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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기간동안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6/06/16 14:11:35 |
Name |
하늘바다 |
Subject |
[기타] <펌>98년 월드컵 벨기에전 후기... |
토고전 말들도 많지만 원정 1승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다가 얼마전 봤던 글이 생각나 올려봅니다. 중복일지 모르겠지만, 못보신 분들은 다시한번 과거를 회상도 해보시고,
우리가 얼마나 1승을 얻기 힘들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것도 좋을꺼 같습니다.
참, 당시 어떤 사람들은 얼마나 여론이 무서우면 저렇게까지 했냐고 비이냥 거리기도 했지만, 대체 세계 어느나라가 역전패와 5:0 패배, 감독해임등 최악의 조건에서도 대한민국처럼 마지막까지 투혼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요?
이하 퍼온 글입니다.
붉은악마홈피에서 퍼왔습니다.
자료소스 : 하이텔 축구동호회, 1998-08-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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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했던 네덜란드전의 기억을 가슴에 묻고 마르세유를 떠난 다음날 우리는 마지막 격전지인 파리에 도착했다. 마지막 벨기에와의 한판. 16강의 한가닥 꿈 은 이미 처참하게 무너진 후였다. 이제는 단지 1승이라도 거두었으면 좋겠다 는 간절한 바램뿐이었다.
아침 7시. 침대기차는 종착역 도착시간이 곧 기상시간이었다. 부시시한 눈을 비빌 새도 없이 짐들을 내리고 다시 몸을 싣는 지하철. 몇명은 지하철에 타자 마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리저리 싼곳을 찾다가 결국 구한 파리 외곽의 우리 숙소. 거의 우리나라의 성남쯤에 위치한 곳이었다. 국철격인 RER을 타고 한 40분 갔을까. 마침내 숙소가 있는 Choisy le Roi 역에 도착했다(우리는 이 역을 최성용 역이라 불렀다. Choi S.Y.=최성용). 역에서 10분이면 숙소에 도착 한다는 여행사 책자. 그러나 30분가까이 헤맨 끝에야 미군부대 캠프같은 숙소 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철조망과 무인카메라 그리고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삼엄 한 정문을 지나고 기나긴 잔디밭을 한차례 걸어서야 비로서 본 건물에 도착. 거짓말 좀 보태 숙소 주위 1km안에 잔디와 나무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정말 응원에만 전념할 수 있겠군' 누가 우스게소래를 한다. 선수들 의 숙소도 이런 곳이라고 하던데... 훈련하고 물고기에게 밥주는 일이 일과의 전부라던 선수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6시에나 체크인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숙소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 몇몇 은 잔디밭에서 공을 차고 몇몇은 샤워를 하며 피로를 푸는 동안 인철님이 짐 차와 함께 등장한다. 오늘 오전까지 임대가 되어있는 랜트카. 재빨리 차에서 응원도구들을 내려 다시 정리하고 차를 돌려보내야만 했다. 서울에서부터 파 리, 리용, 그리고 마르세유까지 계속 우리와 함께 했던 응원도구들... '고구려의 孫' 깃발, 도깨비 깃발, 붉은악마 깃발, 선수들 걸개유니폼, 탐탐북, 대형태극 기... 이것들 때문에 정말 고생도 많이 했지만 이제 프랑스에서 사용할 수 있 는 것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쉬움이 앞섰다. 16강의 꿈. 월드컵 본선 토너 먼트라는 것이 어떨가 라고 느껴보고 싶었던 소망. 모든 꿈들은 사라지고 이 제 마지막을 마무리해야 하는 순간만 다가오고 있었다.
