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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1/20 01:06:39
Name 마트과자
Subject [LOL] LPL, 적으로 대하지만, 동지애도 느끼다.
페이커의, 그리고 T1의 승리를 응원하던 입장에서 우승은 너무도 좋았다. 우승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소위 말하는 리딸과 온갖 리액션들을 찍어 먹어봐야 하기에 인터넷들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다 본 글이 눈에 밟혔다. 실망한 LPL 팬들 중 'LPL은 이제 끝날수도 있겠네. 돈도 쓸필요가 없어.' '돈만 많이쓰는 쓰레기 같은리그. 어차피 사장들이 지갑을 닫을꺼고, 돈벌기도 쉽지 않을꺼야.' 라며 한탄하는 댓글이 있었다. 짠했다. 우리가 저렇게 말할 수도 있었으니까. 또 안그랬으면 좋겠다 싶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의 상대였고 모든걸 쏟아 부었으므로.

한국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8강 대진이 떴을 때 4개의 대진 중에 1개는 우리가 이기고 1개를 더 이기면 좋겠다라고 기대했다. 그 이기는 1개라 여겼던 젠지가 지고, 어려울거라고 생각했던 징동과 맞선 KT가 끝내 져버리고 나서 결과를 화면에 띄어주었다. 4강 대진에 3 LPL 팀이 배정되었을 때 절망했다. LCK에서 너무나 잘하던 팀들이었는데 왜 세계무대, LPL에게 이렇게 지는거지.

그 뒤 마지막 남은 8강 대진인 T1과 LNG에서 T1이 이기고, 4강에서 징동을 꺾고 올라왔다. 반대편에선 LPL 4시드인 웨이보가 2시드인 BLG를 잡고 올라왔다. 서양 해설진 중 한 명이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이번 결승은 LCK와 LPL의 대결이 아니라 T1과 웨이보의 대결이다. 다르게 풀이해 보자면, 월즈 우승팀은 LCK리그에서뛴 T1이지만 LCK가 이긴게 아니다. 웨이보가 진거지 LPL이 진건 아니다. LCK가 이긴거라면 4강에 3팀의 LCK 팀이 갔어야 했다. LPL이 진거라면 8강에 LPL 4팀이 모두다 올라가고, 4강에 3팀이 가지도 못했어야 했다. LPL은 저력을 보여주었다. 오만하게 '너 정도면 충분히 잘하는거야.'란 느낌으로 말하는게 아니다. 늘 마음 한 쪽에 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을 일으키는 실력을 가진 상대로서 존중하는 마음이다.

사실 경쟁세계에서 굳이 경쟁 상대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싶어하진 않았다. 그런데 흔히 덕질, 팬질할 때 다양한 집단의 반응을 퍼먹는데, 중국 네티즌들 반응이 너무 낭만적이였다. 중국 쪽 반응을 퍼온 글 제목에 두보와 이백의 나라란 수식을 붙이는데 내용을 읽어보면 황홀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소위 말해 뽕이 차는 감성과 표현력을 구사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비호감이었던 감정이 태세변환의 이유를 변명할 새도 없이, 호감에 가까운 동지애로 변했다. 더군다나, 8강, 4강, 결승에서 졌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커를 리스펙해주는 모습은 역사소설이나 무협지에서 읽던 대인, 성인의 면모였다.

역으로 이번 결승에서 T1이 졌을 때, 나는 LCK의 경쟁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별개의 일이라고 분리할 수 있었을까? 비관적인 태도를 정말 취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나? 하면 입이 다물어 진다. 상대팀의 선수들을 축하해주며 그들의 서사에 말 뿐인 존중이 아니라 감정과 마음을 담아서 박수를 쳐줄 수 있느냐 하면 그것 모르겠다. 이런 생각들에 다다르면 문득 난 알량한 사람인가 싶은 부끄러움도 든다. 그래서 대단하다. 맛깔나는 표현으로 상대를 치켜세워주던 그 글귀들이, 대륙의 기상이.

