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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3/06/05 09:59:54
Name 공룡
Subject [연재] 최면을 걸어요 (8)
8. 선택

“됐어!”

동수는 미세하게나마 테란의 병력들 움직임이 일시에 멈춘 것을 확인했다. 분명 박사가 성공을 한 증거였다. 그 말은 이제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동수는 힘찬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베슬은 맨 앞쪽에 있는 테란의 선두부대에 EMP를 날린다. 그리고 EMP에 영향을 받지 않는 뮤탈과 디바우러 부대가 돌진하고, 지휘부를 습격할 편대는 EMP 효과가 끝나기 직전 침투하도록 한다. 모두 클락킹 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지금 적의 지휘부는 일시적으로 마비상태이기 때문에 디텍팅이 불안정하다. 이를 적극 활용하도록!”

동수의 명령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운재는 이미 레이스에 탑승해 있었다. 잠시 후 EMP가 터지는 것이 보였고, 일시적으로 장애를 보이는 테란의 우주선들 앞쪽으로 거대한 드래곤처럼 생긴 저그의 군단이 습격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잘 맞춰야 했다. 섣불리 일찍 나갔다가는 EMP의 영향권에 들 수도 있는 것이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고 그렇게 한동안 저그의 부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테란의 병력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이다. 모두 전진! 클락킹을 잊지 말도록!”

운재는 힘차게 명령을 내리고 적진을 향해 발진했다. 잠시 적들의 혼돈이 있었지만, 이내 자동방어망 체제가 작동하면서 여기저기에서 공격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그의 병력들이 엄호를 해 주었기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거대한 우주선은 비상사태임을 암시하듯 외부로 통하는 문들을 하나씩 닫아걸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호위선들을 믿었던 탓인지 디텍팅 기능이 없어, 운재가 지휘하는 편대는 조용히 한 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잠입 성공! 지시를 바란다!”

운재의 통신을 받은 동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다. 박사님의 말에 의하면 지금 정민은 그곳 정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에 치우친 곳에 있다고 한다. 바로 아래쪽에 핵융합로가 있다고 하니, 어깨에 달린 방사능 측정기를 이용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형...... 정민을 찾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 ... 그걸 말이라고 해? 정민은 지금 정신을 잃었어.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될 경우 우리 지구 전체가 멸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빨리...... 처리하고 오길 바란다.”
“알았어 제길!”

운재는 신경질적으로 수신기를 다시 어깨에 부착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테란 측에서도 자신들이 침입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더구나 지휘관이 있는 우주선이니 그 경계가 얼마나 철통같을지는 뻔한 일이었다.

“이봐! 거기 뚫지 말고 정면으로 간다!”

한참 위쪽으로 이어지는 환풍구로 가기 위해 천정을 뜯어내던 저그족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토스족 전사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젠장! 여기서 큰 길로만 달려간다고 해도 목적지까지 10분이 넘게 걸려! 환풍구를 통해 가다가는 그 사이에 적 지휘관이 정신을 차리고 지구를 몽땅 쑥대밭으로 만들 거라구! 위험하지만 정면 돌파한다.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하도록 한다!”

프로토스족은 즉각적으로 찬성을 했고, 저그족 역시 마지못해 찬성했다. 운재의 말이 틀리지 않았지만, 그럴 경우 자신들은 하나도 살아나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진광 역시 괜히 따라왔다는 생각이 들 참이었다.

“전진! 보이는 놈들은 모두 죽여 버려!”

