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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8/08/22 16:06:56 |
Name |
구름지수~ |
Subject |
공군 ACE팀에 대한 잡담. |
프로게이머에게 군대라는 존재는 참으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물론 다른 직장에 종사하고있거나 학생의 신분에 있는 모든 대한민국 남자들또한 그들 못지 않는 심리적 부담감과 정신적 괴로움을 받겠지만 어린나이에 그야말로 한 분야에 '올인' 해야만 하는 프로게이머 그들의 입장에서 군대는 말 그대로 '무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모두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하는 것에 걸었던 그들이기에 군대를 가 있는 2년간의 공백기는 너무나도 뼈아픈 일일 수 밖에 없다. 그런 그들에게 어둠속 한줄기 빛같은 소식이 들렸으니 그것이 공군 ACE팀 창단이었다. 군대에 가서도 게임을 할 수 있고 프로리그와 개인리그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그들에게는 가뭄속 단비같은 소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던 그 당시 나의 입장때문이었을까, 나는 공군팀의 존재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의 생활은 프로게이머의 평소 생활 패턴과 연습 필요량과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기에 그들은 절대로 성공해내지 못할 것이라 확신 하였다. 그렇다고 투혼이라는 보기좋은 단어로 치장하기에는 군대라는 것이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가장 민감한 사항이기에 그들은 실질적인 승리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정상을 차지할 수는 없을지라도 팀의 창단 이유를 설명해 줄만한 눈에 보이는 성과는 필요하다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입대를 했고 그들은 팀을 창단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갔다.
눈물나는 이등병생활을 마무리 짓고 일만 죽어라 하며 작업의 미학을 느꼈던 일병시절도 지나가고 어느덧 짬이 찼다는 소리를 들었던 상병의 계급장을 달았을때 국방일보에는 간간히 그들의 승리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다. 투혼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의 예상대로 실질적인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였으며 승리보다는 패배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누구한명 개인리그에서도 프로리그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내가 예상했던 모양새였고 방송으로 게임 방송을 접할 수 없었던 나는 그들에게서 결국 이렇게 되는가 하는 회의적인 느낌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간간히 들린 승리의 소식은 단지 운 좋은 승리겠지하며 쉽게 여겨졌었고 그들은 꿈을 만들어내길 원하는 이기적인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결국 현실의 벽 앞에 꿈이 무너지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될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더 흘러 병장을 달았고 때마침 운좋게 방송을 통하여 게임방송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자주 그들의 게임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마음이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면면은 확연한 '올드'였다. 모두가 새롭게 떠오르는 어리고 어린 신인들에게 치여 개인리그든 프로리그든 그 얼굴을 쉽게 찾아 보기 힘든 선수들이었고 과거의 영광을 현재의 재현으로 이루어 내길 원하는 팬들의 응원을 받는 선수들이었다. 결국 그들은 재현을 이루어내지 못했고 공군이라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리고 그들은 미약하지만 해냈다. 본좌의 계보를 이어받을 것이라 주목 받았던 혁명가 김택용을 무찌르고 필살의 전략으로 남승현을 쓰려트리며 송병구라는 거인을 상대로 혈투를 벌이며 감동의 은퇴경기를 치뤄냈던 ChRh 최인규. 프로리그를 호령하던 신상문을 상대로 921일만의 감동의 승리를 일궈낸 특공테란 김선기. 블루스톰의 전장에서 구성훈을 상대로 그 어디서도 볼수 없던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최종병기' 이영호를 압도적으로 쓰러트린 황제 임요환. 현역 시절보다 오히려 더 강한 모습을 보이며 해낼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보여준 박대만. 그들의 많지 않은 승리들 속에서 나는 겉치레가 아닌 진짜 '투혼'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현실은 차가웠다. 낭만과 감동만으로 이어가기에는 그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할 뿐이었다. 현역에서도 낭만으로 기억되었던 그들은 결국 '투혼'을 넘어 '꿈'을 이루어 내지 못하였다. 존폐의 위기가 찾아왔고 수많은 이들이 응원하였다. 결국 그들은 아니, 우리는 지켜내었고 또다른 시작을 예고하고있다. 박정석과 한동욱 그리고 오영종이 입단(?) 한다고 한다. 난 이 3명의 선수들의 이름을 듣고 묘한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그들은 절대 강자들이 아니다. 확연한 주류를 이루는 선수들 또한 아니다. 최근 개인리그나 프로리그에서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으며 전 기수의 선수들과 같이 낭만으로 기억된다고 볼 수도 있다. 허나 그들은 완전히 지나가 버리지 않았고 멀지 않은 기억속에서 여전히 강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던 선수들이었다. 과거와 현재에 걸쳐저 있는 그들이기에 이런 미묘한 기대감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오영종이 출연한 김정민의 스팀팩을 보았다. 전 시즌 프로리그에서처럼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였지만 중요순간 중요게임마다 고배를 마시던 그는 '동기부여'의 상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과거의 추억을 말하는 그의 모습은 즐거워 보였으나 현실의 모양새에는 그리 달갑지 않아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얼마후 불화설이 터졌고 빠르게 일은 진행되어갔으며 결국 공군으로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주변 상황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그가 말했던 동기부여의 상실감이 나에겐 가장 큰 문제였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이 비단 오영종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라 보여졌다. 그것은 박정석에게도 한동욱에게도, 아니 현존하는 '올드'라 불려지는 모든 선수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가 싶었다. 여기서부터 나의 묘한 기대감이 시작된다.
군대에 가보면 느낄 수 있다.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집에서 할 수 있었던 누워서 과자를 까묵으며 TV를 시청하는 이 사소한 일조차도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가를. 그래,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면 즐기라고 만든 게임을 자신의 업으로 삼다 보니 어느샌가 재미를 잃어가고 기계처럼 플레이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를 느꼈다면 군대에 가는 것은 어찌보면 엄청난 약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곳에서 만나게될 현실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겨울 것이며 사회가 너무나도 그리울 것이다. 팬들의 환호성이 그리울 것이며 승리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더 심해질 것이다. 그 힘으로 일어서길 바란다. 그 힘으로 일어서서 이토록 이기적인 팬들이 바라는 '투혼'의 감동을 넘어선 '꿈'의 찬란함을 보여주길 바란다. 과거로 잊혀져가는 수많은 '올드'들에게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심어주었으면 한다.
개척은 이루었다.
이제 신화를 이루길.
이기적인 팬은 바란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9-13 12:39)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9-10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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