16시에 드디어 체크인. 방에 짐들을 놓고 자유시간이었다. 그러나 나와 오윤 진님, 예성호님, 한홍구님, 조승옥님, 이승용님은 우리의 비행기 예약을 위해 항공사로 가야만 했다. 항공사는 말로만 듣던 샹젤리제 거리에 위치. 지하철을 타고 샹젤리제 거리로 나간다. 저멀리 개선문이 보이는 가운데 거리에는 월드 컵 참가국들의 국기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50명에 달하는 인원들의 예약명단 을 보자 기절하려는 항공사 아가씨. 지금 여기서는 불가능하니 몇일 여유가 필요하다는 말에 명단을 맡기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크리스찬 디오르, 루이비똥... 길가에 초현대식으로 인테 리어된 매장에는 1류 상표들만 즐비했다. 정말 여기가 세계의 패션 1번지 파 리구나 라는 것이 절로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보이는 축구샵. 바로 PSG, 파 리 생 제르망의 클럽샵이었다. 세계의 패션 1번지에 축구샵이 있다니... 놀라움 속에 축구도 엄연한 하나의 '패션' 으로 대접받는 그네들 문화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편 에펠탑의 보러가자는 예성호님의 제안에 저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향해 걷기로 했다. 다이에나 왕세자빈이 사고로 죽은 터널을 지나고 세느강을 건너 도착한 에펠탑. 그러나 다시 에펠탑은 야경이 진국이라는 예성호님의 말씀에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사방에 널린 잔디밭. 그 위에서는 모두들 형 형색색의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리버풀, 유벤투스 유니폼들을 입고 공을 차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는 우리들. 조승옥님이 실감나게 말해 주는 1진의 각종 에피소드에 귀굴이다 보니 어느덧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이 렇게 기다린 끝에 구경한 에펠탑의 야경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6월 24일. 벨기에전 하루 전날. 전일 자유시간이지만 드디어 내일 결전을 준 비해야 하기에 전원 24:00까지 숙소로 들어오기로 했다. 자정 이후엔 음주도 금지. 시간을 넘겨 들어오는 사람은 벨기에전 관람이 불가능하다는 공포의 조 건(?)까지 붙었다. 한편 이날 저녁에는 한일공동응원단 출범식도 있어 우리 인 원중 한일 공동응원단에 포함된 18명은 거기에도 참석해야 했다.
낮동안 베르사유를 보러가자는 예성호님의 제안에 나와 한홍구님, 조승옥님, 예성호님 4명은 말로만 듣던 베르사유 궁전을 구경했다. 이날 한홍구님이 다 소 위장틱(?)한 계열의 복장을 하고 계셨는데 미국 여고생들이 이를 보고 우 리가 북한에서 온줄 알고 같이 사진을 찍자는 헤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낮이 지나고 드디어 한일공동응원단 출범식이 있는 저녁. 행사장은 공항 근처 위치한 별 4개짜리(!) 호텔이었다. 위풍도 당당한 프론트에는 온통 정장을 입은 사람들뿐... 맨날 라면만 먹는 우리에게 정장 같은것이 있을리 만 무했다. 한차례 주눅이 들지만 그래도 여기는 대통령도 목도리 두르고 대회 조직위원장이 유니폼 입는 프랑스였다. 월드컵 기간중엔 유니폼이 정장이다! 누군가 소리친다. 용기를 얻는 우리들. 어느새 별 4개짜리 호텔 프론트는 시끄 럽게 떠드는 붉은 유니폼의 무리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리셉션장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휘황찬란 한 조명밑에 차려져 있는 각종 음식들이었다. 빵과 라면으로만 연명해온 우리 에게는 황홀하다 못해 어지러운 광경. 그러나 지금은 한국 서포터들을 대표해 참석한 공식적인 자리였다. 애써 음식들을 외면하는 고통속에 일본어와 한국 어로 번갈아 나오는 재일 한인체육회장님에 귀를 기울였다. 곧이어 인철님의 답사 그리고 우리가 앞에 나가 한차례 응원시범을 보였다. 아리랑을 부르자 환호하는 사람들. 재일교포 한분의 말씀처럼 정말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 라 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먹는(?) 시간. 우리는 음식에 달려들어 식욕과 매너의 경계선상에서 갈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동응원단의 일본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본 울트라스쪽에서도 두명이 찾아왔는데 거의 190에 가까운 왠 떡 대들이 왔다. 사진찍는 경우를 의식한건지 일부로 덩치큰 녀석들만 두명 보낸 것 같아 다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글쎄 나의 지나친 생각일까... 완전한 신뢰 속에 서로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려면 아직까지 약간의 시간이 더 필 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한인회장님께 인사까지 드리고 나자 시간이 당초보다 많이 지체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숙소가 있는 최성용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40분. 약속된 자정까지는 불과 20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비록 공식적인 자리에 참가하느라 불가피하게 늦어진 것이지만 약속은 어디까지나 약속. 시 간에맞추기 위해 우리는 밤거리를 땀나게 뛰어야 했다. 역에서 숙소까지 족 히 2km에 가까운 거리를 뛰는 붉은옷의 무리들. '불의 전차' 영화음악이 딱 어 울리는 순간이었다. 아 저기 숙소 정문이 보인다. 그러나 갑자기 옆으로 쌩~ 하며 지나가는 택시.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돈을 택시안에 던져넣기 바쁘게 역시 숙소로 뛰어가고 있었다. 바로 구단 3인방이었다.
