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독서 습관 중에 하나가 밀리의서재에서 종료 예정으로 올라오는 책을 찾아서 읽는 것입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종료 예정 책에서 발견했습니다. 전체 분류에서는 보이는데 지적교양에서 보이지 않아서 어떻게 된 건가 보니 엉뚱하게도 자기계발서로 취급되어서 라이프 분류에 있더군요. 최근 정치적인 사건 때문에 창조론이 사람들에게 오르내리는 주제가 된지라, 이렇게 딱딱하고 어려운 책을 다루기에 좋은 때인 것 같습니다.
글쓴이 지명수는 서울대 식품공학과와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전도사와 강도사로 활동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포체스트룸 대학교에서 신학석사와 철학박사를 받았습니다. 평택대 신학부 강사를 지내다가 2012년부터 1년간 잠깐 고신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는데, 이때 고신대학교 교수 5인에게서 이 책과 석사논문의 내용 때문에 이단 시비가 일어났고 고신대학교에서 사임한 뒤로는 소식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은 글쓴이가 발표한 박사 학위논문 "종교와 과학 사이의 관계 문제 해결책으로서 새로운 성경적 창조론 구성(Constructing a new biblical creationism as solution to the problem of the relationship between religion and science)"(https://dspace.nwu.ac.za/handle/10394/416)을 거의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머 리 말 / 5
제1장 서 론 / 13
1. 배경 및 문제제기 13
2. 중심 가설 17
3. 연구 방법 18
제2장 현대 진화론의 도전과 교회의 반응 / 19
1. 현대 진화론의 도전 20
2. 기독교회의 반응 33
3. 결론적 촌평 74
4. 장의 요약 77
제3장 대안적 창조론 모색 / 81
1. 해석학적 전제 84
2. 현대 과학적 창조론 모색 119
제4장 신학적 함의 / 175
1. 창조의 복음과 종말론 176
2. 창조의 복음과 사회 188
3. 창조의 복음과 신학 199
4. 창조의 복음과 윤리 205
5. 결론적 촌평 213
제5장 결 론 / 217
1. 이 놀라운 세상에 대한 인식 217
2. 개방적 창조론의 필요성 219
제6장 향후의 연구 전망 / 223
1. 더 많은 교의학적 실험 223
2. 진화 논쟁 224
3. 기독교 세계관 225
4. 겸손한 재출발 227
참고문헌 / 229
이 책에서 주장하는 “과학적 창조론”은 흔히 생각하는 창조과학과는 전혀 다릅니다. 일단 기존 과학계의 주장과도 대립각을 세우는데, 우주와 지구의 연대는 과학과 지구의 연대는 과학으로 수용하고 유전자의 변이에 의한 진화도 받아들이지만, 모든 생물이 공통 조상에서 유래되었다는 가설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나아가서 그 때문에 생물학에서 주장하는 과학적인 생명 탄생 설명이 기독교도들에게 과학이 아니라 종교처럼 느껴진다고 주장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특별 창조'가 합리적이어서라기보다, 진화론의 '대진화' 개념이 별로 확신 있는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더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은 흔히 창조과학이라고 일컫는 “최근특별창조론”입니다. 책 표지에 “'전통적인'(최근특별)창조론은 더 이상 그 입장을 유지할 수 없다."라고 못 박아 놓았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유신진화론에 친화적인 것도 아닌데, 유신진화론조차도 초자연적인 신의 개입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대체 무엇을 주장하는 것인가? 글쓴이가 제시하는 과학적 창조론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그 전제가 되는 주장을 소개합니다.
첫째, 현대 교회는 창조과학이 대변하는 교계 내의 대중과학에서 빠져나와서 현대 과학과 부합하는 세계관을 제공해야 합니다.
둘째, 그 세계관은 성경을 바탕으로 경험적 반증 가능성이 있는 주장이어야 합니다.
셋째, 이 증명 가능한 방식은 바로 칸트 인식론이 유일합니다. 칸트 인식론은 인간 관찰의 한계를 인간의 능력 안에 설정하는 것이며, 인간 관찰의 한계를 관찰자가 사용할 수 있는 증명 수단의 범위에 둡니다.
