의외로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한자다.
贄는 예물로 드리는 물건이니 얼핏 보면 오래된 한자일 것 같으나, 《설문해자》에도 나오지 않아 한대의 예서에 비로소 출현한다. 고대 중국의 예식을 다루는《주례》에 여섯 가지 폐백이라 해 '육지'가 나오는데, 지를 贄가 아니라 摯로 쓴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새로써 여섯 가지 폐백을 삼는데, 신하들의 등급에 따른다. 고는 가죽이나 비단을 잡고, 경은 염소를 잡고, 대부는 기러기를 잡고, 사는 꿩을 잡고, 서인은 집오리를 잡고, 공·상은 닭을 잡는다.”
고·경·대부·사·서인·공·상은 옛 중국의 신분을 나타내며, 이 신분에 따라 폐백의 등급이 정해진다. 그런데 이 폐백을 '잡는다'{執}라고 표현하고, 이에서 폐백을 지(摯)라고 표현했다. 이 지(摯)에서 손 수(手)가 재물을 나타내는 조개 패(貝)로 바뀐 것이 폐백 지(贄)다. 이렇게 바뀌는 과정으로 보아, 贄은 예물을 드리는 것이 마치 옛날 포로를 끌고 가서 희생 제물로 바치던 것과 같다고 생각해서 執을, 바치는 예물을 나타내는 貝를 구성 요소로 삼은 것 같다.
그 외에 갑골문에서 보이는 執이 들어가는 한자들도 있다.
위는 執을 구성 요소로 하는 갑골문의 한자들. 아래는 위를 해서로 바꾼 것. 출처: 小學堂
摯가 執에 잡아가는 손을 더해 뜻을 강화했듯이, 가장 왼쪽의 한자도 執에 묶어놓는 실을 더해 뜻을 강화한 것으로, 이 한자도 갑골문에서는 執으로 해석되며, 어쩌면 구성 요소가 같은 현재의 縶의 조상일지도 모른다. 나머지 두 한자는 들어 있는 갑골문의 결손이 심해 애석하게도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갑골문에서 執을 구성 요소로 하는 한자들이 현대에 계승되지 못하고 사라지고, 대신 후세에 따로 執을 활용한 한자들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변화무쌍함을 느낀다.
執은 힘, 지배를 뜻하는 티베트어 ཆབ (chab), 잡다를 뜻하는 크메르어 ចាប់ (cap)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 '집다'와 소리가 유사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縶은 포장하다를 뜻하는 원시중국티베트어 tip ~ tu(p/m) 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누에 잠(蠶)도 같은 근원으로 보인다.
㚔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수갑에 손이 묶인 포로를 잡아가는 것에서 비롯해, 잡다는 뜻을 지닌다.
執(잡을 집)은 丮(쥘 극)이 뜻을 나타내고 㚔이 소리를 나타내며, 㚔의 뜻을 따 포로를 수갑으로 손을 묶어 잡아가는 것을 뜻한다.
摯(잡을 지)는 手(손 수)가 뜻을 나타내고 執이 소리를 나타내며, 執의 뜻을 따 손으로 잡는 것을 뜻한다.
縶(말맬 칩)은 糸(가는실 멱)이 뜻을 나타내고 執이 소리를 나타내며, 執의 뜻을 따 실로 잡아매는 것을 뜻한다.
贄(폐백 지)는 貝(조개 패)가 뜻을 나타내고 執이 소리를 나타내며, 執의 뜻을 따 포로를 잡아 바치듯 바치는 폐백을 뜻한다.
鷙(맹금 지)는 鳥(새 조)가 뜻을 나타내고 執이 소리를 나타내며, 執의 뜻을 따 짐승을 잡아가는 맹금을 뜻한다.
이상의 관계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㚔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㚔(놀랄 녑)은 수갑의 모양을 본뜬 상형자다.
㚔에서 執(잡을 집)이 파생되었고, 執에서 墊(빠질 점)·摯(잡을 지)·縶(말맬 칩)·蟄(숨을 칩)·褺(겹옷 첩)·贄(폐백 지)鷙(맹금 지|의심할 질)가 파생되었다.
㚔은 파생된 한자들에 포로를 수갑에 차 잡아가듯 잡는다는 뜻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