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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5/28 14:25:20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22
Subject [일반] 패드립과 피리 (수정됨)
“엄마가 돌아가시면 우리의 일부가 사라진다. 만약 엄마가 무언가를 잘못했다면 내가 부끄러워진다. 만약 엄마가 모욕을 당한다면 마치 내가 모욕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느낀다.” - 윌리엄 제임스
그만큼 우리에게 어머니는 각별한 존재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서로 상처를 주기 위해 하는 욕설들은 대부분 부모 욕이다. 특히 온라인 게임, SNS 등 인터넷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온라인에서 상대방에게 “패드립”을 청소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사실 부모 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는 것이긴 하지만 거기다 최근에 패드립이라는 신조어가 붙은 것이다. 옛날에도 에미애비 없는 X, 호로 XX 등 부모 욕은 욕 중에서도 상급의 욕으로 쓰여 왔다. 니미 X발이라는 욕도 '네 어머니와 그렇고 그런 짓을 할 놈'이라는 뜻인 등, 안타깝게도 부모 욕은 현대의 패드립이 아니라도 존재해 왔다.
패드립은 패륜+드립(애드리브)의 준말로, 패륜은 한자로 悖倫이라 쓰며 인륜을 거스르는 행위란 뜻이다. 뜬금없지만 갑자기 피리 얘기를 늘어놓을 텐데, 피리는 필률의 발음이 변한 것으로, 필률의 한자 표기 觱篥에는 특별한 뜻이 있는 게 아니고 그저 필률이란 악기 이름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피리 필, 피리 률이다.피리 필이란 한자는 낯설지만 별 특징은 없다. 다 함(咸)과 뿔 각(角)을 위아래로 썼을 뿐이다. 한편 거스를 패(悖)는 오른쪽 부분이 낯선데, 왼쪽에는 마음 심(心)을 글자의 왼쪽 편에 어울리게 고쳐 쓴 꼴이니 마음의 작용을 나타내는 글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오른쪽은 살별(혜성) 패, 우쩍일어날 발(孛)이라는 글자인데, 단독으로는 잘 쓰이지 않지만 음이 발인 한자들의 소리 부분, 다른 말로 성부로 자주 쓰인다.
VM2G3TsK9TZn8mSEOOYuEn1zy2o.png피리 필
s2vpyER-h3syqkGxl2UqSXCA7B4.png거스를 패
별 특징 없어 보이고 서로 관계도 없어 보이는 글자 둘을 왜 같이 엮은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피리 필의 자원이 거스를 패와 연관되기 때문이다.사실 피리 필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보통 뿔 각이 들어가는 한자는 뿔과 관계있는 물건을 나타내고 뿔은 관악기의 소재로 많이 쓰이니 이 점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뿔이 뜻을 나타내니 나머지 부분이 소리를 나타내야 하는데, 그 나머지 부분은 함이라고 읽으니 필과는 전혀 무관하다. 다 함이 소리가 아니라 뜻을 나타내는 걸까?
f8XDR_PqHHiJB0XgB2sfB2aK9tE.png'피리 필'의 원래 형태
실은 피리 필의 윗부분은 다 함이 아니다. 혹시 혹(或)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다. 或은 지금에는 혹시를 뜻하지만 옛날에는 나라를 뜻했다. 이 글자가 피리 필의 소리를 나타낸다. 이 부분만 떼어놓고 다시 잘 살펴보자.
69Ea1NkHfARJw7Syw06359nEle4.png'피리 필'의 소리 부분
이 글자는 정말 이상하다. 보통 아래에서 힘을 주고 그대로 위로 올려 긋는 삐침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 그은 꼴로 나온다. 이런 글자는 한자를 현대의 네모꼴 형태(예서→해서, 행서, 초서)로 만들기 전에 사장되어서, 자연스럽게 현대적인 표준 글꼴인 해서로 바뀌지 못했고 옛 글꼴을 강제로 해서로 바꿨기 때문에 나온다.
6tLyVzu6vzes-AouaTYBUjRCpo8.png왼쪽부터 걸음 보(步)의 갑골문, 소전, 해서
이건 다른 예를 들어보는 게 좋다. 걸음 보(步)는 발을 나타내는 그칠 지(止)를 두 번 써서 두 발을 내디뎌 걷는 모습을 나타냈다. 한자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인 갑골문을 보면 두 발 모양을 확인할 수 있으며, 최초의 통일 중국 진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글꼴인 소전에서도 지금의 止에 가깝긴 하나 그 모양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해서로 아래쪽의 뒤집어진 止를 진짜로 뒤집어 쓰기가 불편해 작을 소 비슷하게 바꿔 쓴 것이다. 원래의 피리 필도 或을 180도 돌린 부분이 자연스럽게 바뀌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그냥 얼렁뚱땅 뭉개서 咸으로 고쳐 쓴 것이다. 따라서 본래 글자를 나타내기 위해선 어색하지만 진짜로 或을 180도 돌려 쓰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rFqQiSHHXnbZjVSJtTxPHSltTxk.png거스를 패의 금문(왼쪽)과 주문(오른쪽)