앞장서서 달리며 운재는 이빨을 물었다. 뒤에 따라오는 저그족과 프로토스족에게는 마음속으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좀 전의 전투에서 너희 동족들을 많이도 죽였다. 내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 말았어. 동수형은 그런 나에게 속죄의 기회를 주었다. 이번 임무는 너희들을 위해서도 꼭 완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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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서 테란의 진영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비록 지휘관이 의식을 잃고 있었지만, 테란군의 지휘관이 한 명은 아니었다. 정민을 대신해 임시로 지휘를 맡은 테란족 장교는 그대로 진군 명령을 내렸다. 역시나, EMP로 인해 상당한 이익을 얻었음에도 연합군은 여지없이 밀렸다. 지구가 가까워지면서 지구 표면을 두르고 있던 수많은 스포어 콜로니들이 일제히 다가오는 테란의 병력을 향해 부식성 액체덩어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스포어 콜로니의 뿌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 크립들은 순식간에 부식성 강한 액체가 되고, 그걸 발출하는 것이 스포어콜로니의 무기체계였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테란의 병력을 잡아내기에는 부족하고 또 부족했다.

“2차 공격진 공격합니다!”

동수의 두 번째 명령이 떨어졌고, 대형 퀸들이 달 그림자 뒤편에서 소리 없이 나타났다. 그리고 테란의 병력을 향해 인스네어를 발출시킨다. 거미줄처럼 계속적으로 발사된 녹색의 덩어리들이 전진하는 테란 우주선들의 앞쪽에 펼쳐지면서 잠깐 전진을 늦출 수 있었고, 그런 테란의 병력에 다시 한번 연합군의 공격이 펼쳐졌다. 하지만 인스네어는 진공의 우주 속에서 너무 쉽게 흩어지는 물질이었다. 곧 이 녹색의 거미줄이 사라지면 테란의 집중 포화에 남은 병력마저 사라질 것이다. 베슬 역시 모두 파괴된 상태였다. 동수는 이제 운재에게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사이오닉!”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프로토스족 중 가장 강한 정신파장을 가지고 있는 아이우가 갑판에 나와 몰려오는 테란의 병력들을 향해 손을 펼치고 있었다. 그와 비슷한 모습으로 몇몇 프로토스족의 지휘관들이 아이우 옆에 서 있다. 그들의 손 끝에서는 놀랍게도 번개와 비슷한 것이 일렁이고 있었다.

“스톰!”

순간 아이우와 주위의 프로토스족들이 한꺼번에 내지른 그 외침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들의 손에 뭉쳐졌던 번개의 덩어리가 테란의 우주선들을 향해 무섭게 달려들었다. 앞쪽에 있던 테란의 우주선들은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방향을 잃고 흔들렸고, 뒤쪽의 우주선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었다. 놀라운 힘이다. 마치 EMP를 쏜 것처럼 테란의 우주선들은 다시 방황하기 시작했다.

‘기껏 1분도 버티지 못할 거요. 침투조는 아직 멀었소?’

상당히 힘들어 보이는 아이우의 텔레파시였다. 동수는 초조해졌다. 이제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설령 정민이가 지휘관 일을 멈춘다고 해도 다른 지휘관이 지휘를 하면 그만이었다. 막 운재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려 했지만 운재는 받지 않았다. 아니 받지 못하고 있었다. 달려드는 테란병사들을 맞아 싸우느라 통신을 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무시무시한 총소리에 수신음을 듣지 못한 운재는 계속 앞쪽에서 몰려오는 테란 병사들을 없애가며 정민이 있는 방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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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머리는 터질 것만 같았고, 온 몸에 힘은 하나도 없었다. 희미한 눈동자를 아무리 돌려보아도 보이는 것은 여전히 암흑 뿐이었다. 눈동자를 이리 저리 굴려보니 자신의 몸 주위에 여러 개의 선이 엉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바깥의 모습을 비추는 모니터와 같은 것에서 희미하게 비쳐진 자신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정민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눈을 떴다. 여전히 그대로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분명 자신은 게임을 하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수많은 관중들과 자신의 사랑스러운 소연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깨어났군. 역시 지구인은 너무 약해. 잠깐 충격을 준 걸 가지고 정신을 잃다니 말이야.”
“그냥 죽여 버리자.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우리의 승리다.”
“닥쳐! 우리의 목표가 이 조그만 행성이었나? 이 녀석이 있어야 우리의 계획을 달성하기에 편해져. 끝까지 살려서 영원히 데리고 다녀야지. 전투시에만 써먹고 다음 행성으로 향할 때는 다시 냉동을 시키는 식으로 말이야.”
“그렇군. 이봐! 지금 아이우가 사이오닉 스톰을 썼어!”
“걱정 마 어차피 얼마 못가. 이제 곧 우리의 군대가 완벽하게 지구를 끝장낼 수 있을 거야.”

