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7/16 05:46:04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46
Subject [일반] 아침 조(朝)에서 파생된 한자들 - 비웃음, 사당, 밀물 등

지난 글에서는 깃발나부낄 언(㫃)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다루었는데, 대부분 㫃에서 소리를 가져오고 아침 단(旦)에서 뜻을 가져온 아침해빛날 간(倝)에서 파생된 한자들이었다. 倝은 때때로 人이 생략되어서 十+日+十인 ???? 형태로 쓰기도 한다. 이 글자는 유니코드 기본 영역이 아닌 U+2099D라 깨져 보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한 자인 나라이름 한(韓)에서 이렇게 쓴다.

그런데 전기쥐님께서 질문을 해 주셨다.

한국의 한韓도 倝에서 나왔는데, 조선의 조朝도 倝에서 나온 한자인가요?

오늘은 그래서 조선의 조 자인 아침 조(朝)를 다뤄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朝와 倝의 왼쪽 부분이 같기는 하나 두 글자는 서로 무관하다. 갑골문의 朝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669212c8e4b81.png?imgSeq=30205

아침 조(朝)의 갑골문. 출처: 小學堂

朝a는 우거질 망(茻) 사이에 날 일(日)과 달 월(月)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풀숲 사이에서 해가 막 뜨고 달은 막 지고 있을 때를 그린 것으로, 풀숲 사이에 해가 져서 가리는 모양인 없을 막(莫)과 대비해 아침을 나타낸다. 朝b는 茻 대신에 林(수풀 림)을 쓴 것이니 의미는 같고, 朝c도 대동소이하다.

茻이나 林이 十 두 개로 간략해지면 바로 지금의 朝가 되긴 하지만, 朝의 변화는 그처럼 순조롭지 못했다. 금문에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다.

6692148f8ecd5.png?imgSeq=30206

아침 조(朝)의 금문. 출처: 小學堂

갑골문과 비교하면 달 월(月)이 없어지고 그 자리를 다양한 글자들이 대신했다. 朝a에서는 내 천(川), 朝b에서는 큰도랑 괴(巜), 朝c에서는 배 주(舟), 朝d에서는 물 수(水)가 들어간다. 공통점은 다들 물이나 강과 관계 있는 한자들이라는 것이다. 이 변화를 그저 月이 와전된 것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글자가 아침 조에서 潮(조수 조)의 원 글자로 바뀌었다고 보기도 한다. 대개 새벽녘에 밀물이 들어오고 해질녘에는 썰물이 되기 때문에, 해가 막 뜰 때 들어오는 물로써 조수를 표현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금문에서는 발음이 같으므로 潮로 朝를 가차해서 쓴 것이다.

66921736e99c1.png?imgSeq=30207

아침 조(朝)의 초나라 문자(a, b), 진나라 문자(c), 설문해자 소전(d). 출처: 小學堂

전국시대에 들어와서는 내 천(川)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하나 배 주(舟)의 형태가 위의 b, c에서처럼 주류를 차지하게 된다. 이를 본 허신은 드디어 천 년 넘게 내려오는 오답을 만들고 만다. 마침 朝의 왼쪽 부분이 倝과 비슷하고 倝의 뜻이 아침과 관련이 있는데다 소리는 舟와 비슷하므로, 朝는 倝의 생략형이 뜻을 나타내고 舟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라고 해석한 것이다. 설문해자에서 倝은 朝 한 글자만이 속한 부수인데, 朝가 倝에서 파생되지 않았으므로 이 부수는 실수로 만든 부수인 것이다.

설문해자 소전 d에는 倝의 온전한 형태가 들어가 있는데, 어쩌면 허신이 지어낸 문자일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허신과 비슷한 착오를 저지른 사람의 손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천 년 넘게 朝는 倝+舟의 구성으로 잘못 알고 있다가,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원래의 기원을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舟는 다른 글자와 합할 때 月의 형태로 바뀌는 경우도 많아서 비록 잘못된 과정을 거치긴 했어도 결과적으로 지금의 자형인 朝는 갑골문과 가까운 형태가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朝는 원래 의미는 '아침'이며, 옛날에는 아침에 신하들이 왕을 찾아뵙고 정치를 했으므로 이런 일을 하는 곳인 '조정'도 뜻하게 되었다.