이 或 두 개를 조합한 글자의 정체는 뭘까? 바로 거스를 패다! 위의 금문(옛날 중국에서 청동기에 새긴 한자)이나 주문(금문에서 조금 더 발전한 글자)에서는 무기를 나타내며 나라 국(國)에도 들어가는 창 과(戈)가 엇갈린 모습을 더 잘 확인할 수 있다. 즉 悖는 원래 나라와 나라가 무기를 들고 서로 마주 보고 거스른다는 데서 거스르다는 뜻이 나온 것이나, 후세에는 이 글자 대신 더 간단하게 거스르는 마음이나 말에 거스름을 뜻하는 소리 패를 덧붙인 글자로 대신해서 쓴 게 현대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피리 필은 뿔 각(角)이 뜻을 나타내고 거스를 패의 축약인 咸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가 된다.
그런데 패는 필과는 발음이 좀 멀지 않나? 싶을 수 있다. 실은 悖의 원 발음은 불이었다. 즉 패륜이 아니라 불륜이었다. 孛를 성부로 삼는 글자들 대부분의 발음이 발인데, 예를 들면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우쩍일어날 발(勃)이 있다. 그런데 아니 불(弗)을 성부로 쓰는 성낼 불·발(艴)도 우쩍일어날 발과 통한다. 옛날 한자에서는 불과 발의 음이 서로 비슷한 것으로 취급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悖의 옛 발음도 패가 아니라 불에 가까웠다.옛날 자전 중 가장 권위 있는 자전인 강희자전에서는 양나라 왕이 悖의 음이 부처를 뜻하는 불(佛)과 비슷하다 해 패로 바꾸게 했다고 하는데, 이 왕은 양나라 황제로 불심이 깊어 한중일 승려들에게 고기를 금하는 전통까지 남긴 양 무제 소연이 아닐까 싶다. 부처님 덕분에 불륜이 패륜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悖의 옛 글자인  성부로 삼는 피리 필까지 음이 바뀔 필요는 없으므로 觱은 悖와는 달리 필이란 음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재질이 뿔에서 대나무로 바뀐 것 때문인지 대나무 죽(竹)이 들어가는 사립짝 필(篳)을 써서 필률이라고도 쓴다.
QnWIKmDWkLhRpUFTwhXGcgKcwSQ.png거스를 패(或+↷或)나 피리 필(或+↷或+角)을 성부로 삼는 글자들. 위쪽은 본래의 모양, 아래쪽은 或+↷或가 간략해진 모양.
그러므로 咸이나 或이 들어가는 한자인데 음이 필이나 불과 가깝다면, 그 글자는 사실 이 거스를 패가 성부인 한자다. 아쉽게도, 거스를 패를 성부로 삼는 글자들은 얼마 있지도 않은데다 피리 필(觱)을 빼면 도대체 쓰이지 않는 글자, 곧 벽자들뿐이다. 도깨비불 불(或+↷或+火), 다스릴 불(或+↷或+攴). 피리 필에서 파생된 글자도 샘솟을 필(氵+或+↷或+角)과 다스릴 불(觱+攴)뿐이다. 이 글자들도 或+↷或이 복잡해서 그런지 咸이나 或으로 간략화한 글자들이 남아 있다. 도깨비불 불은 咸+火이나 或+火으로도 쓰고, 샘솟을 필은 㳼로도 쓴다.
그래도 다른 한자와 함께 짚고 넘어가볼 한자가 있다. 바로 다스릴 불(或+↷或+攴)이다.
FxwEjaC969CstYehcw1XoYkBfr4.png어지러운 것과 관련된 한자들. 왼쪽부터 다스릴 불, 어지러울 란, 변할 변.
이 한자는 거스르고 어지럽히는(或+↷或) 것을 쳐서(攴)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렇게 어지럽히는 것을 친다는 한자는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쓰이는 두 한자가 있는데, 바로 어지러울 란(亂)과 변할 변(變)이다. 두 한자 모두 어지럽게 얽힌 실뭉치를 손으로 바로잡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어지러울 란에는 어지럽다와 정반대의 뜻인 '다스리다'의 뜻도 있다. 어지러운 것을 쳐서 다스리는 것이 或+↷或+攴, 손질해야 할 만큼 어지러운 것이 亂, 어지러운 것을 치니 변하는 것이 變이라 하겠다. 다스릴 불 역시 가장 간단한 변형으로는 성부를 或+↷或 대신 弗을 쓴 㪄이 있는데, 이 글자 역시 亂처럼 '다스리다'와 '어지럽다'의 뜻이 같이 있다.
eCp2Kn3p0KLZDMndNSoA_fsenFE.png다스릴 불(或+↷或+攴)과 그 변형.
다스릴 불은 或+↷或 대신 觱을 성부로 삼아 觱+攴로도 쓴다. 그렇다면 자연히 觱의 원본인 或+↷或+角을 성부로 쓴 글자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데, 그 글자는 없지만 대신 或+↷或의 或 두 개를 咸 두 개로 착각해서 쓴 것 같은 咸+咸+攴+角가 존재한다. 얼핏 보기에도 복잡한 이 글자는 뿔 각부 22획 또는 칠 복부 25획으로 취급할 수 있는데, 뿔 각부에서든 칠 복부에서든 가장 획수가 많은 복잡한 글자가 된다.


요약


피리 필(觱)의 위쪽 부분은 다 함(咸)이 아니라 패륜 할 때 거스를 패(悖)의 옛 글자인 或+↷或이다.

거스를 패(悖)는 원래 음이 부처 불(佛)과 가까워 이를 피하고자 '패'로 바뀌었다.

거스르고 어지러운 것을 치는 데에서 '다스리다', '어지럽다', '변하다'의 뜻이 파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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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방정
24/05/28 14:27
수정 아이콘
브런치도 마찬가진데 PGR21도 한자가 다 깨지네요. 뭔가 대책이 필요한데, 일단은 그림 위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계층방정
24/05/29 14:12
수정 아이콘
일단 깨지는 한자를 각 부분들로 나누어서 썼습니다. 或을 180도 돌리는 게 문제인데 ↷或으로 표시했습니다.
안초비
24/05/29 09:09
수정 아이콘
패드립과 퍼리인줄 알고 싱글벙글하며 클릭했는데...
계층방정
24/05/31 10:55
수정 아이콘
도대체 뭘 기대하신 겁니까 저는 그런 거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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