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2/10/13 22:48:36
Name 정일훈
Subject 나도 어제 결승전 후기...^ ^
"당신들...프로게임 비밀" 이외에는 글을 올리지 않으려고 생각했었는데 어제 결승전에 대한 재미있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서 저도 괜히 신이 나서 몇자 적습니다.
(애고, '프로게임 비밀' 담편 쓰는 중임다)

저도 어제 올림픽 공원에 갔습니다. 우리 아들녀석이 임요환 팬이거든요
29개월된 녀석은 온게임넷 로고를 '임요환'이라고 부르고, 스타크래프트도 '임요환'인줄 아는 녀석입니다. 그녀석에게는 게임 중계를 지칭할때  '임요한 지지'라는 용어가 쓰입니다. 스타크래프트가 뭔지 알리가 없는 녀석은 고집스럽게 TV리모콘을 가져와서는 '임요환 지지'를 보자고 보챕니다. 그래서 내 얼굴이 나오는 채널인데도 집에서는 온게임넷이 지겨워졌다는... T.T

암튼 어제 저도 갔습니다. 아내와 29개월 아들놈을 데리고 말이죠.
거대한 야외 광장의 시선을 모두 잡아내기에는 다소 소박한(?) 무대였지만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당히 꼼꼼히 신경을 쓴 무대는 역시 회를 거듭할 수록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쓰는 결승전 스테프들의 열정이 돋보이는 부분이더군요.

하지만 (물론 예산문제였겠지만) 중앙 스크린은 야외이고 저녁 6시 완전히 해가 진 다음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 했다면 바코(장충체육관에서 내내 쓴 장비의 이름입니다. 영사기가 스크린 뒤에서 영상을 빔으로 쏘면 스크린을 통해서 반대편 관객들에게 비쳐지는 장비입니다.)가 아니라 LED(대형TV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혹시 지난 월드컵에 월드컵 공원에서 응원한 분이 계시다면 당시 그 스크린이 LED입니다. 스크린 장비에 비해 빛의 간섭을 거의 안받죠.)였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스크린 갯수가 적었던 것도 물론이구요. 카메라 워킹이나 조명, 음향등에 대해선 저도 똑같은 불만입니다. 조금 더 고민하면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정말 많이 오셨더군요. 원래 한 만명 이상되면 수 개념이 흐트러집니다. 1만 5천명 온 것과 2만명 온 것은 잘 구분이 되지 않죠. 물론 2만명과 5만명은 차이가 납니다만. 제가 보건대는 1만 5천명은 전용준 캐스터가 너무 솔직히 말한 거고, 방송용 혹은 신문 보도용으로는 2만~2만3,4천명 불러도 되는 인파였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결승전을 하니 같이 보러가겠느냐고 한 선배에게 말했더니 엔터테인먼트쪽에서 일하는 그 선배는 "왜 거길 잡았대? 그날 홍경민 콘서트 하는데..."하며 괜히 안쓰러워 하더군요. 홍경민 콘서트 보다 사람들이 적게 올것이 분명한데, 그러면 기성 엔터테인먼트 문화와 게임 문화가 너무 직접적으로 비교되지 않느냐 하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스타리그 결승전에 홍경민 콘서트가 완전 KO패! 사이즈가 완전히 다른 이벤트라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가 됐습니다.

전직 스타리그 캐스터라는 특권은 어제도 작용해서 (좌석은 사전에 배정받은 티켓을 이용했습니다. 괜한 특혜는 싫거든요) 경기전에 무대뒤에서 반가운 얼굴들과 오랫만에 인사를 했지요. 그 순간, 온게임넷 스태프 한 분이 말로만 듣던 체리필터를 소개해 주더군요. 어제 그 만남을 계기로 체리필터 팬이 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친구들 정말 게임을 좋아하더군요. 어제 무대 위에서 보여준 멘트와 행동은 다소 연출이 되었겠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열심히 보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 이름과 제가 진행한 스타리그의 스폰서들, 각 시즌의 명승부, 각자 좋아하는 선수의 전략과 전술까지 완전히 이해하고 있더군요. 쫒기는 스케쥴에 스타를 잘하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스타리그를 좋아하고 짬이 나면 VOD라도 본다는 말은 사실 같았습니다.

경기 얘기 잠깐 할까요?
정말 재미있는 경기였습니다. 박정석 선수 참 잘했죠.
며칠전 온겜넷 워3리그 할때 한빛 이제균감독을 만났습니다. 정석이가 도저히 못이길 것 같다고 대단히 침울해 하더군요. KPGA 결승에서 이윤열 선수에게 박살이 난 후로 정석이가 자신감을 잃었다는 얘기도 하더군요.
어제 경기 끝나고 이제균 감독에게 '며칠전에 얘기한거 다 엄살이었구만!' 했더니 '아니예요~' 하면서도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흘리며 총총 뛰어갑니다.

어제 인터뷰때 박정석 선수 바쁜 와중에도 올림픽 공원 다녀갔다는 얘기 듣고 빙긋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감독에게 제가 그렇게 해보라고 했었거든요. 그래도 한국 프로게임리그 사상 '무대'에 가장 많이 올라가 본 사람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제가 말이죠.
사실 결승전 진행하다 보면 선수들 체온과 심장 박동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사람들이 캐스터, 해설잡니다. 언젠가 결승전 도중, 한 경기가 끝나고 다음 경기 들어가는 막간, CM이 나갈대 선수들 격려나 해줄까 해서 경기석 문을 열었던 적이 있습니다. "야, 요환아...헉!" 문을 여는 순간, 숨이 막혀 버렸습니다. 그 안의 공기는 정말 밖의 공기와 달랐기 때문이었죠. 마치 공기의 입자가 갑자기 모두 백배씩 커져서 빽빽하게 그 안에 들어차 있고, 그 밀도를 이겨내기 위해서 선수들의 세포가 모두 극한으로 긴장해 있는 열기... 그거, 겪어보지 않은 분들은 모릅니다.

