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9/04/11 04:04:52
Name 신불해
Subject "우리가 이 시대에 있었음을, 우리의 시대를, 결코 지워지게 하지 않기 위해." (수정됨)



우리가 역사를 통해 과거의 일을 알 수 있는 것은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이란 나라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테고, 을지문덕이나 계백이나 김유신이나 왕건, 세종대왕과 이순신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록이 남는 건 기록을 작성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래가 동북 아시아 역사에서 문(文)에 있어서 가장 높은 단계로 여기던 것이 역사서술이었습니다. 역사를 그대로 기록하고, 남겨두고, 여기에 대해 평론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역사서술이라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으로 간단하게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좀 더 고대로 가면 죽간(竹簡)이 대중적으로 쓰였을 때는 책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책을 수레로 끌고 다녀야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 시대 이후로도 역사서술은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수 없이 전쟁이 일어나면서 자료가 소실되고, 화마가 한번 닥치면 손쓸 수도 없이 쓸려나갑니다. 정치적 목적에서 반달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역사 기록은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사업이었습니다. 중국사에서는 여러 왕조들이 자기 나라 역사의 일은 실록(實錄)으로 남겼고, 멸망한 전대의 나라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실록 자료나, 여러가지 비문(碑文) 및 민간의 자료를 취합하여 정사(正史)를 만들곤 했습니다.



왕조가 빈번하게 교체되던 중국에서는 전대 왕조의 정사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합법적으로 그 나라의 정통성을 잇는다." 라는 의미가 되기에(겸사겸사 정사 작업을 하면서 왕조가 만들어지는 와중에 있을법한 민감한 부분을 세탁하는 것도 중요하고) 아주 중요한 일로 인식 되었습니다. 그런식으로 전대의 역사는 (비록 후대 왕조의 정치적인 목적이 들어간 부분을 걸러들어야 하겠지만) 계속 후대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후대의 왕조에서 이를 다루고 보호하려는 목적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보통은 자신들 왕조의 정치적인 목적 때문이라도 그 점을 신경 썼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외가 있었습니다. 바로 몽골이 침공해왔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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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 칸으로 유명한 몽골은 세력이 절정에 이를 무렵 계속해서 중국 쪽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몽골의 중국 침공은 북중국에 있었던 왕조인 금나라와의 전쟁이 20여년을 끌었고, 남쪽에 있던 송나라와의 전쟁이 40여년을 끌었습니다. 



처음 침공했을 때부터 중국 정복 사업이 끝났을 무렵까지는 몇세대는 넉넉하게 지날 6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에 남송 정벌이 끝났을 때는 몽골의 성격도 많이 변한 상태였고, 파괴와 약탈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무분별한 약탈은 어느정도 자제하고 무자비한 파괴도 이전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당시 몽골의 칸이었던 쿠빌라이 부터가 한 문화 애호가인데다 중원에 뜻을 두고 있어 "곧 나의 것이 될 것이니 최대한 죽이지 말고 약탈하지 말아라." 라고 남송 정벌을 담당한 장군, 바얀(伯顔)에게 당부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매를 먼저 맞은 격인 금나라는 좀 달랐습니다. 이 당시 금나라가 상대하던 몽골군은 말 그대로 초원의 전사들이었고, 중원 땅도 "풍족한 물건을 많이 뜯어갈 수 있는 곳." 정도 였지 이 곳을 다스린다는 개념도 많이 약했으며, 칭기즈칸이나 우구데이 같은 칸들도 전쟁 할떄가 아니라면야 중국에서 머물기 보다 초원에서 머무는 걸 훨씬 선호 했습니다. '다스린다' 는 개념이 약했으니 무슨 민심을 얻고 그런것보다는 마구 죽여대는 학살과 파괴도 엄청나서, 금나라 멸망 당시의 기록을 보면 말 그대로 '세상이 끝장나는 느낌' 을 종종 받습니다. 그야말로 죽고 파괴되고 학살 당하고 등등등...




사람 목숨이 파리처럼 날아가는 판국이니 일개 기록에 대해서는 오죽하겠습니까. 하물며 송나라 같은 경우는 육수부, 장세걸 등이 황족을 옹립하여 망명 정부를 세워 끝까지 저항하긴 했으되 원래의 남송 조정은 바얀의 원정군에 곱게 항복해서 크게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금나라의 마지막은 황제가 자살하고, 그 황제에게 후계자로 지명받은 사람도 적군이 쳐들어오는 난전 중에 죽고, 근위병 수백명이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어가는 등 말 그대로 참극이었습니다. 이 마당이니 무언가가 제대로 남고, 또 그게 정상적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것도 무리입니다.





그러나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금나라의 역사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후대에 이르러 금사(金史)라는 정사가 나왔고, 이 금사는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편찬된 송사(宋史), 요사(遼史)에 비교해도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엄밀히 말해 요금송사는 모두 비판을 좀 꽤 받는 편이지만, 짦은 시기에 3개의 정사가 동시에 편찬되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금사는 게중에서는 덜 비판 받는 편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수십, 수백만 단위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셀 수도 없는 마을이 약탈 당하고, 온갖 귀중품들이 흩어지고 약탈 당하는 그 '1세대 초원전사들' 이 도래한 세기말적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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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世間 情爲何物 直敎生死相許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름하느뇨?

天南地北雙飛客 老翅幾回寒暑
천지간을 가로지르는 새야! 너희들은 지친 날개 위로 추위와 더위를 몇 번이나 겪었느냐!

歡樂趣 離別苦 就中更有癡兒女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 속에 헤매는 어리석은 여인이 있었는데, 

君應有語 渺萬里層雲 千山暮景 隻影爲誰去
님께서 말이나 하련만, 아득한 만리에 구름만 첩첩이 보이고 해가 지고 온 산에 눈 내리면,.

隻影爲誰去
외로운 그림자는, 누굴 찾아 날아갈꼬









아마 무협 소설 좀 읽었다고 하시는 분들은 위의 시만 보고도 무릎을 탁 치실 겁니다. 바로 얼마전에 별세한 무협 소설의 대가 김용 작가의 소설 신조협려에서 이막수가 늘 읆조리는 시로, 신조협려라는 소설 자체를 표현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이 시의 제목은 안구사(雁丘詞)이고, 이 시를 쓴 사람은 원호문(元好問) 이라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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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시인, 원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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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





금사 열전에 따르면, 원호문은 겨우 7살 나이부터 시를 짓기 시작했고 14살 제대로 학문을 공부하면서 6년간 경전을 보면서 공부하였고, 기산《箕山》、금대《琴台》같은 작품을 썼는데, 아직 원호문이 나이도 어리고 따로 벼슬을 하지 않아 명성이 널리 퍼지기 전이었음에도 조정의 예부(禮部)에 있던 조병문(趙秉文) 같은 사람들은 원호문의 작품을 보고 "근래에 이런 훌륭한 작품은 있었던 적이 없다." 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여 명성이 수도를 뒤흔들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시험은 몇번 낙방한적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젊은 기재 원호문이 무언가 뜻을 펴보기 전인 1211년, 아직 원호문이 21살일때 칭기즈 칸의 금나라 침입이 시작 되었습니다. 학문을 배우고 이제 세상에 나가려고 할때부터 눈에 보인 천하는, 벌써부터 도탄에 빠친 천하였던 셈입니다.