어쨋든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 힘입어 단 한사람도 늦지 않고 모두들 자정 이전까지 들어올수 있었다. 정신없었던 하루... 그러나 내일은 결전의 날이었 다. 한차례 샤워를 하고 긴장감과 피곤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드디어 한국 마지막 경기의 날이었다. 우리의 응원도구는 경기 장까지 코카콜라에서 실어주기로 했지만 10시가 넘도록 오지 않는 버스. 어떻 게 하나... 대책을 세우기로 하고 숙소 현관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위풍도 당당 하게 코카콜라 버스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반가운 버스에서 내리는 3진 인원 들과 포옹하지만 그런 시간도 잠시뿐. 어서빨리 응원도구들을 실어야만 했다. 결국 재회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버스는 다시 사라고 말았다.
샤워장 온수로 덥힌 햇반과 사발면으로 간단히 배룰 채우고 드디어 경기장 으로 출발. 차질없는 이동을 위해 어제 경기장을 사전답사하신 허영화님의 인 솔아래 이동하기 시작했다. RER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다시 내려서 걸어가 고... 서서히 경기장이 가까워질수록 벨기에 응원단의 모습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유럽의 붉은악마' 벨기에답게 온통 꼬챙이 풍선에 머리에는 뿔을 단 무리들이 응원가를 부르며 우리쪽으로 모여들었다. 북적거리는 가운데 다 소 난감한 상황. 역시 인철님이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다시 징을 들었다.
'뎅~ 둥.두.두.둥!' 멕시코전때 써먹은 우리 장단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결 국 응원가를 부르던 벨기에 녀석들은 나가떨어지고 우리는 계속 사물놀이 연 주를 하며 위풍당당하게 경기장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보는 의외 의 소리에 신기해하며 몰려오는 방송국 카메라들. 역시 징을 가져오기 잘했다 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장 앞에서 다시 빵을 먹으며 777인원과 입장시간을 기다리지만 정작 문 제는 표였다. 인철님과 김시문 대리님이 네덜란드까지 갔다오는 노력끝에 입 장권은 확보했지만 아직도 사람수보다 2장이 부족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경 기장 앞에서 수소문해서 윤종현님이 암표로 한 장을 샀지만 여전히 모자란 한 장. 표를 구해주시기로 한 재불 한인회장님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 나... 막막할 뿐이었다. 끝내 1명이 희생해야만 하는 현실. 결국 이 사정을 누 구보다 잘 알고 계시던 정성우님으로부터 자신을 기다리지 말라는 전화 한통 이 왔다. 붉은악마 탄생부터 있으면서 프랑스에 유학가고 원정을 위해 누구보 다 열심히였던 정성우님.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토록 바라던 마지막 경기때 모두를 위해 스스로 희생을 해야만 했다. 왜 이런 일이 있어야만 하나... 성우 님의 말없는 양보에 정말 눈물나도록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울 뿐이 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정성우님을 제외하고 입장을 시작했다. 이번 입장은 코 카의 777응원단까지 있어 무척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엄청난 붉은옷의 인파에 질려서인지 제대로 검사도 안하는 경찰들. 사람이 적어 항의도 한번 못해보고 버튼뱃지까지 흉기라며 빼앗겨야했던 이전 경기들의 서러움이 생각나는 순간 이었다.
그러나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코카응원단은 왔지만 타고온 버스에 실었던 걸개 유니폼이 오지 않은 것이다. 이럴리가... 인철님과 게이트에 남아 걸개 유니폼이 오기만을 기다리지만 끝내 오지 않는 걸개유니폼. 아~ 마지막 기회 인데... 너무나 안타까웠다. 중국전때 잠실 2층에 걸었던 것을 사람들이 훔쳐가 는 바람에 멕시코전때 제대로 못걸고... 네덜란드전에 다시 2진이 새로 만들어 서 가져왔지만 경기장 구조 때문에 걸지 못하고... 이제 벨기에전이 마지막 기 회였건만 결국 이렇게 물거품이 되다니... 허탈하기만 했다.