선수소개 끝나고 인터뷰 끝나고 경기석에 혼자 앉았을때의 기분이란, 아무도 모를 겁니다. (물론 저도 모릅니다. 선수들만 압니다.) 그래서 더러 선수들은 증언합니다. "결승전 동안 대체 내가 뭘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봉준구, 장진남, 조정현 선수등이 그런 증언을 했습니다. 분위기에 휘말려서 자신의 페이스를 하나도 찾지 못한채 정신 차려보니 결승전이 끝나있더라는 거죠.

그런 분위기에서 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박정석선수, 그리고 그 지독한 결승전을 치러내고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임요환선수. 모두 정말 '프로'임에 틀림 없는 친구들입니다. 어제 있었던 경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요즘 TV 광고에 나오는 카피 그대로...

"상상초월!!!"

어제 집으로 돌아오면서 무지 샘났습니다.
'워3 리그도 스타리그처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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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0/13 22:51
수정 아이콘
멋진 글...인듯..^^;;;잘 읽었습니다...

워3도 멋진 결승 만들어 내시길....^^
02/10/13 23:02
수정 아이콘
하...그럼 박정석 선수의 마인드 컨트롤 프로그램은 바로 정일훈 님께서 구상하신거군요~^^.
덕분에 좋은 경기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그리고, 그 경기석(캡슐이라고도 하죠?)속에서의 중압감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으로는 어제 채리필터 여성 보컬 분이 박정석 선수 응원한다고 해서 무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경기 중에 카메라로 잡아주는 대다수의 여성 관객들이 전부 임요환 선수를 응원하는 것을 보고서는 더욱~^^;;
김호철
02/10/13 23:05
수정 아이콘
전 무엇보다도 관객동원면에서 홍경민콘서트에 앞섰다는게 기분 좋군요. 물론 유료,무료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리 공짜라도 자기가 보기 싫으면 안가겠죠. 아직도 기성 영화,음악의 대중성보다는 하위등급으로 취급 받는 게임의 대중성을 영화나 음악만큼 거의 동급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꿈은백수
02/10/13 23:11
수정 아이콘
아들분이 벌써 스타크팬이라니. ^^
앞으로의 장래가 이미 결정(?)되었군요.
02/10/13 23:18
수정 아이콘
결승전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어 기쁘군요. ^^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일훈님도 올림픽 공원에서 진행을 하시는 모습(워3리그)을 보고싶습니다. ^^

-2001 시즌이 그리운 한 팬이..
후니...
02/10/13 23:55
수정 아이콘
이제균 감독님이 아니라 이재균 감독님이십니다.. (_ _);;
ataraxia
02/10/14 00:13
수정 아이콘
오타이셨겠죠~^^;
Elecviva
02/10/14 00:16
수정 아이콘
pgr에 중독 되어 주시길..


-이기적인..
일훈님의 중계와 글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Dabeeforever
02/10/14 00:25
수정 아이콘
현장에서 아기와 함께, 그리고 작은 자동차(자전거였던가-_-;;)를 메고
가시던 일훈님을 뵈었습니다.^^
게임계의 장래는 정말 무한하다는 것, 알았습니다.
워3리그도 체육관에 가길 바라며...^^
일훈님의 좋은 글 많이 볼수 있길 바라며...^^
가라뫼
02/10/14 00:27
수정 아이콘
정말 어제 박정석선수의 플레이는 백만불 아니 2천만원짜리 이상의 경기를 보여주신거였습니다. 그리고 그 상대가 임요환선수였다는 것도 멋진경기를 할수있었던 가장 중요한 무언가의 하나였겠지요..
두분 모두 수고하셨고 앞으로도 수고하시길 바랍니다~
일훈님역시 워3리그 잘보고있습니다 수고하세요^^
스타나라
02/10/14 02:35
수정 아이콘
애고가 아니라 예고겠죠?^^
어제의 목이 터져라 중계하시전 전케스터님. 일훈님보다 더 잘하시던데요?
단 한가지 일훈님못따라가는거라면...무한 중계이후 쉬어버리는 목소리...그걸 가다듬으시면 일훈님을 앞질러버릴수도있다는 생각이...^^
일훈님 분발하십쇼!!!!
-전케스터는...아마도일훈님밀어네고 워3도 케스터하실것같다는 느낌이...^^-
여기까지 헛소리였구요.
지금의 워3리그, 김동준선수의 모습도 오래간만에 보이더군요.
일훈아찌!!!(으힝?__)아찌아들 제 동생하두 될까요?????(퍽퍽퍼벅퍽뿌억헉!쓰~~)
타츠마키
02/10/14 07:58
수정 아이콘
오~~ 정일훈님~

워3리그 진짜 열심히 보고 있으니, 좋은모습 많이 보여주시길~
그리고 더 성장하는 리그가 되길 바랍니다.
바우돌리노
워3 결승전 체육관 시대가 열리면 꼭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_^
02/10/14 15:40
수정 아이콘
저도 맨 앞줄 왼쪽에 흰 잠바를 입고 오신 일훈님을 봤는데...
아기랑 같이 앉아서 게임을 구경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일훈님은 .. 좋은 아버지가.. 되실 것 같군요 ^ _ ^
박지헌
02/10/14 17:10
수정 아이콘
그 자리에
정일훈님이 있었따면 더 좋았을것을.
208번지 아카데
02/10/14 17:19
수정 아이콘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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