아름다운 승부였다. 그건 이긴 사람과 그걸 응원하던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선을 다한 상대와 그 승부의 결과에 기꺼이 박수를 쳐주는 상대편 팬들이 있어야 함께 만들어 진다. 경기가 끝나고 경기를 보여주던 생방송이 마치고 이야기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뒤에 반응을 찾아보다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느꼈다. 우리도 플레이어다. 팀과 팀, 선수와 선수, 그리고 팬과 팬. 몰입할 수 있는 경기를 함께 해준 상대 팬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리고 이 경기의 감동이 우리들의 삶에, 감정에, 그리고 세상에 설령 아주 미약할 뿐이라고 할지어도, 좋은 흔적들과 에너지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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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0 01:2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추천 누르고 갑니다.
23/11/20 01:22
수정 아이콘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전 샤오후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이 선수가 페이커보다 꼴랑 2년 느린 선수이고 lpl 최장수 현역 미드라이너인데
라인까지 바꿔가며 플레이를 했었는데 만약 이 선수가 우승했다면 이 선수도 나름대로 서사가 있는 선수라 스토리가 꽤 잘 나왔을 겁니다.
No.99 AaronJudge
23/11/20 01:57
수정 아이콘
오늘 경기 이후 차에 타서 돌아가는 샤오후를 찍은 사진이 있는데
분위기가…참…인생의 온갖 쓴맛을 다 겪은 듯한 노장의 표정이더라구요
23/11/20 01:3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잘 읽었습니다!
LCK와 LPL이 계속 좋은 라이벌로 남기를 바랍니다.

다만 징동전 막바지에 미국측 해설의 워딩은

"JDG의 희망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들(T1)은 BLG를 이겼고, LNG를 이겼습니다! 이건 LPL과 LCK의 대결이 아닙니다. 이건 T1과 LPL의 대결이고, T1은 이 구도를 좋아합니다. T1이 결승으로 갑니다!!"

'T1과 웨이보의 대결'과는 뉘앙스가 좀 다르죠 크
지탄다 에루
23/11/20 01:54
수정 아이콘
추천 누르고 갑니다.
생각해보면 LPL와 LCK가 붙었을 때, LPL에게 LCK 팀이 졌을 때 이런 식의 리스펙이 나온 적은 잘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스포츠에서 적이 강력한 것보다 재미있는 것은 없습니다.
내년에도 LPL의 약진을 기대해 보며, T1 외의 LCK 팀들도 좀 더 갈고 닦아 또 멋진 승부를 보여줄 수 있길 기대합니다.
피아칼라이
23/11/20 02:10
수정 아이콘
전체적으로 동의합니다. 존중은 중요하죠.
특히 분야가 무엇이든 간에 세계무대에서 자웅을 겨룬 이들에 대해 [평가]는 냉정히 이루어질 지언정 [존중]은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크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다만, LCK와 LPL 아니, 한국과 중국 팬들의 차이랄까요?

한국의 팬덤은 일종의 [그래도 내새끼] 라는 감정이 강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대상이 팀일 수도, 선수개인일 수도 있지만 경향이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근데 중국은 소위 [강자에 대한 선망]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팀이나 선수가 아닌 [지금 최강인 선수/팀]을 응원한다는 느낌?
그 결과물이 결국 이창호, 페이커에 대한 찬양으로 나타나는게 아닐까 싶구요.

물론 전부가 그렇지는 않죠. 실제로는 다를 수도 있구요. 다만 여기(피쟐? 아니면 한국 인터넷?)에서 보이는 경향성? 같은게 그렇게 느껴진다는거죠.
미드웨이
23/11/20 02:50
수정 아이콘
그건 이창호,페이커가 없으니까 그런거지 한국이 다른건 아니죠.