이런 방식을 따르는 연구는 결과적으로 초자연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로 연구 주제와 결과를 한정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글쓴이가 제시하는 “과학적 창조론”은 바로 창세기 1장을 이 본문이 소개하는 곳에 “새로 온 자들”에게 지구라는 새 거주지를 소개하는 것이라는 “새 거주지 소개” 모델입니다. 이 모델에서는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를 존재하는 세계에서 관찰자가 새 생활환경을 인식하게 된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창조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빠라”에는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의미가 없고, 창조를 행한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해 전통적인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닌 창조 세계를 인간이 인식하게 된 것으로 봅니다. 이에 따르면 첫째 날에 빛이 먼저 나타나고, 둘째 날에 하늘이 나타나고, 셋째 날에 식물이 나타나고,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이 나타난 것은 창조의 순서가 아니라 인간이 인식한 순서입니다.
다섯째 날에 새와 바다짐승을 창조하고, 여섯째 날에 가축과 뭍짐승을 창조하는 것은 전과학적 인류나 발달기의 아동이 분류하는 방법, 곧 먼저 물고기와 뱀을 인식하고, 그다음에 새를 인식하고, 다음에 절지동물을 인식하고, 마지막으로 포유류를 인식하는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봅니다. 특히 가축과 다른 짐승을 구별하는 것에서 당대의 농축산 기술에 따른 창조 세계의 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 창조 과정을 거쳐 인간에게 이 새로운 거주지 지구의 행동 원리와 통치 원리를 일깨워 주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새로운 과학적 창조론을 바탕으로 창조, 원죄, 이 세상과 저 세상 등을 해석하는 새로운 종말론, 성직자와 평신도의 차별 제거, 신학과 경건학의 분리, 교회와 국가의 관계 정립 등 새로운 사회 해석, 새로운 신학 등을 제안합니다.
이 책은 성경의 글쓴이들은 현대 과학이 정립되면서 성경을 읽을 때 새롭게 나타나는 문제들을 전혀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현대 과학에 대항할 과학을 성경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계를 짓고 시작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글쓴이들이 과학적 방법론을 몰랐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과 과학적 방법론을 결부하는 것이 모순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과학적 방법론을 신학 연구에 도입한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대진화를 거부하기에 과학계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초인간, 초자연적 요소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서 기독교계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괴물 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학적인 새로운 견해들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런 주장 중 하나를 소개하면, 원죄로 인한 전적 타락을 약화하다 보니 그러면 “왜 인간이 기독교를 통해 구원받아야 하는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데 이 부분은 미처 다루지 못하더군요.
그럼에도 이 책을 완전히 덮어버리고 무시하기에는 몇 가지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에서 대중과학이나 원시적인 과학 인식이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땅히 이런 것이 기독교의 교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대중적으로 창조과학이 기독교의 교리처럼 퍼진 이유로 교회 내 갈등을 피하기 위해 진화론과 관련해서는 교계가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에서 도무지 나아가지 않으려는 태도를 꼬집은 것입니다.
셋째는 성경에서 바다라는 단어를 갈릴리 호나 사해 등의 내륙 호수를 표현하기 위해, 심지어 솔로몬 성전의 정결 예식용 대야로도 사용했다는 점을 들어 천지창조의 바다가 고대인이 인식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바다일 수 있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이 책의 창조론이 대진화를 거부하고 지질학적 연대는 수용한다는 점에서 오래된 지구 창조론과 유사한데, 이쪽에서는 노아의 대홍수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국한된 홍수였다는 해석을 하고 있더군요. 글쓴이는 지브롤터 해협이 열린 지중해 대홍수와 창조의 바다의 관련성에 주목하고 있어서 좀 다른 얘기긴 하고, 메소포타미아 홍수 이론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비롯했다는 현대 인류학 이론과 갈등을 겪고 있지만요. 이런 지적은 성경에서 묘사하는 온 세계가 과연 전 지구를 포괄하는 것인가?라는 질문까지도 이어집니다.
그래서 저에겐 이 책의 가치는 성경은 성경을 쓴 고대인의 인식과 한계를 고려해서 읽어야 하고, 그 한계에서 비롯한 원시 과학적 인식이 꼭 기독교 교리가 될 필요는 없다는 정도입니다. 기독교 창조 신학은 앞으로도 많이 연구될 여지가 충분히 있고, 그 과정에서 현대의 학문적 성과도 이용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이 책은 밀리의서재에서 곧 서비스 종료라서 급하게 접한 책이고, 창조과학도 아니고 유신진화론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신학 이론을 종합적으로 다룬 책이 이쪽 분야를 알고 싶은 분에게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조직신학 박사논문을 그냥 번역한 거라 그런지 비전문가인 저에게는 좀 버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