결국 걸개유니폼을받지 못한체 경기직전에 입장. 선수소개는 이미 끝나고 애국가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아~ 애국가 나오자 1층과 2층에서 동시에 2개의 태극기 통천이 올라간다. 20명의 인원으로 멕시칸들이 던지는 토마토를 맞아 가며 태극기를 올렸던 멕시코전의 기억에 새삼 코끝이 찡해 왔다. 그래 오늘 은 우리 한국사람들도 많다. 정말 오늘만은 결코 한치도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결의에 어느새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심판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시작했다. 시작하자마자 벨기에의 공세. 닐리스의 슈팅에 이은 한차례 김병지의 선방. 얼마후 다시 채 전열이 정비되 기도 전에 벨기에의 코너킥. 순간 이는 불안감.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에서 올 라오는 공이 벨기에 선수의 머리를 맞고 그대로 우리쪽 골대로 빨려온다. 다 행히도 그 자리에서 헤딩으로 거둬내는 김도근. 아~ 그러나 동시에 순간 공은 닐리스의 슈팅과 함께 다시 매정하게 우리쪽 네트에 꽂히는 것이었다. 골이었 다.
뒤집어지는 벨기에 관중석. 그러나 아직 시간은 많았다. 목청껏 '괜.찮.아!' 를 외치며 선수들을 격려한다. 5분만에 1:0. 네덜란드전때도 이렇게 빨리 먹지 는 않았는데... 앞서는 걱정. 하지만 그라운드의 선수들을 보자 이런 생각은 어 느덧 사라졌다. 모두들 너무 열심히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헌이 헤딩 하려다 얼굴을 체이고 테클하다 다시 쓰러지고. 서정원의 1:1찬스가 볼트레핑 미스로 골키퍼한테 안긴다. 아~ 곳곳에서 아깝게 터져나오는 탄식들... 그래도 분위기가 좋다. '그래! 이 기세로 밀어붙여~!', '힘내~!' 사람들은 목청껏 응원을 계속하고 있었다.
전반내내 이어지는 공방전. 그러나 40분이 넘을 무렵 네덜란드가 2:0으로 이 기고 있다는 소식이들리자 벨기에는 완전히 뒤집어진다. 마치 벌써 16강이 확정된것처럼 난리치는 벨기에 사람들. 동시에 반대편에서 시작된 파도가 우 리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한차례 맞서보지만 전관중의 쏟아지는 야유. 하는 수 없이 약자의 서러움을 느끼며 우리도 파도에 동참하는 수밖에 없었다. 파 도까지 돌자 아니나 다를까 완전히 벨기에 판으로 뒤집어지는 운동장. 얼마후 전반전이 끝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프타임. 비록 1:0 상황이었지만 결코 질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경 기 분위기가 좋다. 모든 선수들이너무나 열심히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9월 28일 일본전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기필코 동점골 그리고 역전골까지 터질것 이라는 믿음이 섰다.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자리로 돌아와 호랑이 통천을 준비했다.
호랑이 통천과 함께 후반전이 시작되고 한국의 선수교체. 고종수와 이임생 이 들어왔다. 아 제발 최선을 다해서 뛰어다오. 간절한 생각 뿐이었다. 역시 후반전도 치열한 몸싸움. 30대가 넘는 선수들이 많다곤 했지만 벨기에는 어디 까지나 덩치좋은 유럽팀이었다. 떡대같은 벨기에 선수들과 부딪힐때마다 안타 깝게 나가떨어지는 우리선수들. 몸싸움에서 밀려 쓰러지면 곧바로 일어나 이 를 악물고 뛰고 있었다. 단 1분이라도 벌기 위해 김병지는 아웃되는 공을 달 려가 잡고... 얼마후 유상철의 패스를 받은 이민성에게 1:1 찬스가 온다. 순간 숨죽이는 관중석. 그러나 공은 아깝게도 골키퍼 다리를 맞고 나오는 것이었다. 아~ 곳곳에서 나오는 탄식. 그러나 안타까워할 사이도 없이 벨기에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닐리스의 공이 골대를 맞히는 한차례 위기.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이 번에는 한국선수가 쓰러진다. 이상헌. 그러나 벨기에는 선수가 쓰러져있어도 아랑곳 않고 계속 인플레이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관중들의 쏟아지는 야유. 우 리도 휘파람을 부르며 야유했다. 다행히도 김병지의 선방. 그제서야 이상헌이 그라운드 밖으로 실려나갈 수 있었다. 부상이 심각한지 교체되는 이상헌 대신 장형석이 나왔다. 한국의 마지막 교체였다. 더 이상 교체를 할 수 없다. 이제 는 부상을 당하면 어쩌나... 들어오는 장형석의 이름을 외치면서도 걱정만이 앞섰다.
