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9/10/10 04:58:55
Name CoMbI COLa
Subject 만원의 행복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깼습니다. 잠에 취해 화장실로 가다가 물병을 엎어버렸네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제가 한 잘못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육두문자를 뱉어냈습니다.

일단 급했던 볼일을 보고 쏟은 물의 뒷처리를 하고 나니 집에 마실게 없었습니다. 짜증이 한 번 더 욱하고 올라와 물통을 집어 던지고 어차피 잠도 살짝 달아난김에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습니다.

야심한 밤에도 편의점에는 여자 손님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근데 평범하지 않아 보이네요. 보통은 모자라도 쓰고 오지 않나 싶을 정도의 프리한 머리와 얼굴, 잠옷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그녀는 알바생과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과 음료수를 고르는 잠깐의 시간동안 들려오는 대화로 미루어봤을 때, 그녀는 새벽에 잠깐 집 밖에 나왔다가 도어락 건전지가 방전되어 집에 들어가지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알바생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지만 알바생은 예기치 못 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뿐이었죠.

무슨 이유였을까요? 이 야심한 밤에 젊은 여자가 집에 못 들어가서 곤란해 하는 것에 대한 동정심이었을까요? 아니면 네모난 9V 건전지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너희는 모르고 나는 알고 있다는 우월감 때문이었을까요?

9V건전지와 4개들이 AA건전지를 집어들어 계산하면서 여자분에게 건내주며 도어락을 여는 방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연락처를 물어보는 여자분에게 쿨하게 잘 해결되면 알바생한테 음료수나 사주시라 말하고 집에 왔습니다.

집에 와서 휴대폰을 보니 10,200원 결제 문자가 와 있네요. 회사에서 받는 돈, 제가 입는 옷, 먹는 음식 그 무엇하나 국민들의 피와 땀이 아닌게 없다돈 만원 이하인게 없는데, 요즘 그것들이 너무나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자신도 가치없는 인간이라 폄하하고 있었죠.

