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6/09/06 14:42:39
Name The xian
Subject "게임세대, 회사를 점령하다"를 읽고 - 후기
후기라고 해도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저 좀 깁니다.)

가끔가다가 머리에 쥐가 나는 기분을 겪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참 편하게 붓 가는 대로 썼습니다. 첫 글 말미에 보시면 P군이 "다른 사람 독후감 다섯 장 쓸 거 50장으로 만드는 재능"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습니다. 그 말은 과장도, 허위사실도 아닌 진짜 사실입니다.

저는 원래부터 주위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글을 길게 쓰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예전에 활동한 다른 게시판에서 저를 사칭하는 사람이 생겨도 하나도 통하지 않았던 이유가, "●●님의 이름은 베낄 수 있지만 그의 글 길이는 베낄 수 없다." 라는 이유때문이었다고 말하시더군요.


장점이요?? 국민학교 때부터 선생님들이 좋아하시더군요.;; 원고지 다섯장 이상 독후감 써오라고 하는데 그것도 부족해서 두장 세장 더 써오면 그렇게 좋아하시더군요. (물론 친구들에게는 "재수없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한 경우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대학 1학년(11년전;;) 교양 국어수업 때에 교수님이 원고지 10장 내외로 글을 써오라는 것을 A4 10장으로 알아들어서 저 혼자만 A4 10장(폰트 10, 여백 2cm)을 빽빽하게 채워 갔던 사건이었습니다. 담당 교수님이 제 리포트를 보자마자 하얗게 질리셨던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군대 가니까 간부들이 좋아하더군요;; 똑같은 보고서를 쓰더라도 제가 쓰면 뭔가 있어보인대나 어쩐대나. 덕분에 문서작업만 엄청나게 했습니다. 지금 게임업계에 있지만, 사내에서 문서작업을 하거나 외부에 기고나 연재를 할 때에도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저는 항상 원고를 넉넉하게 써 드리기 때문에 그것을 담당하시는 기자님들이 원고 중에 '어느 부분을 빼야 하지?'라는 걱정은 하신 적이 있어도 '어느 부분을 늘려서 페이지를 채워야 하나?'란 걱정은 하신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 잡설이었고요. 제 글의 얼마 안 되는 리플에 달린 질문 혹은 의문에 대해 대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굵은 글씨가 질문, 가는 글씨가 답입니다.


사실 게임의 내용만 따지고 본다면 비폭력적인 게임보단 폭력적인 게임이 많죠. 대부분의 게임이 일단 뭘 패고, 죽이고 하는 게임이니까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안미치고를 떠나서 이건 따지고 보면 그다지 반론의 여지가 많아보이진 않는군요.

그리고 P군의 대사 중에서 미친 소리에 신경 끄라는 소리가 있는데 전 그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미친 소리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가치관 자체를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서라도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단 '게임이 폭력적이다'라는 부분의 경우 이 책의 저자가 게임 컨텐츠 자체에 대해 그런 표현을 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책의 저자가 생각하는 것은 '게임 자체에 패고 죽이는 장면이 있느냐'가 아니라, '게임을 접한 이들이 실제로 폭력을 행하게 되어 그 빈도가 이전 세대에 비해 늘어나느냐'라는 측면에서 본 것으로 알고 있고, 그렇게 느낍니다.

'미친 소리에 신경 끄라'는 소리는 제가 제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몸에 좋지 않기 때문이지요. 저는 스트레스를 남에 비해 쉽게 받고, 여러 가지로 잔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입니다.(완벽주의자 기질도 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게임이 현실과 다른 '가상 세계'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라는 생각에 동의합니다만, 왜 사이버 세계에서는 함부로 행동하고, 그걸 또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이버 아이디들이 많은지 항상 궁금합니다.

일단 게임 측면에서만 보자면 그것은 제가 쓴 세번째 글에도 나와 있듯이 - 대한민국에서 게임 세계는 그 사회적 배경으로 보나, 컨텐츠의 성격으로 보나, 이 책의 저자가 살고 있는 미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과도한 경쟁 세계라는 점이며, 아무리 잘 만들어진 게임 세계라고 해도 그러한 경쟁을 모두 담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죠. 좀 경우는 다르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식으로 자기가 불만이 있는 일을 당하면 사적으로 해결하려는 고질적 문제도 한몫 한다고 봅니다.

또 하나 이것의 원인으로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익명성을 빙자해 발생한 '모럴 해저드'입니다. 게임이란 컨텐츠와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는 우리에게 너무도 급속하게 다가왔지요. 하지만 그에 맞는 도덕적 가치관이나, 규범의 성립은 그로 인한 문제가 엄청나게 불거진 뒤에야 선언되고,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규범들은 발전해 가고 있는 인터넷과 게임상의 모럴 해저드의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을 뿐이죠. '이 나라의 위정자들이나 지도층이 그런 모럴 해저드를 보였던 것이 국민들 전체에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 하고 말할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에 대해서는 저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가정교육이 무너진 것에 책임을 돌리고 싶고, 그런 것은 근원적으로 사람 개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건 그러한 모럴 해저드에 있어 나이는 포함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악플러들에 대한 구속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나이는 숫자일 뿐'이니까요.