금나라와 몽골의 첫 전쟁은 몇번의 큰 싸움 끝에 다시 물러나는 등 간헐적으로 펼쳐졌는데, 이 무렵 원호문의 아버지가 사망 했습니다. 원호문은 고향인 산서성 흔주(忻州)로 아버지의 유해를 가져와서 거기서 몇년간 복상을 했습니다. 몇년 이라는 시간이 지나 아버지의 복상이 끝날 무렵이 되어 다시금 원호문이 세상에 나갈 상황이 되었지만, 이때 다시 한번 몽골의 침입이 펼쳐졌습니다.




1214년, 원호문이 24살일때 칭기즈 칸은 직버 군사를 이끌고 주치, 차가타이, 우구데이 등과 함께 파도처럼 금나라를 유린했습니다. 몽골군은 산서 지역에도 들어왔고, 마침내 원호문의 고향까지 당도했습니다. 몽골군은 초원에서 내려온 야수처럼 눈앞에 있는 모든걸 불태우고 학살했습니다.



이때 원호문은 양곡(陽曲) 지역으로 피난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원호문의 형인 원호고(元好古)는 고향에 남아 침략군인 몽골군과 맞서 싸우던 도중에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나이가 고작 29세에 불과했으니, 아직 한창 나이였던 셈입니다. 이때 혼주에서 죽은 사람만 무려 10여만명에 달했습니다.




삐걱대는 전차는 돌확을 굴리고
옛 관은 여전히 궁도로서 지킨다
연영의 돌기로 홍진은 어두운데
미복의 행인들로 좁은 길은 높기만 하다

이미 벌레와 모레가 되었으니 부질 없는 자타은 그만두지만
시호와 마주치기 싫다고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청운에 옥립한 삼천장
옛 그대로의 동산에 의기만이 호쾌하구나




고향이 문자 그대로 지도에서 지워지고, 부모를 잃은지 얼마 안되어 젊은 나이의 형까지 잃은 상태로 원호문은 정처없이 피난을 하며 이 시를 지었습니다. 무기와 군량을 나르는 수레들이 삐걱거리며 지나갑니다. 오래된 관문에서는 아군이 아직 칼과 활을 가지고 지키고 있지만, 돌기병이 지나가는  모래먼지로 사방은 어둡고 흐릿할 뿐입니다. 



그 사이로 초라하게 옷을 입은 난민들은 비틀거리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좁은 길은 높고 험준하기만 합니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은 벌레나 모래가 되어 한탄할 일도 없지만, 살아서 맹수 같은 적들에게 마주치는 자신들은 어디로 도망쳐야 한다는 말입니까. 세상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바뀌었지만, 저 하늘 산천장의 산만 엄숙하게 솟아 있고, 동산의 의기만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호방하게 있을 뿐입니다. 





당시 몽골군의 기세에 겁을 먹은 금나라 조정은 서둘러 화의를 청했고, 몽골군은 화의에 합의한 후 다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충격이 워낙 극심해 몽골 조정은 수도였던 연경(燕京)이 몽골 초원과 너무 가깝다고 여겨 남쪽인 개봉으로 천도를 감행했습니다. 사실상 하북, 산서 지방을 포기한 셈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조정이 남천하고 군대 역시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군사들의 가족들도 100만 명이나 하남 지방으로 이주 되었습니다. 조정도 남쪽으로 달아나고, 병사들도 남쪽으로 내려가고, 그 병사들의 가족들도 흡사 지옥에서 한발자국이라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처럼 남쪽으로 100만명이나 대이주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명목상으로 북방은 금나라의 영토로 유지되어 있었지만, 북방 사람들에게 이는 세상이 멸망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줄 뿐이었습니다. 지방관들도 자리를 버리고 남쪽으로 달아났고, 아직 남아 있던 백성들 마저도 이미 수 많은 사람이 빠져나가 황량해진 마을의 구석구석에서 피난할 짐을 꾸렸습니다.




이 당시 요동 지역에서 야율유가(耶律留哥)라는 자가 반란을 일으키자, 금나라 조정은 포선만노(蒲鮮萬奴)를 보내 토벌케 했습니다. 일단 금나라가 아직 북방을 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출병이었습니다. 하지만 포선만노는 야율유가를 이기지 못하자, 아예 북방에서 자립하여 대진국(大眞國)이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몽골의 침략, 도망친 조정, 두려움에 떤 사람들의 이주, 변방의 반란군, 이를 토벌하러 가서 다시 반란군이 된 관군....






몽골은 남쪽으로 이동한 금나라의 행동을 '몽골에 대항하려는 행위' 로 여기며 다시 침공을 개시했습니다. 이 무렵 원호문은 과거 시험을 준비했지만, 잘 되지 않아 낙방하여 풀이 죽은 상태였습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고향은 이미 몽골군의 침입 루트에 있어 또다시 초토화가 되었던 상태입니다.




때문에 원호문은 과거에 떨어진 상태로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한채, 숭산 근처에 전답을 구해서 여기서 직접 농사를 짓고 독서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전쟁은 바로 표홀이니
애써 집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표홀은 질풍을 말하며 전쟁은 그와 같은 것이라 언제 멎을지 모르니, 이제 부질없이 고향을 떠올리지 말자고 그는 읆조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언제나 석령관두 길에서,
고향의 산을 일망하며 눈이 부실까.



라고 노래했습니다. 저기 저 석령관 마룻길을 달려, 그리운 고향 산천에 이르러서, 그곳을 바라보며 눈이 부시다고 말할 날은 대체 언제가 되야 올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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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최악인 형세였지만, 전황은 점점 더 재앙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몽골의 대칸 우구데이는 대군을 이끌고 화북을 건너 바로 남하하고 있었고, 몽골군 대장 툴루이는 별도의 군사를 이끌고 한중 지역을 지나 측면에서 개봉을 향해 다가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관중의 양민 수십만 명이 몽골군에 잔혹하게 학살 되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한 대책 회의에서 조정의 신료들은 너나 할것 없이 지구전을 주장했습니다. 비록 몽골군이 활개치며 모든곳을 초토화 시키는것은 뼈아프지만, 수도를 굳건히 지키면 나라를 간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북군(몽골군)은 1만리나 되는 길을 험한 길을 지나왔고, 2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서야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취해야할 계책으로는 여러 곳의 병력을 수도로 모으고, 양곡 수백만섬을 수도에 쌓아놓은 다음, 대장 한 명을 보내 낙양과 동관 등지를 지키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남지방의 여러 성들은 청야작전을 펼치고, 만일 근처의 성채로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는 산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북군은 먼 곳을 와서 싸우려고 해도 싸울 수가 없고, 우리가 상대해주지 않으니 크게 지칠 테니 군량이 떨어지면 물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이것이 가장 좋은 작전일 수 있었습니다. 몽골군의 강력함이 유례가 없는 상태에서 그들과 함부로 싸우는 대신 지키기만 하자. 비록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죽고 수많은 마을이 저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같은 부대에 겁탈 당할테지만, 최소한 나라는 계속 더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금나라의 황제 애종은 그 말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길게 탄식하더니, 다음과 같은 말로 대답했습니다.