朝(아침 조, 조석(朝夕), 왕조(王朝) 등, 어문회 6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嘲(비웃을 조): 조롱(嘲弄), 자조(自嘲) 등. 어문회 1급

廟(사당 묘): 종묘(宗廟), 묘효(廟號) 등. 어문회 3급

潮(밀물/조수 조): 간조(干潮), 조수(潮水) 등. 어문회 4급

669518b1d0271.png?imgSeq=30504朝(아침 조)에서 파생된 한자들.

嘲는 입 구(口)가 뜻을 나타내고 朝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다. 조롱은 서로 대면하는 것이므로 대면하는 공간인 조정을 뜻하는 朝가 뜻에도 기여한다 할 수 있겠다.


潮는 아침에 밀물이 들어와서 땅을 덮기 때문에 밀물을 뜻하게 된 것이라면, 朝가 소리뿐만 아니라 뜻도 나타내는 것이 된다.


廟는 재미있게도 《설문해자》에서는 고문, 그러니까 옛 문자로는 지금 중국의 간체자 庙와 유사한 庿로 쓴다고 해설했다. 廟는 广(집 엄)이 뜻을 나타내고 朝가 소리를 나타내며, 조정과 같이 높은 분을 모신 곳이라는 의미이므로 朝가 뜻도 나타낸다. 그러나 庿를 구성하는 苗(모 묘)는 뜻에 기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순수 형성자인 庿로 썼다가 나중에 형성 겸 회의자인 廟로 바꿔쓴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66921c54395f3.png?imgSeq=30208

廟(사당 묘)의 금문. 출처: 小學堂

廟a는 그냥 潮다. 즉 潮로 廟를 가차해 쓴 것이다. 廟b는 朝 대신 潮를 쓴 것을 제외하면 지금의 廟와 같은 구성이다. 廟c는 广 대신 집을 나타내는 다른 한자인 宀(집 면)으로 바꿔쓴 글자다. d가 바로 庿인데, 지난번에 소개한 중산왕정과 함께 나온 중산의 유물 중산왕호에 새긴 글자다. 나머지 글자들은 모두 서주 중기나 후기의 유물에서 나온 것이다.

대만의 한자 자료집인 소학당(小學堂)의 금문 자료에서, 庿를 쓴 것은 중산왕호뿐이고 나머지 중 1글자는 潮, 31글자는 潮+广이거나 潮+宀의 형태로 나타난다. 庿는 중산왕호에 새겨져 있으므로 廟의 옛 형태는 맞지만, 이보다 더 오래된 廟의 옛 형태는 潮를 사용하므로 廟가 庿보다 더 이전의 형태로 볼 수 있다. 廟와 庿의 관계는 의미 없는 성부인 苗를 써서 의미에 기여하는 성부 朝보다 더 간단한 형태로 만든 것이라 하겠다.

66951a3228c26.png?imgSeq=30505朝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이렇게 朝는 파생된 한자들에 아침이나 조정, 대면의 의미를 부여한다.


요약

朝는 倝과 뜻과 형태가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茻+日+月로 풀숲 사이로 달이 지고 해가 뜨는 때인 아침을 뜻한다.

朝에서 嘲(조롱할 조)·廟(사당 묘)·潮(밀물/조수 조)가 파생되었다.

朝는 파생된 한자들에 아침이나 조정이라는 뜻을 더한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전기쥐
24/07/16 08:58
수정 아이콘
https://pgr21.com/freedom/101870
저번에 써주신 글과 비교하면..
倝=㫃+旦이고
朝=林+日+月이니
倝와 朝는 그냥 태생부터 다른 자인데 수렴진화(?)를 해서 형태가 비슷해보이는 것 뿐이었군요.
계층방정
24/07/16 09:07
수정 아이콘
예, 그런 것 같아요. 㫃이 예서로 바뀌면서 워낙 많이 변하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공통점이라면 아침을 뜻하는 한자라서 日이 들어간다는 점이네요.
24/07/16 09:35
수정 아이콘
오늘도 잘 배우고 갑니다. 늘 고맙습니다.
계층방정
24/07/16 21:52
수정 아이콘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4/07/16 09:52
수정 아이콘
뛸깅 얘기 나올까봐 미리 선점합니다.
둥그러미
24/07/16 10:23
수정 아이콘
그거는 사실 발족자를 쓴 족깅jogging이기 때문에 상관없습니다(?)
계층방정
24/07/16 21:54
수정 아이콘
그러고 보니 이미 아침 조(朝)와 일어날 기(起)를 다 다뤘군요. 이제 이응만 더하면 조깅이네요.
24/07/16 09:53
수정 아이콘
오 방 부수가 냇가 형태일지는 상상도 못 했는데요.
우연하게 바꼈다고 보는게 맞을까요?
계층방정
24/07/16 21:57
수정 아이콘
깃발나부낄 언(㫃)에는 원래 모 방(方)이 없었는데 생겨나는 걸 보면 우연이라도 정말 신기합니다.
닉언급금지
24/07/16 12:56
수정 아이콘
해가 뜨고 달이 지면 그믐이겠네요. 그믐 때면 사리 때일테니 조차도 클 때일 테구요.
왜 보름 사리 아니라 그믐 사리로 제자한 것인지 궁금해지는 글이네요.

