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우연히 MBC 스포츠+에서 프로야구 대첩 경기 재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대첩이라는 용어의 시발점이 된 역대 1위 522 대첩이었고, 당시 엘롯기 동맹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인 2007년 5월 22일 기아와 롯데의 경기였죠.
당시 중계를 봤지만, 십수년만에 다시 명경기(?)를 보게 된 후 감회에 젖어 글을 한번 써 봅니다.
제가 기아팬이라서 기아 기준으로 적어 보죠.
07년에 기아는 두번째 꼴찌를 기록했지만, 5월이면 전년도 어린 투수들과 생소한 선수들로 일궈낸 4강의 기적(?)으로 인해 시즌에 대한 기대감이 남아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전년도 혹사의 대명사 신-한-윤이 윤석민의 선발 전환으로 해체되고, 신용운과 한기주가 한단계씩 뒤로 가게 되죠.
윤석민은 선발 안착, 한기주는 나름(?) 관리를 받으며 1이닝 남짓한 이닝을 던졌고, 신용운도 특급 불펜으로 1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을 유지하던 시점입니다.
(이 해 신인 양 모 선수는 양 모 지리... 시점)
야수 쪽에선 이종범의 노쇠화를 커버하는 김원섭, 이용규의 성장, 최희섭의 컴백, 그로 인해 조건없이 1루에서 좌익으로 옮긴 장성호와 내야를 지휘한 김종국, 드디어 타격에 눈 뜬 이현곤 정도가 긍정적이었다면, 유리몸 홍세완의 잦은 이탈 속에 차기 유격수 대안 마련, 김상훈의 뒤를 받칠 백업 포수 발굴 정도가 급히 해결해야 할 점이었죠.
기억나는 양 팀의 주요 선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아 - 스코비, 신용운, 한기주, 손영민 / 이종범, 이재주, 장성호, 최희섭, 김종국, 홍세완, 김원섭, 이용규
롯데 - 손민한, 나승현, 최대성, 카브레라, 이왕기 / 이대호, 정수근, 김주찬, 이원석, 리오스, 최기문, 박남섭
아무튼 522 대첩은 최희섭의 홈 데뷔전과 대체 외국인투수 스코비의 첫 선발 등판으로 화제가 되어 평일임에도 관중들과 취재진이 많이 몰려든 날이었습니다.
스코비는 7회까지 무실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안착 예감과 함께, 카메라에 자주 잡혔던 그의 아름다운 아내 모습 등, 기아팬 입장에서 매우 편안하면서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특히 욕받이 김종국의 미친듯한 활약으로 4대 0으로 앞서가며 승기를 잡은 시점, 좌완 불펜 문현정에게 경험치를 먹여주려던 여유까지 있는 상태에서 8회초 롯데가 출루합니다.
이에 그때까지 특급 불펜이었던 신용운이 등장하고, 아직 4점차이니 한기주를 낼 필요는 없었죠.
그런데 그 믿었던 신용운이, 1년에 홈런 몇 개 칠까 말까 했던 정수근에게 쓰라린 홈런을 맞고 1점차로 몰립니다.
이후 추가로 불을 지르면서 결국 한기주가 올라오고...
153~155km/h의 공을 주구장창 뿌려 댔지만 타자가 배트를 내밀지 못하면서(?) 볼넷으로 만루가 되죠.
그리고 이제 한기주가 무너집니다.
8회에만 7점을 내주며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여기서 그냥 마무리 되었으면 그냥 평범한 보통 야구였겠지만, 두 팀은 8회를 그냥 그렇게 끝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8회에는 롯데에서 오랫동안 염원해 왔던 강속구 특급 불펜 투수 최대성이 등판합니다.
중계진은 신용운과 더불어 누가 더 뛰어난 불펜인지를 비교하는 표를 띄우고, 최대성은 당시까지 무려 0점대 평균자책으로 말 그대로 필승조였죠.
그런데 웬걸, 약속이나 한듯 최대성도 무너지며 2점을 내주고 결국 주자를 남긴 채 강판됩니다.
롯데는 결국 1점차에서 동점을 막기 위해 마무리 카브레라를 투입했고, 김원섭을 평범한 1루 뜬공으로 처리하며 그냥 그렇게 끝났...
...으려나 싶었는데, 이걸 이대호가 떨어뜨리며 3루에 있던 김종국이 홈을 밟아 동점이 되어 버린 것이죠.
이후 카브레라의 잇따른 150km/h 광속구 1루 견제 장면은 다시보기에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렇게 9회까지 끝나고 연장행.
10, 11회의 분위기는 그냥 7:7 동점으로 끝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만...