"우리 나라가 남쪽으로 천도한지 이제 20여년 째, 백성들은 농토와 주택을 폐허로 만들었고, 자신들의 처자식을 내다 팔며 군대를 양성했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의 군사가 20여만에 이르렀다. 그런데 적이 와도 맞아 싸우지 않고 단지 스스로 수비하려고만 한다면, 그리고 설사 그렇게 해서 도성을 보전할 수 있다 할지라도, 어떻게 그런 것을 일컫어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짐은 이에 대해 심사숙고 하였다. 국가의 보전하고 망하고는 단지 천명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짐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나의 백성을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 뿐이다."
 




몽골군이 금나라를 쓸어버리고 다닌지 20여년이 흘렀습니다. 20여년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고 너무나 많은 백성들이 평생 일구었던 농토와 주택을 잃어버린 채 거지가 되어 난민으로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내하는 동안 20만에 달하는 군대를 양성했습니다.



이제 그 군대를 가지고 백성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설사 그렇게 해서 도성 하나만을 지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것을 어떻게 나라라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나라가 망하고 망하지 않고는 하늘에 달려 있지만, 황제가 된 자로서 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일은, 바로 백성을 저버리지 않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애종의 뜻이었습니다.





이라하여 금나라가 지난 세월을 버티면서 육성한 15만 대군, 최후의 군단이 출정했습니다. 목표는 서쪽에서 오고 있는 툴루이 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출정한 군대는 대장 이랄포아(移刺蒲阿)가 결정적인 판단 착오를 하며 고집을 부렸고, 몽골군 대장 툴루이가 기만한 용병술을 펼쳤으며, 동시에 날씨마저 눈폭풍이 내리면서 대군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등 여러가지 악재를 만났습니다. 결국 '삼봉산 전투' 에서 금나라가 눈물 속에 키운 정예군단은 처참하게 전멸했습니다. 뭔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채, 날씨에 지치고 적의 견제에 지친 상태에서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기력을 잃어버린 채 제대로 된 싸움을 해보지도 못하고 도륙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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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몽골군은 수도 개봉까지 당도했습니다. 북송 시절부터 번화했던 아름다운 대도시 개봉은, 이제 살기 위해 몰려드는 피난민들로 과포화될 지경이었습니다. 이 당시 개봉성에 있던 사람들의 숫자는 무려 240만 명으로, 끔찍한 수준의 인구밀집이었고 포위되어 보급도 거의 안되는 상태에서 이 정도 인구가 몰려 있으니 개봉은 인간세상의 지옥이나 마찬가지인 광경이 되었습니다.




먹을게 없어서 고관대작의 어린 딸들도 거리에 나가 초췌해진 채 구걸을 했습니다. 사방팔방에 죽어 나자빠진 시체들이 나돌았고, 못 먹은채 몰려있는 빈민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돌아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나가 시체 썩는 냄새를 풍겼습니다. 나중에 성문이 열린 뒤 성 밖으로 버려진 시체의 숫자만 기록에 따르면 무려 90만 구에 달했고, 이마저도 다 센 숫자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아침마다 굶어 죽은 자들이 나뒹굴려 실려 갔는데, 저녁이 되면 그 시체들은 전부 다 백골이 되어 있었습니다. 굶주려서 악귀가 된 백성들이 시체를 뜯어먹었기 떄문입니다. 가죽이 있으면 신발일지라도 뜯어서 먹었습니다. 개봉의 호화로운 건축물들도 전부 떄려부셔서 떌감으로 사용 되었습니다.




청명상하도(靑明上河圖) 같은 그림이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묘사된 당대의 개봉을 보면, 너무나도 번화하고 활기에 차 문득 그 시대 그곳에서 노닐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러나 청명상하도에 그려진 아름다운 풍경은 이 시점에 이르러 여기저기에 나뒹구는 쓰레기와 부러진 기왓조각으로 가득찬 광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개봉성은 지옥, 마굴이 된 채로 몽골군 대장 수부타이에게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도저히 싸울 힘이 없던 금나라 조정은 어떻게든 화의를 하려고 했지만 수부타이는 퉁명스럽게 반응하며 화의에 응해주지 않았습니다. 개봉성 주변의 참호들은 몽골군에 의해서 순식간에 메워졌지만, 화의를 하기 위해 몽골군을 자극하지 말라는 명령에 내려져 성 벽의 금나라 군사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내부에선 수십만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밖으로는 수많은 몽골군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군대는 불만에 차 목소리를 높였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은 폭발했습니다. 그리하여 비까지 내리는 와중의 처참한 모습 속에 무언가 전부 다 폭발하고 말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바로 그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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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한 하늘에서 비가 내리며 몰려든 모두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던 그때, 황제 애종은 채 10명도 안되는 수행원만 데리고 갑자기 그 자리에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갑작스런 황제의 등장에 놀라 무릎을 꿇으며 애를 표시하려 했지만, 애종은 "비가 와서 땅이 추적거리니, 모두들 절을 올리지 말고 일어나라." 고 했습니다.




구중궁궐에 있을 고귀한 황제를 평생 제대로 볼 일이 없었을 사람들은 이제 시장거리, 지근거리에서 갑자기 황제를 보게 되자 모두들 놀라서 들고 있던  물건도 떨어뜨릴 정도였습니다. 황제는 몰려든 사람들을 해산하라고 명령했는데, 이 놀라운 광경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어 오히려 인산인해가 되었습니다. 바로 가까이서 황제의 옷을 만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윽고 금나라의 재상들도 황제가 나간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헐레벌떡 성벽 쪽으로 뛰어왔습니다. 재상들은 비를 피하라고 삿갓을 황제에게 건넸지만, 애종은 "모든 군사들이 비를 맞고 있는데, 어찌 나 혼자 이것을 쓰겠는가?" 라며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애종은 직접 병사 한명 한명을 만나고 어루만지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을 위로했고, 방금전까지만 해도 절망속에 빠졌던 사람들은 꿈에서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황제와의 만남을 이루자 모두들 감동했고, 눈물까지 흘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애종은 이후로도 직접 병사들과 장수들을 만나며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부상병을 보게 되자, 황제의 손으로 직접 약을 그 병사에게 건네고, 술을 따라 건네주었습니다. 




이런 애종의 격려와, 진천뢰(震天雷)와 비화창(飛火槍)이라는 비장의 화약 무기가 아직 금나라에 남아 있었기에 이후 16일간 펼쳐진 전투에서 양측은 서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개봉은 미처 함락되지 않았고,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느낀 수부타이는 이 시점에서 화친에 동의하고 잠시 군사를 물렸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잠시 일뿐, 곧 되돌아 올 것이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몽골군이 물러난 후 금나라는 다음 싸움을 준비했습니다. 개봉성의 인구를 생각하면 최소한 100만 석의 양식은 있어야 했지만, 이미 개봉성 내에서는 어디에서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고 안간힘을 써봐도 겨우 3만석 밖에 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래서는 무얼 해도 저항할수 없습니다. 애종은 채주(菜州)라는 곳으로 옮겨가 저항을 계속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개봉성의 수백만명의 피난민은 미처 그 뒤를 다 따라갈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몽골군은 다시 한번 침공해왔습니다. 개봉성은 또다시 포위 되었고, 지옥같은 굶주림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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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옥같은 개봉성의 피난민들 중에는 원호문도 있었습니다. 현세에 강림한 지옥의 한가운데에서도 그는 계속 시를 지었습니다.




