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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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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13:56
로마 제정 보면 동양에서 왜 그렇게 고지식하게 장자상속제 고집했는지 알 수 있죠. 훌륭한 사람을 뽑는다는 게 말은 좋아도 매번 내전을 일으켜버리니. 그나마 오스만처럼 핏줄에 의한 제한이라도 확고했다면 모를까 그마저도 없으니 군사 쿠데타로 즉위한 황제가 군사 쿠데타로 쫓겨나고...
개인적으론 저런 말도 안되는 계승 방식을 가지고도 저렇게까지 오래 버틴 게 오히려 로마의 저력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중화의 한족급은 아니더라도 '로마인'이라는 정체성이 뿌리박혔기에 알렉산드로스 사후 마케도니아꼴은 안났겠죠. 생각해보면 다들 지가 로마 황제 해먹겠다고 달려들었지 다른 정체성으로 독립해서 동네 짱 하겠다고 생각한 놈은 거의 없었던 거 생각하면(아예 없진 않았음) 그만큼 로마란 토대가 확고하지 않았나 시프요. 결국 로마가 쪼개진 게 아니라 동로마든 서로마든 외부로부터 붕괴한거니.
24/09/20 15:21
저런 체제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기반도 로마의 뛰어난 행정 체계와 정치 제도가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나마 기반이 튼튼해서 위기가 발생해도 어영부영 넘어가기라도 했던걸 보면, 의문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24/09/20 14:04
정성스런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히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샤를마뉴 대제 -> 샤를 대제, 또는 그냥 샤를마뉴 로만 고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샤를마뉴 대제는 샤를대제 대제로 중복 표기라 흐흐흐.. 글 내용은 너무나 좋습니다!! 다른 것도 써주세욥
24/09/20 15:19
흥미롭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역사 전공자는 아니고, 그냥 흥미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혹여 이런 글을 또 쓸 기회가 생긴다면, 다음에는 조금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오도록 하겠습니다.
24/09/20 14:13
그나저나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에 포카스를 얹었어도 할리드만 없었으면 이집트와 레반트 상실은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24/09/20 15:28
그렇다기에는 동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군대들이 그나마 최상의 조건에서 전투에 돌입할 때에도 이슬람의 군대를 상대로 상당히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어서, 할리드같은 명장이 없었더라도 군사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해서 중과부적으로 패배를 거듭했으리라 봅니다. 또, 이집트의 상실은 전투에서의 패배도 물론 적잖은 영향이 있겠습니다만, 이슬람이 초기 시절만해도 타 종교에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어서 동로마의 압제를 받느니 이슬람 세력에게 협조하는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해서 알렉산드리아 주민들이 자진해서 문을 열어준것에 가깝습니다. 잘 언급되지 않아서 그렇지, 칼케돈파와 비-칼케돈파의 갈등은 상상 이상으로 격렬했다더군요.
24/09/21 09:05
입문으로는 이주 좋으면서도
아주 최악이기도 합니다 좋은점은 정말 재미있기에 일단 흥미가 갑니다 입문이는 이게 제일 중요하죠 안좋은점은... 재미있기에 영향을 너무 크게 받아버려요 사학과교수들이 머리짚었던데 바로 그래서긴 하구요 다만 저는 무지성 시오노는 안된다 주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덕후기질이 강할수록 이게 세더라구요 저는 질투라고 보는편입니다
+ 25/08/14 23:20
저는 추천합니다. 처음 입문용으로는요
나무위키 읽는다 생각하시고 읽으시면 됩니다. 마그데부르크님께서 충분히 작가의 주관과 견해를 구분하실 수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흥미를 가지고 나시면, 그 다음부턴 진입장벽이나 난이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거거든요!
24/09/20 17:03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궁금한게 서로마/동로마 간 두 황제는 서로 잘 지냈을까요? 상호 인정했을까요? 아니면 서로 남북한처럼 으르렁 거렸을까요? 궁금하네요...
24/09/20 17:28
상황에 따라 달랐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상호 협력 관계이긴 하지만, 그것은 각 황제가 서로 정통성을 가지고 옹립되었을 때 이야기이고.. 일반적으로는 반대측 행정부에서 황제를 임명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동로마 황제는 서로마 측에서, 서로마 황제는 동로마 측에서 임명 권한이 있다는 이야기지요. 이것이 무시된 채 황제에 등극할 경우, 승계 원칙을 무시했다는 명분으로 정통성이 있는 쪽에서 비정통 황제를 무력으로 축출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내전이 발발하고 이것은 게르만족이 침입해오는 시기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24/09/21 13:12
동로마 제국은 15세기까지 명맥이 유지되는데 ad476에 멸망했다고 하는게 정확한 표현인가요? 이 또한 서로마 중심주의 아닌가 싶습니다
24/09/23 04:34
(수정됨) 자세히 보면 고대 로마와 동로마를 따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AD476에 로마 제국 자체가 멸망했다고 하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그래서 글 마지막에도 '로마 그 자체인' 동로마 제국은 AD476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나간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 또한, AD476에 로마제국이 멸망했다는 언급은 본문 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단지, "고대 로마"가 AD476까지 존속했다고 표기해놓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역사학계에서도 "고대 로마"가 종식되는 시기를 유럽에서 중세가 시작되는 시기로 합의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엔 다른 관점도 있습니다만, 대중적으로나 학계에서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주류 의견은 아닙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고대 로마'가 AD476까지 존속했다는 서술은 전혀 잘못된 표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중세에도 로마 제국은 있었으니까요.
