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1/12/14 23:01:41
Name
Subject 멋있는, 그리고 프로다운 박정석 선수..
*..이 글은 극히 제 주관적인 생각(느낌)임을 밝힙니다.

오늘 있었던 온게임넷 8강 3주차 경기에서 홍진호 선수와 박정석 선수가 붙었다. 언덕 해처리하다 하드코어 질럿 러시에 당한적이 있는 홍진호는 이번엔 본진 투 해처리 후 스파이어 테크를 가는 전략을 구사했는데, 저그에게 전혀 손실을 주지 못한채 투게이트에서 질럿을 많이 뽑고 테크마저 느려진 박정석은 뮤타와 스컬지를 막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
박정석의 커세어는 간단히 제거당하고 뮤타 부대는 박정석 기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누가봐도 이제 남은 건 뮤타에게 본진을 유린당하며 GG를 치는 일이었을뿐..

그러나 이게 왠일인가? 갑자기 홍진호의 컴퓨터가 다운이 되고, 재경기에 돌입한다. 나는 몹시 짜증이 났다. 박정석은 이제 홍진호의 앞선 전략에 대비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다. 홍진호는 홍진호대로 몹시 불쾌했을 것이었는데, 이는 다음 재경기때 괜히 프로브 한기에 드론 2기를 잃는 등의 일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아무튼..

어쨌든 홍진호는 박정석이 대비를 할 것을 예상하며 모험을 하기 보다는 애초에 세워온 자신의 전략을 믿고 그대로 앞서 보여준 전략대로 빌드를 운용했다.
프로로의 자존심일까.

놀라운 건 박정석이었다. 그는 프로브로 같은 전략을 운용하는 홍진호의 모습을 뻔히 보고도 자신이 패배직전까지 같던 방식 그대로 진행했다. 물론
앞선 경기때문에 스타게이트를 짓지않고 더 빠르게 테크를 타고 포톤도 어느정도 박긴했지만 솔직히 무리수였다는 걸 본인도 알았을 것이다.

결국 언덕에 지어군 게이트웨이는 모조리 파괴되고 프로브도 반절을 잃는다.
아콘마저 잡히고 마지막 질럿 부대 러시를 가보지만 이미 전에 뮤타에게 피해를 입은 상처투성이의 질럿들은 장렬히 산화해버리고, 박정석은 GG를 치고 말았다...

엄재경씨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난 박정석을 보고 참으로 감동했다. 자신의 전략상의 패배로 졌을 게 뻔한 게임을 컴퓨터 다운 따위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까지 다시 이기고 싶지 않다..라는 (프로토스 유저다운) 자존심, 그리고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는 담백함.. 아울러 그는 홍진호가 이겼음을 인정하고 그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배려..(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힌다). 물론 이런 가운데서도 경기 자체는 최선을 다했다.

만일 그가 홍진호를 이겼더라면 뒷말이 매우 많았을 것이다. 이겼더라도 실력으로 이겼다고 인정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스스로도 매우 개운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정석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지긴했어도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명예를 지켰다. 자신의 명예를 지킬 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프로의 모습이 아닐까.

물론 실제론 어떨런지 잘 모른다. 박정석 선수의 생각이 내가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단순한 고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오늘의 박정석은 정말 멋있었고 그리고 정말 프로답게 보였다.

written by 팬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Apatheia
01/12/14 23:41
수정 아이콘
오늘 보여준 리치님(괜히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의 모습은... 글쎄 뭐랄까, 왕궁에 자객이 들어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데도 전혀 겁먹지 않고 빤히 그를 올려다 보며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소국의 어린 왕자같았습니다. 노블 프로토스라는, 한때는 성춘님의 전유물로만 생각했던 그 호칭이, 이젠 리치님에게도 어울리는 거 같아요... 쁘띠라는 말은 붙을지 몰라도 말입니다. ^^ 전 오늘 메가웹에서, 새로운 하이템플러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수시아
01/12/14 23:58
수정 아이콘
전 엄재경님이 중간중간에 그런 뉘앙스를 풍기긴 했어두 서로 이중 훼이크로 전 경기와 똑같은 전술을 쓴 거라구 생각했는데..초반 드론 2기 죽이는 것만 봐두 승부에 손을 뗀 것 같지는 않았다고 봤는데 님들 글을 읽고 나니 왠지 생각이 달라질 것 같은..-_-;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궁 --? 금
제가보기엔 그런의도는 없었던것 같은데요 최소한 중반까지는.. 초반엔 드론 2마리죽이고 질럿으로도 드론을 찍어죽일려구 했었는데... 중반이후의 운영의 느슨함은 글쎄요.. 좀 꼬인게 아닐까요 뮤탈인지 러커일지 헷갈려서.. 지지일찍 친건 그의 스타일이거나 아님 전경기 생각나서 그냥 빨리치고싶었는지도
01/12/15 01:55
수정 아이콘
초반에 프로브나 질럿으로 드론 죽일려구 한 건 당연하죠-_-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77 나의 스타 중계에 대한 추억...... [8] kama13193 02/02/19 13193
76 [잡담] the Fan [7] Apatheia6003 02/02/18 6003
75 프로라는 이름을 위하여 2. 승리를 향한 자세 (2# of 2) [5] 항즐이8444 02/02/17 8444
74 블록버스터 주진철 저그 분석. [26] jerry12632 02/02/14 12632
73 프로라는 이름을 위하여 2. 승리를 향한 자세 [16] 항즐이8084 02/02/13 8084
72 [잡담] 메가웹 블루스 [13] Apatheia6534 02/02/09 6534
71 [펌]임요환 선수와의 인터뷰 [8] Dabeeforever16107 02/02/07 16107
70 내가보는 세대간 스타크래프트역사 [26] 머털도사15399 02/02/04 15399
69 [아티클] 프로라는 이름을 위하여 1.승부에 대한 마음 [7] 항즐이7378 02/02/02 7378
68 [잡담] 다모클레스의 칼. [18] Apatheia7485 02/01/31 7485
67 [퍼옴] U maphack!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심리. [14] Apatheia6974 02/01/30 6974
66 [펌]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박수를.. [6] homy4896 02/01/30 4896
65 꽁트> 할루시네이션 [7] 항즐이10425 02/01/16 10425
64 [단편]질럿Z1 (하) [5] homy5128 02/01/15 5128
63 [단편] 질럿 Z1 (상) [7] homy5399 02/01/15 5399
62 [허접꽁트] Color Blindness [10] Apatheia6649 02/01/15 6649
60 맵 밸런스에 대한 단상 [8] homy4986 02/01/09 4986
59 [허접꽁트] 단축키 L [17] Apatheia14896 02/01/08 14896
58 [꽁트] ...What does it matter? [20] Apatheia6984 02/01/05 6984
57 [펌] [서울대인터뷰]게임을 보는 세대의 스타, 임요환을 만나다 [7] canoppy8644 02/01/05 8644
56 [퍼옴] 종족별 국민성과 프로게이머의 특성 by acepoker님. [5] Apatheia9552 02/01/04 9552
55 [펀글] 밝은 면 보기 [15] pgr215375 02/01/03 5375
54 [펌]임요환을 내버려두자.. [9] wook9814032 01/12/31 1403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