답답하게 성에 갇혀 두 해를 보내니,
근심으로 가득찬 창자는 날마다 굶주림에 들볶인다
...백골과 병사의 혼령은 많고,
석달 째 서남 소식 끊기고,
지는 해 외로운 구름을 바라보는 눈이 빠지는 듯 하구나
...가을바람아, 이 화발(華髮 : 백발)을 흩날리지 말아다오
창해는 노도포효 하며 이 몸을 집어 삼키려 하는데.





지난번의 포위부터 따지면 몽골군의 포위는 두 해에 이르렀고, 성안에는 먹을것이 다 떨어져 원호문도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어딜봐도 사람들이 죽어 나자빠진 광경이나 병사들이 쓰러진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서남 방향인 내향현에는 그의 가족을 남겨두고 왔습니다. 몇 달이 되도록 그곳에선 소식이 없었고, 포위된 개봉성 안에서 원호문은 한조각 구름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너무나도 뚫어지게 바라봐서 눈이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암울하게 물든 가을의 바람이 불지만, 백발을 흩날리지 말라 말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드넒은 해원이 거센 물결처럼 용솟음치며 상심에 빠진 이 몸을 집어 삼키려고 하고 있으니.




조정이 떠난 개봉성은 어느정도의 항전 이후 곧 몽골군에 항복했습니다. 그나마 전부 다 성내에서 굶어 죽고 역병으로 죽는것보다는 나을 수 있겠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가혹한 운명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몽골군은 남아있던 고관들이나 주료 관료들은 포로로 잡아 끌고갔고, 나머지 일반 백성들도 노예로 삼을만한 사람을 잡아서 끌고갔습니다.



원호문 역시 그렇게 끌려간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요성' 이라는 곳에 가족들과 함께 유폐 되었는데, 이곳으로 가려면 황하 북쪽으로 배를 타고 건너야만 합니다. 끌려가는 도중 눈 길 닿는 곳 어디를 봐도 널려있는 참극의 흔적을 보고 원호문은 몇개의 시를 지었습니다.




길가에 쓰러진 포로가 즐비하고
지나가는 전차는 물이 흘러가는 듯하다
여인은 곡하여 회골의 말을 뒤따르고
뉘를 위해 걸음마다 뒤돌아보는가



개봉이 함락되고 성안에 그나마 남아있던 귀중품들은 몽골군에게 모조리 대약탈 당했고, 재물 뿐만 아니라 이제 사람들도 노예로 부려지기 위해 끌려가고 있씁니다. 여러 재물은 전차에 실려 있고 사람들이 뒤따르는데, 그 행렬은 물처럼 끝이 없습니다.



납치된 사람들은 걷게 했는데, 사방에 지쳐서 쓰러진 포로들이 길가에 즐비했습니다. 납치된 여자들은 울면서 위구르의 말을 뒤따라가고 있는데, 이들은 누구를 위하여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인지.




여기저기 흩어진 백골은 뒤얽힌 삼실과 같고
고향땅이 사막으로 변한지 몇 해나 되었을까?
하북에는 목숨이 다한 줄 알았는데,
뜻밖에 부서진 몇 집에서 연기가 오르네




길가 어디를 봐도 백골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정답던 고향 땅은 흔적도 볼 수 없는 사막으로 변한지 이제 몇년이 지났습니다. 황하 이북으로는 몽골군의 발길이 닿는 곳 마다 모든 주민들이 절멸했다고 하던데, 끌려가며 길가를 둘러보니 뜻밖에도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오두막 몇 채에서 밥을 짓는 연기가 보이고 있습니다.




태평할 적에는 시집을 가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건만
단정한 머슴애와 어린 계집아이들
300년 이래 닦이고 키워져
이제 사막에 끌려가 소나 양과 바꾸는 물건이 되다니.



나라가 태평할때에는 결혼을 해도 고향 마을을 멀리 떠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300년 동안 문명에 흠뻑 적어 젊은이나 처녀 모두 나긋나긋하고 귀여우며 생기가 넘쳤습니다. 그러나 곱게 자란 귀공자와 어린 꼬마 아가씨들도, 이제는 사막으로 끌려가 소나 양과 교환되는 물건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앞에 어떤 운명이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청산 높은 곳에서 남주를 바라보니
강물은 유유히 성을 돌아
원컨대 이 한 몸 물을 따라 떠나
해저에 당도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으라




그 모든 광경을 생생하게 지켜보면서, 원호문은 물 밑바닥까지 곧장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결코 뒤돌아보지 않으리라고도 했습니다. 이러한 지옥같은 광경은, 두번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원호문이 요성에 갇혀 있는 동안, 금나라는 멸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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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주에 피난해 있던 금나라 조정이었지만, 이곳에도 몽골군이 몰려왔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송나라 역시 지원병으로 이곳에 도착해, 양식 30만 석을 몽골군에 지원해주고 공성 병기도 전달했습니다. 



채주 성 내에서는 먹을 것이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을 지경이었으며, 인력이 없어 아녀자들까지도 징발 되어 흙과 돌을 나를 정도였습니다. 황제 애종은 직접 나가서 일일히 그들의 손을 어루만지고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허사였습니다. 몽골군과 송군이 근처 호수의 물줄기를 성 안 쪽으로 바꾸어버려 이미 굶주림에 지친 성 내는 이제 물난리까지 나서 생지옥이 되었습니다. 대장 홀사호(忽斜虎)가 이끄는 정예병이 그저 악전고투하면서 겨우 버티고 있었을 뿐입니다. 슬픔에 잠긴 애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자 10년, 태자10년, 황제 10년을 하며 짐은 큰 과오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이제와서 죽는 것은 크게 억울하지 않다. 그러나 단지 한 스러운 것은, 옛부터 이어진 우리 금나라의 100여년 역사가 어찌하여 짐의 대에 이르러 끊어지게 되었단 말인가? 옛날의 횡음무도하고 난폭한 군주가 나라를 망쳤다는 말은 들었지만, 짐의 경우는 무엇이란 말이냐? 짐이 어찌하여 그들과 더불어 똑같은 망국의 군주가 되었단 말이냐."



슬픔에 잠긴 애종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옛날부터 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었고, 망국의 임금은 죄수처럼 묶여 적의 궁정에 끌려가 치욕을 당하거나 혹은 황량한 계곡에 갇혀 지냈다고 한다. 짐은 그런 꼴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경들은 보라. 짐의 뜻은 결정되었다."




1234년 1월, 새해가 되자 애종은 황족 완안승린(完顔承麟)에게 제위를 넘겨주었습니다. 완안승린은 놀라 받지 않으려 했지만, 애종은 이를 좋게 타일렀습니다.





"짐이 경에게 제위를 넘기려는 것은 부득이하여 그러는 것이다. 짐은 체격이 비대하다. 말을 타기도 어렵지 않은가. 반면 경은 평소에 민첩하고 가진 기량이 탁월하니, 만약 이 위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면 선제들의 위대한 대업을 잇도록 하라."