정민은 저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혹시 게임에 열중하다가 게임 속에 빨려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후에 주위에 영상이 잡히기 시작하더니, 대회장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나는 것일까?

“음, 좋아. 녀석의 뇌는 지금 민감하니 적정량만 투입시켜라. 슬슬 다시 녀석의 환상이 보이기 시작할거야.”

정민은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막 스톰을 맞은 배틀크루저를 뒤로 빼고 발키리를 이용해서 상대 공중 유닛들을 요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왠지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이가 자신이 아닌 듯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자신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보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뭐지?”

대회장 안의 관중들은 모두 자신을, 아니 자신이 내려다보고 있는 게이머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소연도 보였다. 앉아 있는 게이머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그리고 정민으로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연아!”

공중에서 부르는 정민의 목소리에 소연은 위쪽으로 눈을 돌렸다.

“헉!”

정민은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쳐다보는 소연의 눈동자에는 동공이 없었다.

“음, 녀석이 아직 불안정한가 보군. 이래서는 진행이 안 되는데......”
“차라리 위협을 해보자. 지구인들은 연약한 존재니까 자기 사정을 알게 되면 협력하게 될 지도 몰라.”
“그래야 하려나?”

정민은 저들의 이야기에 차츰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었지만 분명 자신과 연관이 되는 일이었다.

“흐흐, 너도 듣고 있지? 이제 너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그 말과 함께 정민은 어디론가 빨려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정민은 낯익은 거리를 발견했다. 지금은 이사를 했지만, 예전에 교통사고가 나기 전에는 항상 이 길을 통해 숙소로 가곤 했던 것이다. 한동안 서 있는데 멀리서 누군가 휘파람을 불며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정민은 그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고가 나던 그 당시의 모습이었고, 정민은 그 뒤에 일어날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거대한 트럭처럼 보이는 물체가 정민을 치었고, 그와 동시에 다시 후진하여 정민을 싣고 산 쪽으로 향했다. 한 두 명이 남아서 떨어진 정민의 팔과 핏자국을 말끔히 지우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의 손은 여섯 개였고, 기다란 꼬리까지 달고 있었다.

“난 죽었나요?”

정민은 보이지 않은 존재에게 질문했다.

“흐흐, 죽지는 않았어. 원래는 의식을 잃게만 하려고 했는데 너무 심하게 부딪혀 버렸지. 어쨌건 우리의 의학은 죽은 녀석도 살릴 정도로 발달되어 있으니까 상관은 없었다.”

잠시 후 장면이 바뀌면서 정민이 치료를 받는 장면이 나왔다. 아니, 치료라기 보다는 조립이라는 말이 맞을 듯 했다. 한 쪽 팔이 없고, 머리 부분도 함몰이 되었지만 거기에 대한 치료는 없었다. 대신 이상한 기계를 이용해 몸 여기저기에 구멍을 뚫어 선을 연결하고 난 뒤 커다란 통에 넣었다. 정민은 몸은 그 상태로 냉동이 되었고, 또 어디론가 운반되었다.

장면은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엄청난 전투의 장면이었다. 정민은 방금 전에 보았던 이상한 장소에 앉아서 멍한 자세로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결된 각 선들을 통해 끊임없이 정보를 각 실로 보내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앞쪽에서 펼쳐지는 것은 전쟁이었다. 처음 보는 이상한 생물들이 우주선을 타고 공격을 해 왔지만, 하나하나 격추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마침내는 거대한 함포사격에 의해 행성마저 붉게 물들었다. 정민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흐흐, 알겠나? 우리들과 넌 아주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네가 꿈꾸는 세계를 보여주고, 넌 우리를 위해 전투를 해주기만 하면 된다. 이제 잠시 후면 지구 역시 멸망하게 된다. 그러면 넌 미련을 가질 곳도 없겠지.”
“그건 안돼요!”
“흐흐, 괜찮아. 넌 죽이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네가 바라는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있지. 그곳에서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어. 게임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여자를 수백 명이라도 얻을 수 있지. 네가 욕구를 채우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
“그...그럼 소연이도 사실은 상상일 뿐이었나요?”
“응? 그래, 그렇지. 하지만 무슨 상관이지? 어차피 네가 느끼는 것은 진짜라구. 그럼 된 거 아니겠어?”
“그렇지 않아요!”