언제나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계층방정
24/07/16 22:04
수정 아이콘
더 심화된 고찰에 감사드립니다. 보름이라면 해와 달이 같은 곳에서 보이지 않으니 月이 없어질 텐데, 그 글자가 해 뜰 때가 아니라 해 질 때를 가리키는 저물 모(暮)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화작확통생윤사문
24/07/16 13:20
수정 아이콘
아침 조
달릴 깅
백년후 당신에게
24/07/16 18:41
수정 아이콘
저랑 똑같이 생각을 하셨군요...크크
24/07/16 21:09
수정 아이콘
이 밈때문에 야깅이라는 단어 많이들 쓰죠 크크
계층방정
24/07/16 22:05
수정 아이콘
진짜 이거 만든 사람 발상이 대단합니다. 크크크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58434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32525 10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54989 28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27152 3
101902 [일반] 인류 역사의 99%를 알아보자: 혈흔이 낭자했던 수렵채집사회 [1] 식별667 24/07/17 667 4
101900 [일반] 트럼프의 러닝 메이트와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 - 트럼프의 젊은 마스코트? [58] 스폰지뚱4854 24/07/16 4854 8
101899 [일반] 협회와 홍명보, 모든 것이 철저히 무너지길 바라며 [57] 민머리요정7735 24/07/16 7735 65
101898 [일반] 아침 조(朝)에서 파생된 한자들 - 비웃음, 사당, 밀물 등 [15] 계층방정2729 24/07/16 2729 5
101897 [일반] 인류 역사의 99%를 알아보자: 서울에 200명도 안살던 시절 [8] 식별5317 24/07/16 5317 13
101893 [일반] SI개발의 해묵은 문제 [45] 퀀텀리프6101 24/07/15 6101 6
101892 [일반] "감독의무 있다" 法, 학폭 가해학생 부모 손해배상 책임 인정 [20] 로즈마리5786 24/07/15 5786 4
101890 [일반] [서평]《벌거벗은 정신력》 - 현대 사회에서 폭증하는 우울과 불안은 질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애도다 [4] 계층방정2661 24/07/14 2661 9
101889 [일반] [서평]《매혹의 땅, 코카서스》 - 직접 가보는 듯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조지아 여행기 [8] 계층방정2257 24/07/14 2257 4
101888 [일반] ASUS, RTX 4060 Dual V3 그래픽카드 출시(절대 비추천) [10] SAS Tony Parker 2799 24/07/14 2799 2
101887 [일반] 내맘대로 엄선한 일본 여자 그룹 보컬 노래 (장르/시기 불문) [13] Pika482302 24/07/14 2302 1
101886 [일반] 인생이 한 번 뿐이라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 [41] 사람되고싶다7572 24/07/14 7572 9
101884 [일반] PC방 숫자가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56] 버들소리10162 24/07/14 10162 2
101883 [일반] [팝송] 알렉 벤자민 새 앨범 "12 Notes" 김치찌개2054 24/07/14 2054 0
101882 [일반] ‘삼체’를 소설로 읽어야 하는 이유 [34] Schol6244 24/07/14 6244 25
101881 [일반] 퇴직과 이직 즈음에서 [9] 흰둥3763 24/07/13 3763 11
101880 [일반] [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3195 24/07/13 3195 20
101879 [일반] 끝없는 달리기 고통의 원인 이제 마지막 선택지만 남았네요 [17] 내우편함안에4209 24/07/13 4209 12
101877 [일반] <플라이 미 투 더 문> - 가벼운 음모론을 덮는 로코물의 달콤함. [2] aDayInTheLife3936 24/07/13 3936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