이리하여 완안승린이 새롭게 황제에 즉위하고, 문무백관이 의례에 맞추어 기념을 하던 그 순간, 남쪽 성문을 시작으로 동서남북 모든 성문이 뚫려 적군이 성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애종은 시가전이 펼쳐질 무렵 방안에서 목을 매서 자살했습니다.



대장 홀사호는 1천명의 정예병을 이끌고 최후까지 치열하게 저항하다가, 애종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장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우리 군주께서 승하하셨는데, 내가 더 이상 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적병 따위에게 죽을 수 없다. 나는 이대로 지하로 가서 우리의 황제를 끝까지 모시겠으니, 제군들은 남은 계책을 잘 세우도록 하라!"



말을 마친 그는  물에 뛰어들어 자살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남은 병력 500명은 모두 말했습니다.



"상공께서도 충절을 지키셨다. 우리들이 충절을 지킬 수 없겠는가?"



결의의 맹세를 나눈 제국의 마지막 군단, 완안아골타로부터 이어진 금나라 100여년 역사의 최후의 정예군단은 눈 앞의 몽골과 송나라의 병사를 상대로 끝까지 싸우며 적을 베고, 베고, 또 베어냈습니다. 참지정사 발출로루실, 올림답호토, 총수 원지, 원수 왕산아와 홀석렬백수, 그리고 원수 오고론환단 등은 최후의 최후까지 몰려드는 적을 상대로 칼을 휘두르며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적이 너무 많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싸운 끝에, 500명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전사했습니다.




한편 적군의 맹렬한 공세에 밀려나있던 마지막 황제, 완안승린은 애종이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자 신하들을 이끌고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죽은 애종에게 '애종' 이라는 시호를 올렸습니다. 아직 제사도 지내지 못했지만 주위의 성읍은 모두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근신들은 최대한 서둘러 애종의 시신이 적에게 욕보이지 않게 화장을 하고는, 남은 유골을 수습하여 여수 강 옆에 묻었습니다. 그 직후 몽골과 송나라 연합군이 당도하여, 말제(末帝) 완안승린도 난전 중에 적에게 베여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단 하루도 채우지 못한 제위기간이었습니다. 



이로서 완안 아골타의 시대로부터 119년을 이어진 대제국 금나라는, 완전한 멸망을 맞이했습니다.





갑자가 두 번 돌아 오늘 다했다
허무하게 흐르는 눈물을 남쪽 하늘에 뿌린다




원호문은 요성에서 금나라의 멸망과, 황제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갑자가 두 번 돌아 120년을 채우고 금나라가 멸망했습니다. 이 당시 그의 나이는 45세였습니다. 그는 요성에서 아득히 먼 남쪽으로, 애종이 죽은 채주의 하늘을 바라보며 끝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향도, 나라도 멸망하였는데
이 몸은 홀로
요성에 머물며 또 가을을 보낸다
늙어빠진 하늘이여, 참으로 궤궤하고,
난래(亂來)의 인사, 근심과 걱정만 쌓여간다
바둑의 패국을 누가 뒤엎을지
거을에 비친 초췌한 얼굴을 그저 스스로 부끄러워할 뿐




금나라가 멸망하고, 원호문은 나라를 이렇게 만든 하늘을 증오하며 원망을 퍼붓었습니다. 어찌하여 하늘은 금을 저버리고, 이런 지옥을 세상에 만들어버렸단 말인지?




그러나 절망에 빠져 있던 원호문은, 문득 커다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었던 겁니다.




兵後,故老皆盡, 好問蔚為一代宗工,四方碑板銘志,盡趨其門。


전쟁이 끝나고, 원로들은 모두 죽거나 죽임을 당했다.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에 남아 있던) 원호문은 비석문의 대가로 여겨져 사방에서 비석, 판명, 묘지명을 만든다고 한다면 그에게 부탁하기 위해 그의 집에 몰려왔다.



晚年尤以著作自任,以金源氏有天下,典章法度幾及漢、唐,國亡史作,己所當任。


원호문은 만년 역사를 서술한데 집중하였는데, 그것은 금나라가 일시 천하를 지배하였음에도 그 법도가 한나라와 당나라에 미치지 못하여, 나라가 없어진 지금 그것마저 산실될까 걱정하여, 스스로 그 일을 자임한 것이었다.


─ 금사 원호문 열전 中





전쟁이 끝나고 대부분의 금나라 지식인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사라져버렸습니다. 원래도 금나라의 대문호였던 원호문이지만 이제는 정말 몇사람 남지 않았던 셈입니다.



반면 나라가 멸망하면서 그 기록은 모두 흩어져버렸습니다. 금나라는 중국 문명의 적통을 이는 제국으로서, 120여년간 존재하며 수 많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원호문 자신이 알고 있고, 사람들 역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은 한세대만 지나도 흐릿해져버립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건, 이대로 잊혀버리지 않을련지.





이제 옛 금나라 출신 유민 중 몇 거의 남지 않은 문호이자 지식인으로서, 원호문은 하나의 사명에 눈을 떳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록하는 일입니다. 기록하고, 남기고, 다음 시대로 이를 전하는 것입니다. 확실히 금나라는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금나라가 존재했었다는, 그 금나라에 빛나는 유산이 있었다는 기억마저 사라진다면, 금나라는 그때 정말로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기에 원호문은 곧바로 저술활동에 나섰습니다. 우선은 그가 문인인만큼, 금나라에도 송나라에 밀리지 않는 훌륭한 문학이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원호문이 만든 당대의 시집 모음집인 《중주집(中州集)》 입니다. 원호문은 이 중주집에 무려 시인 200명을 수록했는데, 그는 시를 수록하며 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약전마저 따로 부기했습니다. 단순히 시집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금나라 당대의 여러 문화인들을 한번에 알 수 있게 한 것이었습니다. 





요성에서의 유배는 2년을 이어졌습니다. 2년이 지난 후, 드디어 원호문은 풀려나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도움으로 관씨현(冠氏縣)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저술 활동에도 탄력이 붙게 되었습니다.




時金國實錄在順天張萬戶家,乃言于張,願為撰述,既而為樂夔所沮而止。好問曰:「不可令一代之跡泯而不傳。


당시 금나라의 실록은 장 만호장의 집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원호문이 장 만호장에게 말해 그것을 찬수하고자 하였더니 악기남이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이에 원호문은 "한 왕조의 업적이 흩어지고 사라져, 후일에 전해지지 못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라고 설득하였다.