필승조로 올라서며 잘 막던 전년도 신인 손영민이 12회에 무너지고 2점을 내주면서 또다시 광주구장은 불타올랐고,
패색이 짙어지자 관중들은 집으로 속속 돌아갑니다.
관중들이 뭔 죄인가요.
7회 끝나고(이겼다 이제 가자) - 8회초 퐈이아 (이걸 지네ㅠ 가자) - 8회말 동점(이게 된다고?? 더 볼까) - 연장(에고 피곤하다 가자) - 12회 퐈이아 (허허... 내가 미쳤지. 왜 안 가고 봤냐, 가자)
그런데 롯데 투수 이왕기가 12회 말에 불을 지르면서 2점을 내주고 만루를 맞이한 상황에서 기아의 정신적 지주인 이종범의 머리에 사구를 던지며 522 대첩에 화룡점정을 찍습니다.
기아 선수들은 두번의 지옥에서 겨우 탈출해서 경기를 끝내기로 이겼음에도,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지 못하는 최고참 선배의 모습에 좋아하지도 못하며 중계가 끝나고 말지요.
요약하자면,
최희섭의 고향 복귀 무대에서, 예쁜 부인을 둔 새 외국인 선수가 인생 경기를 펼치고, 전날까지 1할 초반 빈타에 허덕이던 김종국이 미쳐 날뛰며 승기를 가져오다가,
믿었던 필승조 신용운과 한기주가 완전히 무너지며 넘겨줄 경기를, 이대호의 인생 수비로 동점,
연장 가서 결국 또다시 경기를 넘겨주려나 했다가 종범신의 헤드샷으로 끝내기 역전승을 가져온 그야말로 대첩이라고 하겠습니다.
인조잔디가 깔린 콘크리트 바닥 같은 광주구장이 인상적이고, 한기주, 최대성, 카브레라 등이 150km/h 넘는 광속구를, 지금으로부터 무려 14년 전인데도 불구하고, 쉽게 쉽게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경기입니다.
이 후의 상황
기아는 시즌 중반에 무너지며 결국 두번째 꼴찌를 하게 되는데(엘롯기의 완성은 바로 이 때 이루어졌다고 봐도 좋겠습니다), 05~07년에 발굴한 선수들이 꽃을 피워 09년에 우승하는 데 기여하죠.
이 대첩 때 등장한 두 포수는 김상훈의 후계자로서 수비의 차일목, 공격의 송산이라 불리우면서 경쟁(?)했지만 결국 차일목이 물려 받으면서 기아가 현재까지 포수난을 겪게 되었죠.
홍세완은 이해 자주 이탈하며 많은 경기에 못 나왔고, 유격수 자리는 07년 김종국, 08년 외국인선수(발데스), 09년 이현곤 등으로 그때그때 막았지만 08년 들어온 김선빈이 빠르게 성장하며 10년동안 자리를 지켰습니다.
선발 윤석민의 윤석민 어워드, 윤크라이 시절이자, 대투수 양현종의 모지리 시절이고, 젊은 투수들이 성장하여 07~08년 시기에 기아에선 150 못 던지면 투수가 아니다.. 라는 농담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롯데는 7위를 차지하며 비밀번호 888-8577의 마지막 자리를 완성하지만, 이듬해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하면서 강팀으로 거듭납니다.
- 서정환 : 사실 이 경기에서 서정환 감독의 선수 기용과 작전은 꽤나 잘 맞아 들어갔는데 투수들이 날려버린 경기였죠. 어쨌든 서정환 감독은 시즌 종료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경질되고, 본인이 배터리 코치로 영입한 조범현 감독 대행이 마지막 경기를 치뤘습니다.
- 최희섭 : 국내 복귀전인 잠실 두산전에 당한 부상으로 한동안 못 나오다가, 시즌 후반부터 공포의 똑딱이질을 하며 경기당 1타점 페이스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08년 폭망했으나 등산으로 맘을 다잡으면서 09년 우승 주역이 됩니다.
- 홍세완/김연훈 : 홍세완은 잦은 부상으로 결국 그의 별명을 유리몸으로 간직한 채 이후 들락날락하다가 은퇴를 합니다. 잦은 부상의 홍세완을 대체하기 위해 이 해 대학 최고의 유격수인 김연훈을 2라운드에서 뽑았고, 이 막장 대첩에 홍세완의 대주자로 출전해서 득점까지 올렸지만, 이후 꽃피우기 전에 08년 조공 트레이드로 SK로 넘어가죠.
- 장성호 : 최희섭에게 조건없이 1루를 양보했지만, 이것이 발목을 잡아 08년 조범현 감독과 틀어지게 되고 09년 우승 이후 자리를 잃고 한화에 트레이드 되며 저니맨으 길을 걷다가 롯데-KT를 거치고 은퇴합니다.