24/09/23 04:35
(수정됨) "한 편,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중세의 시작을 열었던 동로마 제국은 그 이후에도 1천년 가량을 더 버티는데 성공한다."
&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 서유럽에서는 많은 이민족 왕조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 독자적인 세력권을 구축했지만, 로마 제국의 구속력과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어서 실제로 서고트 왕국과 동고트 왕국은 로마 제국의 화폐 양식을 그대로 가져다가 쓰기도 했다." & "동고트 왕국을 비롯한 몇몇 이민족 왕조들은 명목상 동로마 제국의 신하국임을 분명히 하였으나, 시간이 흘러 이조차 유명무실해지거나 심지어 부정되기도 하면서 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발발한 고토 수복 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하였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다고 했지 '동로마 제국'이 멸망했다고 한적은 그 어느곳에도 찾아볼수 없습니다. 로마 제국이 완전히 멸망한거라고 봤다면, 동고트 왕국이 동로마 제국의 신하국을 자처했다는 표현과, 이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갑자기 등장해서 로마 제국 고토 수복 전쟁을 일으켰다는 서술이 모순이 됩니다. 따라서 저의 생각을 엄밀하게 재정의하자면, 로마 제국 자체가 멸망한 것이 아닌, 로마 제국의 서방 영토 상실에 더 가깝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24/09/23 04:53
(수정됨) 그럼에도 이해가 안되신다면, 동양으로 눈을 돌려 중국의 역사를 떠올려볼 때, 삼국(위,촉,오)을 통일한 진나라(사마씨 가문의 그것)를 왜 '서진'과 '동진'으로 구분짓는지를 떠올려보시면 됩니다. 어차피 사마씨 가문이 지배하는 왕조이고, 똑같은 진나라인데 왜 둘을 굳이 따로 구분하는걸까요? 그냥 둘다 진나라라고 하면 되는데요. 그것은 결정적으로 양 국가의 본격적인 체질과 성격이 바뀔만한 중대한 분기점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둘을 다른 것으로 취급하는것이 아니고(즉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비유하자면 어떤 분기점을 기준으로 특정한 단계를 거쳤다는 것에 좀 더 가깝다라고 보는겁니다.
24/09/23 08:27
이렇게 긴 댓글을 정성스레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여전히 서로마의 멸망이 로마의 종식과 동일시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동로마의 존재감을 지나치게 축소시키는 요소이기 때문이죠 특히 '멸망'이란 표현은 지나치다고 느낍니다. 동진과 서진의 예를 드셨는데 어떤 시대의 구분이란 그 기준에는 충분히 동의하고 마찬가지로 고대로마의 종식은 ad.476년 서로마의 멸망보다는 동서 분할통치의 시작인 ad.395년으로 보는게 더 바람직하지 않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풍미한 고대 로마가 죽었어 라고 하기엔 죽지 않은 절반이 여전히 남아있었고 그 변곡점은 분할통치가 기준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서로마의 멸망도 매우 중요한 시대 구분이어야 한다는 점은 동의합니다만 '고대로마'의 '멸망‘이라는 무거운 표현들을 결합해서 쓰기엔 그 함의가 지나친것 같다는 태클이라고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
24/09/23 10:39
(수정됨) 저는 제국 영토 절반이 날아간 것이 ad395에 일어난 테오도시우스 황제 사후 동-서 분할보다 더 심각한 사안으로 여겨져서 그러한 표현을 썼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서로마 제국이 ad476 이후에도 계속 존속했더라면 양 로마는 다시 하나의 행정부를 둔 단일 체제로 나아갔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가능성이 있다 뿐이지 확정지어서 말씀드리는건 아닙니다.) 그런데 서로마가 ad476에 아예 사라져버리면서 그런 일말의 가능성조차 날아가버렸기에 ad395에 이뤄졌던 동-서 분할 통치 체제의 시행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렇게 느끼셨다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만, 저 역시 로마 제국을 서로마 관점에서만 보는것은 지양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 양쪽 다 관점이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저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고대 로마와 중세 로마를 구분짓는 기준을 서로마 제국의 멸망이라고 봐서, 고대 로마의 종식 혹은 고대 로마의 멸망 이라는 표현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한정해서 쓰여진 표현이었다는 점을 거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절대 동로마를 폄하하거나, 부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동로마에 대한 지나친 폄훼와 저평가는 올바르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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