─ 금사 원호문 열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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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상란을 거치며 수장되어 버렸던 금나라 왕조, 사관의 기록은 당시 한족 출신 몽골군 장교 '장유' 라는 인물의 손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장유는 원나라가 나중에 수도 '대도' 를 만들때도 참가한 인물로, 몽골군에서는 제법 위치가 있는 편인 동시에 한족 출신이기에 기록에도 관심이 있어 모든 기록이 불살라지는 걸 아쉬워해 보관한 것입니다. 만약 장유가 아니라 다른 몽골군 장교가 그때 같은 장소에 있었다면 남은 기록들도 모두 불사라지고 쓰레기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원호문은 이에 대해 천행으로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장유에게 부탁해 기록을 인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주위에서는 "위험하다, 하지 말라." 고 말리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금나라가 멸망한 시점에서 그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이, 몽골군에게 해꼬지를 당할지도 모르는 위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호문은 "한 나라의 업적이 훗날 전해지지 못하면 안된다." 면서 오히려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다만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이 시대의 사실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될까, 그것만이 걱정이었습니다. 나라의 흥망은 하늘의 뜻이므로 모두 멸망한 쪽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잘못 전해지는 말이 구적(仇敵 원수)에게 전해지면 그들은 욕하고 헐뜯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일이 없도록 올바른 역사를 후세에 전하는 일에 노력하고 싶었습니다. 금나라 원로들은 나라의 존망을 함께했고, 현자들은 전쟁과 굶주림으로 죽었습니다. 몸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이름마저도 사라져 버린다면 의로운 인사들은 것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할 것입니다. 저 가옆은 회서의 거리, 채주에서는 황제를 따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용사가 스스로 목숨을 버렸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글로 써서 남겨야만 합니다.




 조물주가 이 붓대를 남겨 주었으니,
 이 가난 또한 어찌 사양하랴




 이 시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조물주인 신은 내게 이 붓을 남겨 주었다, 이 붓만 있으면 그 밖에 아무것도 필요 없다, 가난 따위는 겁나지 않는다...




乃構亭於家,著述其上,因名曰「野史」。凡金源君臣遺言往行,采摭所聞,有所得輒以寸紙細字為記錄,至百余萬言。

원호문은 집안에 정자를 지어 그곳에서 저술작업을 하였는데, 그때 작업한 역사 책에 <야사(野史)>라고 이름을 붙였다. 원호문은 금나라 임금과 신하들의 남은 언행을 모으고 소문도 채록하였는데, 얻은 정보가 있으면 조그만 종이에 빽뺵하게 적어 기록으로 삼았으니, 그가 모은 것이 100여장에 1만 문장도 넘었다고 한다.


금사 원호문 열전 中




원호문은 한 사람의 몸으로 한 나라의 역사를 남기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장유를 통해 실록의 기록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비한 점이 많았기에 직접 발로 뛰며 여러 서책을 구하고, 직접 정보를 얻어야 했습니다. 



특히 국가의 전반기나 전성기는 그렇다치더라도, 혼란스런 남아 있는 공식 자료 자체가 부실하고 유실되어 이것만으로는 모자란 점이 많았습니다. 금나라 말기의 유문일사(遺聞逸事 기록에 빠져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에 수집에 그는 특히 집중했습니다. 전란으로 인해 기록되지 못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그 일을 보고 들은 사람들이 현존했기에, 원호문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취재했습니다. 그 자신도 많은 것을 목격했고, 그리고 들었습니다.



지금 그것들을 적어 놓아야만 했습니다.





원호문이 저술에 몰두하며, 원나라 조정에 출사하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몽골 대신 야율초재의 초대로 연경에 간 적이 있었지만, 이때도 몽골을 섬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 63세 였던 때, 원호문은 쿠빌라이 칸을 만났습니다. 이때 쿠빌라이는 원호문에게 '유교대종사' 라는 칭호를 내렸습니다. 종종 오점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거부하면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 일도 거의 만년,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짦던 시대인 당시 기준으로는 말 그대로 사람이 죽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 때의 일입니다. 원호문은 금나라 멸망한 후 아직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생에 전부를 기록을 남기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수많은 기록을 살피고, 수 많은 소문을 수집하고, 수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年六十八卒。纂修《金史》,多本其所著雲。

원호문은 68세에 죽었다. 그의 작업은 후일, '금사' 를 찬수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그의 기술을 그대로 반영한 부분이 많았다.


금사 원호문 열전 中





금나라 역사를 다룬 원호문의 저작들은 '임진잡편', '금원군신언행록', '남관록' 등이 있었는데, 모두 지금에 와서는 유실되었습니다. 그러나 원나라 말기 무렵까지는 원호문의 저작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금나라와 송나라가 멸망한 후 천하를 차지한 원나라에서는 전대의 전례에 따라 과거의 국사를 쓰려는 의견들이 있긴 했지만, 역시 그렇게까지 적극적이진 않아 계속해서 차일피일 미뤄지다 원나라 말기에 이르러, 승상 탈탈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요사' '송사' '금사' 를 모두 한꺼번에 편찬하는 작업이 시행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금사를 편찬하는데 있어선 원호문의 남은 저작들이 절대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금사를 작성했던 원나라 사관들 마저도, 금사의 원호문 열전에 '원호문의 작업이 금사 찬수에 큰 기여를 했다., 금사 내에서는 원호문의 기술을 그대로 받아적은 부분이 아주 많다.' 고 언급했을 정도입니다. 원호문이 쓴 내용을 그대로 받아서 넣은 부분이 많은데, 만약 원호문이 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당시 사관들이 반영할 수 있는 기록은 형편없이 적었을 것입니다.




이 금사는 중국 24사 중에서도 특히 문장이 매끄럽고 격조가 높기로 유명합니다. 당연합니다. 중국 역사상 몇 손가락 안에 들 대시인인 원호문의 글을 그대로 반영하였으니, 격조가 높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원호문의 집념이 몇세기를 거쳐 열매를 맺은 셈입니다.





그러한 집념으로 기록을 남긴 원호문은,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야사정우야감흥(野史亭雨夜感興)> 라는 시가 있습니다.






私錄關赴告
개인의 기록도 부고(공식 기록)과 관련 있으니,

求野或有取
향간에서 구하면 혹시 도움이 될 일도 있으리라

秋兔一寸毫
가늘디가는 붓을 들고,

盡力不易舉。
힘을 다해도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衰遲私自惜
노쇠하여 더디어짐을 스스로 아쉬워하지만,

憂畏當誰語?
걱정과 두려움을 누구에게 들려줄까?

展轉天未明
뒤척이고 또 뒤척여도 날은 아직 밝지 않았는데,

幽窗響疏雨
컴컴한 창에 간간히 빗소리만 들린다.
 





원호문은 야사정(野史亭)이라는 별채에서 홀로 저술활동에 매진했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기록도, 나중에 이르러 국사 편찬 사업이 시작되어 자료를 구하게 된다면 쓰여질지 모릅니다. 원호문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주야를 가리지 않고 저술에 매달렸습니다.