- 김종국 : 홍세완은 결국 07년에 유격수를 보지 못하고, 어깨 부상 전력으로 송구 부담이 있었지만 유격수로 전향하여 특급 수비를 보여줬죠. 08년까지 수비에 있어서 완벽을 보여줬지만 그 해 신인 김선빈과 이듬해 안치홍이 자리를 잡으며 09년 우승 후 10년에 은퇴합니다.
- 이종범 : 대타, 대수비로라도 출전을 하며 기아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노익장을 과시하려 열심히 준비하던 찰나에 선동열 감독이 정규시즌 개막 직전 내치면서 12년 은퇴합니다.
- 이현곤 : 이해 타격, 최다안타왕으로 타격에 꽃을 피웠다고 생각했으나, 다시 이전 모습으로 돌아갔고, 09년 주전 유격수를 보며 우승에 기여했으나, FA때 NC로 가서 선수 생활 후 은퇴, 코치를 거처 현재 기아 코치로 있네요.
- 이재주/손지환 : 이재주는 대타 또는 4,5번 타자로 출전하며 KBO 대타 홈런 기록(20개)을 남기고 09년 이후 은퇴, 이날 교체출전했던 손지환은 그 해 무보살 3중살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고, 이후 팀을 옮겨 다니다 은퇴
- 신용운 : 시즌 중반 기아 선발이 무너지며 중간에 선발전환을 했고, 이게 무리가 되어 선수 데뷔 때부터 이해 초까지 보여 줬던 모습을 다시는 못 보여준 채 삼성으로 갔다가 은퇴합니다.
- 한기주 : 조범현 감독하에서도 수술, 재활을 하지 못하고 꾸준히 굴려지다가, 본인의 요청으로 18년 삼성으로 트레이드 된 뒤 19년에 은퇴합니다.
- 손영민 : 이해 신용운의 뒤를 잇는 기아의 특급 옆구리 중간계투로 올라서고 09년 우승에도 기여했으나, 이후 가정사 등 구설수에 오르며 조기에 선수생활을 접습니다.
- 양현종 : 이날 12회에 손영민이 무너지자 불펜에서 몸을 풀었지만 경기에는 나오지 않았죠. 이해 내내 제구를 못 잡고, 김태균한테 홈런 맞고 울고... 네 뭐 그렇습니다. 메이저리그 데뷔가 가능할지...
- 이원석 : 이 대첩에서 유격수로 출전했고, 기아에서 김종국이 불타 올랐다면 롯데에선 이원석이 미쳐 날뛰면서 엄청난 활약을 하죠. 이후 홍성흔 보상 선수로 두산으로 갔다가 FA 때 삼성에 와서 4번타다 3루수 역할을 하기도 하는 등 현재도 삼성에서 뛰고 있습니다.
- 김주찬 : 2013년에 FA로 기아에 와서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17년 우승에 기여했고, 기아에서 화려하게 은퇴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현역 연장을 시도하다 결국 올해초 은퇴하고 두산 코치진에 합류합니다.
- 이대호 : 1루 인생 수비 영향인지, 로이스터 감독이 이듬해 부임해서 3루로 전향했고... 뭐 많이들 아시죠. 일본-미국 거쳐 다시 복귀해서 요즘 욕 좀 드시는 중이네요.
- 손민한 : 롯데의 심장 손민한이 이후에도 잘 던졌으나 이래저래 구설수에도 오르고, 우여고절 끝에 NC 창단 후 NC로 넘어가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고 현재 NC 투수 코치입니다.
- 나승현 : 전년도에 신인으로서 마무리 중책을 맡으며 선전했으나, 이후 류거나의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기복을 보이며 15년에 은퇴. 지금은 롯데의 스카우트라고 합니다.
- 최대성 : 특급 불펜의 명성 답게 이 해가 커리어하이네요. 이후 14년에 재기하나 싶었지만 이듬해 KT로 가고 18년엔 두산에 몸담지만 결국 19년에 은퇴하고 맙니다.
- 이왕기 : 끝내기 헤드샷 주인공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선수생활 말년(13년)에 기아에 왔고, 이재율로 이름을 바꾸지만 결국 재기하지 못한 채 은퇴하죠.
아무튼 오랜만에 옛 추억을 소환시키는 방송을 보게 되어 모처럼 길게 몇 자 적어 봤습니다.
두 팀이 과연 올해는 다르다!
...일까요?
작년의 상황으로 보면 07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네요.
아무튼 이런 대첩 보다는 명경기를 더 자주 만들기를 바랍니다.
양현종이 떠난 기아는 이제 이의리 하나 믿고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