야구사이트에서 오타니가 받는 대접보면 한국이라고 다를건 없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압도적인 사람은 경외를 받기 마련이죠.
Normalize
23/11/20 02:14
수정 아이콘
저 개인적으로는 LPL에 대한 반감은 별로 없지만 [RNG]에 대한 혐오감은 좀 있습니다. LCK에서도 이러니저러니 구설수는 나오고 들어가고하니 LPL에 대한것도 어지간하면 그러려니 하고, 또 그러려니 하고 넘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즈그들 팀 레전드에 대한 리스펙조차 없는 쓰레기 팀은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졌으면 좋겠네요.
마일스데이비스
23/11/20 04:03
수정 아이콘
근데 중국 해설이나 인터넷 반응들의 그 무협감성은 번역을 한번 거쳐서(포장을 한번 해서) 그런 것도 물론 있을 겁니다
일본어는 그냥 일상에서 평범하게 쓰는 말 써도 한국인이 듣기엔 애니감성이 느껴지고(애니에서 접하던 말이니까) 중국어는 그냥 일상에서 쓰는 말 그대로 쓰는 건데 무협감성이 느껴지는 것도 분명 존재하고요. 영어 번역체같은 걸 보면 랩이나 미드처럼 읽히는 경우가 꽤 있지 않습니까?
고사나 비유같은 거 갖다 쓰는 건 중국어 특유의 갬성이긴 하지만 어체같은 거나 뭐 그런 거라면 번역을 거쳐서 실제보다 더 간지나고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도 좀 있긴 있다는 것이죠... 요새 한국 인터넷 댓글 스타일은 너무 촌철+참신+조롱을 쿨한 것으로 집착하는 모습이 있어 눈쌀이 찌푸려지지만, 이걸 일본이나 해외에서 번역한다면 나름의 영국 블랙유머같은 맛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크레토스
23/11/20 08:47
수정 아이콘
원래 한문 자체가 해석시 의역의 끝판왕인걸요 뭐
그게 좋은 점도 있고 나쁜점도 있지만
문학적으로는 확실히 좋은 거 같습니다.
이거쓰려고가입
23/11/20 04:35
수정 아이콘
전용준 캐스터의 "만일 LPL이 우승했을 때 제가 이렇게 축하해줄 수 있을까 하고 반성해봤습니다." 말이 인상깊더군요.
LPL은 LCK를 단순히 시샘하고 경쟁의 상대로만 여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LCK 선수들을 영입하고 감독, 코치를 데려와서 당시 한국 롤판의 선진 시스템을 중국에도 정착시켰죠. 영원할 것 같았던 13~17 LCK 왕조에 LPL이 균열을 낸 이 비결이 저 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자에 대한 존중, 그리고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모방하는 마인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인 법이니까요. LPL이 MSI를 먹고 4강에 3팀을 올려보낸 이유같기도 하고요.
Octoblock
23/11/20 06:00
수정 아이콘
결국 LPL과 LCK는 같이 간다고 생각합니다.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 인기도 보장할 수 없죠.
kartagra
23/11/20 07:15
수정 아이콘
저도 롤판 보다가 잠깐 중혐 극에 달했을 때가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정말 문제가 되는 팀은 rng였죠. rng는 보니까 우지한테 했던 짓도 그렇고 lpl 내에서도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듯하더군요.

그 이후로 웨이보 사이트 직접 들어가서 눈팅도 해보고 하는데 최근들어 생각이 바뀐 게, 중국쪽이 생각보다 쿨한 부분도 많더라고요. 맹점을 짚는 날카로운 분석이나 강자에 대한 존중 등. 이게 롤 뿐만 아니라 전 분야에서 좀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대외적으로 나서는 사람들 얘기고 일반 대중들은 한국처럼 평범하게 치고박고 합니다만 크크(당연하게도 뭐가 좋다고 리스펙하고 있냐는 식으로 비꼬는 글도 많습니다).

게다가 단순히 쿨해서인지, 아니면 나라 전체가 도광양회 마인드에 물든건지 애매할 때가 있어서 종종 섬뜩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특히 분석 잘해놓고 결론이 요상한 곳으로 빠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원인 살펴보면 대부분 독재국가라서 뭔가 억제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면 볼수록 중국이 멀쩡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무서웠을거란 생각이 강해집니다. 여러모로 억제기인 몇몇 분들이 큰일한듯 크크.
키모이맨
23/11/20 07:25
수정 아이콘
종목 안에서만 생각하면 LCK입장에선 반드시 이겨야 할 최대의 적이자 라이벌이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산업적으로 보면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윈윈중인게 LCK LPL이죠

LCK선수들 및 관계자들의 몸값과 일자리가 LPL덕분에 몇배가 뻥튀기되었을것이며 반대로 LPL도 바로 옆나라가 한국인덕분에 적극적인 선수수입으로 롤드컵 성과를 내고 중국내 롤 인기와 연결되서 얼마나 많은사람들이 이득을봤겠습니까 크크

전 솔직히 제가 롤프로게이머였으면 내 연봉 수배로 뻥튀기해준 중국쪽으로 매일절함 크크
23/11/20 08:27
수정 아이콘
한국만 잘하는 게임이었으면 지금만큼의 보는 재미가 없었을것 같습니다. 국제전의 재미를 위해서, 판 전체를 위해서라도 lpl과 lck는 성적상으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는게 좋다고 봅니다. 올해 msi를 lck가 휩쓸었다면 월즈에서 이정도의 서사가 나오지는...
유럽과 북미는 이제 한중과 비비긴 힘들것 같고, 한중이 축구의 유럽과 남미처럼 양강구도라도 되는게 국제전의 재미를 유지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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