물론 인터넷 세상에서 실생활과 같은 삶을 살아가라면 답답하겠죠. 그러나 인터넷에서도 서로 배려하고, 배려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정하기도 전에 PC통신이라는 닫힌 컨텐츠에서 인터넷이라는 무한정 열린 컨텐츠로 넘어가는 시기가 너무도 빨랐다는 것이 유감일 뿐이고, 지금까지도 실생활에서처럼 서로에 대한 배려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또 한번 유감일 뿐입니다. PGR은 그런 의미에서 '레어 아이템'과 비슷한 존재이죠.



게임에 대한 전문가는 쉽게 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게임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다른 영역까지 확장시켜서 '게임을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했으니 다른일도 전문가적으로 할 것이다.' 라는 주장은 좀 확대가 심하다고 봅니다. 모든 직업과 분야를 게임과 동일시 해서 생활하긴 힘들지 않습니까.

글에도 밝힌 부분이지만 이 책의 저자는 "게임처럼 손쉽게, '전문가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자세를 알려주는 컨텐츠는 없다"는 점에서 "게임 세대는 전문가를 지향한다"라는 말을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단순히 어떤 분야에 대한 세부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닌 일반론이라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그것이 이 책을 읽어 본 저의 느낌입니다.

물론 지나친 동일시 또는 확대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여지는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제 이야기 속에 "'나 스타크래프트에서 레이스하고 발키리 잘 쓴다'라고 해서 당장 파일럿이 되는 건 아니지."라는 말을 넣은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니까요. 다만 저 말에 대해 제가 개인적으로 더욱 공감한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에서 뭐든 알고 싶어했던 마음과 자세를 가지는 사람"이 바로 저이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실생활에서도 게임업계라는 곳에 들어와서 전문가를 지향하기 때문에 더 공감한 것입니다.

개인적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갱신 중인 제 자기소개서에는 "저는 (이 직장, 이 분야, 이 곳)에서 전문가가 되겠습니다"라는 말이 반드시 들어 있습니다.



"게이머들이여. 자신이 게임을 하고 게임의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라는 말을 자칫하면 위에서 말씀하신 그 폐인들이 자신들을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

좀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제 주위에 그런 폐인들이 있으면 컴퓨터 모니터를 도끼로 반 갈라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게임세대가 글로벌화되지 않았다기 보다는, 아직 인성이나 가치관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층이나 20대 극초반의 계층이 인터넷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서 유명해진게 아닐까요? 외국이라도 우리나라처럼 정말 잘 갖추어진 인터넷 환경이 존재한다면 작업장은 몰라도 욕설 정도는 일도 아니게 나올 것입니다.

나이가 아주 영향이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같은 투의 말을 하더라도 나이는 - 물론 저는 제가 담당하지 않은 게임까지 꿰고 있을 정도의 전문가는 아니니 집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 어느 정도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로 든 사건들 중 울티마 온라인에서 UOE로 인해 계정정지를 숱하게 당한 사건이나 작업장 문제 등의 경우를 놓고 생각해 보면, 그 문제를 양산한 이들은 대부분이 20대 중반 이상이라고 보여집니다. 울티마 온라인의 경우 대한민국에서 그다지 대중화된 게 아니라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당시 매니아들 사이에서 이용자층을 형성한 것이고, 작업장의 경우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니까요.

저는 나이보다는 앞에서 다른 분의 질문에 말했던 것처럼, '모럴 해저드'를 원인으로 꼽고 싶습니다. 게임관련 일을 하면서, 그런 문제가 나이와는 큰 상관 없이 일어난다는 것도 경험했고요. 제가 경력이 약 3년 정도 되지만, 실제 게임 내 또는 게시판에서 욕설, 해킹, 사기 등등의 여러 분쟁으로 처벌을 받는 연령대는 10대에 비해 20대, 30대도 큰 차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자기 기분 꿀꿀하다고 욕설 내뱉는 사람은 내뱉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안 하더군요.