정민은 소리 질렀고, 전쟁의 장면은 사라졌다. 다시 캄캄한 암흑이 펼쳐졌고, 정민은 방금 전에 보았던 그곳에 여전히 그대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바깥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저 중에는 지구인들도 있을 터였다. 머리와 몸 곳곳에 이어진 선들로 30년 가까이 살아왔는데도 자신은 그저 좋은 스폰서를 만나 행복한 생활을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같은 동족들에게 무기를 들이대고 죽이려고 했다. 아니 어쩌면 벌써 많이 죽였을지도 모른다.

“자, 받아들여라. 이제 잠시 뒤면 모든 것이 끝난다. 우린 네게 모든 것을 주겠다. 어떤가?”

정민은 정면을 주시한 채 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침입자들입니다. 소수입니다만, 벌써 5차 저지선을 뚫었습니다!”
“뭐야? 이것들이 감히! 흐흐흐, 그래봐야 시간을 끌려는 정도겠지. 그럼 잠시 기다려라.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건 지구는 멸망한다. 나라면 당장 우리 편을 들겠다. 이미 넌 지구에 가도 배신자일 뿐이니까.”

정민은 목소리가 사라지자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웃고 싶었지만 표현되지는 않았다. 그의 입은 거대한 관으로 막혀 있었다.

‘침입자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면 지구는 멸망한다. 그렇다면 난? 난 뭘 할까? 그래, 언제나처럼 게임을 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니까.’

정민의 머리에 붙은 선들이 다시금 연산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어서 나를 죽이러 와줘요.’

정민의 눈에서 오랜만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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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인가?”

정민이 있는 곳으로 전진하던 운재는 절망감을 느꼈다. 벌써 병력의 반을 잃었고, 그나마도 부상이 많았다. 자신 역시 왼쪽 팔에 총을 맞은 상태였다.

“형, 포기합시다. 이 이상은 무리에요.”

진광은 계속 운재를 말렸다. 반도 오기 전에 절반이 죽었다면 정민이 있는 곳에 도착할 때쯤에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갈수록 경비는 두터워졌다. 로봇경비도 있다. 그놈들은 부수기도 힘들었다.

“제길,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계속 전진!”

운재는 이미 자포자기였다. 동수가 부탁한 시간에서 벌써 2분이 더 흘렀던 것이다. 어쩌면 지구는 벌써 테란의 공격으로 점차 파괴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급한 마음에 전진하다보니 희생자만 늘 뿐이었다.

기이이이잉!

앞쪽과 대치하는 중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로봇에 의해 운재와 일행은 절망감을 느꼈다. 맨 뒤에 있던 질럿 둘이 열심히 블레이드를 휘둘렀지만 통로를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한 그 로봇에게 제대로 된 상처를 주지도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로봇의 가슴 쪽에 달린 개틀링건 처럼 생긴 무기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면 저기서 엄청난 총알이나 빔이 쏟아질 것이다.

“모두들!”

운재는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잘 싸워줬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는데......

“크아악! 커컥!”

무시무시한 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고, 잠시 후 로봇의 공격은 멈추었다. 눈을 감고 있던 운재는 아직 자신이 살아 있음에 놀랐다. 눈을 떠 보니 진광이 멍한 표정으로 로봇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로봇에게 공격을 하던 저그족과 프로토스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명령 변경 2항, 테란 총지휘관의 방까지 전진한다. 테란의 유니폼을 입은 병사는 모두 사살한다.”

