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일본 e스포츠 소식을 전하는 흔한 PGR 유저 라덱입니다.
어제 드디어 LJ League가 개막하여 1주차 경기가 있었습니다.
정말 많이 준비했지만 생각대로만은 풀리지 않는 게 현실인지라..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을 예정입니다.
PGR에서 많은 관심 보여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면서 경기 리뷰라고 하기까지는 좀 거창하고 어제의 일들을 되뇌어 볼까 합니다.
# 여긴 일본인데..?
정말 많은 눈이 왔습니다. 도쿄는 원래 이 정도로 눈이 오지 않는 곳인데 말이지요. 전철도 운행정지, 버스는 더더욱.
경기 전날까지 취소/연기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많은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경기 당일은 날씨가 풀려 경기 진행에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땅바닥은 여전히 질척질척, 교통편도 연착의 연속, 관중이 많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불안불안해 하던 중, 11시반 개장이었던 경기장에 10시반 정도였나요, 미친듯이 경기 준비를 하며 선수들에게 주의사항을
오리엔테이션하고 있는 저에게 한 스텝이 다가와 말을 합니다.
"저기..벌써 오신 관중이 있는데요..한국 분들이세요...11시반 오픈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다시 오신대요."
역시 LOL의 열기는 국경을 초월하는 건가요. 그 한국인 청년 2분은 결국 11시반 경기장을 오픈하자마자 입장한
첫번째 손님이셨습니다. 여행중에 경기가 있다라는 뉴스를 접하시고 찾아와주신 2분의 한국 청년들 정말 감사합니다.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일본은 이제까지 이렇다할 오프라인 경기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온라인 경기에서 준비해야 할 것과는 다르게
오프라인 경기 때에 필요한 것들이 또 따로 있습니다. 카운터 입구에 치어풀 보드와 매직을 비치해놨지요. 일본 팬들은
어떤 재치있는 문구를 보여줄까 내심 기대했었는데, 입장이 시작된 후 경기장이 꽉 차도록, 정말 단 한 분도 치어풀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거에요. 내가...내가...두꺼운 전용 용지 직접 사서...스폰서 마크 한장 한장 프린트해서 준비한...
정성이 가득한 치어풀 보드인데 왜...아무도...라고 슬픔에 잠시 잠겨있을 무렵, 한 분의 스텝이 말씀해주시네요.
아마 일본 팬들은 오프라인 관전 경험이 없다보니 사용하는 방법을 잘 모를거라고.
요시, 제가 직접 매직과 치어풀을 들고 관중석으로 가서 설명을 했습니다. 응원하고 싶은 문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
재미있는 문장들을 써서 선수들과 교감할 수 있는 응원 보드라고 설명을 드렸더니, 그때서야 많은 분들이 한장 한장 받으셔서
나름 적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주시며 활용하시는 모습에 이내 안심을 했습니다.
그리고...왜 이 문구는 세계 어느 경기를 봐도 다 나오는걸까요?
"Pick Teemo!! Pick Teemo!!"
# 너 아무렇지 않았잖아.
e스포츠 경기나 혹은 다른 여타의 이벤트를 진행할 때에는 꼭 리허설 때는 멀쩡했지만 본방이 시작되면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는 녀석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전날 몇 번이고 확인하고 확인하고 확인했던 PC 상태가 경기가
1경기가 시작되자 말썽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선수의 개인장비와의 트러블이 있던 것 같더라구요. 경기 중간에
화면이 갑자기 블루스크린으로 바뀌는 정말 토할 것 같은 상황이 일어나 퍼즈 횟수나 시간이 꽤 길었을 겁니다.
결국엔 PC를 교체하며 진행했었는데요, 그 예전 김태형 해설의 말이 잠깐 떠오르더군요.
"PC가 뭐...파괴라도 됐나요?"
# 친정팀이라고 봐주는 건 없다.
1경기는 Rascal Jester VS Ozone Rampage의 경기였습니다. Rascal Jester의 정글러 RainBrain선수는 원래 Ozone Rampage의
선수였지요. 지난 해 가을 정도인가요. Rascal Jester의 팀 리빌딩으로 RainBrain선수를 영입하며 분위기 쇄신을 시도했는데요,
결과는 성공적, 최근의 JCG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합니다. 운명의 장난일까요.
LJ League 개막전은 친정팀인 Ozone Rampage와의 경기, 하지만 게이머에게 그런 감상은 사치일뿐인가!!
2:0으로 팀이 승리하는 데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RainBrain선수, 앞으로의 활약이 더 기대됩니다.
# 이것이 일본잼?! 아니요..
2경기는 PGR의 아이돌, 오키나와의 호랑이와 DetonationFM의 경기, 픽밴이 끝난 순간 우와아 다들 외쳤지요.
탑 이즈리얼? 탑 이즈리얼? 정말? 정말?