추토일혼(秋兔一寸)의 호(毫)는 아주 가늘디 가는 붓을 말합니다. 이러한 붓은 아주 가볍디 가벼운 물건이지만, 그 붓을 든 손은 온 힘을 다해도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한 국가의 역사를 홀로 남기는 일입니다. 하물며 그 나라는 망국이 되어 버렸고, 훗날 자신의 기록이 기반이 되어 정사 편찬이 되기를 바라지만, 진정 그렇게 될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실수하여 기록을 잘못 남길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애를 써서 남긴 기록이 사라져버리고 분실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국사 편찬 사업이 잘 되지 않아 결국 끝까지 반영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기억이 먼지처럼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불안감은 마음 속에 극심하고, 남겨야 할 것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영광스럽고 자긍심이 드는 기억도 있고, 나라를 망친 교훈으로 후대에 남겨야할 것도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악신들을 분명히 역사에 남겨 그들의 죄상을 알려야 했고, 충절하고 장렬한 인물들에 대한 기억을 천대 만대에 남겨야 했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장렬하게 죽었습니다. 황제도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자살하였고, 제국의 용사들도 마지막까지 싸우다 채주의 성벽 아래서 스러져갔습니다. 그 모든 처절하고 장렬한 기억을, 결코 잊혀지지 않게 남겨야 했습니다. 흡사 망령처럼 맴도는, 결코 잊혀지지 않게 해달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아우성이 그의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이 시를 쓸때 원호문은 이미 노년의 나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노쇠 때문에 작업이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더뎌짐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아직도 해야할것은 너무나도 많은데, 남겨야 하는 기억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자신의 몸이 그때까지 버텨줄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 걱정과 두려움, 그 밖의 모든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지만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좋을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만큼 이 감정은 깊습니다. 그렇게 상념에 잠기며 뒤척이며 또 뒤척이면서 어두운 밤 동안 붓을 들어올리지만, 밤은 깊고 날은 좀처럼 밝지 않습니다.



어두운 밤 속, 야심한 시간, 조용하고 고독한 별채 안에서, 원호문이 혼자만이 자리에 앉아 무거운 붓을 들어올립니다. 깊고 깊은 상념과 고통, 책임감과 감정이 휘몰아 치는데, 컴컴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 너머로, 단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의 빗소리만이 들려올 뿐입니다.






수백년, 족히 천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 시대도 국적도 다른 사람으로서 아무런 접점도 없는 사람일 뿐이지만, 문득 남겨진 이 기록들을 통해, 원호문의 놀라운 집념이 담긴 의지의 유산들을 접한다고 생각해보면, 순간순간 전율할 때가 있습니다.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10-22 14:14)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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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해
19/04/11 04:05
수정 아이콘
중간중간 이미지로 된 부분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글자수가 많아지면 pgr 게시판에서 자꾸 글이 중간에 잘려서 글자수를 줄이기 위해 그런 것인데, 좀 보기 불편해도 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Musicfairy
19/04/11 04:28
수정 아이콘
우와, 훌륭한 글입니다. 역사를 남긴 문인이라, 정말로 역사적인 업적을 남긴 분이군요...
cluefake
19/04/11 04:3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정말 몽골군은 일반 군대라기보다 코스믹 호러 같은 데서 나올 법한 지구적인, 대항 불가능한 재앙..에 가까운 존재였군요. 흔히 생각하는 망국의 군주처럼 정치를 이상하게 한 것도 아니었는데 별 수 없는 재앙.
이 와중에도 역사가 남았고.. 저 와중에도 끝까지 남기려 노력한 의지가 대단합니다.

읽다가 게임 팬으로서는 스타2 자날 암흑 속에서 캠페인이 떠올랐습니다. 역사는 그보다 더 참혹했네요.
19/04/11 04:39
수정 아이콘
이 글의 주제는 원호문이지만, 전 애종한테 자꾸 마음이 가네요.
주익균
19/04/11 05:36
수정 아이콘
(수정됨) 몽골은 뜬금없이 역사에 등장해서 지나치게 강력한 나머지 망할 때가 아직 오지 않은 두 나라의 생목숨을 끊어냈군요. 뭐 조진 나라가 한둘이 아니지만...
원나라가 한 역할이 없진 않다고 해도, 없는 편이 행복했을 수천만 인생들에게 애도를...
19/04/11 06:4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고맙습니다.
19/04/11 08:00
수정 아이콘
무조건 금나라가 잘못한겁니다. 강자가 약자한테 지면 강자한테 문제가 있는거에요.
파핀폐인
19/04/11 08:03
수정 아이콘
글의 주제는 원호문이지만 애종한테 마음이 가네요 222
19/04/11 08:14
수정 아이콘
원나라의 마지막은 한거에 비하면 잔인하게 끝나지는 않았군요 그러고보니
바다표범
19/04/11 08:38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 글 읽을 때 마다 느끼는데 좋은 글주제를 선정하고 그걸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신거 같습니다. 항상 잘배우고 갑니다.
처음과마지막
19/04/11 08:55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그냥 처음부터 금나라든 송나라든 항복했다면
피해가 적었을까요?
우리 고려도 마찬가지구요 태풍은 일단 피하고 봐야죠 대다수 평민들이야 왕이 누가되든 큰 차이없는거 아닐까요? 결국 왕이나 일부 상류층의 욕심이나 판단 미스로 백성들만 죽어나가는건 과거나 지금이나 비슷한것 같습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한명이죽든 백명이죽든 내가족 내친구 친척이 죽는게 슬픈일인데요

전탱크는 쿠테타로 집권하고 광주에서 시민들 학살했는데 사형을 면한걸 보면 지금 현대도 별반 다르지 않은것 같아요
지금도 경호도 같이 다니고 있구요 정의가 바로된 세상이라면 목을 죽창에 달아서 시민들의 돌팔매 맞아야 정상 아닐가 싶어요

수백년후의 우리 후손들은 그런 쿠데타 괴수도 사면받고 천수 누리고 살다간걸 어떻게 평가할가요?

역사로봐도 전탱크의 악행은 백번 천번 만번 비판받아야 된다고 보거든요
요즘 뉴스에도 나오더군요 실종자들을 군용기로 옮겼을지 모른다구요

자기들 죄를 덮으려고 시신마저 가족들에게 돌려주지않은 천벌을 받을 놈들이죠

몽골의 전쟁과 학살을 보다가 문득 우리의 근현대사에 열받아서 몇자 적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보고 현대에 올바르게 적용하는게 역사를 보고 배우는것 아닐까요?
FRONTIER SETTER
19/04/11 09:4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우리 나라가 남쪽으로 천도한지 이제 20여년 째, 백성들은 농토와 주택을 폐허로 만들었고, 자신들의 처자식을 내다 팔며 군대를 양성했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의 군사가 20여만에 이르렀다. 그런데 적이 와도 맞아 싸우지 않고 단지 스스로 수비하려고만 한다면, 그리고 설사 그렇게 해서 도성을 보전할 수 있다 할지라도, 어떻게 그런 것을 일컫어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짐은 이에 대해 심사숙고 하였다. 국가의 보전하고 망하고는 단지 천명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짐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나의 백성을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 뿐이다."