로봇은 변경된 명령을 두 차례 더 말한 뒤 빠르게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운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언어번역기가 틀리지 않았다면 저건 분명 저 로봇이 테란의 적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좀 전에 질럿들이 때릴 때 녀석의 회선을 건드리기라도 했을까요?”

진광은 지옥에서 살아온 듯한 얼굴을 한 채 운재에게 물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웃겼지만 차마 웃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몰라, 어쨌든 횡재다. 저 녀석만 있으면 돌파도 시간문제겠군. 다른 친구들에게도 저 로봇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해. 어쩌면 우리 목표를 달성할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전진하는 로봇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운재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진했다. 다른 이들도 이 놀라운 행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열심히 움직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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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쪽에서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배틀크루저의 에너지포가 실수로 앞쪽에 있던 테란의 병력들을 맞췄던 것이다. 오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손실이었다. 임시로 지휘하던 테란의 지휘관은 정민이 깨어나자 곧바로 지휘권을 넘겼지만, 엄청난 실수를 하자 다시 지휘권을 가져오려 했다. 하지만 지휘권은 넘어오지 않았다. 서로를 믿지 못하던 테란족들은 반란을 일으킬까봐서 지휘권에 있어서 정민에게 절대적 권한을 준 상태였다. 적어도 반란을 일으킬 염려는 없기 때문이다. 정민이 주지 않으려고 마음먹으면 지휘권을 빼앗을 방법은 없었다.

“운재가 성공을 한 것인가?”

동수는 의외의 상황에 맨 먼저 운재를 떠올렸다. 하지만 정민이 죽었다고 해도 이런 상황은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운재는 정민이를......

“동수형!”

운재의 목소리였다. 너무나 반가운 소리다.

“살아 있었구나! 지금 상황은?”
“현재 침투부대는 절반 정도 생존! 저와 진광이를 제외하고 저그족 다섯, 프로토스족 셋이에요!”
“좋아, 위치는?”
“마지막 저지선을 뚫는 중! 그런데 좀 이상해요. 몇몇 로봇들이 고장을 일으켰는지 테란측과 싸우고 있어요. 덕분에 더 이상의 병력 피해는 없이 올 수 있었죠. 이게 무슨 일이죠? 바깥에서 무슨 조작을 한 것인가요?”
“글쎄......”
“좋아! 마지막 저지선을 뚫었어요. 그럼 교신 끝!”
“운재야!”

하지만 운재는 답이 없었다. 동수의 수신기에는 시끄러운 무기의 발사음과 운재가 외치는 소리들만 간간이 들릴 뿐이다. 정민이를 보게 되면 감정에 이끌리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었다. 물론 자신이 운재의 위치에 있었다고 해도 고민되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운재에게 어려운 짐을 맡겼다. 운재라면 옳은 판단을 내릴 것이다.

“아이우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오?”

동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바깥의 상황은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테란의 병력끼리 싸우고 있다. 선두에서 공격하던 우주선들이 뒤쪽에 있는 배틀크루저의 함포사격을 받는가 하면, 달려들던 발키리들이 이유도 없이 자기편 레이스를 녹여버리기도 했다. 이건 분명 최면에서 깨어난 정민이 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민은 언제 다시 최면에 걸릴지도 몰랐다. 미안하지만 그는 제거를 해야 했다.

“미안하다 정민아.”

동수는 흐르는 눈물을 남몰래 닦고는 잠시 의자에 앉았다. 작전이 계속되는 동한 한 번도 의자에 앉지 않았었다. 그제서야 피로감이 몰려온다. 하지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이를 악물며 동수는 다시 일어났다. 뒤쪽 문이 열리며 소란이 들어온다. 소란은 조용히 다가가 동수의 옆에 기대어 섰다.

“나 여전히 두려워요.”
“알아. 하지만 우리가 이길 거야. 난 녀석들을 믿어!”