정말이었으면 좋았을걸.. 결국 픽 미스라는 신호가 왔고, 원래대로의 룰 대로라면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 맞겠지만
상대팀의 양해를 구해 밴카드 -1 의 페널티로 재경기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습니다. 돌발 상황에서 발빠르게 판단하고
대처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고, 룰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인가, 제대로 된 경기를 팬들에게 보이는 것이 옳은 것인가 라는
잠시간의 고민끝에 서로의 이해만 있다면 제대로 된 경기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판단해서 재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판정에 모든 이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로서는 최선이었어요..흑흑.
그동안 KeSPA 심판님들, 욕해서 죄송해요.
# PGR의 아이돌, 1주차 1위 등극
PGR 유저분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오키나와의 호랑이가 1승 1무를 기록하며 합산 포인트 4점으로
LJ League 1주차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외국인 선수와의 혼합팀으로 구성된 오키나와의 호랑이는
각자의 개인기량도 뛰어날 뿐더러 경기와 경기 사이, 다음 경기를 대비하며 아주 진지하게 팀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며, 발전 가능성이 뛰어난 팀이라고 기대되는데요, 한국에 팬들이 아주 많아요 라고 전해줬더니
너무나 기뻐하는 그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국 팬들을 위한 영상이라도 따로 하나 찍어볼까 합니다.
# EYES상, 그게 아니라니깐요.
일본 최고의 LOL 캐스터 EYES상, 경기 중간 쉬는 시간에 잠시 얘기를 나누던중, 한국에서도 보고 있는 팬들이 있다면
한국어로 인사 한 번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얘기에 그냥 "감사합니다"라고 한 마디만 해도 한국 팬들은 좋아할거에요 라고
이야기해줬더니 혹시 보신 분들은 알아차리셨을까 모르겠는데 "캄사하니무다"라는 멘트를 날리고 마는 EYE상, 그러고 나서 나름
뿌듯해하는 표정 짓지 말란 말입니다. 크크. 경기가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갑자기 경기중임에도 불구하고 드립에 집중하기 시작한
EYES상, 결국 화면조정실로부터 "EYES상, 지금 넥서스 부숴지고 있어요! 경기 얘기를 하라구요!"라는 경고조치를 당하면서도
드립에 대한 열정을 굽히지 않을 거라는 EYES상, 전 EYES상 중계 사..사..좋아해요!
# 식스맨 제도 과연 필요한가?
저는 이번 리그 참가 팀중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꼽으라면 Rascal Jester의 CogCog 선수를 꼽습니다.
포지션은 TOP이지만 주전은 아니고 예비선수입니다. 좋아하는 이유는..무엇보다도 얼굴이 막눈 선수와 꼭 닮았어요.
(궁금하신 분은 참조
http://e-sports-square.com/ljl/teamandplayers/detail/)
경기 끝난 후 수고하셨다며 서로 인사하는데, "CogCog 선수! 다음주 경기에는 플레이 볼 수 있는거지요?" 라는 말에
"글쎄요,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라고 회답하는데, 한국도 마찬가지, 일본도 마찬가지, 과연 식스맨, 이대로 좋은가 라는
의문이 다시 한번 생겨나네요. 다음주에는 CogCog선수의 출전을 기대해봅니다.
# ThisIsZero님, 고생하셨습니다.ㅠ
한국에서 일본까지 어렵게 와주신 PGR의 ThisIsZero님, 도쿄의 10몇년만의 폭설로 나리타 공항에서 꽁꽁 갇히셔서
결국 경기가 다 끝나고서야 겨우 경기장에 도착하셨습니다. 어떻게 해드리지 못 해 마음이 내내 불편하네요. 다음에 좋은 기회에
제가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해드리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응원해주시는 진심,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 난 언제 쉬지?
어제 개막전이 끝나고 조금 여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면 나를 알아주는 대학 오산대학! 내일은 또 바로
프로리그 1라운드 결승 바크래프트가 있는 날이고, 2주차 LJ League 경기를 준비해야 하네요. 2주차 부터는 온라인이라서
여유가 있긴 하지만 경기는 매주 일요일인 관계로 교회오빠가 된 마냥 일요일이...더이상 휴일이 아닙니다. 조만간
한국으로 도망가버릴까 라는 생각도..매일 밤 자기 전에 아주 잠깐잠깐 합니다만 경기가 끝난 후 엔딩 화면 자막에
제 이름이 올라와있는 걸 보고 혼자서 눈물 찔끔, 아 그래도 이 맛에 일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정말 도망가버릴까 라는 생각을 또 아주 잠깐 하기는 했습니다.
이제야 첫 한 발을 내딛었네요. 관중들, 스텝들, 스폰서들, 그리고 선수들조차 너무너무 즐거워한
마치 축제와도 같은 오프라인 개막전이었습니다. 어제의 한 걸음을 발판으로 앞으로 두 걸음, 세 걸음 더 나가서
여러분들이 기대하시는 심장이 쫄깃해지는 LOL 한일전을 만들 수 있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 하려 합니다.
또 소식 전하러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