후반 25분. 왼편에서 돌파하던 고종수에게 벨기에가 파울을 가한다.한국의 프리킥. 페널티박스에서 약 2m떨어진 지점이었다. 저 거리라면! 하는 생각에 갑자기 흥분이 되었다. 그 순간 인철님이 흥분 때문에 그르쳤던 멕시코전을 환기하며 외친다. '여러분 우리모두 선수들에게 침착하라고 외칩시다!'. 그래 여기서 침착해야 한다. 선수들에게 제발 침착하라고 '침.착.해!' '침.착.해!' 를 목청껏 외쳤다.
키커는 하석주.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센터링이 감아져 올라왔다. 벨기에 수 비수들과 골키퍼를 스쳐 지나는 공. 그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점점 내려오던 공이 땅에 닿는다고 느껴지는 순간! 아. 갑자기 우리 앞의 네트가 출 렁이는 것이었다. 세상에 믿을 수 없었다. 아아아~! 골이었다.
모두들 부둥켜 안고 울었다. 동점골. 그렇게도 그리던 골이 터졌다. 축제분 위기였던 벨기에 관중석은 일순간 초상집. 벨기에 선수들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대. 한. 민. 국~~~!' 경기장에 울려퍼지는 우리의 응원은 거의 울 부짖음에 가까웠다.
이제는 1:1 동점. 한골 앞서던 상황에서 안전위주로 나가던 벨기에는 총력전 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겨야만 16강에 오르는 상황. 이제 벨기에도 더 이상 물 러설 곳이 없었다. 거센 벨기에의 반격속에 점점 거칠어지는 경기. 우리도 물 러서지 않고 맞불을 폈다. 몸을 던지는 육탄전 속에 다시 한국선수가 쓰러진 다. 이번에는 이임생. 머리에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그라운드 밖으로 실려 나왔다. 순간적으로 경기는 11:10 상황. 한명이 많아지자 벨기에는 파상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위기. 한국이 밀리는 것을 보고 이임생은 머리의 피를 닦는 시늉만 하고 다시 그라운드로 뛰어가려 하지만 선심이 이를 저지한 다. 상처는 괜찮으니 빨리 들여보내달라고 울보짖는 이임생. 안타까워하는 그 모습을 보며 어느새 코끝이 찡해지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이겨야만 16강에 오르는 벨기에... 반면 탈락이 확정되었지만 단 1승이라도 거두기 위해 뛰는 한국... 너무나 다른 상황이었지만 1:1에서 벌 이는 경기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벨기에의 센터링이 올라오면 몸을 던져 헤딩으로 거둬내는 우리 선수들. 이임생이 헤딩을 할 때마다 붕대를 감은 머 리에서는 피보라가 이는 것만 같았다. 부상을 입고서도 악착같이 공중불을 따 내려던 김태영은 무릎을 움켜쥐며 쓰러지고... 벨기에가 슛을 하자 유상철은 몸을 내다던지며 막았다. 어느덧 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네덜란드 전 이후, 한순간이나마 우리 선수들을 욕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정말 우리 선수들은 너무나도 열심히 뛰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해 야만 하나... 월드컵 1승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런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수비수들의 눈물겨운 투혼에 보답이라도 하듯 전방에서는 서정원과 하석주 가 줄기차게 뛰어다니던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고 있었다. 센터링에 이은 최용 수의 헤딩! 아~ 그러나 안타깝게도 골퍼스트를 넘어가는 공. 조금만, 아니 약 간만 더 침착하기만 했어도... 안타까운 장면들이 반복된다. 이 와중에서도 매 정하게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 15분... 10분... 5분... 정말로 이번 월드컵 에서도 우리는 이 마지막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인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안타까움만 더해갈 뿐이었다.