물론 전체 게임이 다 그렇느냐는 것은... 잘 모르겠고, 제 능력으로 답변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제가 거친 회사의 제가 담당한 곳을 놓고 보았을 때는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조회수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고, 또 좋은 소재 있으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이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The xian -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9-07 18:10)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율리우스 카이
06/09/06 15:34
수정 아이콘
음... 제 의문/질문은 '글이 참 재밌는데 왜 조회수가 안나올까? ' 입니다.
^^;;
06/09/06 16:57
수정 아이콘
왜냐면 한주제의 연제 글임에도 너무 짜르셨어요.
제생각에는 한두편으로 만드셨으면 훨씬 좋았을듯 합니다.
이거 에게로 보내드려도 이미 너무 많아서리.. 하하.
The xian
06/09/06 17:05
수정 아이콘
homy님// 저는 단지 PGR 회원님들이 저로 인해 '스크롤 압박 고문'을 당하지 않기를 바랬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쓴 부분을(후기 제외) 하나로 모으니 A4 용지 26~28장 정도인데 그걸 한두 개의 글에 다 올린다고 생각하면;;;
06/09/06 17:20
수정 아이콘
스크롤 압박을 싫어 하시는 분은 어짜피 이런 주제의 글은 클릭을 안하시거든요.
클릭하신분들중 한번 맘주신 분은 계속 좋아라 하실테고
암튼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수고.. ^^
아쉬운멍키
06/09/06 19:01
수정 아이콘
수고하셨습니다. ^-^ 독서 감상문을 이렇게 길고 재미있게 쓰시다니... 필력이 상당히 딸리는 저로서는 The xian님이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루크레티아
06/09/07 02:39
수정 아이콘
저의 부족한 리플과 질문에도 성심껏 답해주신 xian님께 감사드립니다.
xian님 덕분에 책을 한권 통째로 읽은 느낌이네요. ^^
앞으로도 좋은 글과 책소개 부탁드립니다.
06/09/07 18:11
수정 아이콘
첫화면에 제목이 너무 짤려서 약간 수정했습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The xian
06/09/09 12:06
수정 아이콘
homy 님// 괜찮습니다. (그런데 5편만 덩그러니 자유게시판에 남아있네요.;;)
06/09/11 16:26
수정 아이콘
시리즈를 다 보고서 마지막편에만 댓글을 다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쓰시느라고 수고하셨어요.
공감가는 내용도 많았고..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이 글에선 크게 웃기까지 했네요. ^^
"●●님의 이름은 베낄 수 있지만 그의 글 길이는 베낄 수 없다." <- 여기서 폭소 했습니다.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31 그들만의 송별식.......(임진록월페이퍼 첨부) [29] estrolls11651 06/09/19 11651
329 미스테리한 그녀는 스타크 고수 <첫번째 이야기> [21] 창이♡10378 06/09/18 10378
328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5th』제목없음 [9] Love.of.Tears.7603 06/09/17 7603
327 서로 거울을 보며 싸우는 듯한 종족 밸런스 논쟁... [52] SEIJI8439 06/09/17 8439
326 가을에 듣는 old song [26] 프리랜서10197 06/09/11 10197
325 김원기여, 이네이쳐의 기둥이 되어라. [17] 김연우29428 06/09/11 9428
323 PGR 회의........... [35] Adada14077 06/09/05 14077
322 YANG..의 맵 시리즈 (11) - Lavilins [18] Yang9133 06/07/20 9133
321 과연 이제 맵으로 프로리그의 동족전을 없앨 수 있을까? [28] SEIJI9327 06/09/06 9327
319 "게임세대, 회사를 점령하다"를 읽고 - 후기 [9] The xian7145 06/09/06 7145
318 여성부 스타리그가 다시 열립니다! [33] BuyLoanFeelBride12535 06/09/05 12535
317 알카노이드 제작노트 [48] Forgotten_11510 06/09/04 11510
315 [Book Review] "게임세대, 회사를 점령하다"를 읽고 - 4 [7] The xian6435 06/09/04 6435
314 프로리그의 동족전 비율을 줄이기 위해서... [12] 한인7777 06/09/04 7777
311 [Book Review] "게임세대, 회사를 점령하다"를 읽고 - 3 [6] The xian6243 06/09/02 6243
310 [Book Review] "게임세대, 회사를 점령하다"를 읽고 - 2 [8] The xian7214 06/08/31 7214
309 제목없음. [5] 양정현8070 06/08/31 8070
308 어느 부부이야기3 [26] 그러려니9178 06/08/30 9178
307 [Book Review] "게임세대, 회사를 점령하다"를 읽고 - 1 [9] The xian8078 06/08/30 8078
306 프라이드와 스타리그 [8] 호수청년9188 06/08/28 9188
305 <리뷰>"악마가 영웅의 심장을 빼앗아 버리네요" 경기분석 [2006 Pringles MSL 16강 B조 최종전 박용욱 VS 박정석] [12] Nerion11769 06/08/28 11769
301 [설탕의 다른듯 닮은] 조용호와 김두현 [20] 설탕가루인형9206 06/08/25 9206
300 나는 게임에 대한 이런 관심이 즐겁지 않습니다. [16] The xian10273 06/08/24 1027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