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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9/17 23:38:57
Name 항정살
Subject [일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존중되고 어디서 확인 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볼 일을 오늘 겪었습니다.

명절이라 어제 서울에 계신 어머니를 보기 위해 집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라고 맛있는 음식들을 이것저것 많이 주시네요. 안 먹자니 서운해하실 거 같아서 참 많이도 먹었습니다. 차례는 작년 부터 안 지내기에 그렇게 하룻밤 자고 내일 볼일이 있어서 오전에 출발하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속이 좀 더부룩해서 아침을 거르려고 했는데, 세상에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주시네요.

음. 먹어야 하나 안 먹어야 되나 고민했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연기 맡으며 아들 좋아한다고 고기 구워주시는데 어떡합니까. 먹어야죠. 또 먹다 보니 잘 들어갑니다. 밥 한 공기와 삼겹살 반 근 정도로 먹었네요. 그렇게 식사를 하고 씻고 출발 전에 속을 비우는데, 찝찝하게 안 나오네요. 뭐 괜찮겠지 하고 차를 몰고 출발을 했습니다.

차에 어제 사둔 카페인 음료를 마시고 서울 시내에 막힌 도로 위에서 천천히 기어가고 있는데, 아뿔싸. 갑자기 급격한 변의가 찾아왔습니다. 도대체 갑자기 왜? 카페인 음료 때문인가? 삼겹살의 기름 때문인가? 너무 급해서 다리를 꼬아 가며 근처에 주유소가 있나 찾아 봤지만,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그냥 도로에 세울 수도 없고 5분 정도 참아 봤지만,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차를 근처 주택가에 세웠습니다.

글로브 박스에서 물티슈를 꺼내고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골프 연습장이 보입니다. 운동하는 곳이니 화장실은 있겠지 하고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정문이 잠겨있네요. 아.. 오늘 추석이었지.. 근데 주차장이 참 넓고 차도 없습니다. 건물 뒤에는 구석진 곳도 보입니다. 갑자기 인간이길 포기하고 바지를 내릴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아, 이건 아니지. 아니지.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뛰쳐나가 어디 문을 연 상가나 카페, 식당이 있는지 좁은 골목길을 찾아 해 메였습니다. 오전 10시 정도라 문 연 식당도 없네요. 하필 주택단지라 카페 같은 건 보이지도 않고 추석이라 대부분 작은 상가들은 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급기야 드는 생각은 아무 집이나 들어서 초인종 눌러 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 어쩌지. 어쩌지 차라리 아까 주차장에서 해결 할까 하는 후회도 살짝 듭니다. 이젠 안 되겠다 싶네요.

옛날 국산 특촬물 우레매에서 심형래가 에스퍼맨으로 변신하기 위해 사람 없는 곳에서 옆돌기해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사람이 없는 곳에서 바지를 내려 성인의 존엄성을 지켜야 하나 급한 마음이 들고 있는데 눈앞에 작은 슈퍼가 문을 열었네요. 급하게 뛰어갑니다.

'혹시 여기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사람이 측은했는지, 슈퍼 주인분은 옆에 화장실이 있으니 쓰라고 해주셨습니다. 배설, 배설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하고 분출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겁니다. 변기에서 화산 폭발하듯이 그것을 분출하니, 화장실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존엄성을 지키고 고마운 마음에 슈퍼에서 여러 물건을 사고 다시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다시금 사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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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같은
24/09/18 00:04
수정 아이콘
역시 PGR은 똥이죠.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셨네요!!!
항정살
24/09/18 17:32
수정 아이콘
진짜 하늘이 노랗더군요.
프뤼륑뤼륑
24/09/18 10:35
수정 아이콘
살아남으셨네요. 자랑스럽습니다!
항정살
24/09/18 17:32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호머심슨
24/09/18 10:57
수정 아이콘
해피엔딩과 인간의 존엄
항정살
24/09/18 17:32
수정 아이콘
몇 번이나 위기가 있었습니다.
디쿠아스점안액
24/09/18 12:12
수정 아이콘
명절에 맞는 흐뭇한 이야기네요 슈퍼 사장님 장사 번창하시길
항정살
24/09/18 17:33
수정 아이콘
번창하시길
안군시대
24/09/18 16:45
수정 아이콘
피지알에 딱 걸맞는 해피엔딩이군요. 훈훈합니다. *-_-*
항정살
24/09/18 17:34
수정 아이콘
하마터면 피지알이 아니라 경찰서에서 조서를 쓸번했죠.
검은잠
24/09/18 18:01
수정 아이콘
오늘자 화제된 어제 잠실 야구장에서 벌어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토픽을 본 이후 또 이 글을 보니 다행히 작성자님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셨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네요.
여담으로 조만간 새롭게 지어질 잠실 돔구장과 제가 응원하는 한화 이글스가 내년 옮겨갈 신구장에는 대량의 사람들을 수용할 화장실 갯수가 충분했으면도 합니다.
1등급 저지방 우유
24/09/19 11:02
수정 아이콘
생리현상...
그것도 상대적으로 젊으니까 화장실을 찾고 그런거라고 봅니다
어떤 나이든 분들은 급하셨다고는 하지만 사람다니는 길에서 그걸 해결하시더라구요 소변이었겠지만요
바로 윗 댓글 야구장 케이스도 그렇고
가끔 야간 산책 같은거 다닐때 길가에 X이 있는거 보는데
그게 애완견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큰
노둣돌
24/09/19 11:45
수정 아이콘
오래전 일인데 대전에서 청주로 국도를 이용해서 차를 타고 가는 도중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차가 많이 정체되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도 신호대기 중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한 여성분이 가드레일을 넘어서 경사면으로 나오더니 시원하게 소변을 보시데요.
이런 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행위로 인정해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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