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기간동안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6/06/15 08:54:50 |
Name |
휀 라디엔트 |
Link #1 |
http://www.cyworld.com/handraken |
Subject |
[기타] 스페인:우크라이나 관전평 - 무적함대 개조완료! |
흔히 유럽 3대 리그라 일컬어지는 프리미어, 세리에A, 그리고 프리메라 리그. 각각 다른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는 리그들인만큼 각기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렇기에 한 리그에서 절정을 달리는 선수라도 다른 리그에서도 반드시 그 실력을 온전히 보여준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대표적인 예는 굳이 들지 않더라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차이점을 들 수 있지만 대부분이 공감하는 리그별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리미어는 압박과 강한 활동량, 세리에A는 전술적 운용에 근거한 조직력, 그리고 프리메라는 패싱과 키핑을 통한 볼점유율의 주도를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주요클럽들을 상대로 유행처럼 번지는 전술중 하나가 4-3-3이라는 전술입니다. 04-05 챔피언스 리그의 4강팀이 전부 4-3-3을 기조로 운용하는 팀(당시 리버풀은 포워드의 무기력함으로 불가피한 운용이였지만......)일 정도로 이제는 강팀에게는 필수적인 전술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전술이지만 이미 다양한 응용법이 나온 만큼 단순하게 미드필더 3에 포워드 3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4-3-3의 전술운용에서도 공통적인 특징을 꼽아 보자면 이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쪽 윙포워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넓은 활동량이고 전술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중앙 미드필더 3의 모양새가 어떻게 되어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무적함대라 칭해지는 호칭이 무색하게 언제나 단조로운 움직임으로만 일관하며 최근의 메이저 대회를 모두 죽만 쑤다 간 스페인. 지역감정이 가장 큰 이유지만 원인을 찾다보면 기존 전술운용의 단조로움도 하나의 단초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강점이 중원에서의 패싱게임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다른 국가들도 다 알고 있기에 어떻게든 그들의 흐름을 저지하려고 다양한 각도로 압박을 하려듭니다. 최근에 압박능력이 우수한 중앙미드필더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점은 감안한다면 스페인은 자신들의 강점을 업그레이드 하던지 아니면 무엇인가 변화를 주어야 하는 상황이였습니다.
어제 경기는 일단 우크라이나의 무기력함을 지적해야합니다. 유럽 지역예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팀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선수들의 모습은 ‘혹시 선수들이 병이라도 걸린 것 아니야?’ 할 정도로 낭패스러운 모양새였습니다. 나중에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갑작스러운 더위가 걸림돌이 된 듯합니다. 그러나 분명 우크라이나가 낭패스러운만큼 스페인은 훌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스페인의 강점을 승화한 전술적 변화가 드러났다는 것이 저를 참으로 기대감에 들뜨게 합니다.
스페인의 엔트리 23인을 확인한 후 저는 약간 고개를 갸웃하였습니다. 터치라인을 따라 플레이 할 수 있는 윙미드가 호아킨과 레예스(사실 포워드에 가까운 선수입니다)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며 ‘4-4-2를 안 쓰겠다는 예긴가?‘는 생각으로 아라고네스 감독이 무엇을 보여줄런지 하고 지켜 보았습니다. 사실 평가전에서 종종 4-3-3을 테스트 하는 모습도 보았지만 ’노장감독이 라울과 호아킨 같은 4-4-2에 최적화된 선수들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대도 하지 않았던 4-3-3을 본 지금 저는 스페인에게 이번 월드컵은 무엇인가 다른 대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포워드부터 살펴보면 아라고네스 감독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의 강자인 호아킨을 제외하였다는 것에서부터 ‘나는 윙 플레이를 할 생각이 없다.’는 감독의 의중이 보입니다. 너른 활동범위와 빠른 공수전환, 그리고 일정수준의 득점력까지 갖춘 가르시아와 비야를 양쪽에 배치하여 토레스와의 유기적인 포지션 체인지를 주문합니다. 이런 경우 중앙의 공격력은 강화되지만 윙 플레이는 포기해야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중앙의 패싱게임을 통한 윙의 돌파와 크로스가 기존의 스페인 주요 공격루트인 점을 생각한다면 의야한 면입니다만 아라고네스 감독은 이 부분에서 스페인의 강점을 여실하게 드러내줍니다.
한국의 스페인 팬들에게 입버릇처럼 회자되던, FM에서나 가능하다고 빈축을 사던 ‘트윈 샤비’가 드디어 메이저대회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샤비 에르난데스와 샤비 알론소는 둘 다 윙을 배제하고 전방으로 패스를 뿌려줄 수 있는 선수입니다. 약간의 수식어를 동원하자면 ‘90%의 패싱 성공률’과 ‘대지를 가르는 패스’를 동시에 보유할 수 있는 미드필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FM 스쿼드 라고 하는 이유는 둘 다 패싱력은 있어도 장악력은 부족하기에 공격은 강점을 드러내지만 수비에서는 문제점을 노출하는 상황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라고네스 감독이 4-3-3을 선택한 이유가 드러납니다. 중앙미들을 3으로 늘리면서 ‘리켈메의 보디가드’ 세나를 투입하게 됩니다. 분명 네임벨류는 알벨다가 더 위지만 아라고네스 감독이 의도하는 바지런한 움직임과 헌신적인 뒷받침은 세나가 더 좋다고 판단하였고 어제의 세나는 그런 감독의 의도를 충실히 수행하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샤비 에르난데스. 사실 이 선수는 게임의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몇 안되는 선수들 중 하나입니다. 피지컬이 우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드리블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단지 강점은 키핑과 패스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만으로 샤비는 미드필드를 지배합니다. 어제도 경기내내 키핑-패싱을 반복하며 미드필더를 지배하는 샤비앞에 저는 이런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공을 한번도 안 뺏기네......안 뺏기는 것에 내기걸면 내가 이기겠는데?’
스페인의 수비진은 뭐 4명 다 훌륭하였기에 딱히 누구를 꼽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라모스를 주목하고 싶습니다. 오버래핑을 꾸준히 일삼던 페르니아와는 대칭적으로 오버래핑을 자제하면서 대신 양질의 롱패스를 뿜어내는 것입니다. 몇 번의 장면은 베컴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정확한 낙차를 자랑하는 것을 보며 레알에서의 의도하지 않은 다른 포지션의 수행이 결과적으로 플러스 요인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오른쪽과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한다는 그를 보며 향후 스페인의 10년은 걱정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라모스는 거품이다라고 생각한 제 자신이 참 민망하더군요.
‘스페인의 아이콘’ 라울과 무적함대의 오른쪽 지배자 호아킨을 배제한 아라고네스의 의도는 이번 경기에서 적중하였다고 봅니다. 물론 우크라이나의 무기력한 플레이가 경기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스페인의 업그레이드가 저평가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사실 이런 변화는 비센테와 루케가 부상으로 낙마하는 것으로 어쩔 수 없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연쇄적으로 생각해보면 모리엔테스의 엔트리 탈락도 이해가 갑니다. 토레스와 라울이 있는데 굳이 모리까지 챙기면서 원톱을 운영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파브레가스와 이니에스타까지 챙기면서 에체베리아를 버린 이유도 결국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스페인은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이번 월드컵을 겨냥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번 월드컵. 저와 같이 한번 스페인에 베팅하고 싶으신 분 없습니까?
PS. 쉐바씨......난 당신을 3경기 보려고 이번 월드컵을 기다린게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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