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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2/05/18 11:52:53
Name 민머리요정
Subject [15] 1주기
오늘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딱 1년이 되는, 1주기입니다.

아버지께서는 7살 때 아버지를 여의시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크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와 형 두 아들에게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되어주셨어요.

어린 시절, 지금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일이 있었는데,
학원을 가는 길에 오락실이 있어서 매번 학원을 가다가 오락실에 들려서 게임을 하다보니,
계속 학원을 늦게 갔었는데, 그날은 아예 학원도 가지 않고 오락실에만 있다가 집에 오게 됐습니다.
그렇게 3-4일을 학원 갔다 오는 시간에 맞춰서 오락실에 가서 놀다 집에 왔는데
학원에서 집으로 전화를 해서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진실의 방으로 끌려가다 혼이 나고 맴매도 맞았어요.

아버지는 다 혼내시고 엉덩이에 약을 발라주시고는
"오락이 그렇게 재밌었어?" 라고 말씀하시면서,
"앞으로는 아빠가 토요일에 5천원씩 줄테니까, 그 돈으로 오락 실컷하고 와.
대신 평일에는 학원 열심히 다니는거야. 알겠지? 약속하자."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온 가족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기대하는 영화가 개봉을 하면 가족들을 데리고 극장에 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영화를 재밌게 보고 집에 오면서 영화에 대해서 한참 얘기도 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도 최소 3달에 한번은 꼭 온 가족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곤 했어요.


저와 형에게 둘도 없는 친구와도 같았던 아버지가
지난 해 간암 판정을 받으시고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수술도 무사히 잘 끝났고 회복만 잘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었는데,
길게 앓으셨던 간경화가 문제가 됐는지, 아버지의 몸은 다시 회복되지 않으셨어요.
그렇게 간성혼수가 찾아왔고 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전화를 주시면서
"아들, 급하게 간이식을 하지 않으면 이제 아빠한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대" 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차마 아들한테 간을 떼어달라고 말씀을 잇질 못하셨어요.

"엄마, 내가 간 이식할게요. 지금 병원으로 갈게요."
어머니는 그 얘기를 들으시고 엉엉 우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들, 정말 고마워.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생기던지, 엄마가 다 도와줄게. 고마워 아들"

급하게 간 이식을 위한 검진을 바로 시작했고,
기증자 정신과 상담, 생체 승인 절차까지 빠르게 승인을 받고
작년 오늘 급하게 간 이식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저와 아버지를 모두 개복하고 수술을 준비했고,
제 간을 절개하려고 칼을 간에 살짝 댄 순간 아버지께서 심정지가 왔다고 해요.
그래서 절개를 멈추고 다시 심장을 살려낸 이후,
다시 간을 절개하려고 칼을 댄 순간 다시 한번 심정지가 찾아왔다고 전해들었습니다.
그리곤 가족들의 동의로 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리기로 결정했다고 해요.

어쩌면 아버지께서는
제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비교도 안될만큼 저를 사랑하셨던 것이 아닐까,
다시 깨닫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꿈에 한번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을 참 많이 했었는데,
2달이 지나고 아버지께서 꿈에 나타나셨어요.

생전에 어디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면 저보다 먼저 발견하시곤
환히 웃으시면서 "아들!!" 부르시면서 크게 손을 흔들어주셨었는데,
그 모습 그대로 꿈에 나타나주셨어요.
꿈에서 깨서 얼마나 울었는지...

아버지,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곳에서는 꼭 건강하시구요.
이 다음에 제가 천국에 가거든, 크게 손 흔들어주시면서 "아들" 불러주세요 :) 사랑합니다.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1-22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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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아재
22/05/18 12:06
수정 아이콘
아 울컥하네요. 마취 깨고 그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지
생각도 못하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아버님도 그걸 제일 바랄듯합니다.
루크레티아
22/05/18 13:49
수정 아이콘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버님의 사랑이 너무 크시네요.
닉네임을바꾸다
22/05/18 14:19
수정 아이콘
우연이겠지만...뭔가 후...
그래도 받고 살아계셨으면 하셨겠어요...
조메론
22/05/18 17:07
수정 아이콘
회사에서 읽다가 울었어요
아버님을 향한 쓴이님의 마음과 쓴이님을 향한 아버님의 사랑이 느껴지네요
소중한 이야기를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2/05/18 17:18
수정 아이콘
울컥하네요... 글 감사드립니다.
라이온즈파크
22/05/18 17:24
수정 아이콘
저도 딱 두달 뒤면 9주기 인데 다른 가족들한테는 자주 나오시는데 저한테는 꿈에 딱 한번 나오셨더라구요. 마지막에 저 혼자 옆에 있어서 그런가 하고 있습니다.
22/05/18 18:09
수정 아이콘
글쓴님께서는 하실 수 있는 최선을 다하셨네요.

아드님이 끝까지 아버님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가셔서 아버님은 흐뭇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뒤늦게나마
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아연아빠
22/05/18 20:05
수정 아이콘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나이가 많이 들어서 연로하신 아버지를 많이 생각하곤 합니다. 울림있는 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판을흔들어라
22/05/20 00:42
수정 아이콘
저희 아버지께서도 작년 연말에 돌아가셨습니다. 담도암이셨고, 수술도 잘 되고 경과도 좋았는데 한달도채 안되서 재발하고는 1년을 조금 넘기시고 돌아가셨죠. 저도 꿈에서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아버지를 힘껏 앉고서 '이제 안 아프세요' 물으니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항암치료로 몸이 약해지셔서 힘껏 앉아드리기도 힘들었었는데 다행이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우곰
24/01/28 01:59
수정 아이콘
사랑을 주고 받고 사셨고 그리워하는 가족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사신 것 같습니다.
아버님도 아드님도 오히려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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