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은 농경생활을 하며 함께 살기 시작했다.
초기에 좋은 농사가 되는 땅은 한정되어 있었고, 이 땅에서 수확을 거두기 전까지는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상대를 의식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거리감각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마을'이 생겨났다. 이들은 서로의 노동력을 이용하면서 생산력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
많이 낳고, 죽지 않을 만큼만 '분배'해서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최대한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집단의 지도자들은 '생명존중'이라는 사상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적당한 소수가 배불리 먹는게 아니라 최대한의 노동력을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자원을 소모하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렸다.

사람과 사람의 간격이 너무도 좁아지면서 인간들 간의 다툼이 늘어났고 인간들은 자신들의 자유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이 인간들을 모아놓은 이들은 집단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법과 제도, 규칙이라는 것을 만들어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를 제거하거나 상대의 자원을 침탈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문명'은 '발달'되어가면서 이 자유를 뺏아버렸고 인간의 고유본능을 계속해서 제어하려고 하였다.
빼앗긴 자유로의 열망과 고유본능. 즉 영역확보욕, 식량보유욕, 폭식, 짝을 구하기 위한 행동들은 모두 '야만'이라 불리며 제어당하였다.

사회가 계급화되면서 이 고유본능을 어느 정도 발휘 할 수 있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신앙 혹은 지식이라는 상상력을 이용하여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였다. 그들은 흙판의 표기를 보면서 한 달 전에 창고 안에 넣어둔 보릿자루의 숫자를 모두 기억해내는 마법을 부렸다. 그들은 보릿자루를 양손가락 숫자만큼 다섯번 포개놓으면 50개가 된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하는 자들이었다. 신께서 특별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이 물자의 배분을 맡고 물자의 생산까지 장악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혼란의 시대가 있었다. 칼을 든 이들이 자원을 빼앗고 사람은 주기적으로 죽었다. 죽을 때 이유가 있어서 죽은 사람이 있었고 이유가 없어서 죽은 사람도 있었다. 전쟁이라 불린 일들은 단순히 자원을 뺏고 뺏기는 싸움이며 그 자원을 누가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주도권 싸움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싸움에 딱히 낄 이유가 없는 자들이 보통 더 많이 죽었다. 그런 이들은 '충성'이라든가 '신앙'이라든가 '계약'이라든가 훗날 알 수 없는 '애국심'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것들(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거리가 엄청나게 멀지만)에 의해 죽었다.
살아남은 특권자들은 그런 이유로 죽지 않은 이들조차도 매우 숭고한 희생정신을 통해 죽었노라고 말함으로서, 아직 죽지 않은 이들로부터 '충성'이라든가 '계약'같은 것을 얻어내고자 하였다. 그런 미사여구를 얼마나 잘 붙이느냐가 특권층으로서 유능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했다. 특권층은 노동력을 강제로 집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집단이었고 그들이 그 권리를 부여받은 것은 그 노동력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지식'과 '핏줄'을 갖고 있다는 사회적 믿음 때문이었다. 물론 믿지 않는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들을 나무 위에 걸어 확실한 본보기를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걸 왕권강화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왕권강화는 가까운 사람들을 백골로 만들수록 모두가 그를 공정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 그 저주를 말하는 것이 맞다.


집단과 규칙에 염증을 내는 사람은 반드시 나온다. 아니 사실 대부분은 염증을 느끼고 있으나 무뎌진 상태로 지내온다. 농노의 자식은 마을의 경계에서 아버지에게 영문도 모르고 실컷 두들겨 맞는다. 나름 마을 경계를 절대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뼈속 깊이 새겨주게 하기위한 아버지의 사랑일 수도 있으나 어느날 성인이 된 농노의 자식은 이 지긋지긋한 집단을 빠져나오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공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집단 내에서 누군가 사라진다는 것은 집단의 불안을 초래한다. 그가 빠져나간 자리는 다른 누군가의 노동력으로 메워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농사라는 것을 시작하고 모여살게 된 이후로 이 '제멋대로'인 욕구는 나쁜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다같이 모여사는 이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야 할 책임을 진 자의 역할은 정해져있다.

