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5/26 23:58:03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3459303548
Subject [일반]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후기(스포)
정말 오랜 시간만에, 책을 손에 쥐고 읽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는 책을 읽었고 간단하게 후기를 남겨보고자 합니다.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중편 소설로 시작했고, 거기서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장편이 나왔다가, 다시금 개작을 통해 장편으로 완성된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이야기를 두 가지 버전으로 읽어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부분은 <세상의 끝...>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어떤 가상의 세계와 교차하는 이야기라는 측면에서요.

하루키의 이야기는, 언제나 참 하루키스러운 느낌이 드러납니다. 취향에 대한 애호, 고립과 관조에 가까운 인물 같은 측면에서요. 저는 이상하게도,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는, <해변의 카프카>가 많이 떠올랐어요. '옐로 서브마린 요트셔츠를 입은 소년'은 가족으로부터 심리적으로 떨어져있고, 기묘한 세계로 들어가길 원하는 소년으로서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반대로 하루키의 이번 소설은 묘하게 가장 하루키와 멀어보이기도 합니다. 성적인 요소도 줄어들기도 했구요. 하루키가 예전에 '분리'(detachment)에서 '헌신'(commitment)로 나아간다라는 얘기를 했다고 알고 있는데 반대로 이번 글은 많은 부분이 '분리'에 기대고 있는 느낌이 좀 들기도 해요. 어떤 의미로는 원본이 초기의 하루키를 닮아 있는 이야기이기에 그런 성격의 글이 나온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만 하지만요.

제목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무명의, 또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도시와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러니까 가로막기 위해 존재하지만 동시에 통과할 수 있기도 한 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혹은 상상을 그 벽과 도시에 겹쳐볼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과 자아는 알 수 없는 '꿈의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세계는 다른 누군가의 세계의 도움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성격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떤 세계와 자아의 그림자이면서, 또 실제하는 하나의 존재로서 존재하는 이야기로 읽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하루키의 이야기는 어디를 갔다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하루키가 연상되는 한 남성이, 어떤 존재의 부재를 통해서 독특한 세상으로 빠져들었다가, 다시금 현재의 이야기로 돌아오는, 보통은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재밌는 건 분명 '부재'도 이번 소설에서 중요한 소재입니다만, 이번 이야기에서는 부재하되, 영혼 비스무리한 걸로 여전히 존재하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또 1부와 3부의 이야기는 어떤 도시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독특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하루키의 세계를 종합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또 초기의 하루키가 엿보이는 느낌의 소설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습니다.

p.s. 오랜만에 책을 집중해서 읽은 기분이었습니다. 머릿속은 뿌옇게 흐린 느낌이긴 하지만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원숭이손
24/05/27 01:02
수정 아이콘
예전 모습 그대로이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랑과 매일 꿈에 그리던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알 수 없는 꿈 속에 머무를 것인가, 거기서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 아무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벽 너머의 세계로, 어쩌면 후회할 곳으로 발을 딛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이 오랫동안 이 책을 기억나게 할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가 꿈 속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라 뿌옇게 흐린 게 맞는 것 같네요.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aDayInTheLife
24/05/27 09:21
수정 아이콘
굉장히 다채로운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바둑아위험해
24/05/27 08:5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도 딱 어제 완독했는데~
전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내용이 너무 불투명해서 무슨 얘기를 하고싶은건지 이해가 잘 안가서 완독하기가 참 힘들었어요...
기대가 너무 컸어서 그런건지, 제 역량이 너무 부족한건지..