오늘 고작 만원으로 오랜만에 제 자신이 쓸모있는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기분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는 활기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s. 필 받아서 쓰다보니 5시네요. 오늘 하루가 활기차긴 개뿔 벌써 망했습니다.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0-06-08 10:27)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merovingian
19/10/10 06:07
수정 아이콘
걍 알려주시면되는데 왜 사주셨어요?^^;;
CoMbI COLa
19/10/10 06:20
수정 아이콘
여자분이 휴대폰도 없고 지갑도 없으셔서요. 본문에 그 내용이 없으니 뭔가 의도가 불순해보이는군요 흐흐흐
merovingian
19/10/10 06:26
수정 아이콘
뭔가 러브라인으로 이어졌으면 아마 아침부터 설렛.. 좋은하루 보내세요.
우와왕
19/10/10 06:55
수정 아이콘
라브라인으로 이어졌으면 > 댓바람좌 출동입니당
잰지흔
19/10/10 06:43
수정 아이콘
연락처를 줬다면 나중에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을 텐데..
자기야사랑해
19/10/10 06:52
수정 아이콘
저도 아직 건전지로 여는 방법 저도 아직 모르는데요?
자세히 알려주실수 있나요?
자기야사랑해
19/10/10 07:07
수정 아이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19/10/11 07:22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배워갑니다
산들바람뀨
19/10/10 07:11
수정 아이콘
보통 그럴땐 수도물 마시지 않나요?
CoMbI COLa
19/10/10 08:22
수정 아이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수돗물 못 먹게해서 그런지 평소에 수돗물은 식수라는 느낌이 안 드네요.
Dowhatyoucan't
19/10/10 07:47
수정 아이콘
후기가 기대됩니다. 뭔가 좋은일이 생길 것 같은 전개내요~^^
백곰사마
19/10/10 08:02
수정 아이콘
휴, 읽는 내내 연락처 받아서 문자 보냈을까봐 마음 조렸네요.
해피엔딩이라, 안심하고 지나갑니다.
츠라빈스카야
19/10/10 09:08
수정 아이콘
좀 사족인데, 도어락중에서 터치방식이 전기를 많이 먹는 것 같습니다.
지금 집에 이사오기 전엔 터치 방식이었는데, 배터리 8개를 꽉꽉 채워도 한 1년이면 밥달라고 노래했거든요. 출입자는 나밖에 없는데..
근데 지금 집은 슬라이드 열고 누르는 버튼식인데, 배터리 4개만 있는데도 2년이 되어가는 아직 밥달라는 소리를 안합니다...
홍준표
19/10/10 09:55
수정 아이콘
출입자는 한명일지 모르지만 출입을 시도한 자는 여러명일 수 있지 않을까요?
츠라빈스카야
19/10/10 10:27
수정 아이콘
그 집에서 한 6~7년 살았는데 매번 그래서요...그렇게 꾸준하게 시도했을런지...
복도에 CCTV도 잘 설치된 원룸이라 그것까진 아니라고 생각하렵니다...
이응이웅
19/10/10 16:03
수정 아이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머나먼조상
19/10/10 11:03
수정 아이콘
저럴때 대비해서 9볼트짜리 하나 벨 위에 올려놨는데 얼마전에 보니 없어져있어서 테이프로 붙여놔야 하나 고민중입니다...
박근혜
19/10/10 11:40
수정 아이콘
그때마다 사놓은 9볼트 건전지가 집에 수두룩 ㅠㅠ
파란무테
19/10/10 12:53
수정 아이콘
그냥 건전지 쓰지 말고
9볼트를 들고다니시면 되겠네용
19/10/10 12:24
수정 아이콘
보통 저러면 연애의 시작 아닌가요
19/10/10 12:45
수정 아이콘
그걸로 국밥을 드셨다면...
약은먹자
19/10/10 14:33
수정 아이콘
와 몰랐던 정보인데 도어락 안 열릴 때 9v 건전지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푸른호박
19/10/10 15:58
수정 아이콘
와..새벽에 나가시는 부지런함!!!!
19/10/11 07:22
수정 아이콘
그린롸이트!!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940 [예능] 흑백요리사 감상문(스포 있음) [15] 라울리스타20372 24/10/14 20372
3939 『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18] meson19154 24/10/12 19154
3938 못생긴 흙수저로 태어나 천하를 제패하다 [29] 식별19779 24/10/07 19779
3937 [풀스포] 살아서 고짐고를 두번 당하다니 : 조커 2 폴리 아 되 [9] Farce19198 24/10/06 19198
3936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장애를 갖고 살아온 인생을 써봤습니다. [5] dhkzkfkskdl19505 24/10/03 19505
3935 오타니도 쓰레기 줍는데 내가 뭐라고 [99] 항정살19116 24/09/29 19116
3934 단편 여행기 - 몽골의 별 [14] 중성화17454 24/09/29 17454
3933 혐오 문학의 정수 [5] 식별18003 24/09/28 18003
3932 [역사] 유럽과 중국의 역사적 평행관계와 분기(divergence)에 대한 고찰 [22] meson17232 24/09/28 17232
3931 사람이 사람을 먹은 역사를 알아보자: 조상들의 식인 [4] 식별20403 24/10/03 20403
3930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의 순례길 [11] 식별22288 24/09/27 22288
3929 (삼국지) 조예, 대를 이어 아내를 죽인 황제(1) [18] 글곰21874 24/09/22 21874
3928 퇴사 후 세계여행 - [1] 카자흐스탄 [12] 중성화21108 24/09/22 21108
3927 로마제국의 멸망사 [22] Neuromancer22590 24/09/20 22590
3926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13] 항정살20886 24/09/17 20886
3925 취업이 끝이 아니구나 [43] 푸끆이17442 24/09/12 17442
3924 [역사] 천 원짜리가 다 씹어먹던 카메라의 역사 [15] Fig.116480 24/09/10 16480
3923 내 인생을 강탈당하고 있습니다. [107] 카즈하17246 24/09/09 17246
3922 산타할아버지가 없어? [30] Timeless15765 24/09/09 15765
3921 땡볕에서 KISS OF LIFE 'Sticky'를 촬영해 봤습니다. ㅠㅠ [1] 메존일각14921 24/09/07 14921
3920 [잡담] 똥꼬는 얼마나 소중한가.. [27] 언뜻 유재석17734 24/08/15 17734
3919 칸예 웨스트, 언니네 이발관, 프랭크 오션 잡담. [6] aDayInTheLife16943 24/08/26 16943
3918 악보 지옥.......ㅠㅠ [12] 포졸작곡가16830 24/08/23 1683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