흔히 빵과 서커스라는 이름으로 대중통제를 말한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희생'이 있다. 사람들의 합리적이든 불합리하든 수많은 규칙에 의해 본능을 억제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희생은 내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희생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야만 한다. 혹은 규칙을 어긴 자는 확실하게 희생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형이라는 매우 중요한 제례를 제거당했다. 적어도 묶어놓고 돌팔매질하는 정의조차도 용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 많은 억눌림 속에 살아야 했던 이들에게, 특권층들은 빵만큼이나 중요하게 이 '희생'을 제공했다. 21세기의 우리는 이 희생제례를 유사하게 흉내내고 있으며 조만간 더 거대한 형태로 만들어낼 것이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사형수의 사형은 마을의 축제이자 모든 액운을 한 번에 씻어낼 좋은 기회였다. 마을에 액운이 가득한데 사형수를 죽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정자로서 실격이다. 불만이 가득한 민중에게 '관용'을 말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그 관용을 말하는 그 입부터 찢어지고 싶지 않다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묶어놓은 사형수에게 돌멩이를 던지거나 사형수나 마녀가 불타는 것을 보며 한 해의 액운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소박한 전통들이 전부 거세되어 버렸다. 기독교와 유교라는 이름의 지식인, 특권층들의 지적유흥과 통치체제는 자칭 '도덕'이라는 고고한 것을 통해 사람은 그런 행동없이 사이좋게 서로 지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회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적당한 제어점만 되어줬을 뿐이다.
왜 마녀의 화형이 쓸모 없는가? 루이 16세가 마리 앙뜨와네뜨를 화형시켰다면 적어도 군중의 분노는 누그러뜨렸겠지. 안타깝게도 마리는 오스트리아황제의 여동생이었고 '특권층'의 정점이었다. 똑바로 정치도 못하면서 저 외국여자를 죽여달라는 우리의 작은 소망마저 특권층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왕은 죽어 마땅했다. 그 요구를 무시한 프랑스 왕정은 거대한 화형식을 치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시간 관계상 화형대신 그냥 목만 자르는 사형이긴 했지만.
단두대로부터 데구르르 굴러와 아이들의 바구니에 하나씩 담기는 왕과 귀족들의 대가리를 보고나서야 민중의 얼굴이 웃음꽃이 피었을 것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않다. 마녀를 화형시키지 않은 대가는 너무도 컸다. 마녀 사냥은 죄가 없는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것이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화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궁극적인 해결은 안정적인 자원의 공급과 함께 안정적인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만 '몇'만 제거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 서로 죽고죽이든가 공간을 넓히든가 최소한 하나는 요구된다.
우리는 이 시대를 제국주의 시대라 부르기로 했다.