드디어 45분을 지난 전광판도 꺼지고... 4분의 루즈타임도 지난다. 벨기에의 마지막 코너킥. 우리 못지 않게 절박한 심정의 벨기에는 골키퍼까지 나와 공 격에 가담했다. 올라오는 코너킥. 김병지와 벨기에 골키퍼가 동시에 뜬다. 공 을 잡고 땅으로 떨어지는 김병지. 일어나자마자 서정원 쪽으로 공을 내차지만 그 순간 주심의 휘슬이 울린다. 땅에 드러눕는 벨기에 선수들... 우리 선수들도 고개를 떨군다. 경기 종료. 무승부였다.
아...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마지막 1골이 터지기만을 기다리며 참아왔던 눈물이 일순간 쏟아졌다. 지난 2년동안 여기 프랑스만을 꿈꾸며 준비했었는데 이렇게 끝나는구나... 선수들이 저렇게 피를 흘리고 몸을 던져가며 뛰는데도 마지막 1승을 거두지 못하는 우리 축구의 현실... 그 모든 것에 나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났다. 선수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러 우리쪽으로 온다. 선구자를 부르며 선수들을 맞는 모두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끝까지 싸워준 그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모든 것이 불리하기 만 한 이곳에서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준 우리의 선수들...
곧이어 보도진들이 우리쪽으로 몰려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맨 앞에 있던 나는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내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인철님이었다. 가슴이 메여왔다. 정말로 힘 든 이 붉은악마 회장직을 맡고서 여기까지 우리를 이끌어온 인철님. 마지막 1 승과 함께 이 자리를 마무리짓고 싶다던 인철님의 마지막 소망은 이렇게 아쉬 움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중에 2층에서 들리는 박수소리...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벨기에 관중들 이 우리를 향해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우리도 답례로 목청껏 '벨지움!' 을 외 쳐주었다. 역시 최선을 다한 벨기에 선수들과 관중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비록 승자가 없는 경기였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 최선을 다한 상대에게 박수를 쳐줄 뿐. 이 모습을 보며 우리와 벨기에 모두를 위해 프랑스 관중들과 CFO요원들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그래 바로 이것이 축구만이 가지 는 감동이구나... 다시한번 코끝이 찡해왔다.
청소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운동장을 나오려는데 벨기에 사람 한명이 내게 와서 말을 건다. 한국을 다시보게된 경기였다는 말. 그리고 한편으로는 탈락이 이미 확정된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뛸 수 있는지 자신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냥 말없이 웃자 엄지손가락을 펴보이며 돌아가는 벨기에 사람.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정말 벨기에도 지지리도 복이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 하나만 남아 1승만이라도 건지려고 바 득바득 덤비는 동양의 어떤 나라를 막판에 만나다니... 자신들의 16강행을 가 로막은 이 한국을 벨기에 사람들은 오랫동안 잊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로 가는 길. 길가의 프랑스 사람들은 우리에게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그래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결코 부끄럽지 않은 경기.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의 진정한 승리자는 우리였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샹 젤리제 거리로 나가 이 기쁨을 더 누리기로 한다. 그러나 내일의 한일공동응 원을 위해 숙소를 옮겨야 하는 우리 18명은 안타깝게도 거기에 낄 수 없었다. 그동안 함께한 일행들과의 마지막 작별. 아쉬움을 접어두고 우리는 숙소로 돌 아와야만 했다.
각자의 짐을 정리하고 '2002 Let's go together' 통천, 북과 징 한 개씩을 챙 겨서 재일교포분들이 묵으시는 호텔로 이동했다. 맨날 유스호텔에 머무른 탓 에 어색하기만 한 호텔방. 문을 못여는 한차례 헤프닝 끝에야 짐들을 풀고 샤워를 한뒤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아~ 내일 일본과 자메이카의 경기를 보러 리용으로 다시 가는구나... 멕시코전 쓴 패배의 기억이 서린 리용. 바로 그곳에서 일본의 경기를 응원한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에 잠이 오지 않았다. 갖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처음 묵어보는 프랑스 호텔에서의 밤은 깊어 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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