다 읽고 이동진의 평론영상을 보았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주인공이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 마을에서 도서관장을 하게되는 너무 뻔하고 지루한 부분마저 재미있게 풀어내는 이야기꾼이다'
라는 말에는 공감갔네요.
술술 읽혀갔지만 물음표가 많이 남는 작품이었네요
aDayInTheLife
24/05/27 09:21
수정 아이콘
분명 하루키의 이야기는 묘하게 관념적이면서 실체적인 무엇인가 같아요. 이번에는 관념 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느낌이긴 하지만요.
사다드
24/05/27 10:29
수정 아이콘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별로였으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겠죠? 위에 바둑아위험해님께서도 언급해주셨던 것처럼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그럭저럭 페이지는 잘 넘어갔지만 뭔가 이해가 안되어서요. 하루키 소설은 좋은 것도 있었지만 아닌 것(정확히는 이해가 힘들어서)도 있어서 뭔가 선뜻 손이 안가더라구요.
aDayInTheLife
24/05/27 10:55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그 소설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긴 하니까요.
하루키의 소설은 뭔가 그런 감정과 감성을 맞추지 않는 이상은 조금 까다롭지 않나 싶더라구요.
휴머니어
24/05/27 11:25
수정 아이콘
중반부까지 감탄하며 보다가 결말보고 역시나 하루키다 하고 짜게 식었습니다. 크크
aDayInTheLife
24/05/27 11:35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크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590 [일반] ???? : 애플 게섯거라 [32] Lord Be Goja10174 24/05/29 10174 2
101589 [정치] 23년 혼인건수는 22년 대비 1% 증가 [39] 겨울삼각형10978 24/05/29 10978 0
101588 [일반] 삼성전자 노조, 창사이래 최초로 파업 돌입 예정 [37] EnergyFlow10982 24/05/29 10982 1
101587 [정치] 尹 개인폰 번호가 이첩 당일 이종섭에 3차례 전화‥이후 박정훈 보직해임 [47] 조선제일검10947 24/05/29 10947 0
101585 [정치] 국회, 채상병특검법 부결 / 찬성 179표·반대 111표·무효 4표 [255] 덴드로븀26506 24/05/28 26506 0
101584 [일반] 패드립과 피리 [4] 계층방정8808 24/05/28 8808 6
101582 [일반] AMD 메인보드 네이밍 700 패싱하고 800 간다 [17] SAS Tony Parker 9511 24/05/28 9511 1
101581 [일반] [역사] ChatGPT가 탄생하기까지 / 인공지능(딥러닝)의 역사 [19] Fig.110215 24/05/28 10215 22
101580 [일반] 잘 되니까 뭐라 하기 뭐하네(Feat.범죄도시) [54] 아우구스투스14552 24/05/27 14552 6
101579 [정치] 직구 금지 사태, 온라인이 정책마저 뒤집다 [40] 사람되고싶다15299 24/05/27 15299 0
101578 [정치] 육군 "훈련병 1명 군기훈련 중 쓰러져…이틀 만에 사망 [229] 덴드로븀22000 24/05/27 22000 0
101575 [정치] 윤 대통령 “라인 문제, 잘 관리할 필요”…기시다 총리 “긴밀히 소통하면서 협력” [80] 자칭법조인사당군14866 24/05/27 14866 0
101574 [일반] 험난한 스마트폰 자가 수리기(부제 : 자가수리로 뽕뽑기) [60] Eva01010893 24/05/27 10893 12
101573 [일반]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후기(스포) [8] aDayInTheLife7432 24/05/26 7432 1
101571 [일반] V3 백신 무료버전의 보안경고 [6] Regentag10795 24/05/26 10795 1
101570 [정치] 낮은 지지율의 세계 지도자들 [8] 주말9455 24/05/26 9455 0
101569 [일반] 5/31일 종료예정인 웹툰 플랫폼 만화경 추천작들(2) [1] lasd2418059 24/05/26 8059 1
101568 [일반] 나의 차량 구매기, 그리고 드림카 [62] 카오루12313 24/05/26 12313 2
101567 [일반] [장르론] '한국풍'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계관의 방향 [17] meson13244 24/05/26 13244 33
101566 [일반] 나는 어떤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을까 [5] 바이올렛파파7921 24/05/26 7921 24
101565 [일반] [팝송] 테일러 스위프트 새 앨범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 [6] 김치찌개7531 24/05/26 7531 1
101564 [일반] 오늘도 깔짝 운동하고 왔습니다 + 유튜브 프리미엄 해지 한달 [13] 꽃차10835 24/05/25 10835 3
101561 [일반] 이번달 미장 불장에도 서학개미들이 손해만 본 이유 [40] 보리야밥먹자12573 24/05/25 12573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