지구라는 아파트는 너무 가득차 있다. 더 이상 미지의 세계는 없다. 불만을 가진 농노가 도망칠 곳은 없다. 대부분의 불만종자들을 자동 소멸시켜버린 '미지의 세계' 푸른 바다는 이제 쓸데없이 안전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내 방구석 어느 한 곳도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현대 민주주의란 그 관용이란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말해도 입이 찢어지지 않을 높으신 분들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표현이다. 이제 뉴스를 보고 분노해 호떡집에 불을 지를 수도 없다. 일본인 마을에 들어가 민족의 억울함을 말하면서 몇 사람을 찢어 죽이지도 못한다. 선조들은 애국자였는데 지금은 하면 위험분자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말로 욕하는 것 뿐. 이젠 말조차도 하지 못하게 한다. 옳은 일도 잘난 일도 다 하지 못한다. 억울하다. 너무 억울하다. 죽이고 싶다. 이 모든걸 다 죽여버리고 싶다. 공부를 해도 언젠가 잘될 거라는 희망도 없다. 잔인한 정보의 바다는 일찌감치 나와 당신의 지능, 부모님의 자산, 주거지역 등을 통해 사회 평균치 미달 판정을 내려버린다. 세상은 내가 푸른 바다로 나가 보기도 전에 이미 안전한 항해를 결정한 사람만 나갈 수 있다고 정해버렸다. 네가 나가기에 너무 위험하다고 보호해주는 척하면서 바다에 인생을 걸어보려는 자들에게 항해하다 죽을 자유조차 주지 않는다. 물론 맨몸으로 바다에 나갈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100여 년 전만해도 전쟁이 어느 정도 탈출로가 되어주었다.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와 이후 따른 자유무역은 좋은 영양상태와 곡물의 대량보급을 이끌어 냈으며, 이는 곧 우량 병사들을 만들어냈다. 노동력을 사용할 권리를 가진 계층들은 언제나처럼 목숨보다 숭고한 무언가를 외치며 우량 병사들을 그 숭고한 무언가를 위해 소모, 희생시켰다.
이 화려한 화형식은 전례가 없는 대축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나 많이 죽었기 때문에 그만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것이다. 인류는 이 전쟁을 통해 다시금 평화를 향해 나아갈 희망을 얻었다. 처음으로 전쟁없는 평화세계라는 이야기를 공적으로 말해도 겁쟁이 소리를 듣지않게 되었다. 심지어 남자들이 하도 죽어 여자들과 미개한 유색인종 무리에게조차도 생존권과 인권을 신경쓰게 되었다.
이후에 벌어진 전쟁은 뜻밖이긴 했지만 이 전쟁을 통해 서구세계는 다시 큰 화형식을 치렀다. 화형식이 컸던 만큼, 평화도 길었다. 평화가 길었던 건 그만큼 빈 자리가 컸고 열망이 해소되었던 탓이다. 심리적 물리적 간격은 굉장히 넓었고 그래서 그 간격에 여자와 누렇고 시꺼먼 놈들이 대학에 가겠다느니 일자리를 내놓으라느니 같은 소리들을 늘어놔도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감싸는 척 할 수 있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한 번 어긋난 룰은 이상할 정도로 원궤도로 돌아오지 않고 계속 빗나갔다. 이제 앞으로 지구온난화 방지와 탄소중립을 위한 비건강제법과 동물참정권 정도가 남았다. 모두가 은근히 전쟁을 원하지만 내가 나쁜 놈이 될 전쟁은 원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게 어디까지 갈 것인가?
열망이 공포를 극복하는 것은 어느 시점부터일까.


"까놓고 지구가 둥글든 네모났든 이 밑바닥 인생에서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 세계에 그게 상관없다는 것은 그 지식이 하등 쓸모 없다는 뜻이다.
그 지식이 쓸모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면 그걸로 돈을 벌 수 있다고 비전을 제시해다오.
그렇지 않다면 너희들이 좋아하는 그 지식과 세상을 다 부숴버릴테다. 어차피 우리는 가진 것이 없다. 아프리카에서 누가 굶든가 말든가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 그건 내가 증명한다. 다른 사람의 증명따위 무슨 소용이냐. 그들은 내게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악당들을 불태워다오. 화형식이, 거대한 화형식이 필요하다. 이 불행한 우리가 휘말려 타죽어도 좋으니 마리 앙뜨와네뜨든 정치인이든 모두가 알 수 있는 악의 결정체에 돌멩이를 던질 수 있게 해다오."

.....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실 민중의 열망, 특히 젊은 민중들의 열망은 대개 이런 것이 아닐까.
이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온 , 오로지 '간격'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순수한 열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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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에 이세계 관련 글쓰다가 하기 싫어서 의식의 흐름대로 뻘글 한 번 써봤습니다.
사람들의 열망이 가득 녹아 있는 곳, '수요층'들의 요구사항들을 보다보니 문득 든 감상이었네요.
생각 자체는 10년 전쯤 노예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든 것이긴 했지만요.

평생을 "모두의 한걸음이 세상을 바꾼다"는 걸 모토로 삼아왔지만
요새... 가끔 후회가 되곤 합니다.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저 여자가 모든 흑막이에요!"라고 외쳐주기를 모두가 바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