이 말은 고려가 생각나게 하기도 하네요. 그렇게 해서 결국 사직을 보전한 건 고려가 잘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라가 백성을 버리고 틀어박힌 가운데 잃어버린 백성들의 생목숨을 생각하면 또 애종의 애민이 가상하기도 하고. 결국 이 문제는 누가 어떻게 그럴 듯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더라도, 존중 받을 각자의 의견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단 하나의 정답은 없는 문제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애종이 멋있네요. 제가 민초의 입장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한종화
19/04/11 10:1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그림파일로 된 부분은 모바일 화면에서 너무 글자가 작게 보여서 읽기가 곤란한 점이 있었습니다. 다시 컴에서 정독했습니다. 끝까지 읽으니 정말 묵직한 감동이 몰려오네요.
고거슨
19/04/11 10:21
수정 아이콘
여진 출신 정복왕조의 15만 대군 그것도 화포로 무장한 군세면 당대 최강에 가까운 무력인데 한타한방에 박살나다니.. 규격외이긴 했네요.
lonelydragon
19/04/11 10:24
수정 아이콘
전근대 시기의 국가와 사람에 대한 관점은 현재와 너무 다릅니다. 천부인권, 휴머니즘, 민주주의 위에 세워진 현대문명국가의 국민 시점에서 판단해버리면 위 글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못보게 됩니다.
19/04/11 11:0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신불해님의 주제선정 및 내용전달력은 대단하십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청순래퍼혜니
19/04/11 11:2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Quantum21
19/04/11 11:30
수정 아이콘
삶에 대하여 다시한번 돌아보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이 글 뿐만아니라 제가 이렇게 문명을 누리며 사유할 수 있는 호사의 바탕에 있는, 먼저간 수많은 사람들의 울고 웃고 피흘리며 만들어온 보이지 않는 자산의 묵직함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조금씩이라도 삶에대한 지혜가 모이고 또 후세에 남겨 더해진다면 언젠가는 온 인류가 하나 되는 순간이 오리라 믿습니다.
루크레티아
19/04/11 11:43
수정 아이콘
제가 그래서 슈토헬이란 만화을 명작으로 뽑는 이유죠.
문자와 기록을 남기려는 사람들의 의지란 정말 대단합니다.
스테비아
19/04/11 12:0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붓대 하나 남은 시인이 엄청난 일을 해냈네요.
요즘은 '인류가 역사라는 걸 객관적으로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언제부터일까?'가 궁금해집니다. 전쟁하다가 여신이 도와줘서 이기고 뭐 이런 기록도 당시로서는 신에게 찬사를 보내는 의미로서의 매우 '의미있는'기록이었을테니까요.
책 읽어주세요
19/04/11 12:26
수정 아이콘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뿔이
19/04/11 12:54
수정 아이콘
많은 유목민 출신의 왕조가 빠지는 함정에 금나라도 그대로 빠진거죠 험난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성인남성이면 누구나 훌륭한 전사였던게 유목민 군대의 장점이지 태어날때부터 강한게 아니니깐요 그 험난한 환경이 사라지고 나니 기존의 장점을 잃어버렸는데 전투방식은 그대로 유지할려고 하니...
새강이
19/04/11 13:03
수정 아이콘
와..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19/04/11 13:33
수정 아이콘
원나라처럼 굵고 짧게 끝내야. 망해도 돌아갈곳이 있죠.
청나라는 그렇게 노력했건만.. 아예 만주 자체가 사라져버린..
홍승식
19/04/11 13:43
수정 아이콘
이런 것이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실증이죠.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19/04/11 15:24
수정 아이콘
다른 이야기인데 성에 틀어박혀서 농성 했으면 고려처럼 나라의 명맥을 이을 수 있었을까요?
지니팅커벨여행
19/04/11 17:4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대하 소설을 읽는 듯한 장엄한 글이었네요.
터치터치
19/04/11 17:55
수정 아이콘
가끔 글을 쓰다보면 등장인물에 빙의되어 글을 쓰는게 아니라 써내려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신불해님의 몰입도가 그러하네요 정말 잘 봤습니다
전자수도승
19/04/11 20:33
수정 아이콘
[하지만 충격이 워낙 극심해 '몽골 조정'은 수도였던 연경(燕京)이 몽골 초원과 너무 가깝다고 여겨 남쪽인 개봉으로 천도를 감행했습니다.]
19/04/11 21:46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의 글은 이토록 담담하게 글을 쓰시면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는 좋은 글입니다. 글쓴이만 보고도 클릭해서 글을 읽게 하시는 분입니다.
남광주보라
19/04/11 21:53
수정 아이콘
감격스럽습니다. 가슴뭉클하여 눈물이 납니다
TheLasid
19/04/11 22:54
수정 아이콘
숙연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멍멍머멈엉멍
19/04/11 23:06
수정 아이콘
인쇄술과 출판도 마땅치않았을 초 아날로그 시대에는 기록이란 정말 신념과도 같았겠어요. 서두의 글부터 빨려들어가서 한호흡에 읽고갑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또 다른 원호문이 아니신가싶습니다.
전자수도승
19/04/11 23:22
수정 아이콘
[저 '가옆은' 회서의 거리]
[금나라 말기의 유문일사(遺聞逸事 기록에 빠져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에' 수집에 그는 특히 집중했습니다.]

이미 봤던거고 내용 다 아는데 읽을 때마다 콧등이 시큰거려서 곤란한 글입니다
잉여레벨만렙
19/04/12 06:00
수정 아이콘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호머심슨
19/04/12 21:30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은 단순히 인터넷글쓰기를 즐겨하는 일반인 역사덕후가 아니라

역사나 글쓰기와 관련된 뭔가 전문적인 일을 하는 분이 아닐까요?
10년째도피중
19/04/13 08:45
수정 아이콘
이번 글도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저기 실례가 안되시면 혹시 이 내용을 만화로 만들어봐도 괜찮을까요? 꽤 예전 거긴 하지만 저는 대략 요런(http://nhistoria.egloos.com/2824691) 만화를 그려왔는데요. 요새는 좀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만 님의 글을 읽다보니 뭘 좀 그려보고 싶은 맘이 생겨서 말씀드려보네요. 뭐 금전적 이득이 생긴다거나 하는 건 아니라... 제안같은 건 못되는 것 같네요;;; 당연하지만 만든 만화는 신불해 님 이름으로 나가고 제 이름은 그린 이로만 놔두려고요.

답이 없으시면 거절의 의사로 알고 접겠습니다. ㅜ.ㅜ
신불해
19/04/13 09:39
수정 아이콘
어차피 저도 여기저기서 많은거 보고 인용하는 거니까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10년째도피중
19/04/13 18:12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개발괴발
19/10/22 15:22
수정 아이콘
(수정됨) 뭐... 서하의 사례라든가 아랍 국가들, 러시아 공국들 사례를 보면
빠른 항복 -> 빠른 살육 테크를 탔을 겁니다.
몽골의 침략을 보면 항복받고 기만하고 또 공격하고 항복받고 기만하고 또 공격하고 이 순서의 연속이었을 뿐 -_-

고려는 끝까지 항복 안하다가 유화정책에 들어간 몽케 시절에 항복해서 그나마... 그나마 좀 유지가 된거고,
징기스칸/우구데이 시절에 항복한 나라들 치고 좋은 꼴 본 나라가 없습니다.

지금 본문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평화협정 하고도 금방 다시 쳐들어오는게 몽골인데요 뭐...
게다가 금나라는 징기스칸에게 있어 개인적으로도 원한관계였던 나라라 뭐 빠져나갈 여지같은건 없었을 거에요.


그리고 [왕이 누가 되냐 차이가 없을 뿐]은 중국/일본 전국시대 같은데선 통용될 지 몰라도
이민족 국가들 간에선 아니죠 =_=
바로 2등3등 국민으로 내려앉아서 가혹한 수탈이 기다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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