동수는 프로토스와 저그를 지휘하고 있는 도경과 재훈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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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란의 지휘부는 의외의 사태에 당황하고 있었다. 정민이 마음을 먹는 한 지휘권을 다시 가져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병력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거기에 프로토스와 저그의 병력들이 양쪽에서 덮쳐오니 이러다가는 자신들이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졌다.

“어리석은 지구인! 녀석을 없애버려라!”

  분노에 섞인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정민의 머리와 연결된 전선들이 잠깐 밝게 빛이 났고, 정민은 엄청난 충격 속에서 그대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운재는 정민이 있는 방의 문을 파괴할 수 있었다.


“헙......”

진광은 안쪽의 처참한 모습에 놀라 헛바람을 삼켰다. 살을 태우는 지독한 냄새가 방 안을 뒤덮고 있었고, 시체 한 구가 이상한 용기에 걸쳐 있는 것이 보였다. 머리 쪽에서는 연기가 나고 있다. 운재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운재는 정민의 모습을 실제로 보지 못했다. 그냥 최면에 걸려 있다고만 생각했을 뿐......

“아직 미세하게 생체반응이 있습니다. 빨리 소멸시키고 돌아갑시다.”

다크템플러 소속의 프로토스족 한 명이 날카로운 검을 빼든다.

“살아 있어?”

운재는 다가가 시체와 다름없는 정민을 살폈다.

“위험합니다.”
“닥쳐!”

정민은 기적적으로 살아 있었다. 하지만 차라리 죽었다고 해야 맞았다. 아마 그냥 둔다고 해도 곧 죽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저자가 정신을 차리게 되면 지구는 물론 우리 동족들과 저그족까지 멸망합니다! 그리고 적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빨리 빠져나가지 않으면......”
“알아! 안다구!”

운재는 한 발 물러서서 정민에게 총을 겨누었다. 하지만 총을 든 팔은 다시 내려갔다. 다시 총을 겨누었지만 이번에도 자신이 없었다. 눈물을 머금은 눈동자는 이제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제길!”

운재는 눈물을 닦아내고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한 방, 두 방, 세 방, 네 방...... 흐르는 눈물을 애써 닦으며 방아쇠를 당기는 운재의 얼굴은 계속 일그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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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마지막회입니다~
지겨운 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시는군요^^
항상 리플 많이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이 글의 무단 퍼감을 금하는건 아시죠? -_-+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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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03/06/05 10:25
수정 아이콘
허걱 정민선수가 죽다니.... .....
03/06/05 10:25
수정 아이콘
쪽지글이 달리지 않는가요? 8개나 달려 있다고 보여지는데 댓글이 하나도 없군요... ^^;
03/06/05 10:26
수정 아이콘
아니군요... 제가 잘못 봤군요.. 쩝... --; 8편이라는 소리군요...
Cool-Summer
03/06/05 10:55
수정 아이콘
아~~
정민선수가.... 너무 슬픕니다...
언제나
03/06/05 11:45
수정 아이콘
비록 총은 발사 되었지만 정민님이 살아있기만을 기도 합니다.....
03/06/05 11:53
수정 아이콘
드디어 내일이 마지막이군요. 후아...한숨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머릿속이 멍하네요 ㅠ_ㅠ
후니...
03/06/05 13:07
수정 아이콘
과연 정민 선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너무나 궁금해요.. +_+
토스리아
03/06/05 13:46
수정 아이콘
내일 마지막이라니...내일이 기다려지면서도..아쉽네요.....
정민선수.....ㅠㅠ......운재선수, 동수선수... 미워요...ㅠㅠ(농담인 거 아시죠^^;;;?)
Hewddink
03/06/0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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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수님이... 이럴수가 !!!! o 0 o
김정민 선수가 살아있기를...ㅠ_ㅠ 안 그럼 공룡님 미워할꼬얌 !! ^^;;;
03/06/0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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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글이라니요.. 그런 겸손한 말씀을...
내일 결말이 기대되는 한편 너무 서운하네요.. +_+;;;
마지막까지 건필하세요~!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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