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기간동안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2/06/07 18:12:16 |
Name |
kid |
Subject |
[기타] [잡담] 9일보다 길었던 90분.. (뒷북) |
안녕하세요? PGR에 들어오지 못한것이 오늘로 2주째입니다..
오늘부터는 역사의 현장에 가지 않아도 되어서 당장 들어온 곳이 이곳입니다.
아는 분의 소개로 역사의 현장의 일조를 하는 일꾼이 되어(자원봉사자를 뜻합니다.)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답니다.
그냥 간단한 몇가지 서류들만 정리해 주면 경기를 - 비록 정규 좌석은 아니지만 - 보여주겠다는
선배의 말에 만사 제치고 사직동으로 달렸더랬죠..
서류 정리만 해주면 된다고는 했니만.. 어디 사람의 일이란게 그런가요?
가서 이런 저런 일들 돕다보니.. 어느새 부산에서의 첫경기가 열리고..
바쁜 일정들을 보내다 보니.. 으허.. 으허.. 대한민국의 경기가 시작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아마 경기가 시작될때부터.. 아니.. 시작되기 전부터 저는 울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붉은색.. 붉은색.. 온통 붉은색의 사람들이 들어와서..
"대~~~~~~한민국"을 외치던 그 순간부터 가슴이 뭉클해 지더군요..
경기가 시작되고 난 10여분간.. 불안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전.. 잉글랜드 전.. 프랑스 전에서 보여줬던 몸 놀림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응원소리도 작았고.. ㅡ,.ㅡ
축구 잘 못하는(농구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ㅡ,.ㅡ) 제가 봐도.. 몸 놀림은 엉망이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보고있나?"
"당연하지!"
"와 이라노?"
"얼었다. 한 꼴 무믄(먹으면의 경상도 버전) 마(그냥) 진다."
"우짜노?"
"있어봐라"
짤막한 통화가 끝날무렵이 경기의 분수령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폴란드 수비수의 머리에 맞지 않았다면 두덱과 접전을 벌였을 홍명보 선수의 슛이 작열했던 순간이었죠.
슛 이상의 효과.. 아마도 잉글랜드 전에서도 그랬던 기억이 퍼득 났었습니다.
잉글랜드 골키퍼가 간신히 막아낸 그 슛이 나온 이후에 우리나라 선수들의 몸놀림이 달라졌었으니까요..
전화의 진동이 친구놈이 전화한 것을 알려주더군요..
"와?"
"됐다.."
"뭐가?"
"홍장군이 진군 나팔을 불었따...."
짧은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대한민국을 외치는 함성이 경기장을 타고 넘어..
한국의 진군가가 울려퍼지더군요.. 상대의 골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더니..
황선홍 선수의 첫 골..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함성.. 뜨거워지는 눈시울..
뭐.. 주변의 누구고 상관이 없었더랬죠..
정신 차리고 보니.. 옆의 아가씨와 둘이 부둥켜 안고 있더군요..
아직도 그 순간만 생각하면.. 손끝이 파르르 떨려오네요.. 으하..
다시 한 번 이어지는 대한민국에 이어.. 이번에는 그냥 파도타기가 아니라..
태극기 파도.. 대형 태극기를 좌측으로 돌리는 응원.. 장관이더군요..
"우리나라 이기면 내 울꺼같다.. " 하고 여친에게 이야기 하고 같었는데..
결국 김남일 선수때문에 울었습니다..
상대의 플레이 메이커 크리샤워비치를 90분 내내 막아내던 김남일 선수..
안정환 선수가 앞선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줘.. 이제 더 이상 자신의 마크맨을 놓아도 상관없을 상황..
끝까지 그를 마크하면서 몸싸움을 해 내는 집중력..
크리샤워비치에게서 올리사데베에 가는 패스와 다른 선수에게서 올리사데베 선수에게 가는 패스는
의미가 다르다고 일러준 친구의 말때문에 유심히 봤었는데..
그날 크리샤워비치 선수는 제대로 공을 잡을 적이 별로 없을 뿐더러..
우리 문전을 보고 공을 찬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김남일 선수가 잘 막아냈죠..
승패와는 상관이 없지만.. 마지막까지 몸을 날려 태클로 공을 빼앗아 내는 그를 보고..
자신이 범한 파울로 문전에서 프리킥을 주자.. 조금의 주저함이 없이
그 강슛 앞으로 몸을 날려 뛰어나갔던 박지성 선수..
과연 어디서 저런 용기들이 나올까.. 저런 힘이 어디서 나올까..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때.. 문득 저는 제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90분이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90분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부디.. 다음 경기 미국전을 승리로 장식해.. 다시 한 번 국민들의 가슴에 뜨거움을
불어넣어 주었으면 합니다..
이상 뒷북이지만..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kid 였습니다.. ㅠ0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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